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불확실성과 물질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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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불확실성과 물질주의
  • 2019.08.14 12:04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존재의 불확실성이 갖는 의미와 다름 아니다. 무엇이 우리의 불확실성을 야기하고 그것은 또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 성격심리학자 박선웅 교수의 얘기를 들어보자.
폴 고갱 Paul Gauguin, 1848–1903.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D'où venons-nous? Que sommes-nous? Où allons-nous?, 1897. 캔버스에 오일. 139.1x 374.6 cm. 보스턴 미술관 소장.
폴 고갱 Paul Gauguin, 1848–1903.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D'où venons-nous? Que sommes-nous? Où allons-nous?, 1897. 캔버스에 오일. 139.1x 374.6 cm. 보스턴 미술관 소장.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1984년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가 발표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이다. 이 책에서 쿤데라는 인간은 딱 한 번 살기 때문에 그 삶 속에서 내린 결정이 옳은 결정이었는지 나쁜 결정이었는지 확인할 수 없고 자신의 삶이 옳은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는 존재는 깃털처럼 가볍다고 말했다. 삶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내려 현재 잘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선택은 더 나은 삶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고, 어떤 선택 후에 지금 힘들다고 하더라도 다른 선택이 더 나쁜 삶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결정의 타당성에 대해 객관적으로 말할 수 없다. 인간 존재가 갖고 있는 이런 상황을 쿤데라는 문학적으로 깃털처럼 가볍다고 했지만, 심리학적으로는 존재의 의미와 삶의 방향에 대한 불확실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렇게 자신의 존재에 대해 불확실성이 증가할 때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할까? 그에 대한 힌트는 경제 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불확실성이 클수록 물질주의도 증가

최근 세계 경제는 격랑 속에 놓여 있다. G2인 미국과 중국은 수개월째 힘겨루기를 하면서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다. 한국의 경제 상황은 특히 더 좋지 않다. 일본은 수출 규제를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사업들을 방해하고 있고, 한동안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었던 북한은 이틀이 멀다하고 미사일인지 로켓포인지를 쏘아 대고 있다. 이렇게 경제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이 불확실성이 증가되는 상황이 오면 주가는 폭락하고 금값이 폭등한다. 실제로 2019년 8월 7일 기준 금값은 2014년 KRX금시장이 개설된 이래 최고가를 연일 경신하고 있다. 같은 경제적 자산이라 할지라도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금에 대한 선호가 주식에 비해 올라가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자신의 삶에서 불확실성이 증가할수록 보고 만질 수 있는 물질에 부여하는 가치도 올라간다. 심리학에서는 물질의 획득을 중요한 가치로 보는 것을 물질주의materialism라고 부른다.1 물질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물질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물질주의란 이렇게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물질을 얼마나 추구하는지가 아니다. 대신 얼마나 많은 물질을 획득했는지를 성공의 잣대로 삼거나, 물질의 획득을 삶의 중심에 두거나, 물질이 충분하지 않아 행복하지 않다는 등 물질을 단순한 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일컫는다. 앞서 제시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다시 표현해 보자면, 삶에서 불확실성이 증가할수록 물질주의 수준은 올라간다.

불확실성의 여러 요인들

개인의 삶에서 불확실성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우선, 대인관계를 맺는 방식, 즉 애착유형이다. 학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심리학에서는 애착유형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어렸을 때 주양육자로부터 지속적이고 따뜻한 보호를 받았던 사람들의 경우 안정애착 성향을 갖게 된다. 반면 주양육자가 지속적으로 차갑게 대했던 경우에는 회피애착이, 주양육자가 사랑과 무관심을 비일관적으로 제공하는 경우에는 불안애착이 형성된다. 그리고 어렸을 때 형성된 애착유형은 어른이 된 후에도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이 세 가지 애착유형 중 불확실성을 높이 경험하는 유형은 불안애착인데 실제 연구에 의하면 불안애착에 속하는 사람들의 물질주의가 높게 나타났다.2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 공유되는 가치가 사라진 경우에도 사람들은 불확실성을 경험한다. 가족에서 국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여러 공동체에 소속하며 살게 되는데, 그 공동체에서 제시하는 명확한 가치가 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확실성을 느낄 수 있다. 조선시대에 양반으로 태어난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에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것을 삶의 가장 큰 가치로 여기고 살 것이고,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고통받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여러 국가의 물질주의 수준을 비교한 한 연구에 따르면, 물질주의는 최근 수십 년 간 사회적 변화가 컸던 나라에서 높게 나타났는데,3 이는 왜 한국의 물질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높은지를 잘 설명한다. 한국은 일제 강점, 한국전쟁, 빠른 산업화 등을 통해 그야말로 격동의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또,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잘 해낼 수 있을지, 즉 자신의 능력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들 역시 물질주의가 높게 나타난다. 한 연구에서는 참여자들로 하여금 우선 평소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심 정도를 설문을 통해 답변하게 하였다. 이후 절반의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자기의심을 올릴 수 있는 단어들(예, 의심이 많은, 불안한)을 외우게 하고, 다른 절반의 사람들은 자기의심과 상관없는 단어들을 외우게 하였다. 그 결과 평소 자기의심이 높은 사람들 중에서 자기의심과 관련된 단어를 외웠던 사람들의 물질주의가 순간적으로 상승하였다.

해로운 물질주의, 자아정체성으로 극복

문제는 물질주의는 정신건강에 해롭다는 것이다. 물질주의가 높은 사람은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존감은 낮고, 우울증세는 높고, 외로움을 많이 탄다.4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벗어나고자 물질을 추구하지만, 결국 더 깊은 늪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물질주의의 늪에 빠지지 않고 존재의 불확실성을 벗어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연구에 의하면5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적절한 대안인 것처럼 보인다. 정체성이란 자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즉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의 방향에 대해 결단을 내린 정도를 일컫는다. 그래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존재의 확실성을 찾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연구에서는 절반의 참여자에게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확실하게 느꼈던 경험을 적게 하고, 다른 절반의 참여자에게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불확실하게 느꼈던 경험을 적게 한 후 물질주의 정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정체성을 확실하게 느꼈던 경험을 적은 사람들의 물질주의가 낮아졌다.

쿤데라는 인간은 단 한 번 살기 때문에 삶의 결정이 옳았는지에 대한 객관적 타당성을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 말은 여전히 사실이다. 하지만, 정체성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결정이 옳았는지에 대해 주관적 타당성을 논할 수 있다. 비록 한 번 사는 인생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확신이 있었을 때 우리는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삶의 주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mind

 

<참고문헌>

 

  1. Richins, M. L., & Dawson, S. (1992). A consumer values orientation for materialism and its measurement: Scale development and validation. Journal of Consumer Research, 19, 303-316.
  2. Norris, J. I., Lambert, N. M., DeWall, C. N., & Fincham, F. D. (2012). Can’t buy me love?: Anxious attachment and materialistic values.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53, 666-669.
  3. Ger, G., & Belk, R. W. (1996). Cross-cultural differences in materialism. Journal of Economic Psychology, 17(1), 55-77.
  4. Kasser, T. (2016). Materialistic values and goals. Annual Review of Psychology, 67, 489-514.
  5. 박선웅, 박예린 (2019). 불확실한 정체성과 낮은 심리적 안녕감 간의 관계에서 물질주의의 매개효과. 한국심리학회지: 사회 및 성격, 33(2), 1-21.
박선웅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성격및사회심리 Ph.D.
박선웅 교수는 사회 및 성격심리학을 전공하면서 나르시시즘 연구로 노스이스턴대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고려대에서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근에는 한국사회에 만연한 물질주의와 한국인들에게 부족해 보이는 개인적 정체성, 그리고 이 둘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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