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의 무기력과 금수저의 게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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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의 무기력과 금수저의 게으름
  • 2019.09.06 17:00
심리학에서 유명한 셀리그만의 '학습된 무기력'은 본인을 소위 '흙수저'라 칭하는 사람들의 무기력감을 잘 설명한다. 그렇다면 금수저들은 어떨까.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학습된 게으름'은 금수저의 무력증에 대해 경고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속담 중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행동분석Bahavior Analysis이라는 과목을 20여년 가르치면서 이 속담을 자주 언급한다. 그 이유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며, 오히려 실패가 계속된다면 파멸의 어머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이 속담을 우리가 자주 언급하는 것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실패를 하지 않을 수가 없으며, 따라서 실패를 하더라도 더 노력하면 실패를 성공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니 잘못된 말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패'에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학습된 무기력: 흙수저의 무기력증

Seligman이라는 심리학자의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라는 개념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속담과 관련하여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Seligman과 Maier (1967)는 개를 이용하여 실험하였는데, 실험의 첫 번째 단계에서 한 집단의 개들에게는 전기 충격을 64일간 하루에 한번씩 5초 동안 제공하였다. 그리고 이 집단에 속한 개들에게는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실제 다양한 행동을 하게 됨) 그 충격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을 제공하였다. 두 번째 집단에게는 동일한 방식의 전기 충격이 가해졌으나, 다른 점은 이 집단의 개들에게는 전기 충격을 피할 수 있는 상황(두 공간 중 한 공간에만 전기 충격이 가해졌기 때문에 전기 충격이 가해지지 않는 공간으로의 이동이 가능하였음)을 제공하였다. 나머지 한 집단에게는 전기 충격을 전혀 가하지 않았다.

실험의 두 번째 단계에서는 세 집단 모두에게 모두 전기 충격을 가했는데, 이 단계에서는 위의 두 번째 집단에게 제공된 상황과 같이 개가 전기 충격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며, 전기 충격이 가해지기 10초 전 벽에 설치된 전등에 불이 켜지도록 되어 있었다. 따라서 전등에 불이 켜지면, 개들은 전기 충격이 들어오지 않는 공간으로 미리 옮겨 전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나타난 결과는 두 번째 집단과 세 번째 집단의 개들은 전기 충격이 들어오면, 전기 충격이 들어오지 않는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을 단 시간 내에 학습하였으며, 결국에는 벽에 설치된 전등이 켜지면 미리 “안전한” 공간으로 이동하여 전기 충격을 사전에 회피하는 것을 학습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반면, 첫 번째 집단의 개들은 앞의 두 집단이 보여준 것과 같은 학습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하면, 전기 충격을 피하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실패' 경험이 충격을 피할 수 있는 상황에서 조차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학습된 무기력' 이라고 한다.

Meredith Frampton 1894–1984. Trail and Error. Oil paint on canvas. 1264 x 848 mm, London Tate Museum.
Meredith Frampton 1894–1984. Trial and Error. Oil paint on canvas. 1264 x 848 mm, London Tate Museum.

시행 착오trial and error가 학습에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여겼던 적도 있었으나 현재 많은 심리학자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착오errors나 실수mistake가 학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 착오나 실수는 시간을 소모하게 한다. 둘째, 착오나 실수는 한번 나타나게 되면 계속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셋째, 착오나 실수로 인해 부정적 정서가 발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착오나 실수는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할 것인지를 학습하기에 적합할 수 있으나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학습하는 데에는 도움을 주지 못한다.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것은 '실패' 경험 보다는 '성공' 경험이라고 본 필자는 주장한다. Skinner(1953)는 Science and Human Behavior를 비롯한 다양한 글에서 성공 경험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이것이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지게 되면, 소위 자기 신뢰감self-confidence이 쌓이게 되고 이 자기 신뢰감은 또 다른 도전 상황에서 성공하게 되는 밑거름이 된다. 반면, 노력에도 불구하고 좋지 못한 결과가 오게 되면, 자기 불신감을 느끼게 되고, 이 불신감은 실패로 이어지게 할 확률을 높여준다는 것이다. Bandura (1982) 역시 이러한 개념을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라는 용어로 표현하였다. 운동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몇 차례 내게 되면 이것을 계기로 한 동안 계속 좋은 성적을 내거나, 혹은 평소에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도 반복되는 몇 차례의 좋지 못한 결과가 이어지게 되면 소위 '슬럼프'”에 빠지게 되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목격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바로 성공과 실패 경험이 선수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학습된 게으름: 금수저의 무력증

한편, 노력의 여부와 관계 없이 무조건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 또한 문제가 있다. 사람들은 별로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이 잘 풀리고 좋은 일들이 생기는 경험을 가끔씩은 하게 되지만, 이러한 경험을 흔히 겪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만약 이와는 달리, 전혀 노력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결과가 계속 나타나게 되면, 이것 또한 문제가 된다. 이러한 현상을 '학습된 게으름'learned laziness이라고 한다. 학습된 게으름 현상은 Engberg와 그 동료들(1972)의 실험에서 관찰되었는데,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두 마리의 비둘기 중 한 마리(A)는 실험 상자의 한쪽 벽면의 빨간 원이 그려진 지점을 부리로 쪼면 먹이를 먹을 수 있게 장치해 두고, 나머지 한 마리(B)는 A가 먹이를 먹을 때마다 단순히 그냥 먹이를 먹을 수 있게 한 상황을 오래 동안 유지시키면, A는 부리로 빨간 원이 그려진 지점을 쪼는 행동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학습하게 된다. 그러나 B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먹이를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어떠한 종류의 행동도 학습하지 못한다. 즉, 비둘기 A는 노력하면 결과가 온다는 것을 경험한 반면, 비둘기 B는 노력하지 않아도 결과가 온다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경험 이후에 발생하게 된다. 어떤 새로운 과제를 학습할 기회가 왔을 때, 비둘기 A에 비해 비둘기 B는 학습 능력이 현저하게 뒤떨어지게 된다. 비둘기 B에게서 볼 수 있는 현상은 우리 인간 사회에서도 얼마든지 관찰할 수 있다. 부유한 집안에서 크게 노력하는 것이 없어도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이 부모로부터 받을 수 있었던 아이와 부유하지 않는 집안에서 무엇인가 노력해야 어떤 것이든 가질 수 있었던 경험을 가진 아이를 비교해 보았을 때, 두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하는 상황에서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난 아이의 적응 능력이 뒤쳐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되려면

계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패를 경험하는 것과 노력을 하지 않음에도 좋은 결과를 경험하는 것은 둘 다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문제의 핵심은 노력의 정도와 그에 따라 나타나게 되는 결과 사이의 관계성 부재에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속담에서 중요한 것은 실패가 어떤 실패인가 하는 점이다. 만약 노력을 충분히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실패라면, 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될 수 없다. 반면, 그 실패가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는 실패라면, 성공에 기여할 수도 있다. 즉, 노력의 여부에 따라 실패와 성공이 결정되는 소위 유관성contingency이 존재하는 상황이라면, 그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될 수 있다. mind

​​    <참고문헌>

  • Bandura, A. (1982). Self-efficacy mechanism in human agency. American psychologist, 37(2), 122.
  • Engberg, L. A., Hansen, G., Welker, R. L., & Thomas, D. R. (1972). Acquisition of Key-Pecking via Autoshaping as a Function of Prior Experience:" Learned Laziness"?. Science, 178(4064), 1002-1004.
  • Seligman, M. E., & Maier, S. F. (1967). Failure to escape traumatic shock.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74(1), 1.
  • Skinner, B. F. (1965). Science and human behavior (No. 92904). Simon and Schuster.
오세진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산업및조직심리 Ph.D.
오세진 교수는 Western Michigan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학위 논문: The Effects of Linear and Accelerated Performance-Pay Function on Worker Productivity in Individual Monetary Incentive Systems)를 취득하였다. 안전관리를 포함한 조직 수행 관리와 관련된 주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왔으며, 번역서로서 “직무수행관리”, 저서로는 “행동을 경영하라” 등이 있다. 특히 현장 연구를 통해 심리학적 지식을 조직 환경에서 실용적으로 적용시키는데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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