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겐 너무 어려운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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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겐 너무 어려운 과제
  • 2019.08.10 10:00
싸이와 김정은을 구분하지 못할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서양인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우리가 서양인을 쉽게 구분할 수 없듯이, 그들 역시 동양인을 쉽게 식별하지 못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다른 인종 사람 구분하기 

2012,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국내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히트했을 당시에 유독 해외에서 싸이와 김정은을 엮는 경우가 많았다. 싸이의 기자회견장에서 한 외신이 김정은에 대해 묻는가 하면 영국에서는 싸이와 김정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서구권에서 이 둘을 빈번하게 엮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남북한 정세와 같은 정치적인 이유는 차치하고) 그들에게 싸이와 김정은의 외모가 상당히 흡사해 보여 구분이 다소 어렵다고 느낄 정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아주 쉬운 일일 뿐더러 이들이 닮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수 있다. 여담이지만 지도교수님이자 Mind의 필진 중 한 명인 최훈 교수님도 유학시절에 싸이나 김정일과 닮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으셨다고 한다. 아래의 그림을 보면 이 셋이 헛갈릴 얼굴인지 의문이 든다. 그런데, 왜 해외에서는 이들을 모두 비슷하다고 생각했을까?

 

왼쪽 부터 가수 싸이, 최훈 교수, 김정은 위원장. 서양인들은 이들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왼쪽 부터 가수 싸이, 최훈 교수, 김정은 위원장. 서양인들은 이들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타인종효과

이와 같은 현상은 심리학에서 보편적으로 알려진 타인종효과other-race effect 로 설명될 수 있다. 이 효과는 우리가 자신과 같은 인종의 얼굴을 구분하는 일보다 자신과 다른 인종의 얼굴을 구분하는 일을 더 어려워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현상 때문에 실제 과거 미국에서 한 흑인 남성이 억울한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이 발생했다. 백인인 피해자가 자신을 성폭행한 범인으로 지목한 흑인 로널드 코튼이 아주 엉뚱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진짜 범인은 사건이 발생하고 11년이나 지난 뒤에 유전자 검사를 통해 밝혀졌지만, 로널드 코튼은 무려 11년 동안 교도소에서 복역해야만 했다. 실제 범인과 로널드 코튼은 닮았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다른 외모를 가졌지만, 백인인 피해자 학생에게는 동일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타인종효과를 고려하면, 최근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으면서 특히 10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그룹 BTS의 사례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서양인들에게 무려 일곱 명이나 되는 한국인 멤버들을 구분하는 일은 상당히 어려울 텐데도 그들은 생각보다 쉽게 멤버들을 구분해낸다. 무엇이 BTS멤버들을 구분할 수 있게 했을까? 2019Visual Cognition 저널에 개재된 ZhouElshiekh, Moulson의 연구를 통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태생적 vs. 경험적

타인종효과는 태생적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주로 지각 경험의 결과로서 설명되어 왔다. 주변에 있는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내가 주로 경험하는 내 주변의 사람들, 즉 동일한 인종의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 시각 시스템을 발전시키다 보니, 동일한 인종의 사람은 쉽게 구분하지만 타인종의 사람은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지각 경험의 영향에 초점을 맞춘다면, 자연스럽게 과연 발달 단계 중 어떤 시기의 경험이 중요한지에 대한 궁금증이 든다. 대부분의 지각 경험은 우리의 시각 시스템에 영향을 끼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시기인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인종과 성장환경이 서로 다른 집단, 즉,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나고 자란 백인 집단,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양인 집단, 동아시아 국가에서 태어나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한 동양인 집단 간 타인종효과가 발생하는 정도를 비교하였다. 각 집단에 44명씩 총 132명이 참가하였는데,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한 동양인 집단에 속한 참가자의 경우, 캐나다로 이주할 당시의 연령대가 영아기부터 성인까지 다양하였다. 참가자들은 서양인 또는 동양인으로 구성된 흑백의 얼굴 자극들은 본 후에 이 얼굴들을 기억했다가 찾는 재인(이전 경험을 기억해내는 인지활동)과제들을 수행하였다.

연구 결과, 캐나다 태생 백인과 동아시아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이주한 동양인은 모두 자신과 동일한 인종에서 높은 정확도를 보였는데, 이는 타인종효과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캐나다 태생 동양인 집단의 경우 동양인과 서양인 모두에서 유사한 수준의 수행을 보여, 타인종효과가 발견되지 않았다.

인종구분의 결정적 시기

흥미로운 사실은 동아시아 태생 동양인 집단에 속한 참가자의 경우 어느 시기에 캐나다로 이주해왔는지에 따라 유의미하게 다른 정도의 타인종효과가 관찰되었다는 것이다. 참가자의 이주 연령대를 영유아기(0-2), 유년기(3-11), 청소년기(12-17), 성인기(18세 이상)로 구분 지었을 때, 영유아기와 유년기에 이주한 성인들은 자신과 다른 인종의 얼굴에 대해서도 유사한 수준의 재인율을 보여, 타인종효과가 관찰되지 않았다.

그러나 청소년기와 성인기에 캐나다로 이주한 성인의 경우 타인종효과가 관찰되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연구 결과가 타인종효과의 형성에는 발달 초기 단계에서의 경험이 중요하며, 상대적으로 청년기와 성인기에서의 경험은 그 영향력이 높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하였다. 이는 사람 얼굴의 신원을 확인하는 얼굴 정보 처리 기제 형성의 결정적 시기가 영유아기 및 유년기에 해당하며, 그 이후에는 경험에 따라 처리 기제가 변화하는 가소성의 측면에서 한계를 보이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인터넷의 발달로 공간의 한계가 없어지고 어릴 때부터 다른 나라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요즘, 타인종효과는 어쩌면 조만간 소멸될 효과인지도 모르겠다. 유년시절을 BTS, 또는 다른 K-POP그룹과 함께 성장한 서구권의 소년, 소녀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에도 쉽고 빠르게 싸이와 김정은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감수: 최훈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 mind

   <참고문헌>

  • Zhou, X., Elshiekh, A., & Moulson, M. C. (2019). Lifetime perceptual experience shapes face memory for own-and other-race faces. Visual Cognition, 27(2) 1-14. doi:10.1080/13506285.2019.1638478

     

이수진 한림대 심리학과 박사과정
한림대 대학원 심리학과 박사 과정 재학중. 매력, 시청각연합과제, 시지각학습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덕질의 연구화를 모토로 삼고 있는 한림대 지각심리연구실 구석에서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와 이야기를 지각심리학 영역으로 끌고 들어올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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