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흰 잔에 드릴까요, 검은 잔에 드릴까요?
상태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커피, 흰 잔에 드릴까요, 검은 잔에 드릴까요?
  • 2019.09.17 10:35
바쁜 일상 속 커피 한 잔의 여유, 매우 소중하지요. 맛있는 커피 한 잔을 위해서는, 어떤 커피를 마시는지가 중요하지만 어떤 잔으로 마시는지도 중요합니다.

내가 출근하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커피를 내리는 것이다. 일이 바빠지고, 몸이 게을러 지면서 옛날처럼 커피 원두를 직접 손으로 갈아, 좁은 주둥이를 가진 주전자를 열심히 돌려가며 핸드 드립 방식으로 커피를 만들어 마시는 호사를 즐길 수는 없지만, 커피머신으로라도 따뜻한 커피를 내려 한 모금 들이킨 다음에야 나의 하루는 시작될 수 있다.

루이스 마린 보넷 Louis-Marin Bonnet 1736–1793 . Print, The Woman Taking Coffee, 1774. engraving, etching in blue, black and red ink over gold leaf, with additional plate inked in mauve and green, à la poupeé, on off-white laid paper, 32.2 × 25.1 cm, 쿠퍼 휴이트 국립 디자인 박물관 Cooper Hewitt, Smithsonian Design Museum.
오래전부터 이슬람 교도의 의례용 각성제로 복용되어왔던 커피가 이탈리아를 통해 유럽에 전파된 것이 1600년대 일이다. 로코코 화풍의 작품에는 뜨거운 커피를 받침에 부어 식혀 먹는 독특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림 하단의 제목에서 'taking Coffee'm을 'ta King Coffee'로 표기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루이스-마린 보넷 Louis-Marin Bonnet, 1736~1793. '커피를 마시는 여인' The Woman ta King Coffee, 1774, 에칭 판화, 32.2 × 25.1 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공부를 업으로 삼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도 커피를 입에 달고 사는 편인데, 입버릇처럼 ‘나의 연구의 80%는 내가 아니라 커피가 했어’라고 말할 정도이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나는 매니아라고 칭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전문적으로 커피를 즐기고, 커피와 함께 하루 하루를 보낸다. 나와 같은 일반인들에겐 모든 커피의 맛이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커피 매니아들에게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미묘한 맛의 차이를 지각하고, 보다 맛있게 커피를 먹는 방법을 고안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커피 맛을 결정하는 요소들

커피의 맛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요인들이 있다. 커피 원두가 얼마나 신선한지도 중요하고, 커피를 우릴 때 찬 물을 사용하는지, 뜨거운 물을 사용하는지도 중요하며, 이 때 사용되는 필터가 종이인지, 융과 같은 섬유류인지, 아니면 금속 재질인지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런데, 시각 심리학자로서 말하고 싶은 한 가지 중요한 요인이 있으니, 그것은 커피를 담는 커피잔, 특히 커피잔의 색이다.

Van Doom과 그 동료들은 2014년에 매우 직관적이고 흥미로운 실험을 실시했는데, 동일한 커피를 흰색 및 파란색 머그잔과 유리잔에 따르고 각각의 커피를 맛보게 한 후, 얼마나 커피맛이 진한지 평정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 흰색 머그잔에 커피를 마실 때 그 커피가 가장 진한 맛이었다고 보고하였다. 연구자들은 검은색인 커피가 흰색 머그잔에 담기면 검은색과 흰색 간의 대비가 발생하여, 커피의 색을 실제보다 더 검게 지각하게 되고, 그 결과 커피 맛이 더 진하게 느껴진다고 주장하였다Van Doorn, Wuillemin, & Spence, 2014.

(혹시 지각 심리학 과목을 열심히 수강한 학생들은 고개를 갸웃할 지도 모르겠다. 검은색과 흰색은 색채가 아니고 밝기에 해당되니, 위의 결론은 색채 대비가 아닌 밝기 대비라고 바꿔서 말을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흰색과 검은색도 색이라는 차원에서 경험되는 것이 일반적이니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고 이번에는 넘어가자.)

커피 잔의 심리학

색은 (밝기도 마찬가지로) 주변에 있는 색의 영향을 받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래 그림에서 보여주고 있는 색채 동시 대비이다. 그림에서 내부에 있는 초록색 사각형은 정확하게 동일한 색이다. (믿지 않는다면, 주변의 삼각형을 가려보자!) 하지만, 주변에 있는 사각형이 지닌 색의 영향으로 다르게 지각된다. 노란색 사각형 안에 있는 초록색에 비해, 파란색 사각형 안에 있는 초록색이 더 밝은 연두색처럼 보이게 된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검은색의 커피가 흰색인 머그잔에 담기면 커피의 색이 원래 보다 더 검게 지각된다는 것이다.

색채 동시 대비. 좌우의 내부에 있는 작은 초록색 사각형은 실제로 동일한 색이지만, 주변 사각형 색의 영향으로 다르게 지각된다.
색채 동시 대비. 좌우의 내부에 있는 작은 초록색 사각형은 실제로 동일한 색이지만, 주변 사각형 색의 영향으로 다르게 지각된다.

이와 같은 해석에 반기를 드는 연구자들도 있다. 어떤 연구자들은 유리잔이나 파란색 머그잔이 커피를 담아내는 커피잔으로서 빈번하게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여, 흰색 머그잔의 커피를 더 진한 맛이라고 지각한 것은 친숙함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또, 혹자들은 유리컵과 머그잔의 경우 재질이 다르고, 그 재질이 입술과 닿을 때 다른 촉감을 유발하기 때문에 커피맛도 다르게 지각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동일한 음료수를 종이컵과 유리컵에 주면 그 맛을 다르게 지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위의 연구 결과도 커피잔의 색보다는 형태나 재질의 차이에서 유발되는 결과라는 것이다.

아구찜엔 미나리

하지만, 보색을 대비하여 지각되는 맛의 강도를 높이는 방법은 음식 분야에서는 매우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아구찜과 같이 매운 음식에 굳이 미나리 같은 초록색 야채를 넣는 것도 빨간색의 보색인 초록색을 사용하여 빨간색을 더 빨갛게 보이도록 하여, 그 매운 맛의 매력을 강조하려는 전략이다. 이렇게 색채 대비를 음식에 이용하는 것은 굳이 과학적인 검증 없이도 많은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맛을 지각하는 데에 색상 정보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맛' 보다 '풍미'

‘눈으로 먹는다’라는 표현처럼 우리가 맛을 지각하는 데에는 시각 정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요즘과 같은 미식의 시대에 맛의 전문가들은 매우 섬세한 미각을 자랑한다. 하지만, 맛taste이란 결국 다섯 가지 종류의 맛 - 단맛, 쓴맛, 짠맛, 신맛, 그리고 감칠맛 - 밖에는 없다. 이 다섯 가지 맛으로 수 만 가지 음식의 맛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맛 이외의 다른 정보들을 보충적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향, 음식의 질감texture, 치아로 씹을 때의 압력, 색상과 같은 정보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다양한 맛을 경험하게 된다. 이 경우의 맛을 지각의 대상이 되는 맛과 구분하여 풍미flavor라고 칭하기도 한다.

맛, 즉 미각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는 다른 감각 정보는 후각, 즉 냄새이지만, 시각 정보, 그 중 특히 색상 정보도 매우 중요하다. 요리에서는 맛을 좋게 내는 것만큼, 음식의 색을 이쁘게 내는 것도 중요하다. 유명한 요리연구가이자 요식업자인 백종원씨의 조리 동영상을 보면, “이 재료는 맛으로는 그렇게 큰 효과는 없습니다. 색을 내기 위해서 넣는 거에요. 이렇게 넣으면, 색이 이쁘게 나왔쥬?”라는 말이 흔하게 등장한다.

색을 보고 먹어야 하는 이유

색과 음식의 관계는 생각보다 매우 밀접하다. 맛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생존의 차원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식재료에 대해서 먹어도 되는지 아닌지를 먹어보고 결정할 수 없다. (물론 우리 사랑스러운 와이프는 ‘여보 이 음식 좀 이상한 거 같아, 한 번 먹어봐’라고 말하지만...) 냉장고에 며칠을 두었더니 검은색으로 변한 고기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아무리 고기라지만, 그리고 구우면 검게 변하긴 하겠지만 과연 여러분은 그 고기를 먹을 수 있을까? 검은 색 바나나와 노란 색 바나나가 있다고 하면, 여러분은 어떤 바나나를 먹겠는가? 산에서 조난을 당해서 며칠을 굶었는데, 우연히 나무 밑에서 처음 보는 버섯을 발견했다. 그런데, 빨간색이다. 여러분은 그 빨간 버섯을 먹을 자신이 있는가? 음식에 대한 정보를 처리하면서 색이라는 정보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색에 따라 달라지는 맛

실제로 많은 연구들은 색에 따라 우리의 맛 지각이 변화한다고 이야기 한다. 동일한 음료에 아무런 맛이 없는 색소를 넣어서 맛을 평정해 보면, 빨간색 색소가 들어갔을 때 사람들은 그 음료를 더 달다고 지각한다. 그래서 다이어트 음료수는 빨간색을 띠는 경우가 많은데, 당분을 줄여 발생되는 부족한 단맛을 빨간색으로 보충하려는 시도이다. 본 실험실에서도 유사한 연구를 실시한 적이 있는데, 흰색인 초콜릿에 아무런 맛이 없는 노란색, 초록색 색소를 넣어 맛평정을 실시했는데 실제로는 동일한 맛이었지만 노란색 초콜릿은 더 신맛이, 초록색 초콜릿은 더 쓴맛이 느껴진다고 보고하였다.

이렇게 한 그릇의 요리를 만드는 데에도 요리사들은 맛뿐 아니라 시각적인 면까지 고려하여 요리를 한다. 인기 TV 프로그램인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면, 그 짧은 15분이라는 시간 안에 요리를 완성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플레이팅에 신경을 쓰는 요리사의 노력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진짜 ‘눈으로도 먹는’ 요리이기 때문이다.

오늘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은가? 카페인이 걱정되지만, 그래도 진한 커피를 먹고 싶을 때, 흰 색 커피잔에 조금은 옅은 커피를 담아 먹으면 어떨까? BGM으로는 폴 킴의 ‘커피 한 잔 할래요?’ (https://www.youtube.com/watch?v=l7PgoVBZpc8) mind

<참고문헌>

  • Van Doorn, G. H., Wuillemin, D., & Spence, C. (2014). Does the colour of the mug influence the taste of the coffee? Flavour, 3(1), 10.
최훈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 인지심리 Ph.D.
연세대 심리학과에서 학, 석사를 마치고, Yale University에서 심리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이후 Boston University와 Brown University에서 박사 후 연구원 과정을 거쳐 현재 한림대 심리학과에 교수로 재직 중 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하던 만화, 아이돌, 스포츠를 지각 심리학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 평생 덕질을 하듯 연구하며 사는 것을 소망하는 심리학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