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자: 공감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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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자: 공감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든다
  • 2019.09.02 01:41
사이코패스는 어떤 존재일까? 전문가들은 예초부터 다른 존재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을 우리와 다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프로파일링을 하는 이유

연쇄살인자들은 정신의학적으로는 ‘사회병질자’로 진단되는 경우가 많다. 사이코패스psychopath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들은 겉은 사람이지만 속은 괴물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화가 나서 사람을 때리거나 죽이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살인이나 폭행이 일상의 일부일 뿐이다. 정기적으로 자기 가족(주로 아내)을 구타하는 남자들의 생리적인 반응을 조사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폭행을 가하는 순간에 심장박동수가 높아지기 보다는 오히려 낮아진다고 한다.

즉 이들은 남을 공격할 때 분노에 휘말리는 것이 아니라 그 어느 때 보다도 침착하고 냉정해진다. 그래서 이 사이코패스들이 저지르는 범죄는 특별한 동기도 없고 이유도 분명하지 않다. FBI가 연쇄살인 수사에 프로파일링 기법을 도입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프로파일링은 마케팅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라이프 스타일 분석방법의 일종이다. 그런데 연쇄살인도 그 연쇄살인자들에겐 일종의 라이프 스타일이다. 따라서 이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정확히 알아내는 것이 중요해졌던 것이다. 

왜 이런 괴물이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설명이 없다. 최초의 FBI 프로파일러 존 다글라스John Douglas가 쓴 『마인드헌터』Mind Hunter, 2017에 따르면 연쇄살인자는 공통적으로 어린 시절에 방화, 야뇨증, 동물학대 중 하나를 저지른 경험이 있다고 하는데 이것 역시 뚜렷한 징후는 아니다. 야뇨증상은 5-6세 사이에서도 많이 나타나는 증상이지만 그 아이들이 전부 연쇄살인자가 되지는 않으니 말이다. 

애초부터 좀 다른 존재

어쨌든 이들은 애초부터 우리와는 조금 다른 존재라고 보는 것이 맞다. 과거의 경험이나 컴퓨터게임, 폭력적인 영화만 가지고는 도저히 이런 괴물을 만들어낼 수 없다. 이렇게 외계인 같은 이들이지만 이들 속에도 우리 자신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심리학자들에게 사회병질자들의 여러 가지 특성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요소 하나를 골라내라고 하면 아마도 대부분은 ‘공감능력의 부재’를 선택할 것이다. 공감능력이란 간단히 말해 남의 감정을 내 것처럼 느끼는 능력이다. 이를 '감정이입'empathy이라고도 한다. 공감은 인간의 본능이다. 태어난 지 3개월 밖에 안 된 아기들은 자기 옆의 아기가 불안해하면 덩달아 불안해하고, 즐거워하면 영문도 모르면서 같이 즐거워하고, 울면 따라서 운다.

물론 이렇게 강력하던 공감능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약해져서 생후 2년 반쯤 되면 남의 감정과 내 감정을 뚜렷하게 구별할 수 있고 남이 운다고 무조건 같이 울지는 않게 된다. 하지만 공감의 본능은 여전히 남아 있다. 어른이 된 우리는 상대방이 웃거나 울 때,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떨지를 명확히 이해한다. 심지어 TV나 스크린 속에서 움직이는 인간의 그림자에 대해서도 우리의 공감능력은 충분히 발휘된다. 공감능력이 없었다면, 미디어산업은 결코 지금처럼 발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문과학자들은 공감능력이야말로 공동체 형성의 기본이라고 말한다.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의 공감능력

인간은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을 ‘우리’ 라는 범주에 넣는다. 이렇게 한데 묶인 우리끼리는 남의 일을 자신의 일인 것처럼 함께 느끼고, 서로 도우며 보살핀다. 인간의 숭고하고 따스한 모습은 모두 ‘우리들’을 향해서 나타나는 것들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림자도 있다. 인간은 ‘우리’라는 울타리 밖의 존재들에 대해서는 공감능력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당신이 누군가의 고통을 마치 내 고통인 것처럼 느낄 수 있다면 그는 당신의 일부, 즉 당신의 공동체에 속한 존재이다. 하지만 그의 고통에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당신의 공동체 밖의 존재이다.

인간은 자기 공동체 안의 ‘우리들’에겐 협력도 하고 신뢰도 쌓고 사랑도 느끼지만, 우리 밖의 ‘그들’에겐 한없이 잔인해진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인간의 잔혹사는 바로 '우리'가 아닌 '그들'에게 저질러진 행동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인들도 유태인을 그들이라 분류했기에 아무런 가책 없이 가스실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

 

제가 첨부한 기사의 일러스트는 모두 제가 그린 것으로 저작권 역시 저에게 있습니다.  기사에 사용해도 무방합니다.

살인마에게 없는 것

나홍진 감독의 영화 『추격자』2008의 두 주인공 지영민(하정우 분)과 엄중호(김윤석 분)를 가르는 지점도 결국은 공감의 경계, 우리와 그들의 경계선이다. 살인마 지영민에게는 공감의 대상 즉 ‘우리’가 전혀 없다. 그에겐 모두가 ‘그들’이다. 그러니 아무런 가책도 없이 사람을 속이고 고통을 주고 목숨을 빼앗는다. 따지고 보면 영화 초반부 엄중호의 상태도 지영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에게 ‘우리’라 할 만한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 엄중호에게 마사지사들은 관리대상이고 사업의 자산일 뿐이었다. 둘이 처음 마주치는 장면은 그런 면에서 정의로운 주인공과 악당의 대결이라기보다는 그저 똑같은 두 괴물의 조우에 가깝다. 

추격의 계기

하지만 엄중호가 마사지사 미진(서영희)의 딸 은지(김유정)를 만나고 그 아이를 조금씩 자신의 공감 대상, 즉 ‘우리’의 영역으로 넣어가면서 그는 지영민과는 격이 다른 존재가 되어가기 시작한다. 자기 엄마가 죽었을 수 있다는 예감에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를 옆에 두고 차를 운전하던 중호는 비로소 미진의 안위를 진심으로 걱정하기 시작한다. 자기 옆에 무방비로 앉아서 온전히 어머니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아이의 심정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엄중호는 미진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이고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어느새 자신의 공동체에 비집고 들어온 아이에 대한 책임감과 공감이 그를 변화시킨 것이다. 그 변화는 비정한 유흥업주에 불과하던 존재에서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며 책임감을 느끼는 한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이 무자비한 영화가 단순한 살인마 이야기가 아니라 구원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 구원의 열쇠는 바로 공감이었다.

제가 첨부한 기사의 일러스트는 모두 제가 그린 것으로 저작권 역시 저에게 있습니다.  기사에 사용해도 무방합니다.

풍성한 존재가 되는 방법

결론은 이것이다. 공감을 통해 자신이 아닌 타인을 자기 울타리 안에 집어넣음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인간이 된다. 누구와 공감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어떤 인간인지를 알 수 있다. 공감의 영역이 정의롭고 넓을수록, 우리는 더 거대하고 풍성한 존재가 된다. 타인과의 공감이 없다면, 우리의 감정은 그저 공허한 신경계의 전기적 발작에 불과할 것이다. 공감의 기회는 어디에나 있다. 길가는 동족뿐만 아니라 개나 고양이, 풀과 나무에게도 공감할 수 있다. 영화도 좋은 기회다. 평소 공감과 비공감의 경계선을 치고 살던 관객들이 이 영화를 통해서 얻는 것도 공감이니 말이다. mind

장근영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발달심리 Ph.D.
연세대 심리학과 졸업, 온라인 게임이용자 한일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종시 소재 국책연구기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 중. 심리학자, 글쟁이, 그림쟁이, 영상 중독자, 밀리터리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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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연 2019-10-30 19:04:26
영화 원더도 영화속의 심리학으로 분석해주실 수 있으실까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