무력한 '을'들이 불평등을 받아들이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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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한 '을'들이 불평등을 받아들이는 과정
  • 2019.08.03 12:00
사회 구조 상 자신이 불리한 입장에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구조의 불평등을 지지하고 정당화 하는 경우를 보게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서울대생은 다른 것 같아요. 공부도 잘하고 .. 저 같아도 서울대생 뽑을 것 같아요

"해 둔 것도 없는데 자격증이라도 따야죠."

"제가 이번 생에 갑이 될 수는 없을 거고 어디까지나 을이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 학교 후배, 군인, 학생, 취준생 혹은 직장인들을 우리는 일상에서 만납니다. 현재의 불평등한 사회구조 속에서 자신이 불리한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변화를 위해 분노하기보다 오히려 기존의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정당화하고 수용하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왜 일까요? 엘리트들이 이미 우수한 자원을 차지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소위 '선전선동'의 영향으로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했기 때문일까요?

주관적 무력감

여러 설명이 가능할 수 있겠지만, 사회심리학자인 van Toorn과 동료들은 한 사회구조 속에서 권력이 없는 사람들이 느끼는 '주관적 무력감'a sense of powerlessness에 관심을 가졌습니다van Toorn et al., 2015. 여기서 주관적 무력감이란, 권력에 대한 감각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타인에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이 없다는 느낌’, ‘권력이 있는 타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느낌’, 즉 '권력이 없다는 느낌'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타인의 판단이나 행동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낮고, 사회적 자원을 얻기 위해 가진 수단이 제한적이라고 느낄 때, 현재 사회 시스템과 권력자들을 더 정당하다고 여긴다는 것이죠. 이를 검증하기 위해 van Toorn과 동료들은 다음과 같은 일련의 연구들을 진행하였습니다.

경제시스템은 정당한가요?

첫 번째 연구는 주관적 무력감이 현 경제 시스템에 대한 정당성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미국 학부생 53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회귀분석한 결과, 실제로 타인과의 관계 내에서 자신이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보고한 참여자일수록 오히려 경제적 불평등이 공정하고 정당하다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연구는 실험을 통해 주관적 무력감과 시스템 정당화 사이의 인과관계를 보여줍니다. 미국 학부생 140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과거 타인이 자신에게 권력을 행사했던 경험을 떠올린 참가자들(낮은 권력 조건)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권력을 행사했던 경험을 떠올린 참가자들(높은 권력 조건)에 비해 현재 사회 시스템을 더 정당하다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불평등이 명백한 상황에서도, 또 이러한 불평등이 시스템으로 인한 상황으로 분명 설명될 때조차도, 주관적 무력감이 시스템 정당화를 예측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미국 학부생 101명을 앞의 실험과 같은 방식으로 높은 권력조건과 낮은 권력조건에 우선 할당하고, 인종차별(흑인 청년의 높은 투옥률), 부의 분배(상위 1% 부가 하위 90%의 부와 비슷), 임금 성차(여성 근로자의 임금이 남성 근로자 임금에 비해 17% 낮음) 라는 불평등한 상황을 담은 글을 제시하였습니다.

집단의 특성 vs. 시스템의 문제

그리고 일부 참여자에게는 이러한 불평등이 집단의 특성(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자란 대다수의 흑인 청년, 부를 축적하기 위해 노력하는 부자, 결혼 후 직장을 떠나는 여성)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설명하고, 다른 참여자에게는 시스템의 특성(흑인에게 적대적인 사회적 차별과 사법 시스템, 시장 시스템의 불공정성, 직장 내 성차별)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설명합니다. 그 후 참여자들이 각 상황이 얼마나 정당하다고 생각하는지 측정하였습니다.

분석 결과 낮은 권력 조건의 참여자들은 높은 권력 조건의 참가자에 비해 불평등한 상황을 더 정당하다고 지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자신이 무력하다고 느끼는 참여자들은 무력하지 않다고 느끼는 참여자에 비해 시스템으로 인해 발생하는 명백한 불평등 상황을 더 정당화한 것이죠.

1950년대만 해도 미국에서 식당은 말할 것 없고 버스조차 흑백분리가 합법적으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1955년 한 흑인여성에 의해 또 하나의 저항이 시작된다. 흑인차별이 가장 심했던 알라바마 주에 살았던 흑인 여성 로사 파커Rosa Parker는 백인용 버스에 탑승하면서 저항을 시도했다. 이러한 노력은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90%나 되는 흑인들의 승차거부 운동으로 이어졌다. 결국 미국 대법원은 버스에서 인종분리는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작은 저항이 세상을 바꾼 것이다. 사진은 그녀가 백인버스에 승차했다는 것 때문에 경찰에 체포된 후 서명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AP

무력감을 경험한 사람일수록

위와 같은 일련의 연구를 통해 van Toorn과 동료들은 한 시스템 내에서 불리한 집단에 속한사람들이 겪는 무력함 경험이 기존의 사회질서status quo를 더 정당하다고 인식하는 데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권력이 실제로 없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춘 이 연구들은자신이 불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을 받아들이고 정당화하는 ''들의 심리적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기존의 사회구조가 변화하지 않고 지속되는 현상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 것이죠.

한국 사회에서도 학벌주의, 경쟁주의 등 불평등하고 위계적인 문화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에 깊이 공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사회 변화는 요원합니다. 불평등하고 과잉-위계적인 사회구조의 변화를 위해 - 어쩌면 변화의 필요성과 방안을 논의하기 이전에 - 우리 각자가 이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믿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 지요. mind

    <참고문헌>

  • van Toorn, et al. (2015). A sense of Powerlessness Fosters System Justification: Implications for the Legitimation of Authority, Hierarchy, and Government. Political Psychology, Vol. 36, No. 1.
안정민 중앙대 심리학과 사회및문화심리 박사 수료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한국 사회를 꿈꾸며, 사회변화를 위한 개인의 태도 및 인식 변화와 실천에 관심이 있다. 중앙대학교에서 사회 및 문화심리학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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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형 2019-09-22 23:35:39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