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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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니?
  • 2019.08.29 12:00
자신이 세상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정말 자신을 최고라고 생각할까?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심지어 그 반대일 수도 있음을 진혜전 원장이 사례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마술거울의 함정

최근 들어 내가 집단 상담이나 사이코드라마를 할 때 집단원들에게 자주 쓰는 인용구가 있다. 바로 백설 공주의 계모인 왕비가 자기 방에 있는 마술거울에게 묻는 말이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만약 거울이 이 질문에 왕비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답했다면, 그녀는 백설 공주를 죽이려는 무서운 계획을 포기했을까?'라고 집단원들에게 물어 본다.  그러면 대부분은 자신 있게 대답을 못하고 그 이유도 말하기 어려워한다. 왜냐하면 질문에 함정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하다면’ 이라는 가정이 바로 함정이다. 만약에 거울이 왕비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는 말을 하려면 거울은 그녀의 속마음을 몰라야 한다. 그냥 거울에 비치는 대로 말해야 하니까...! 하지만 그 거울은 왕비가 어떤 여자인지 다 아는 마음의 거울, 즉 왕비의 속마음이다. 왕비의 속마음은 불행히도 자신이 제일 예쁜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엘리자베스 루이 비제 르 브룅 Élisabeth Vigée Le Brun, 1755–184. Julie Lebrun, 1787, 패널에 오일. 73  ×  60,3 cm, 개인소장.
거울에 자신을 비추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마음의 거울, 즉 당신의 속마음이 아닐까? 로코코 시대 마리 앙트와네트 초상화로 유명한 여류화가 엘리자베스 르 브룅이 거울 속 자신을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있는 딸을 그렸다. 엘리자베스 루이 비제 르 브룅 Élisabeth Vigée Le Brun, 1755~1842.  줄리 르 브룅Julie Le Brun, 1787, 패널에 오일, 73 × 60,3 cm, 개인소장.

원하는 만큼 예쁘지 않아

왕비는 그녀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사랑스럽거나 예쁘지 않기 때문에 자기를 인정하려면 경쟁자가 없어야 하고 누군가를 괴롭혀야 자신감이 생기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야기 속 왕비처럼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자신을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는 타인을 괴롭히기보다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주로 하는 생각은 자기 비하다. 그러다 보니 자기를 학대하는 행동을 하거나 타인을 위해 희생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  

내가 상담을 한 예지(가명)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 때까지 같은 반 친구 미미(예명)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나중에 부모님이 알게 되어 그 친구는 전학을 가고 혼자 남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예지는 늘 외롭게 혼자 다니며 수줍어하고 말재주가 없었다. 그런 예지를 잘 챙기고 함께 다니며 친구들과 어울리게 도와준 미미가 너무 고맙고 좋아서 미미가 부탁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었다. 처음엔 집에 가는 버스를 타러 같이 가다가 나중에는 함께 버스를 타고 미미를 집에 데려다 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가는 차비가 부족할 때는 한 시간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고 한다.

갑자기 폭력적인 된 절친

그러다 어느 날인가 부터 미미가 예지를 깨물고 때리기 시작했는데 단둘이 있을 때만 그런 행동을 해서 학교나 집에서는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나중에 목욕탕에 함께 간 어머니가 예지의 몸에 피멍이 든 것을 보고 아이를 다그치니 그때서야 말을 해서 알았다고 한다. 화가 난 어머니는 당연히 학교에 신고를 했고, 학교폭력선도위원회가 열리고 미미는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괴롭히던 미미가 사라졌으니 예지가 행복해야 하는데 예지는 오히려 그때부터 학교가기가 무섭고 힘들어졌다. 교내에 이 일이 알려지게 되었고 다른 아이들이 예지를 쳐다 볼 때 마다 자신을 바보, 멍청이 라고 놀리는 것처럼 느껴져서 죽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겨우겨우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로 새로운 학교와 새 친구들을 만났으니 잘 다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자기 머릿속에서 '그만해라' '넌 안돼' 라는 말이 들렸는데 그날부터 머리가 무겁고 내리누르듯이 아파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어졌다고 한다. 상담을 하러 올 때면 늘 검은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모자를 눌러쓰고 왔고 반응도 거의 부정적이었다. 예지가 갖고 있는 자기 부정적인 사고는 '나는 나쁜 아이야' 라는 확고한 신념이었다.

예지가 생각하기에 자기는 별로 예쁘지도 않고 재능도 없는 그저 그런 둘째 딸로 태어나 막내로 자랐는데 늦둥이 남동생이 생겨 그나마 있던 애정도 남동생에게 다 뺏겨 동생이 밉고 싫었다. 그래서 항상 짜증이 나 있었는데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들이 예지에게 ‘착하게 생겼다, 말 잘들을 것 같다, 재미있다’ 라고 해서 그런 이미지를 갖고 싶었다고 한다. 집안에서는 툭하면 아버지한테 맞고 언니한테 치이고 아주 어린 동생한테도 무시당하는데 학교에서는 친구들이 착하고 좋은 아이처럼 여겨줘서 꼭 그런 아이가 되고 싶었다.

버림 받을 것 같은 두려움

만약에 그 아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버림 받을 까봐 겁이 났다고 한다. 그 때문에 자신의 진짜모습 대신 착한 아이로 행동해왔고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참아왔다. 한동안 괴롭히던 아이가 사라지자 갑자기 자기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런 자신의 모습이 들통 날까 무서워 몸이 떨렸다. 교실에서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는 눈치가 보이고 떨려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 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학교만 가면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고 불안해서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예지는 상담을 통해 스스로 자신을 아주 밉고 못된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런 자신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주변사람들과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이유도 자기 자신을 싫어하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차츰 학교에서 대인관계가 안정됨에 따라 고2가 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하면서 어느덧 고3이 되었다. 그리고 늘 상담을 와서 반복적으로 말하던 “잘 웃고 잘 놀던 해맑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요” 라는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으로 살아갈 자격이 있을까요?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말을 하다말고 “선생님 사실은 전 나쁜 애 맞아요. 항상 삐딱하고 심술궂고 질투도 심해요” 하고는 울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큰소리로 펑펑 우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렇게 실컷 울고 나더니 “선생님 나도 사람으로 살아갈 자격이 있을까요” 하고 물었다. 나는 “당연하지, 너만 그런 것이 아니야, 사람은 누구나 그런 면이 있어” 하고 대답해주었다. 왠지 내가 정정해주지 않아도 예지가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과 자기 정체성을 수용하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일이 있고 난 2주 후에 예지를 만났을 때 깜짝 놀라게 되었다. 예지의 두 눈이 반달같이 커진 것이다. 최근 들어 살이 20K 가까이 빠진 것은 알고 있었지만 눈은 여전히 실눈같이 작았는데 수술을 한 것은 아닐 테고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예지는 “그때 이후로 편두통이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지더니 눈이 커 졌어요” 라며 해맑게 웃었다.

상담이론의 하나인 인지치료모델에서는 예지의 근거 없는 ‘나는 나쁜 아이’라는 생각을 핵심신념이라고 하는 데 이 경우는 부정적인 것이다. 이 부정적 핵심신념 아래 ‘만약 내가 타인의 비위를 잘 맞춘다면 나는 사랑 받을 것’ 이라는 중간믿음이 핸드링을 하면 친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을 때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야’ 라거나, ‘나는 결코 사랑받을 수 없어’ 라는 생각을 자동적으로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예지처럼 불안해서 몸이 떨리거나 편두통이 찾아오게 된다. 늘 우울하고 짜증이나니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어 몸무게가 늘고, 사는 것이 즐겁지 않고,  주변 친구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마음이 괴롭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을 비하하는 분노를 감당하기 힘들다 보니 마음속에서 자기를 처벌하는 환청이 들리는 증상도 생기게 되는 것이다.

자기비난에서 탈출

2년 반 동안의 상담기간 동안 예지는 스스로 자기가 만든 함정과 자기비난의 목소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하였다. 자살시도와 같은 충동을 막기 위해 정신과 진단을 받고 정기적으로 항우울제를 복용하라는 지시도 잘 따라주었고 상담시간도 잘 지켰다. 예지의 노력을 통해 부부갈등으로 예지를 방임했던 어머니의 양육태도도 온정적으로 바뀌고 예지와 더 가까워졌다.

이제 예지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는다. 거울에 비친 자기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된 것이다. 대학합격통지서와 함께 자기가 만든 쿠키를 감사의 선물로 가져온 예지가 헤어질 때 보여준 눈물 또한 그 징표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삶이 계속 되는 한, 또 어떤 시련이 닥칠지 알 수 없다. 언제나 우리 앞에 놓여있는 삶은 결국 우리자신의 치료를 위한 시간들이므로 이런 만남을 감사히 여기며 예지가 자기를 더욱 더 잘 이끌어 나가길 바란다. mind

        

진혜전 다온심리상담센터와 대구드라마치료연구소 대표 상담심리 전공
1990년 3월 부터 26년간 대구광역시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청소년상담을 하였고 2017년부터는 대구에서 다온심리상담센터와 대구드라마치료연구소를 운영한다. 계명대 교육대학원에서 상담심리를 전공하였으며, 대구가톨릭대에서 사회복지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사이코드라마소시오드라마학회 수련감독전문가로 청소년상담, 부모교육, 인간관계 갈등해결과 정신장애 재활을 위해 사이코드라마와 소시오드라마, 통합예술치료 적용을 위해 관심을 갖고 노력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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