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를 모르면 똥차 가고 똥차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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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를 모르면 똥차 가고 똥차 온다
  • 2019.08.15 14:00
연애만큼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담고하고 있는 일도 없다. 서수연 교수는 사랑의 밀당에서부터 연애와 이별 그리고 재회의 과정을 행동수정의 원리로 명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여대생의 가장 비극적인 운명 중 하나가 “3말4초”라는 말이 있다. 3학년말 4학년초까지 연애를 한번도 못하면, 그 이후로는 연애가 어려운 모태솔로의 길로 쭉 간다는 아주 우울한 말이다. 이런 여대생들의 주요 관심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나는 성신여자대학교에 처음 와서 “행동수정”이라는 수업을 가르치게 되었다. 심리학을 배우면 연애를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여대생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 나는 상당한 오타쿠스러움에 빠져 쥐 실험 이야기만 주구장창 했다가 폐강 위기를 경험했다. 그 뒤, 우리 학교 여대생들의 연애를 응원하며,연애에도 적용할 수 있는 다음의 행동수정 원리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디스클레이머: 인간은 쥐가 아니다

이야기의 편의를 위해 가상의 커플이 있다고 하자. 인선이와 정호는 친구의 소개를 통해 만나게 됐다. 정호는 처음부터 연애 초보인 인선이에게 호감을 가지고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은 부처님도 예수님도 아닌 작업하는 남자라는 말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인선이에게 작업을 한다. 둘은 사귀기로 합의를 하고, 연애 초기에는 모든 것이 설레고 좋기만 하다.

심리학에서는 즐겁고 새로운 자극 (예를 들어, 새로운 사람과 처음으로 손잡기, 키스하기, 처음으로 영화 보러 가기, 새로운 맛집가기 등)은 처음에 자극 가치가 가장 높고, 그 이후부터는 반복되면 점점 사람이 둔감해지고 익숙해지게 되어있다고 본다. 맛집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그 맛집을 하루 세 번 방문하여 매번 같은 요리를 먹으면 맛이 없어지는 이유와 비슷하다. 인선이와 정호는 적당히 새로운 데이트를 통해 연애를 하며 연애의 유효기간을 소진해간다.

비토리오 마테오 코르코스 Vittorio Matteo Corcos, 1859~1933. He Loves Me He Loves Me Not, 1895. 캔버스에 오일. 80x64 cm
비토리오 마테오 코르코스 Vittorio Matteo Corcos, 1859~1933. He Loves Me He Loves Me Not, 1895. 캔버스에 오일. 80x64 cm

밀땅에서 승리하게 만드는 간헐적 강화

연애하면서 결정적인 순간 중 하나는 서로 '사랑해'라는 말을 교환하는 타이밍이다. 그렇지만 처음 연애하는 인선이는 모든 것이 새롭기도 하지만 서투르다. 인선이는 처음 느껴보는 설레임을 사랑이라고 확신하며 정호와 사랑한다는 말을 교환한다. 처음으로 이 낭만적인 말을 내뱉었을 때 인선이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고, 이 감정을 마치 영원히 이 사람과 느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눈떠서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전화할 때마다, 식전에, 식후에, 헤어질 때, 시험보기 전에… 사랑한다는 말을 쉴 새 없이 하고, 정호에게 요구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점점 연애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정호에게는 '사랑해'라는 말은 '밥 먹었냐'처럼 습관처럼 하는 말처럼 들린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의 느낌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연애 기간이 길어질수록 데이트는 뻔해지고, 신선함이 떨어지고, 루틴에 빠지게 된다. 정호는 인선에게 거짓말을 하고 친구들과 당구장을 가기도 하고, 잠을 잔다고 거짓말하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기도 한다.

행동수정의 원리 중 '간헐적 강화intermittent reinforcement'가 있다. 매번마다 어떤 행위에 대해 보상을 받는다면, 그 보상이 식상하게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매번 보상을 받는 것보다는 어쩌다가 보상을 받을 때, 그 행위를 더 하게 되고, 그 행동을 중단하기도 어려워진다. 사람들이 도박에 중독되는 이유 중 하나도 어쩌다 한번 '대박'을 터뜨릴 것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항상 잘해주고 착해 매력을 못 느끼는 이성이 있는가 하면, 99% 속을 썩여도 어쩌다가 1%의 달콤한 말을 던져주는 나쁜 남자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이와 비슷한 원리이다. 자나 깨나 사랑한다는 말을 남발하는 인선이는 매 번 당기면 보상이 나오는 파칭코와 같은 연애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별할 때 매달리는 이유: 소거 격발

열심히 사랑 싸움을 하다가 인선이는 결국 헤어짐을 결심한다. 인선이의 입장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처럼 잘해주지 않는 정호에게 실망감을 느끼고, 옆에서 친구들이 속상해하는 인선이에게 똥차가면 벤츠 온다고 부추긴다. 결심 후, 정호가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카톡도 모두 읽고는 있지만 대답하지 않거나, 대답을 하더라도 'ㅇㅇ' 혹은 '아니'와 같은 짧은 단어로만 답문을 한다.

아차 싶은 정호는 이별을 예감하며 갑자기 인선에게 매달리기 시작한다. 하루는 자기 전에 습관처럼 매일 통화를 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지만 인선이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정호는 불안해진다. 인선이의 전화기에는 부재중 29통이 찍힌다. 그렇게 연락 안한다고 잔소리할 때는 무시하더니, 문자와 카톡은 100통도 넘게 온다.

'왜 그래?' '화났어?' '나 너 밖에 없어'.

행동수정에서는 이것을 소거 격발extinction burst이라고 칭한다. 정기적으로 내가 보상을 받던 행동이 더 이상 보상을 받지 못할 때(즉, 예전에 친절하게 정호의 전화를 받아주던 인선이가 전화를 받지 않을 때), 갑자기 그 행동의 빈도, 시간과 강도가 증가하고, 안 하던 행동들까지 나타나게 된다. 다급한 정호는 생전 안 하던, 인선이의 집 앞에 와서 밤새도록 기다린다. 처음에는 매달리는 문자를 보내다가, 점점 진화하여 '사랑해', 그리고 그 이후에는 분노에 찬 문자까지 온다. '내가 이렇게까지 기다렸는데도 안나오냐?' '독하다' 등.

인선이에게 '우리 그만 만나자'라는 짧은 문자를 받은 뒤 그 이후 연락이 없고, 정호도 친구들과 이별을 소주와 당구를 통한 적당한 대처방법으로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점점 인선이에게 연락하는 빈도도 줄어들고, 며칠 지나서는 서로 연락을 하지 않는다(행동수정에서는 이 행동이 소거되었다고 말한다).

이 놈팽이를 다시 만날 것인가? 자발적 회복에 대한 이해

이별 후 한 달이 지났다. 인선이는 정호가 가끔 생각은 나지만, 그래도 서로가 없는 삶에 이제는 어느덧 적응을 해나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선이는 새벽 2시에 다음과 같은 문자를 받는다.

'자고 있어?'

한달 만에 정호에게 온 문자이다.

자, 이 시점에서 인선이는 이 놈팽이를 다시 만날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 행동은 행동수정에서 이야기하는 자발적 회복spontaneous recovery 이라고 한다. 이미 소거가 된 행동이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조건도 자극도 없이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문제는, 이 행동에 응하게 되면, 다음에는 이 행동이 소거하기 더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즉,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후 다시 이별을 할 때, 정호는 더 집요하게 매달리게 될 것이다.

만약 인선이의 마음속에 아주 조금이라도 정호를 다시 만나 잘해 볼 의향이 있다면 답 문자를 줘야 한다. 그렇지만 마음속에 그런 마음이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는다면 무시를 해야 한다. 이 갈림길에서 수많은 연인들은 실수를 한다. '연락하지 말라고 했지!'라고 대답했다가 결국에는 서로 만남을 가지고, 끝까지 이 연애가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고 나서야 끝나는 관계도 있다.

물론, 연애사는 이렇게 간단한 원리로만 결정되지 않고, 사람의 심리가 이보다 복잡하다는 점을 유념하기 바란다.

서수연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 임상심리 Ph.D.
성신여대 심리학과 부교수 및 임상심리전문가로 활동중. 대외적으로는 정신장애의 원인을 과학을 기반으로 연구하고 근거기반치료를 개발하는 임상심리학 교수이지만 실제로 연구나 생활에서 섭식, 성과 수면처럼 형이하학적 주제에 주로 관심이 많음. 현재는 20년넘게 쌓아온 심리학 지식을 활용하여 수면 문제를 해결하는 국내 유일의 수면심리학자. "사례를 통해 배우는 불면증을 위한 인지행동치료" 저자이며, 행동과학과 심리치료 연구실 BEST랩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여성 임상심리학자 리더를 배출하는 것이 꿈인 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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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아 2019-08-16 11:57:17
ㅋㅋ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센스있는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부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