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의 지각, 혹은 착각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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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의 지각, 혹은 착각하는 이유
  • 2019.08.31 14:00
내 주위의 사물이 갑작스럽게 움직일 때에 우리는 때로 우리가 움직이는 거라 착각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움직임을 어떻게 지각하는 것일까? 지각심리학에서의 발견들이 최근 가상현실 서비스 개발에도 중요한 통찰을 준다.

기차역에서의 착각

어릴 적 기차 여행을 하려면 우선 역에 가서 정차된 기차에 앉아서 출발을 기다리곤 했다. 마침내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해서 ‘아 이제 출발하는구나’ 했더니 웬걸 옆 열차가 출발하는 것을 마치 내가 탄 기차가 움직인 것으로 착각했던 경험이 자주 있었다. 요즘은 역에 가더라도 정차하고 있는 기차가 별로 없을 뿐 아니라 기차들이 정거장에 정차하고 있는 시간이 적어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이 드물어졌다. 그러던 중 최근 자동세차장에 가면서부터 다시 그런 경험을 하게 되어 세차하는 목적 외에도 착각의 “묘미”를 즐길 수 있는 기회로 세차장을 자주 이용하곤 한다.

영국의 낭만주의 화가 터너는 제목 그대로 비 내리는 템즈강의 철교를 가로지르며 질주하는 증기차의 모습을 그렸다. 그는 움직이지 않는 평면에서 기차의 속도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윌리엄 터너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 '비, 증기, 그리고 속도-대서부철도'Rain, Steam and Speed – The Great Western Railway, 1844, 캔버스에 오일, 91 * 121.8 cm, 런던 National Gallery 소장.
영국의 낭만주의 화가 터너는 제목 그대로 비 내리는 템즈강의 철교를 가로지르며 질주하는 증기차의 모습을 그렸다.그는 움직이지 않는 평면에서 기차의 속도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데 성공했다. 윌리엄 터너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비, 증기, 그리고 속도-대서부철도'Rain, Steam and Speed – The Great Western Railway, 1844, 캔버스에 오일, 91 * 121.8 cm, 런던 National Gallery 소장.

자기수용기를 통한 움직임 지각

그러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움직인다는 것을 어떻게 인식하게 되는 것일까? 우리는 사지를 이용하여 신체를 움직인다. 이런 신체의 움직임은 세 가지 정보에 근거하여 인식된다. 일차적으로 신체는 팔과 다리의 근육과 인대, 관절을 이용하여 움직이고, 이때 이 부위들에 소재하고 있는 뉴런들이 활성화된다. 이렇게 활성화된 뉴런은 그 정보를 뇌로 전달하고 뇌는 이런 정보에 근거하여 자신이 움직인다는 것을 감지한다. 이런 정보를 전달하는 뉴런들을 자기수용기라 한다. 우리가 스마트폰 화면을 보지 않고도 문자를 칠 수 있는 것은 손목, 손가락에 소재하는 자기수용기가 제공하는 정보에 근거한 것이다.

전정기관을 통한 움직임 지각

몸을 움직이게 되면 신체의 무게 중심이 이동하게 되며 따라서 정확한 무게 중심을 감지하지 못할 경우 신체는 균형을 잃게 된다. 귀 속 깊이(속이) 소재하는 전정기관은 신체의 무게 중심이 이동하였는지 여부를 탐지하여 그 정보를 뇌로 전달한다. 뇌는 이런 정보에 근거하여 균형을 유지한다. 이렇게 전정기관을 통해 제시되는 신체 무게 중심에 대한 정보는 신체의 움직임을 확인시켜주는 두 번째 정보로 작용한다. (전정기관前庭器官은 이동과 평형감각을 주관하는 감각 기관으로, 대부분의 포유류에서 공간적 지향을 담당한다.)

시각정보를 통한 움직임 지각

마지막으로 우리는 눈을 통해 들어온 시각 정보에 근거하여 쉽게 우리 자신이 움직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이렇게 자기수용기와 전정기관을 통해 전달된 신호와 눈으로 감지된 정보를 결합하여 자신이 움직이는지를 인식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내가 움직였는지 아니면 주변의 물체가 움직였는지를 눈으로 식별하는 것일까? 지금 정차한 기차에 앉아있다고 생각해 보자. 기차가 멈추어 있기 때문에 자기수용기와 전정기관은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기차가 움직일 경우 기차는 진동을 할 것이고 그런 진동은 다시 신체를 진동시키고 자연히 자기수용기와 전정기관을 활성화시킬 것이다.)

이때 옆 선로에 정차하고 있던 기차가 움직였다고 하자. 나는 지금 앉아 있는 기차 밖의 상황을 좌석 옆 창문을 통해 시야로 들어오는 정보에 의존하여 인식한다. 특히 창문은 옆 선로에 정차하고 있던 기차의 몸체에 완전히 가리어져 있다. 이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할 경우 창문을 가리고 있는 기차 부위는 기차의 움직임과 함께 변화할 것이다.

이렇게 시야에 나타나는 변화를 통해 우리는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왜 옆 선로의 기차가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타고 있는 기차가 움직인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것일까? 내가 움직일 경우 어떤 변화가 시야에서 발생하는지를 한 번 생각해보자. 이런 상황은 시각적으로 내가 정지해 있고 내 주변을 구성하는 물체들이 전부 내가 움직이는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과 동일한 패턴을 유발시킨다. 즉 내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물체가 움직이는 것이다. 이런 시각 효과를 광흐름optic flow의 전역 변형global transformation이라 한다 (사실 컴퓨터그래픽스CG나 가상현실VR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관찰자가 움직인다는 느낌을 유발시킨다. 이렇게 광흐름의 전역 변형을 이용하여 유도된 자신이 움직이는 느낌을 벡션vection이라 한다.)

그에 반해, 내가 서 있는 상태에서 주변에 있는 물체가 움직일 경우 시야의 일부에서만 변화가 발생한다. 이런 효과를 광흐름의 국지적 변형local transformation이라 한다. 요약하면, 내가 움직일 경우 시야 전역에서, 주변의 물체가 움직일 경우 시야의 일부에서 변화가 발생하는 것이다.

현재 내 주변 환경은 창문으로 보이는 옆 선로의 기차로 덮여있다. 이때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내 시야의 전역에서 변화가 발생하게 되고, 이런 시각 효과를 나의 뇌는 옆 선로의 기차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타고 있는 기차)가 움직이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움직이는 방 실험

영국 스코트랜드에 소재하고 있는 에딘버르대학 심리학과에서 명예교수로 계시는 David Lee는 이런 사실을 직접 실험으로 증명하였다. Lee교수는 큰 강의실 안에 전면과 좌우면, 즉 3면과 천장으로 구성된 방(가로 1.8m, 세로 3.6m, 높이 2m)을 만든 뒤 그 방을 강의실의 천장에 매달았다. 이 방의 벽면을 폴리스타이렌 판을 이용하여 제작하였으며, 따라서 방은 쉽게 움직였다. 그는 이 방을 “움직이는 방swinging room”이라 불렀다.

이렇게 제작한 방에 이제 막 걷기 시작한 13개월에서 16개월된 아기들을 데려온 뒤 방의 전면을 향해 서게 하였다. 그리고 난 뒤 아기가 향하고 있는 면을 아기 반대편으로 살짝 밀었다. 이 경우 대부분의 아기들은 균형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거나 넘어졌다. 재미있게도 아기들은 앞 쪽으로 넘어졌다.

하지만 아기들은 고정된 강의실 바닥에 서 있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하다. 따라서 발바닥과 발목의 자기수용기는 자신이 서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들은 실험방의 움직임과 함께 균형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내가 이 방에 들어와서 정면을 바라보고 서있다고 생각해보자. 내 시야는 벽면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표면의 결들로 덮여질 것이다. 이 상황을 수리적으로 기술하기 위해서 각 표면 결을 밑면으로 눈을 꼭지점으로 하는 원뿔cone로 묘사해 보자. 이럴 경우 내 시야는 매 순간 주변의 물체에 해당하는 원뿔들로 꽉 차 있을 것이다. 이때 각 결이 눈과 형성하는 꼭지각을 시각도visual angle라 한다. 따라서 결의 크기가 클수록 시각도는 커진다. 그러면 실험자가 방 바깥에서 내가 주시하고 있는 정면의 벽을 나를 향해 민다고 하자. 벽의 접근과 함께 세부 결들이 형성하는 원뿔들의 시각도는 모두 확대될 것이다.

그에 반해 정면의 벽이 나로부터 멀어질 경우, 세부 결들이 형성하는 시각도는 동시에 줄어들 것다. 즉 내가 앞이나 뒤로 움직일 때 내 시야에서는 전역 변형이 발생하지만,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변화의 양상은 달라진다. 앞으로 나아갈 때는 각 원뿔의 시각도가 확대되는 반면, 내가 뒤로 물러설 때는 각 원뿔들의 시각도는 축소한다. 이런 사실을 반대로 적용하면, 내 시야 속의 물체들의 시각도가 동시에 확대되면 나는 내가 정면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그에 반해 모든 시각도가 동시에 축소할 경우 나는 열차 맨 뒤 칸에서 멀어져가는 광경을 보는 것과 같이 그 장소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명시한다.

따라서 실험방에서 가만히 서있다고 (자기수용기와 전정기관에서 오는 정보에 근거하여) 생각하는데 갑자기 전역 변형이 시야에서 나타나고 있을 뿐 아니라 모든 시각도가 동시에 확장할 경우, 그런 사실은 단 하나, 즉 내가 앞으로 넘어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럴 경우 앞으로 넘어지는 막기 위해서 나는 자연히 발을 뒤로 딛게 된다. 그에 반해 모든 시각도가 동시에 축소할 경우 그런 사실은 내가 뒤로 넘어지고 있다는 것을 뜻하고, 따라서 뒤로 넘어지는 것을 방지하게 위해 나는 자연히 앞으로 발을 딛게 되는 것이다.

Lee교수는 아기들 뿐만 아니라 성인들을 대상으로 동일한 실험을 실시하였다. 성인들의 경우 아기들과 같이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방의 움직임에 따라 신체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하였으며, 신체의 움직이는 방향은 방의 움직임 방향과 일치하였다.

이런 연구 결과는 우리의 행동에 시각정보에 근거하여 조절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시각정보가 자기수용기나 전정기관에서 보내지는 정보보다 자신의 움직임을 지각하는데 가장 우세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VR 서비스개발에의 적용

최근 IT기술은 획기적으로 발달하고 있다. 그 한 영역이 VR(가상현실)이다. 고해상도이면서도 저가의 HMDhead-mounted display와 함께 다양한 앱들이 개발되어 가상공간을 보다 현실적으로 구현시키고 있다. 여기서 Lee교수의 연구, 특히 다양한 시각 패턴과 그 패턴 속에 함축된 행동적 의미는 가상현실 개발에 중요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기술적 향상은 예기치 못한 부작용도 함께 동반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사이버멀미cybersickness라는 어지럼 증상이다. 기차에서 느끼는 착시현상과 같이 빠르게 움직이는 장면을 HMD를 통해 체험하고 있지만 신체는 정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수용기와 전정기관에서 보내오는 정보가 눈으로 감지하는 정보와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불일치가 사이버멀미를 유발시키는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조그만 착시현상으로 첨단 과학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mind

김남균 계명대 심리학과 교수 지각심리 Ph.D.
University of Connecticut에서 실험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수여받았으며, 그 뒤, William Paterson University (NJ 주립대학)과 영국 University of Leicester 심리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계명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각에 근거한 운동 통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최근에는 퇴행성 뇌질환 환자, 특히 알츠하이머형 치매 및 파킨슨병 환자들의 시각 및 운동 장애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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