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공부는 학부와 어떻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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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공부는 학부와 어떻게 다를까?
  • 2019.09.09 10:00
많은 학부생들이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지만, 막상 대학원 공부에 대해서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대학원 공부란 과연 어떤 것일까?

세미나식 학습 위주

대학원에 진학한 학생들이 경험하는 큰 변화는 시험 스트레스로부터 일정 부분 해방된다는 점이다. 전공 별 및 전공 내 분야별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다수 대학원 수업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필답고사를 통해 단편적인 지식을 평가하기 보다는 발표, 질문 및 토론에 기초한 세미나식 학습이 주를 이룬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세미나식 수업의 중요한 전제는 학부 과정을 통해 이미 수강생들이 필요한 배경 지식을 모두 습득한 상태라는 점이다.

도대체 대학원에서의 지식은 어떻게 습득되는 것일까? 대학원 수업에서 습득을 요구하는 학습량은 교재 한권 정도를 마무리하는 학부 수업에 비해 크게 증가한다. 대학원 과목들 중에는 타국어 혹은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용어로 작성된 학술 논문 다수 혹은 적어도 수백 페이지 이상의 교재 여러 권에 대한 정독을 요구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사전을 참고해 밑줄과 깨알 같은 메모를 적어가며 교수의 강의를 빽빽하게 필기하는 학부에서의 학습 방식으로는 이러한 방대한 학습량을 다 소화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강의 계획서만 보고도 금방 짐작할 수 있다.

바로크 미술의 대표적 화가 루벤스는 무어인의 얼굴을 연습하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남겼다. 부단한 노력만이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피터 폴 루벤스 Peter Paul Rubens, 1577~1640. '무오인의 두상에 대한 4개의 연구', 1640,  캔버스에 오일, 51 *  66 cm , Royal Museums of Fine Arts of Belgium.
바로크 미술의 대표적 화가 루벤스는 무어인의 얼굴을 연습하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남겼다.  루벤스와 같은 대가들도 수많은 연습을 통해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피터 폴 루벤스 Peter Paul Rubens, 1577~1640. '무오인의 두상에 대한 4개의 연구', 1640, 캔버스에 오일, 51 ⅹ 66 cm , Royal Museums of Fine Arts of Belgium.

대학원 수업을 통해 얻는 네 가지

그렇다면 대학원 강의를 개설하시는 교수님들은 도대체 무엇을 바라시는 것일까? 적어도 내 경우의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단편적이었던 학부 전공 지식의 심화이다. 과연 지식의 심화란 무엇인가? 다소 어렵게 들리는 심화라는 개념은 사실상 그리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학부에서 배웠던 단편적 수준의 전공 지식들이 생성된 정확한 맥락을 이해하고 그 근거에 대한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압축적이고 정제된 용어가 사용되는 해당 분야 전문가 커뮤니티의 의사소통에 합류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학습 과정에 해당된다.

둘째는 전공 지식에 대한 메타 인지의 습득이다. 메타 인지를 협소하지만 단편적으로 풀이하자면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능력은 대개 학부수준의 주객관식 시험으로는 가늠하기가 매우 어렵고 대개 본인의 입으로 직접 설명하거나 다른 사람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경험을 통해 스스로 평가해 볼 수 있다. 대학원 수업에서 시도되는 발표, 질문 및 토론의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당연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공 지식의 깊이를 이해하고 부족한 부분을 필요에 따라 스스로 보충해 나가게 된다.

셋째로는 본인의 전공분야에서 축적된 지식의 체계를 탐색하고 이를 통해 본인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찾는 기술이다. 합리적 주장을 가장 중요시하는 학술 커뮤니티의 눈에 띄는 특징은 객관적 증거에 근거한 주장을 통해 논리적 충돌이 예상되는 상대방을 설득하고 내 주장에 대한 신뢰를 얻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주장에 대한 합당한 근거를 확보하지 못하면 대개 상대방에 대한 설득에 실패하고 본인의 주장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게 된다.

이는 본인과 타인의 지식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학술 자료 체계academic database에서 논리적인 설득을 위한 근거 자료를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탐색하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학부 교과서 수준의 단편적 교재에 대한 수동적 반복 학습을 통해서는 이러한 탐색 능력을 습득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마지막으로는 학업 방식에 대한 전환을 통해 공부가 아닌 연구로의 전향을 돕는 것이다. 학부 과정에 '공부의 신'이라 칭할 만큼 영리한 학생들은 드물지 않게 발견되지만, 이름만 대면 알만한 세계적인 천재들 몇몇을 제외하고 소위 '연구의 신'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대학원에서의 학습이, 지식의 범위가 정해진 교재나 교수의 강의의 내용에 국한된 단편적 지식의 흡수가 아닌 새로운 지식의 탐구와 발견에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즉 대학원에서의 연구는 학부에서 습득된 단편적 지식들에 명시적, 암묵적 지식을 추가함과 동시에 이렇게 습득된 지식의 체계body of knowledge를 토대로 연구자 스스로 새로운 지식의 추가를 시도하는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작업의 일환이다. 이는 범인凡人의 한계를 넘어서는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완숙의 경지에 도달할 경우 매우 즐거운 과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경험자들의 전언이다.(물론 나 스스로는 아직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인지심리학적 장점

인지심리학자로서, 이러한 대학원에서의 학업 방식의 전환 과정은 나에게 매우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지극히 당연하게 보인다. 반복학습과 단순암기를 배제하고는 학습 성과를 보장하기 어려웠던 초, 중, 고등 및 대학 학부 교육에 비해, 대학원 교육에서는 전공 지식체계에 대한 자율적 학습 및 전문가 커뮤니티 내의 압축적 의사소통 방식에 대한 이해와 지식 습득의 통합적 측면을 강조한다.

대학원에서의 이러한 학습 방식은 단편적이고 명시적인 지식의 습득뿐만 아니라 다독多讀과 이해, 토론, 평가 및 구술口述 과정에서 습득되는 암묵적implicit, 절차적procedural 지식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지식 생성 과정의 연합적associative 측면을 고려할 때 이처럼 다양한 채널을 통해 생성된 지식은 그 견고함과 전달력 면에서 큰 강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최종 결과물은 학술논문

대학원에서의 이와 같은 방대한 학습의 성공 여부는 대개 글로 표현되는 과정에서 드러나기 마련이다. 훈련기에 있는 많은 대학원생들이 무엇보다도 논문 작성을 어려워하는 이유 및 학술 논문이 그토록 가치를 인정받는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학위 과정의 마무리에 대개 논문 작성이 필수인 것은 괜한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네 가지 학습 과정의 성공 여부가 학위 논문에 담겨진 글에서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제자들의 학위 논문에 대해 유달리 까다로우신 지도교수님의 의중이 무엇인지 오늘 이글을 통해 어느 정도 짐작이 되었길 바라며, 대학원 진학에 앞서 예비 대학원생들이 경험하는 막연함과 두려움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 이 글을 마무리한다. mind

현주석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인지심리 Ph.D.
인지심리학의 주제 중 시각작업기억과 주의에 관한 주제로 박사 학위를 하고, 현재 중앙대 심리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인지심리학에 대한 공부를 기초로 인간의 장, 단기 기억과 사고 및 선택적 주의 현상 연구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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