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자기소개를 어려워 하는 이유
상태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인이 자기소개를 어려워 하는 이유
  • 2019.08.19 14:00
한국인은 자신을 어떻게 인식할까? 한민 교수는 한국인들이 자기소개를 어려워 하는 이유를 밝히면서 서양인과는 다른 한국인의 자기 인식 방식을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영어 'self'에 담긴 문화적 맥락

한국인들은 자기소개를 잘 못한다고 한다. 자신에 대해 줄줄 줄줄 읊어대는 외국인(주로 서양인)들에 비해 쭈뼛쭈뼛 말을 흐리거나 자신이 다니는 학교나 회사 이름을 대는 한국인들을 보면, 한국인들은 자기표현에 서툴다던가 '주입식 교육'의 폐해라는 비판이 뒤따른다.

과연 그럴까? 한국인들이 자기소개를 못하는 이유를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자.

영어에는 'self'라는 개념이 있다. 우리말로 '자기'自己로 번역되는 self는 심리학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다. self는 개인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실체로서 그 사람의 성격, 정서, 행동, 의지 등에 광범위하고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 self는 영어다. 영어를 비롯한 서구의 언어에는 self에 해당하는 단어와 이와 관련된 용법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재귀대명사나 재귀적 용법 등이다. self는 이러한 서구의 언어습관이 개념화된 것이다. 따라서 self에는 이 단어를 사용하는 이들의 문화적 맥락이 담겨 있다.

우선 self는 당사자인 나 자신의 이성적 의식을 통해 발견되고 논리적으로 체계화, 구조화되며 개인의 일상적 삶 속에서 참고의 준거로 활용된다. 다시 말해, 어떤 행동을 할 때 근거로 사용된다는 말이다Giddens, 1991.

자기관찰의 결과물로서 self

또한 서구인들에게 self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증거가 된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는 '불안'anxiety이다. 존재에 대한 안정감을 얻기 위해 서구인들은 자신을 대상으로 한 자기관찰을 빈번히 수행하게 된다. self는 이러한 자기관찰을 통해 얻어진 결과물self-concept들로 구성된다.

따라서 서구에서는 자기개념self-concept이 자신의 진짜 자기real self에 가까울수록 바람직하고 또한 정상적이다. 반면 자기개념이나 자기상self-image이 비현실적일수록 정상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의 self에 대한 집중과 주의를 통해 self를 분석하고 명확히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서양 사람들이 자기소개를 잘 하는 이유다. 늘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이를 개념화하는 것이 언어적으로, 문화적으로 습관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자기개념

그렇다면 한국인에게 있어 self에 상응하는 것은 무엇일까? 한국에서 self는 '자기' 自己 one's own body로 번역된다. 영어의 self에 해당하는 적합한 한국어가 없기 때문에 영어 ‘I’의 뜻에 해당하는 ‘자기’를 번역어로 채택한 것이다.

일상적인 한국어에서 서양의 ‘I’에 상응하는 말은 ‘나’다. ‘자기’와 같은 뜻이지만 한국에서 ‘자기’라는 말이 사용되는 경우는 매우 제한되어 있는 반면 ‘나’라는 말은 대부분의 경우에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self에 상응하는 단어가 없다고 한국인에게 자기개념 자체가 없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한국인에게도 자신의 행동의 근거가 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인에게 의미하는 바와 그것이 형성되는 과정 등은 self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동양 문화의 상호의존적 자기

우선, 한국인의 자기는 동양 집단주의 문화의 '상호의존적 자기'interdependent self 로 고려할 수 있다Markus & Kitayama, 1991. 자신을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일원으로 인식하는 집단주의 문화에서, 개인은 자신을 타인과 구분되는 안정적이고 자명한 존재로 인식하지 않는다.

따라서 동양인들은 서양인처럼 자신만의 고유한 속성을 찾아내어 개념화할 필요가 없다. 대신 상황에 맞게 행동하는 것(예의범절)이나 사회적으로 부여된 가치와 이상道理을 따르는 것이 더욱 중요하고, 사람들은 이를 사회적 규범으로 수용하고 있다.

조선시대 초상화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이채李采, 1745~1820의 초상화다. 그림 상단에는 그가 남긴 글이 쓰여 있다. "아, 할아버지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그가 남긴 글을 읽을지니. 그러면 삶의 즐거움을 알 수 있을 것이고 정주(정자와 주자)의 문도가 되기에도 부끄럽지 않으리라.” 그는 자신의 초상화에서조차 자신을 얘기하기보다, 조상과 유학 속에서 자신의 안식처를 구하려 했다. 보물 1483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초상화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이채李采, 1745~1820의 초상화다. 그림 상단에는 그가 남긴 글이 쓰여 있다. "아, 할아버지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그가 남긴 글을 읽을지니. 그러면 삶의 즐거움을 알 수 있을 것이고 정주(정자와 주자)의 문도가 되기에도 부끄럽지 않으리라.” 그는 자신의 초상화에서조차 자신을 얘기하기보다, 조상과 유학 속에서 자신의 안식처를 구하려 했다.  작가 미상. 보물 1483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한국인에게 반성이란

또한 이 때문에 동양인(한국인)들은 반성을 많이 한다. 반성이란 본래 비추어 본다는 뜻이다. 특히 자기반성self-reflection은 서구문화에서 자신의 행동을 자신의 self에 비추어 확인한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한국인들에게 반성이란 사회적으로 부여된 self에 반하거나 미달된 행동을 한 자신을 깨닫고 회개하는 의미로 쓰인다최상진, 김기범, 1999.

한국인에게는 자신의 고유한 self를 발견하는 일보다 사회적으로 부여되고 규정된 이상적 자기상ideal self을 자신의 마음속에 내면화하고 이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보다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고유성과 독립성을 강조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존재의 근거’로서의 self를 구축할 필요성도 없으며, 자신의 행위와 self를 일치시키려는 노력도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러니 한국인들에게 자기소개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나는 내가 처한 상황에서 내게 주어진 일들에 충실하면 된다. 나의 존재는 사회적 맥락에서 내가 한 일들로 규정된다. 굳이 내가 어떻다 소개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한 나는 어떤 사람이라고 말해놨는데 나중에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보일 경우,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추론적 자기와 객관적 자기

한국인 자기의 보다 중요한 특징은 한국인들은 추론에 의해 자기를 인식한다는 점이다. 

서양인의 self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그것이 ‘객관화'objectified되어 있다는 것이다. self는 나(I)이지만 내가 객관적으로 인식하여 마치 타인처럼 관찰하고 참고reference할 수 있는 실체entity로서의 나를 의미한다.

'객관화된 나'가 서양인들의 자기인식에 중요하다는 것은 서구 언어의 '목적격'의 사용에서 짐작할 수 있다Mead, 1934. me(I), him(he), her(she) 같은 용법들이다. 서양인들은 친구 집에 찾아가서 초인종을 눌렀을 때 나오는 "누구세요?Who is it?"라는 질문에 "It's me."라고 대답한다.

여기서 me는 '누구세요'라고 묻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본 나(I)를 표현하기 위한 말이다. 그 말을 여기 서서 대답하고 있는 주체인 내가(I) 하는 것이다. 주체로서의 나(I)와 객체로서의 나(me)가 명확히 구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한국인의 자기인식은 서구의 자기self와 같은 객관적 실체와 같은 자기를 대상으로 한 인식과는 거리가 있다. "누구세요?"라는 물음에 우리는 "나야"라고 대답할 뿐이다. 네가 거기서 누구냐고 묻는 나와 여기 서서 대답하는 나는 구별되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인이 ‘나’를 파악하는 방식은 객관적 관찰을 통한 방식이 아닌 주관적 추론inference이 될 수밖에 없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한 것을 보니 내 마음은 이렇구나’ 하는 식이다. 한국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내 마음이 어떠하다’나 ‘어떤 느낌 혹은 생각이 든다’는 표현에는 ‘내 마음을 느낌으로 짐작한다感知’는 전제가 깔려있다최상진, 김기범, 1999.

한국인의 추론적 자기 인식

이렇듯 한국인들은 자신의 마음을 자신의 다양한 행동이나 생각을 통해 인식하며, 이러한 자신의 행동과 생각에 내재된 대표적인 성향을 추론하여 자신에 대한 내용들을 구성한다. 이러한 추론적 자기인식은 한국인 마음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는 '나'는 매우 중요하다. self에 대응하는 개념은 없지만 나에 대한 생각은 나의 경험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한국인의 자기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mind

    <참고문헌> 

  • Giddens, A. (1991). Modernity and self-identity: Self and society in the late modern age. Stanford, CA: Stanford University Press.
  • Markus, H. R. & Kitayama, S. (1991). Culture and the self: implications for cognition, emotions, and motivation. Psychological Review, 98, 224-253.
  • Mead, G. H. (1934). Mind, Self, and Society from the Standpoint of a Social Behaviorist.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 최상진, 김기범 (1999). 한국인의 self의 특성: 서구의 self 개념과 대비를 중심으로. 한국심리학회지: 사회 및 성격, 13(2), 279-295.
한민 심리학 작가 사회및문화심리 Ph.D.
토종 문화심리학자(멸종위기종),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씁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