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픈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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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픈 이유
  • 출판 2019.10.01 15:00
스트레스가 우리의 신체 건강에 적잖이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특히 아동학대와 신체 건강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뚜렷한 이유없이 아플 때 

몸이 아프거나 불편해서 병원을 찾으면 흔히 듣게 되는 말이 ‘스트레스성’이라는 표현이죠. 가끔은 나의 증상에 뚜렷한 이유를 찾을 수 없을 때 그냥 붙이는 말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거나,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나를 괴롭히던 통증과 불편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경험을 많은 분이 해보셨을 거예요. 그러고 보면 스트레스가 우리의 신체 건강에 적잖이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분명해 보입니다. 일상적인 스트레스도 이처럼 우리의 신체 건강 상태에 영향을 주니,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극도의 스트레스인 트라우마(외상)는 당연하게도 몸과 마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돌봄과 보호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어린 시절에 경험한 학대와 방임은 몸과 마음에 오래도록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이 많은 연구에서 보고되었습니다. 이제 연구자들은 트라우마가 어떻게 시간이 흐른 뒤에도 신체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지 그 경로를 찾아내고자 하고 있습니다. 

트라우마를 겪은 몸과 마음

아동 학대와 신체 건강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고자 할 때 가장 강력한 용의자는 역시 외상후 스트레스 반응post-traumatic stress responses입니다. 외상후 스트레스 반응은 외상을 경험한 사람의 몸과 마음이 보이는 반응을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외상은 일상적인 대응 역량을 압도하는 경험이기 때문에, 사람의 몸과 마음은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비상 체제에 돌입합니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온몸의 신경이 곤두선 채 싸우거나 도망칠 준비를 하거나, 반대로 모든 감각과 감정을 차단합니다. 위협이 지나간 후에도 외상후 스트레스 반응은 기억을 매개로 거듭 생존자를 찾아오고, 여전히 그 위험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게 합니다.

이러한 외상후 스트레스 반응이 오랜 기간 지속되고 일상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가져올 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진단합니다. 미국 정신의학회의 『정신의학 진단 및 통계 편람(5판)』DSM-5에서는 재경험, 회피, 인지와 정서의 부정적 변화, 각성과 반응성의 변화라는 네 가지 범주로 증상을 분류하고 있습니다. 

외상후 스트레스 반응은 위급한 상황에서 나를 지키기 위한 대처였지만, 이를 유지하는 데에는 많은 대가가 따르고 그 대가에는 신체 건강도 포함됩니다. 외상후 스트레스 반응은 몸의 스트레스 조절 체계를 활성화하고, 면역과 염증 반응의 과잉 활성화나 과소 활성화를 부릅니다. 면역 체계는 우리 몸을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체계이기 때문에, 스트레스와 외부의 위협에 아주 민감하지요. 이 체계의 조절에 이상이 생기면 나를 보호하는 면역과 염증 반응이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 벌어집니다. 과각성 증상의 하나인 수면 장애도 건강을 해치죠. 고통스러운 정서를 조절하기 위해 알콜이나 약물 사용 등 건강에 해로운 행동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회피와 정서적 차단은 사회적 고립과 활동 저하로 이어지고, 이는 건강을 악화시키는 또 다른 원인이 됩니다. 

거대한 거미 조각으로 유명한 루이스 부르주아지 Louise Bourgeois,1911~2010는  1982년 자신의 어린 경험을 반추하는 'Child Abuse''란 이름의 전시회를 가졌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칠십년이 지난 시점에도 여전히 그녀의 정신세계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Louise Bourgeois, CELL XXVI, 2003 (detail), Collection Gemeentemuseum Den Haag, The Netherlands. Image: Christopher Burke. © The Easton Foundation / Licensed by Copydan
거대한 거미 조각으로 유명한 루이스 부르주아지 Louise Bourgeois,1911~2010는 1982년 자신의 어린 경험을 반추하는 'Child Abuse''란 이름의 전시회를 가졌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칠십년이 지난 시점에도 여전히 그녀의 정신세계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Louise Bourgeois, CELL XXVI, 2003 (detail), Collection Gemeentemuseum Den Haag, The Netherlands. Image: Christopher Burke. © The Easton Foundation / Licensed by Copydan

트라우마→심리적 문제→신체적 문제

Rueness와 그 동료들은 어린 시절의 학대가 청소년-청년기의 신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에서 외상후 스트레스 반응의 역할을 살펴보았습니다Rueness et al., 2019. 노르웨이에서 설문 조사를 통해 연구가 진행되었고 16-33세의 아동 학대 생존자 504명과 아동 학대를 경험하지 않은 506명이 연구에 참여했습니다. 2013년에 첫 번째, 2014년과 15년에 걸쳐 두 번째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첫 번째 조사에서는 아동 학대 경험과, 최근 한 달간 경험한 외상후 스트레스 반응을 알아보았고, 두 번째 조사에서는 각종 통증과 불편 등 현재의 신체 건강 호소를 측정했습니다. ‘외상후 스트레스 반응은 아동학대와 신체 건강 호소를 매개한다’는 가설을 바탕으로, 아동학대가 외상후 스트레스 반응을 거쳐 신체 건강 호소에 영향을 미치는 간접 경로와, 거치지 않고 신체 건강 호소에 영향을 미치는 직접 경로를 설정한 모형을 검증했습니다. 그 결과, 외상후 스트레스 반응이 매개하는 간접 경로가 통계적으로 유의하며, 매개 효과는 전체 효과의 85%에 이른다고 추정되었습니다. 즉, 과거의 아동 학대가 현재의 신체 건강 호소에 미치는 영향의 대부분이 외상후 스트레스 반응을 거치는 경로로 설명된다는 것이지요.  

아동 학대와 신체 건강 호소의 관계에서 외상후 스트레스 반응의 매개 모형
아동 학대와 신체 건강 호소의 관계에서 외상후 스트레스 반응의 매개 모형

이 연구에서는 특히 그동안 상대적으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온 신체 폭력, 성 학대뿐 아니라 가정 폭력 목격, 정서 학대와 같이 연구가 덜 이루어진 학대 유형도 조사되었습니다. 연구자들은 학대 유형별로도 매개 모형을 검증하였으며, 그 결과 모든 종류의 학대에서 외상후 스트레스 반응의 매개 효과가 유의했습니다. 직접 신체적인 위협을 가하지 않더라도 모욕이나 창피를 주는 말도 이후 신체적 문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죠.

또한 두 가지 이상의 학대를 경험한 사람의 경우 이러한 매개 효과는 더욱 두드러진다고 나타났습니다. 한편 아동기 학대가 후향적 보고로 확인되었기에 편향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연구의 한계라 할 수 있고 추후 다른 연구를 통해 보완되어야 할 지점입니다. 보다 정교한 메커니즘을 밝히기 위해서는 생리적 측정치와 생물학적 지표를 포함한 분석도 이루어져야 하겠죠. 

트라우마 피해자를 보는 관점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체적 문제는 상당한 규모의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고 있습니다. 한편 PTSD 환자에서 심혈관계 질환, 대사 증후군, 자가면역 질환 등 만성 신체 질환의 높은 유병률이 관찰되고, PTSD의 신경생물학적 연구가 발전함에 따라 이를 정신 질환 혹은 뇌 기능 장애라기보다는 전신 질환systemic disease으로 보아야 한다는 관점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Mellon et al., 2018. 전신 질환이란 당뇨, 고혈압과 같이 우리 몸과 마음의 전 체계에 불균형을 초래하고 취약성을 높이는 질환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외상을 경험한 사람 전체를 바라보고 그 한 사람이 온전히 회복하도록 다각도로 살펴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연구의 발견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체적 문제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어쩌면 외상후 스트레스 문제를 발견하고 치료함으로써 도움을 받을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역으로, 아동 학대에 따른 외상후 스트레스 반응을 조기에 발견하고 개입함으로써 스트레스 관련 신체적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도 배울 수 있지요. 사회 구성원으로서 아동 학대를 예방하고, 학대가 발생하기 쉬운 사회 구조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윤리적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아동 학대와 신체 건강에 대한 연구는 여기서 더 나아가 학대의 예방과 개입이 중요한 공중 보건 문제이며, 예방과 개입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mind

   <참고문헌>

  • Mellon, S. H., Gautam, A., Hammamieh, R., Jett, M., & Wolkowitz, O. M. (2018). Metabolism, metabolomics, and inflammation in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Biological Psychiatry, 83(10), 866-875.
  • Rueness, J., Myhre, M. C., Strøm, I. F., Wentzel-Larsen, T., Dyb, G., & Thoresen, S. (2019). The mediating role of posttraumatic stress reactions in the relationship between child abuse and physical health complaints in adolescence and young adulthood. European Journal of Psychotraumatology, 10(1), 1608719.
     

이 글은 사람마음 홈페이지에 연재되는 [월간 트라우마와 그 너머]에도 실려있습니다. 

이한별 사회적협동조합 사람마음 활동가 심리학 MA
임상심리전문가로 사회적협동조합 사람마음에서 트라우마 생존자를 위한 심리지원을 하고 있다. 느슨한 전두엽을 가지고 있지만 절차기억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좋은 습관을 만들어가고자 한다. 언니들이 멋있어 출근할 힘이 나는 언니 덕후. 사람마음의 기부 회원이 되어 주세요! https://www.traumahealingcenter.org:46084/page_oqyO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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