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성 진통제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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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성 진통제의 역습
  • 2019.08.01 12:30
옥시코돈, 헤로인과 같은 아편성 진통제는 고통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지만 그 후유증 또한 매우 심각하다. 또한 문화에 따라 고통에 대한 지각과 진통제의 복용이 다르다는 것은 흥미롭다.

올 해 봄 풀브라이트 특별 세미나는 중독을 주제로 미국 켄터키 주에서 열렸다. 세미나를 유치한 켄터키 지역의 한적하고 평온한 자연 환경과는 대조적으로, 첫 번째 연자의 발표는 긴장과 위기감이 가득했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아편성 마약 사용이 가장 높은 나라이며, 그 중 켄터키 주는 헤로인을 포함한 아편성 마약 약물 중독으로 인한 사망률이 미국 내에서 가장 높다.

아편성 진통제의 남용

헤로인 중독에서 회복 중에 있는 30대 초반의 한 연자는 우연히 자신의 엄마가 허리 수술 이후 복용하던 진통제 옥시코돈Oxycodone, 합법적 아편성 Opioid 진통제를 서랍에서 발견하고 호기심에 먹어 본 것이 헤로인 중독의 강력한 시발점이 되었다고 고백했다. 옥시코돈이 자신의 긴장과 고통을 낮추어 주어 시합 등 긴장이 가득한 날에는 옥시코돈을 복용했다. 옥시코돈이 떨어져 더 이상 구할 수 없자, 거리에서 구할 수 있던 유사한 아편성 약물인 헤로인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루시 놀 Santiago Rusiñol, 1861-1931. The Morphine's Girl, 1894. 캔버스에 오일, 87.8 x115.2 cm. 카우 페라뮤지엄 소장. ©Google Arts & Culture
산티아고 루시놀Santiago Rusiñol, 1861-1931. '몰핀에 중독된 소년' The Morphine's Girl, 1894, 캔버스에 오일, 87.8 x 115.2 cm, 스페인  카우 페라뮤지엄 소장. ©Google Arts & Culture. 양귀비에서 추출한 모르핀이 진통제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10년대였으며 19세기 후반에는 강한 중독성을 지닌 마약으로 오용되기도 했다.  스페인 화가 루시놀가 파리에 체류하던 1894년 제작된 이 그림을 통해 유럽의 세기말 분위기를 어둡게 묘사하고 있다. 

옥시코돈은 수술, 암, 골절 등으로 인한 심한 통증을 완화하는 진통제로 미국 식약청의 허가를 받은 합법적 약물이다. 당시 옥시코돈이 중독의 우려가 있음을 여러 학자들이 경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강도 높은 통증을 경험하는 수술 환자에게는 처방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하지만 옥시코돈의 강력한 진통 효능과 제약회사의 비윤리적인 마케팅 때문에 사용이 급증하게 되었다. 과잉 처방이 되거나 처방된 약이 다시 암거래 되고 있었다. 옥시코돈 사용의 증가는 바로 헤로인 사용의 증가로 이어졌다. 뒤늦게 여러 주에서 옥시코돈 처방을 제한하는 법적 결정이 났음에도, 이미 아편성 약물에 중독된 사람들은 다른 마약을 찾으며 미국 전역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 이후였다.

마약과 사망률

하버드 의학대학 건강학술지 2018년 10월호에 따르면 미국에서 아편성 진통제 과다복용으로 하루에 115명 이상이 사망하고, 2016년에는 총 4만 2천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했는데, 이 수는 1999년 사망자 수의 다섯 배가 넘는다고 보고했다. 2016년 국제 아편성 약물 사용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100만 명당 4만7천여 명으로 아편성 마약과 진통제 사용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았으며, 이는 천여 명에 불과한 일본 등과 극명하게 대조를 보였다.

헤로인, 코카인 등의 아편성 마약은 아주 빠르게 고통을 경감한다. 헤로인 중독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헤로인을 사용할 때 현실 속 자신의 인간관계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매우 따뜻하고 강렬한 쾌락을 경험한다고 한다. 영화 『더 더트The Dirt』에서 그려진 실제 헤비메탈 그룹 『머틀리 크루Motley Crue』의 리더인 니키 식스Nikki Sixx는 어린 시절 부모의 애정과 사랑의 결핍으로 커다란 심리적 고통을 경험하였다. 이 고통을 헤로인을 사용하면서 누그러뜨리다가 결국 과다복용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는 장면이 그려진다. 『도프시크Dopesick』의 저자인 미국 저널리스트인 베스 메시Beth Macy는 마약 사용이 급증하는 곳은 대부분 그 지역의 심각한 경제적 부도 현상과 같은 실제적 고통이 증가한 곳에서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곳에서 옥시코돈과 같은 진통제의 사용, 헤로인 중독과 마약 과다복용으로 인한 사망률이 정적 관계가 있음을 경고한다.

문화에 따라 고통의 지각 달라

애틀랜틱 저널 2017년 12월 호에 보고된 흥미로운 결과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여러 나라의 수술환자가 얼마나 자주 신체 고통을 호소하는지 조사하였을 때, 미국은 국민의 34%가 수술 이후 고통을 자주 경험한다고 보고하였고, 한국은 21%, 남아프리카는 10%, 체코는 9%정도이었다. 수술 이후 회복 과정에서 고통이 있을 때, 주관적 고통을 더 많이 호소한 미국에서 아편성 약물이나 진통제 복용의 비율이 높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미국 문화 중 의아해 했던 것 중 하나가 많은 사람들이 진통제를 항상 지니고 다니며, 비타민 정도의 보조 식품 정도로 취급하는 점이었다. 한 미국인 친구가 어느 날 “왜 진통제를 안 먹어? 약이 있는데 왜 고통을 참아?”라며 내게도 진통제를 권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병원에서조차 ‘견딜 수 있으면 진통제 없이 낫는 게 좋습니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기에, ‘고통을 대하는 태도에서 미국과 한국에 차이가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고통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

고통은 없애거나 피해야하는 것일까? 고통이 없기를 바라지만, 우리의 삶은 그렇지 않다. 진통제가 순간적 고통을 줄여주는 것 이외에 우리 삶에서도 장기적으로도 고통을 줄여줄까? 밀러와 골드의 연구에 따르면, 아편성 진통제를 오랜 기간 복용할 때 오히려 고통이 증가한다고 보고하고,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는 아편성 진통제를 끊어야 함을 주장하였다Miller & Gold, 2007. 미국의 아편성 약물 중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심리학자들은 고통을 바라보는 자세와 관점을 바꿀 것을 제안한다. 즉 ‘고통은 치료되는 것cured이 아니고 인정하고 견뎌내야 하는 것endured이다.’

인간은 어느 정도의 고통에 익숙해지고 버텨낼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많은 경우 고통은 인간 생존에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하기에 고통을 잘 들여다보면 삶에 필요한 지혜를 얻을 수도 있다. 팔에 상처가 났을 때 고통이 없다면 치료할 동기가 없을 것이고, 어디가 아픈지 알 수 없어 치료를 제 때에 하지 못하게 된다. 상대에게 거절당할 때 느끼는 것과 같은 심리적 고통도, 그 고통을 바라볼 수 있을 때 나를 거절한 그 사람과의 관계가 내게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

약물치료와 다르게 심리치료에서는 고통은 없애야 하는 것으로 대하기보다 고통을 직면하고 어느 정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기르는데 초점을 둔다. 역경이 많은 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성실성이라는 성격 강점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으며, 역경이 없어 보이는 부유한 환경에 있는 아이들은 오히려 약물중독의 위험이 3배나 높다고 하는 연구 결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안장애를 경험하는 사람들의 경우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침습할 때, (연습이 많이 필요하지만) 그 불안이 주는 순간순간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견디고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바라볼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단순히 그 순간 심장박동 수를 줄여주거나 근육을 완화하거나 빠르게 고통을 잊게 해주는 술이나 약은 진통제와 같이 그 순간의 고통을 줄여줄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악순환이 형성되어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

배워야 할 한국인의 지혜

한국인의 문화에는 고통을 단순히 없애야 하는 것으로 보기 보다는 삶 속에서 견뎌내야 하는 필연적인 삶의 일부분으로 보는 지혜와 태도가 녹아 있다. 한 예로, 여러 상황 때문에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베이비붐이나 그 이전 세대 분들 중에는 자신의 한의 고통을 견뎌내면서, 고통을 외면하거나 회피하기보다 결국 자식에게 더 좋은 교육 기회를 마련해 주는 방식으로 자신의 고통을 해결했다. 한국인의 고통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전쟁 이후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가족과 지역 공동체의 힘을 키우고, 배움과 교육을 이어가고,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는데 적잖은 역할을 했으리라 짐작한다. 진통제와 같은 방식이 아닌, 자신이 겪는 고통을 받아들이고, 견뎌내고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 의미를 실현해내는 한국인의 문화에서 앞으로 심리치료자들도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해본다.

최기홍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임상심리 Ph.D.
최기홍 교수는 임상심리학자로 고려대 심리학에 재직하고 있으며, 고려대 문과대학 부설 KU마음건강연구소 소장을 역임하고 있다. 심리치료 개발과 치료 효과 검증 연구, 그리고 효과적인 심리치료의 보급과 전문가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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