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색'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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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색'의 심리학
  • 2019.09.09 11:00
한자말로 풀이하면 빛깔色을 드러내는 것이生 생색이다. 보통 '생색 내지마라'는 식으로 사용되는 것을 보면 우리는 그것에 뭔가 떳떳하지 못한 느낌을 가지는 듯하다. 그런데 생색 좀 내면 안되는가? 좀 봐 주면 안되나?

겸손은 힘들어

세상에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많고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 중에 내가 최고지. (...) 돌아가신 울 아버지 울 할머니 겸손하라 겸손하라 하셨지만 지금까지 안 되는 건 딱 한 가지 그건 겸손이라네. 잘난 척하는 사람 앞에 고개 안 숙여 그 고집은 절대로 안 굽혀. (...) 겸손 겸손은 힘들어. 정말로 힘들어. 힘들어. -  조영남,『겸손은 힘들어』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한 그 유명한 가수는 겸손하지 못한 것 때문에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고 이제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다. 어찌보면 그는 지나치게 생색을 내었던 것일까?  새삼 가사를 음미해 보니 자신의 이야기를 가사로 쓴 것이라면 적어도 그 사람 이 노래에서 만큼은 솔직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모든 것은 지나치면 탈이 나는 법.  겸손과 생색 사이 그 어딘가에 적정한 지점이 있을 것도 같은데 균형을 잡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겸손humilty은 어떤 문화권에서나 자만이나 생색에 비해 늘  중요한 미덕으로 존중되어 왔다. 영국 맨체스터 한 교회에는 겸손을 인격화한 라파엘전파 에드워드 번-존즈의  스테인글라스 작품이 남아있다.  Phillip Medhurst
겸손humilty은 어떤 문화권에서나 자만이나 생색에 비해 늘 중요한 미덕으로 존중되어 왔다. 영국 맨체스터 한 교회에는 겸손을 인격화한 라파엘전파 Pre-Raphaelite 에드워드 번-존스Edward Burne-Jones, 1833~1898의 스테인글라스 작품이 남아있다. ⓒPhillip Medhurst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지인 중에 평소 '생색 대마왕'이라고 자처하는 심리학 선무당 한 사람이 있는데 그에게 물어 보았다. 왜 사람들은 생색을 내는 걸까요? 라고.  그 생색 대마왕은 진지하게 하지만 잠깐 생각해 보더니 보상심리, 인정의 욕구, 사랑받고 싶은 마음 등등을 언급하며 역시 생색을 냈다. 그런데 대략 그 말이 맞았다. 어라 이쯤 되면 생색이 아닌데. 그 동안 나는 그 사람이 생색을 내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나 싶기도 하다. 그 생색 대마왕의 말처럼 우리가 이토록 생색에 예민한 이유는 누군가 나를 알아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몇 가지를 더 추가한다면 알아 주었으면 하면서도 얄궂게도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건 또 싫은 마음을 동시에 가진다는 것이다. 즉 대놓고 자랑하고 싶지는 않다.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그 유명한 매슬로우Maslow는 욕구위계설hierarchy of needs을 제안하여 인간의 욕구는 생리, 안전, 사랑 및 소속, 존경, 자아실현의 순으로 위계적으로 배열되어 있어 그 위계에서 아래에 위치하는 욕구의 충족이 밑바탕이 되어 상위의 고차적 욕구를 추구하고자 하는 동기가 발생된다고 보았다. 아마도 생색의 욕구는 사랑 및 소속 욕구와 존경욕구 그 사이 어디쯤에 해당되는 욕구가 아닐까. 공동체에서 내쳐지지는 않으면서 동시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명예로워지고자 하는 욕구 정도?  

생색을 잘 내는 사람도, 잘 못내는 사람도 자신이 잘 한 것에 대해서 남이 알아 줬으면 하는 마음은 굴뚝 같으면서도 그것을 자기 스스로 드러내는 것은 싫다. 생색을 잘 내는 사람의 경우에도 남들이 충분히 알아주는 것 같지 않아서 제딴에는 확인 차 군더더기 표현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생색 내는 것을 꼴보기 싫어하는 타인에게는 오버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그 타인은 자신은 잘 내지 못하는 생색을 내는 그 인간이 미운 것이다.

생색에 엄격한 우리 사회

일이 이렇게까지 복잡해지는 이유는 아마 우리사회가 조금 더 생색에 대해 엄격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색을 영어로 표현하는 단어는 찾기 어렵다. '생색내다'를 영영한 사전에서 찾아보면, 'want to be thanked'라고 씌어 있다. 한 마디로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다는, 고마움을 알아 줬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영어권에서는 'thank you'라는 표현이 그토록 흔한 것에 비해 우리에게는 상대적으로 그 표현이 서툰 것을 보면 적어도 영어권 사람들에게는 생색이라는 표현이 굳이 필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물론 영혼이 없는 기계적인 감사의 표현은 공허하지만 이 부분은 일단 별개로 하자). 우리가 약간 비아냥거리며 표현하는 '또 생색 내기는...'이라는 표현 앞에는 '당연한 것인데'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 

이로 볼 때, 생색은 내면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우리에게 깔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생색을 내거나 내고 싶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뭔가 약간 부족한 느낌, 아쉬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리라. 당연한 것인데 이걸 말해 말어 하며 갈등하는 것이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그 말의 실천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상대방에 대해 고마움을 느낀다면 그 고마움을 어떻게든 전달하자. 그렇게 한다면 상대방이 체면 구겨 가면서 굳이 생색 내는 꼴을 보지 않아도 되지 않는가. 요즘 영어권 사람들도 'thank you'에 대해 환영을 뜻하는 입에 발린 'You're welcome'보다는 'No problem' 이나 'Certainly' 등의 그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쿨한 표현을 쓰는 추세란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미 그렇게 해 왔었다. 칭찬이나 감사에 대해 '뭘요. 제가 뭐 한 게 있나요? 한 것도 없는데...' 라며 겸손을 보여 왔지 않은가.  

겸손과 생색 사이의 진실성

고마움을 표현한 사람에게 여유있게  '그 정도 가지고 뭘요. 하지만 제가 도움이 되었다니 저도 기뻐요.'라고 말해 줌으로써 상대방이 우아함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나에게 도움을 준 상대방이 (그것이 비록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도움행동에 대한 칭찬 부족감으로 생색 내게 만들지 말고 겸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체면을 과하게 차리는 것이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 하지만 어느 정도 그 사람의 얼굴을 세워 주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되어 신뢰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 자리를 빌어 나도 생색 대마왕에게 그 동안 마음 속에 쌓아두기만 했던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겸손과 생색 사이 그 어디쯤에는 적절한 수준의 자기 노출과 개방으로 만들어지는 자연스러운 진실성 또는 진정성이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mind

김근향 대구대 심리학과 교수 임상심리 Ph.D.
너무 어린 나이에 멋모르고 꿈을 심리학자로 정해버려 별다른 의심 없이 그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 그 여정에서 다시 태어나면 꼭 눈에 보이는 일을 해 봐야지 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의 심리학 대세론에 선견지명이 있었다며 스스로 뿌듯해 하며 또다시 새로운 꿈을 꾸어 본다. 마음 통하는 사람들과 생생한 삶 속에서 심리학의 즐거움과 재미를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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