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갚음과 보답, 아이들은 무엇을 먼저 배울까?
상태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앙갚음과 보답, 아이들은 무엇을 먼저 배울까?
  • 2019.08.19 14:00
이에는 이, 눈에는 눈. 굳이 성경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앙갚음은 본능적이다. 그렇다면 베풂에 대한 보답은 어떨까? 아이들에게 보답 행동은 언제쯤, 어떤 상황이 되었을 때 일어나는 것일까?

보답보다 앙갚음에 충실한 사람들

“원한은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겨라”는 격언이 있다. 감사했던 일은 잊지 말고 보답하되 서운했던 일은 잊고 지나가라는 조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의를 베푼 사람에 대한 감사보다는 악의를 보인 사람에 대한 분노를 더 강하게 경험하고, 은혜에 보답하기보다는 앙갚음하는 데 더 관심이 많다Gray et al., 2014; Keysar et al., 2008. 최근 Psychological Science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이런 앙갚음과 보답 사이의 불균형은 상당히 어린 나이부터 나타나는 것 같다Chernyak et al., 2019.

심리학에서는 내가 받은 호의나 악의를 상대방에게 직접 되돌려주는 것을 직접적 상호성direct reciprocity이라고 한다. 직접적 상호성은 바람직한 행동을 촉진하고 부정적인 행동을 억제하여 장기적인 협력 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한다. 어떻게 보면 원초적인 행동일 것 같지만, 직접적 상호성은 생각보다 많은 능력을 필요로 한다. 상대방과의 상호작용 이력을 기억할 수 있어야하고, 여러 사람들 중에 누가 나한테 호의적이고 누가 악의적이었는지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일정 수준 이상의 인지 능력이 있어야만 직접적 상호성이 가능하다.

보은과 복수의 정서가 일본만큼 강한 민족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위 그림은 주군의 원수를 갚기 위해 출정했던 '47인의 사무라이'의 한 장면이다. 그들은 원수는 갚았지만 결국 모두 할복자살하게 된다. 이 일은 1702년 실제 있었던 사건으로, 이후 소설이나 영화 등으로 각색되면서 일본인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가츠시카 호쿠사이葛飾 北斎,1760~1849, 22.6 * 16.5 cm.
보은과 복수의 정서가 일본만큼 강한 민족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위 그림은 주군의 원수를 갚기 위해 출정했던 '47인의 사무라이'의 한 장면이다. 그들은 원수는 갚았지만 결국 모두 할복자살하게 된다. 이 일은 1702년 실제 있었던 사건으로, 이후 소설이나 영화 등으로 각색되면서 일본인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가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1760~1849, 22.6ⅹ16.5 cm.

직접적 상호성 실험

Chernyak과 동료 연구자들은 만 4세에서 8세 사이의 아동들을 대상으로 직접적 상호성이 언제부터 나타나는지 알아보기 위한 다섯 가지 실험을 수행했다. 실험에 참가한 아이들은 네 명의 아이들(실제로는 가상의 아바타)과 스티커를 주고받는 컴퓨터 게임을 했다. 실험은 긍정적 상호성 조건과 부정적 상호성 조건으로 구분되다. 긍정적 상호성 조건에서는 나머지 네 명의 아이들 중 한 명이 실험에 참가한 아동에게 자신의 스티커를 주는 상황을 제시한 뒤, 그 다음 게임에서 실험에 참가한 아동이 나머지 네 명 중 한 명에게 자신의 스티커를 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부정적 상호성 조건에서는 실험에 참가한 아동이 가진 스티커를 나머지 네 명 중 한 명이 빼앗아가는 상황을 제시한 뒤, 그 다음 게임에서 실험에 참가한 아동이 나머지 네 명 중 한 명으로부터 스티커를 빼앗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보답 행동은 7세 넘어야

실험 결과, 스티커를 빼앗아 간 아동으로부터 다시 스티커를 빼앗는 앙갚음 행동은 만 4세부터 거의 모든 아이들이 나타낸 반면, 스티커를 나눠준 아동에게 자신의 스티커를 주는 보답 행동은 만 7세가 넘어서야 나타나기 시작했다. 긍정적 상호성 규범에 대한 이해도를 알아본 네 번째 실험 결과에 따르면, 만 7세 이하 아동들은 타인의 호의에 보답해야한다는 규범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보답 행동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연구자들은 다섯 번째 실험에서 등장인물이 친구의 호의에 보답하는 내용의 짧은 이야기를 들려주면 보답 행동이 증가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즉  어린 아이들에게도 교육을 통해서 긍정적 상호성 규범을 이해시킬 수 있었다.

많은 심리학 연구들은 인간이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정보에 더 민감하다고 얘기한다.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생존 본능이 무엇보다 우선이기 때문이다. 이는 대인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당한 대우를 하는 사람에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미래의 상호작용에서 착취당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이미 어느 정도 ‘앙갚음의 자질’을 가지고 태어나 아주 어린 나이부터 빠르게 부정적 상호성 규범을 학습하는지도 모른다.

타인의 선의가 당연하지 않음을 깨달았을 때

연구자들은 아이들이 기본적으로 호의적 관계를 기대하기 때문에 긍정적 상호성 규범을 상대적으로 늦게 학습하는 것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역설적이게도, 타인에 대한 긍정적 기대가 앙갚음의 규범을 더 빨리 학습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대인 관계 경험이 많아지면서 타인의 선의가 당연하지 않을 수 있음을 깨달을 때에야 비로소 보답의 미덕을 배우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앙갚음에 더 골몰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긍정적 기대가 남아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직 보답의 규범을 체득할 만큼 성숙하지 못해서일까? mind

    <참고문헌>

  • Chernyak, N., Leimgruber, K. L., Dunham, Y. C., Hu, J., & Blake, P. R. (2019). Paying Back People Who Harmed Us but Not People Who Helped Us: Direct Negative Reciprocity Precedes Direct Positive Reciprocity in Early Development. Psychological science, 0956797619854975.
  • Gray, K., Ward, A. F., & Norton, M. I. (2014). Paying it forward: Generalized reciprocity and the limits of generosity.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General, 143, 247–254.
  • Keysar, B., Converse, B. A., Wang, J., & Epley, N. (2008). Reciprocity is not 'give and take': Asymmetric reciprocity to positive and negative acts. Psychological Science, 19,1280–1286.
설선혜 부산대 심리학과 교수 사회심리 Ph.D.
인간을 인간답게 행동하게 만드는 마음의 원리를 알고 싶어서 사회심리학과 뇌과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의사결정과 행복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박사후 연구기간동안 신경경제학과 사회신경과학을 공부했다. 사회적 행동의 사회문화적 요인과 생물학적 기반을 통합적으로 고려하는 접근법을 사용하여 도덕성, 이타성, 공감, 협동과 같은 다양한 사회적 행동의 심리-신경학적 기전을 연구해왔다. 현재 부산대 심리학과에서 사회신경과학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