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참여한다고 세상이 바뀔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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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참여한다고 세상이 바뀔까요?
  • 2019.08.05 10:14
우리 사회에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청년들의 사회참여는 저조하다. 왜 그럴까? 어떻게 하면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정치적 참여를 꺼리는 이유

대한민국에 살면서 필자가 오랫동안 가졌던 의문 중 하나는 이 사회에 문제를 느끼는 사람은 상당히 많은데, 그러한 문제의 해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사회참여는 왜 이렇게 저조한가였다. 몇 년 전 진행한 연구1에서 청년들에게 그 이유를 직접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무척 부정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 "어차피 변하지 않을 거야. 이제까지도 안 변했잖아요."
  • "세상이 변하려면 시간이 꽤 오래 걸릴 텐데, 나는 지금 내 앞가림을 하는 것만 해도 바빠요."
  • "내가 국회의원 쯤 되면 몰라도,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 "목소리를 내는 의인들은 결국 다 희생됐잖아요."
  • "목소리를 내기 위해 걸어야 할 것은 많은데, 얻을 수 있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사회적 참여를 꺼리는 이유를 설명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양했지만, 그 이유를 관통하는 핵심은 분명했다. 자신의 노력으로 원하는 결과를 달성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심, 즉 행동의 효과에 대한 낮은 기대였다. 이러한 의심은 크게 두 가지 생각에서 비롯했다.

첫째, 이 세상이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직간접적으로 누적된 실패 경험으로부터 형성되기도 했다.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일어난 문제에서부터 보다 넓은 범위의 사회문제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 문제를 제기했으나 해결되지 않은 경험, 정당한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경험, 정치적 대표자나 집권당이 바뀌어도 기대한 만큼의 문제해결이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 등은 참여를 시도한 사람들로 하여금 무력감을 느끼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변화를 위한 행동을 시도하는 것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높은 싸움이며, 이러한 상황에 자신을 기꺼이 내던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두 번째는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자기 자신은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인터뷰 과정에서 만난 다수의 청년들은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개인으로서 변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으며, 자신의 참여가 사회정치적 변화에 영향력이 없을 것이라는 인식에 근거한 무력감을 보고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어떤 자격이나 역량을 갖추어야만 사회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생각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생각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변화의 주도적 참여자가 되는 것을 회피하는 합리화 기제로 활용되는 동시에, 스스로를 사회 운동의 관찰자이자 평가자로 포지셔닝 하게 만들었다.

외젠 들라크루아 Eugène Delacroix, 1798~1863.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La Liberté guidant le peuple, 1830. 캔버스에 유화. 2.6m x 3.25m.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세상의 변화는 늘 민중들의 사회적 참여를 통해 실현되었다. 그림은 샤를10세의 반동적 조치에 봉기한 파리 시민들의 1830년 7월 혁명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봉기로 샤를 10세는 퇴위하고 보수반동 정치도 막을 내렸다.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1798~1863.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La Liberté guidant le peuple, 1830, 캔버스에 오일, 260 x 325 cm, 파리 루브르박물관.

정치 효능감의 문제

위의 진술들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인식이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는가가 아니라 실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인식이 문제를 개선하려는 행동에 대한 개입을 줄이거나, 개입하지 않은 것에 대한 그럴듯한 이유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이제껏 사회심리학자들은 대인관계, 목표추구, 설득, 집단관계 등 다양한 이슈에서 특정 대상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와 신념이 상황에 대한 지각과 해석을 다르게 함으로서 후속적인 행동의 차이를 발생시킨다는 것을 증명해 왔다. 마찬가지로 정치참여와 사회운동영역에서도 참여행동에 결정적인 차이를 가져오는 인지적 개념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져 왔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정치 효능감political efficacy이다.

정치 효능감은 개인의 행동이 정치과정에 영향력을 미치거나 미칠 수 있다는 믿음을 의미한다.2 이는 스스로 정치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뜻하는 내적 효능감internal efficacy과 정치가와 정부관료 등이 시민들의 요구에 적절하게 반응할 것이라는 믿음인 외적 효능감external efficacy을 포함한다.3 이 개념을 다루는 많은 연구들은 효능감의 정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투표, 풀뿌리 시민활동, 정당 활동, 사회운동 등 다양한 형태의 정치 참여 행동을 많이 한다는 결과를 비교적 일관되게 보고하고 있다.

사회심리학자 수잔 피스케Susan Fiske는 반핵운동에 대한 활동가들과 비활동가들의 사회적 인식 비교를 통해, 두 집단이 사회변화에 대한 개인의 영향력에 대해 매우 다른 인식을 가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시민운동의 효과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는 비활동가와는 달리, 반핵 운동가들은 핵전쟁이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예방 가능하다고 믿고, 시민이 함께 힘을 모으면 핵전쟁을 줄일 수 있도록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었다. 피스케는 활동가들이 보이는 이러한 믿음을 정치 효능감이라고 보았고, 보다 많은 시민들의 실질적인 정치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정치 효능감을 증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4

작은 승리 이론의 효과

사회참여의 효과성에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들의 정치 효능감은 증진될 수 있을까? 서두에 언급한 연구과정에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을 만나는 동안, 우리가 자꾸 정치적 무기력에 빠지는 것은 ‘정치’나 ‘변화’와 같은 것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고, 원하는 결과를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 곧 실패라고 여기는 사고방식에 어느 정도 기인한다는 생각을 했다.

작은 승리 이론Small-wins theory을 제안한 칼 와익Karl Weick은 많은 사회문제가 거의 해결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의 능력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할 만큼 큰 수준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5 당면한 문제가 자원과 능력의 한계를 뛰어넘어 극복 불가능한 것으로 느껴질 때 사람들은 무력감과 불안을 느낀다. 그는 사회변화를 위해 시민 참여를 확대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정치, 학계, 시민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큰 사회적 문제를 보다 작은 단위로 쪼개어 문제를 구체화할 것을 권한다. 주어진 과제가 개인 혹은 집단이 도전하여 해결할 수 있을 만큼의 것일 때 사람들은 목표달성에 대한 통제감을 느끼고 행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만약 거기에서 작은 성공을 이루어낸다면 더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신감, 즉 효능감이 비로소 생길 수 있다.

또한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하고 있는 시민들에게는 시민 참여의 성과와 의미를 발굴하고 공유하는 것이 효능감의 유지와 증진에 중요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로 거론되고 있는 저출산-고령화, 불평등, 고용불안, 저성장의 문제와 이로부터 파생된 많은 사회적 갈등은 하나의 독립된 사건이라기보다 사회의 여러 조건과 변수들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우리가 사회변화를 위하여 목소리를 내고 적극적인 참여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 참여의 결과가 단시간에 눈에 띄는 성과로 나타나거나 완전한 해결에 이르는 일은 매우 드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도가 의미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즉각적인 성과창출과 완전한 해결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많은 의미 있는 시도와 목소리가 있었기에 세상은 조금씩 좋은 쪽으로 변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여 과정에서 의도했던 목표를 온전히 달성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그 참여의 시도와 그 결과가 목표 달성을 위한 향후의 과정에 어떤 의미와 자산으로 남을 수 있는지에 대해 진단하고 의미화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몇 가지 의견을 기술해 봤지만 실질적으로 시민들의 정치적 효능감을 증진하여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조건과 방법에 대해서는 더 많은 시도와 그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참여는 시민의 당연하고도 중요한 권리이자 의무로 여겨지지만, 실제 투표 이상의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에 개입하는 사람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껴 시민 참여와 같은 이슈에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는 사람들 또한 많다. 커뮤니티 심리학자인 오나일O'Neill은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사회가 정의롭지 않다고 느끼면서도 스스로의 영향력이 낮다고 생각하여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사회적 욕구를 억압하고 부정하게 된다고 지적한다.6 사회와 개인 모두의 건강한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지금 여기의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시민 사회와 학계가 함께 고민하고 연구해 볼 문제다. mind

<참고문헌>

  1. 안정민, 서예지, & 정태연. (2017). 한국 청년세대의 체제정당화: 의미 불일치 경험과 그 심리적 결과를 중심으로. 한국심리학회지: 사회 및 성격, 31(4), 247-275.
  2. Campbell, A., Gurin, G., & Miller, W. E. (1954). The voter decides.
  3. Craig, S. C., Niemi, R. G., & Silver, G. E. (1990). Political efficacy and trust: A report on the NES pilot study items. Political behavior, 12(3), 289-314.
  4. Fiske, S. T. (1987). People's reactions to nuclear war: Implications for psychologists. American Psychologist, 42(3), 207.
  5. Weick, K. E. (1984). Small wins: Redefining the scale of social problems. American Psychologist, 39(1), 40.
  6. O'Neill, P., Duffy, C., Enman, M., Blackmer, E., Goodwin, J., & Campbell, E. (1988). Cognition and Citizen Participation in Social Action 1. Journal of Applied Social Psychology, 18(12), 1067-1083.
안혜정 중앙대 심리학과 박사 사회및문화심리 Ph.D.
옳고 그름의 당위적 지식보다 차이와 다름을 이해하는 심리학의 가능성을 믿습니다. 다양성과 사회혁신에 관련된 주제를 심리학적 관점에서 연구하고, 특히 다양성과 변화에 저항하는 사람의 마음에 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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