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분노의 메시지가 만드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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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분노의 메시지가 만드는 세상
  • 2019.08.24 15:00
도덕적 태도는 선명해 보인다. 그러나 옮고 그름에 기반한 도덕적 주장은 혐오와 분노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이런 메시지에 노출된다면 어떤 정치적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일까?

도덕화된 태도와 정치적 양극화

낙태, 동성혼, 안락사 문제와 같이 도덕화된 이슈는 사회적 담론에서 가장 대립적인 이슈이다. 가치갈등을 내포하고 있는 이러한 주제들은 높은 정치참여를 이끌어내지만, 동시에 대립적 의견을 가진 사람들 간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해결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낮다. 정치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정치적 대립과 양극화political polarization가 도덕화된 태도moralized attitudes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도덕화된 태도는 근본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관점에 기반하는 것으로, 이러한 태도에 기반한 주장은 종종 상대의 동의와는 상관없이 그 자체로서 보편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야 하는 사실로 여겨진다. 최근 연구들은 태도의 도덕화 정도가 높을수록 타협에 반대하고Ryan, 2017, 다른 의견을 가진 타인에게서 사회적 거리감을 느끼며, 다른 의견을 수용하지 않으려는 경향성을 보여주었다Cole, Cullum, & Schwab, 2008. 또한 도덕화된 태도는 해당 이슈에 대한 강한 정서 경험, 높은 정치적 참여, 과격한 형태의 집단 행동에 참여할 가능성을 높였다Zaal et al., 2011. 

그러나 도덕화가 정치적 갈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증적 연구에 비해, 어떻게 도덕화된 태도가 만들어지는지를 다루는 연구는 많지 않다. 왜 어떤 이슈는 ‘도덕적 이슈’로 발전하고 다른 이슈들은 그렇지 않은가? 오늘 소개할 논문은 그러한 질문의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보기 위한 하나의 작은 시도이다.

대부분의 종교전쟁은 옮고 그름, 성과 악의 이분법적 양극화에서 비롯되었다. 그림은 프랑스에서 자행되었던 성 바르톨르뮤 축일의 학살St. Bartholomew's Day massacre을 묘사한 것이다. 프랑스 카톨릭 폭도(구교도)들은 국왕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파리에 방문한 위그노 귀족들(신교도)을 조직적으로 살해한 사건이다. François Dubois1529~1584, '성 바르톨르뮤 축일의 학살', 1572~1584, 93.5 ⅹ 151.4 cm, 스위스 Musée cantonal des Beaux-Arts 소장.

혐오와 분노, 우리의 태도를 결정짓는 정서

이 논문의 저자인 스캇 클리포드는, 도덕화된 태도의 형성과정에 정치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Clifford, 2019. 특히 혐오와 분노와 같은 정서를 유발하는 설득 메시지가 (특정 이슈를 옳고 그름의 관점에서 보는) 태도의 도덕화와 정치적 양극화를 촉진시킬 것이라는 가설을 제안했다.

그럴듯한 가설이지만, 이를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도덕적으로 정치화된 실제의 사회이슈들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특정한 입장을 공고히 하고 있어 이미 형성된 태도를 배제하고 설득메시지 자체만의 효과를 명확히 드러내는 통제된 실험설계가 사실상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연구자는 태도형성 연구의 주제로 먹거리 문제를 선택했다. 먹거리 문제는 태도의 도덕화 과정을 연구하기에 두 가지 장점을 가진다. 첫째, 유전자 변형 식재료, 유기농 제품 인증, 공장형 농장과 축사의 문제, 비만에 대한 사회적 개입 등의 문제는 점점 사회 이슈화되고 있지만, 아직 낙태, 동성혼, 사형제도와 같은 이슈 만큼 매우 정치화되어 있지 않다. 둘째, 먹거리 이슈의 주요 쟁점은 인간, 동물, 환경에 위해한가, 오염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한 판단을 포함하는데, 이러한 인지적 판단은 본 연구에서 관심을 가지는 혐오 혹은 분노 정서의 유발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연구자는 실제에 가까운 실험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먹거리 문제를 다루는 시민운동 단체의 성명서 등을 참고하여 설득메시지를 만들었다. 혐오의 정서는 특정 대상의 순수성에 대한 의심이나 오염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분노의 정서는 불공정성이나 위협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유발된다는 선행연구에 근거하여 두 정서를 유발하는 설득 메시지가 각각 다르게 구성되었다. 우선 혐오를 유발하는 메시지로는 공장식 양식장의 물고기의 배설물에 기인하는 해수 오염 문제와 공장식 축사의 밀폐되고 더러운 환경이 전염병을 빠르게 확산시키는 문제가 다루어졌다. 분노 정서를 유발하는 조건으로는 번식속도가 높은 어종이 양식장을 외부로 유출됨으로써 해양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문제와 협소한 공장식 축사에서 스트레스 수준이 높은 동물들이 축사 내 다른 동물들을 공격하는 문제를 설득메시지에 포함했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용어와 사진을 활용하여 혐오정서의 유발강도를 다르게 조작하였는데, 가령 높은 혐오정서 유발조건에서는 자극적인 용어 사용과 함께 오염으로 인해 기형이 된 먹거리의 사진을 첨부했다.

연구참여자들은 혐오를 유발하거나 분노를 유발하는 메시지 조건, 혹은 아무것도 읽지 않는 통제 조건에 무작위로 배치되었다. 참여자들은 설득메시지를 읽은 후 자신이 혐오감, 분노감, 불안, 슬픔과 같은 정서를 어느 정도의 강도로 느끼는지에 대해 자기보고식으로 응답하게 했다. 또한 가설검증을 위해 조작된 태도의 도덕화와 정치적 양극화 측정 도구, 먹거리문제와 관련된 정부정책에 대한 태도를 묻는 질문에 응답했다.'

이러한 실험 결과, 혐오와 분노 정서를 유발하는 설득 메시지를 읽은 사람들은 (아무런 메시지를 읽지 않은 조건에 비해), 이러한 먹거리 문제가 근본적으로 옭고 그름의 도덕적 문제라고 판단하였고, 혹은 자신의 도덕적 신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문제라고도 평가했다. 나아가 이런 식의 도덕화된 태도의 정도를 더 많이 드러낼수록, 반대 입장을 가진 사람에 대해 사회적 거리감을 더 많이 느끼고, 정치적 타협을 통한 문제 해결에 더 많이 반대했다. 이러한 양상은 설득 메시지가 어떤 문제를 다루는지 또는 얼마나 높은 강도의 정서가 유발되었는지에 상관없이 일관되었다.

먹거리 문제에 정부가 개입하는 정책을 지지하는 정도는, 정서를 유발하는 설득메시지를 읽은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 간 유의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지만, 정서를 유발하는 설득메시지를 읽는 사람들은 보다 극단적인 지지 혹은 반대의견을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패널조사를 통한 분석결과, 이러한 정서유발 설득메시지 노출의 효과는 적어도 2주 이상 지속되었다.

사회문제에 대한 과학적 접근

때때로 타협이 불가한 옳음을 주장하는 다양한 집단의 갈등을 보고있노라면, 숙의를 통해 합의적 의사결정에 이른다는 민주주의의 이상은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환상처럼 느껴진다. 사실 이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정치적 양극화와 갈등을 이해하는 아주 작은 조각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논문은 옳고 그름, 혐오와 분노의 정치가 판치는 사회에서 사회과학자의 역할과 접근법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복잡한 사회문제를 이해하는데 새로운 시각과 타당한 근거를 제공할 수 있는, 과학적 접근을 통한 연구의 시도가 보다 많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mind 

<참고문헌>

  • Clifford, S. (2019). How emotional frames moralize and polarize political attitudes. Political Psychology, 40(1), 75-91.
  • Ryan, T. J. (2017). No compromise: Political consequences of moralized attitudes. American Journal of Political Science61(2), 409-423.
  • Cole Wright, J., Cullum, J., & Schwab, N. (2008). The cognitive and affective dimensions of moral conviction: Implications for attitudinal and behavioral measures of interpersonal tolerance.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34(11), 1461-1476.
  • Zaal, M. P., Laar, C. V., Ståhl, T., Ellemers, N., & Derks, B. (2011). By any means necessary: The effects of regulatory focus and moral conviction on hostile and benevolent forms of collective action. British Journal of Social Psychology50(4), 670-689.
안혜정 중앙대 심리학과 박사 사회및문화심리 Ph.D.
옳고 그름의 당위적 지식보다 차이와 다름을 이해하는 심리학의 가능성을 믿습니다. 다양성과 사회혁신에 관련된 주제를 심리학적 관점에서 연구하고, 특히 다양성과 변화에 저항하는 사람의 마음에 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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