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이 정당하게 보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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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이 정당하게 보일 때
  • 2019.10.21 09:55
'양극화가 심해진다'는 기사가 쏟아집니다. 이처럼 경제적 불평등은 현대 사회가 직면한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제적 불평등을 우리는 얼마나 정당하다고 판단하고 있을까요? 최근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에 따라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정당성 판단이 달라진다는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질문 있습니다! 

한 회사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 사원과 비정규직 사원이 있습니다.

[질문 1.] 정규직 사원의 시급이 비정규직 사원보다 2,000원 더 많다면, 이는 정당할까요?

[질문 2.] 비정규직 사원의 시급이 정규직 사원보다 2,000원 더 적다면, 이는 정당할까요?

벌써 눈치챈 분도 계시겠지만, 위의 두 질문은 사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시급이 2,000원 차이다’라는 사실을 조금 다르게 표현하여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정당성 판단을 물은 것입니다. 1번 질문을 받았을 때와 2번 질문을 받았을 때, 사람들의 정당성 판단에 차이가 있을까요? 만약 있다면 사람들은 어떤 질문을 받았을 때 같은 상황을 더 정당하다고 여겼을까요?

경제적 불평등은 얼마나 정당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독일에서 실험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Bruckmuller, Reese, & Martiny, 2017. 즉, 실험을 통해 불평등, 특히 경제적 불평등을 정당(또는 부당)하다고 여기는 데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를 검증하고자 했습니다. 이들은 실험을 위해 두 가지 가설을 세웠습니다.

첫째, 연구자들은 ‘지각된 불평등의 정도’에 따라 정당성 평가 정도가 달라질 것이라 보았습니다. 위의 질문에서, 어떤 사람은 시급 2천 원 차이가 매우 크다고 느꼈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그다지 크지 않다고 느꼈을 수 있습니다. 이때 차이를 (주관적으로) 크게 느꼈을수록 경제적 불평등을 부당하다고 평가하게 된다는 것이죠.

둘째, 연구자들은 ‘불평등이 어떻게 제시되는가’에 따라 정당성 평가가 달라진다고 예측하였습니다. 우리는 같은 시급 차이를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규직 근로자보다 시급을 2,000원 덜 받는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고, ‘정규직 근로자가 비정규직 근로자보다 시급을 2,000원 더 받는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표현 방식(프레이밍framing)에 따라 동일한 상황을 정당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고, 부당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두 변인이 실제 정당성 평가에 영향을 미치는지 검증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실험을 진행합니다. 우선 참여자들에게 자신이 작년에 큰 성공을 이룬 한 회사 임원이며, 곧 직원들과 연봉협상을 앞두고 있다고 상상해보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 한 집단에는 ‘현재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규직 근로자보다 시급을 2유로 덜 받는다’고 제시하고, 다른 집단에는 ‘현재 정규직 근로자가 비정규직 근로자보다 시급을 2유로 더 받는다’고 제시한 뒤, 두 집단 간 임금 차이가 얼마나 크다고 여기는지, 이러한 임금 차이가 얼마나 정당하다고 생각하는지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회귀분석 결과,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덜 받는다’고 제시한 집단에서는 경제적 격차를 크다고 생각할수록 이러한 불평등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정규직이 비정규직보다 더 받는다’고 제시한 집단에서는 불평등을 크게 여기는지 작게 여기는지가 정당성 평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비교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정당성

왜 그럴까요? 연구자들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비정규직이 덜 받는다’는 메시지는 불리한 집단(비정규직)의 처지가 얼마나 열악한지에 초점을 맞추게 하고, 따라서 불평등을 크게 느낄수록 정당성을 더 낮게 평가하지만, ‘정규직이 더 받는다’는 메시지는 유리한 집단(정규직)의 처지가 얼마나 좋은지에 초점을 맞추게 하여 불평등이 커 보이든 작아 보이든 정당성 평가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죠. 즉, 메시지는 의미상 똑같은 ‘사실’을 담고 있지만, 비교 대상의 역할에 따라 사람들이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정당성을 다르게 평가한 것입니다.

불평등 해소를 위한 우리의 노력

세계적으로 불평등이 점점 심화하고 있습니다. Oxfam의 조사에 따르면, 2016년 지구상 가장 부자인 8명이 전체 지구 인구의 가장 가난한 50%의 부를 합친 만큼의 부를 가진 것으로 추산합니다Hardoon, 2017. 그리고 이와 같은 커다란 경제적 불평등은 개인의 건강과 웰빙뿐 아니라 사회 통합과 경제 성장에도 해로운 영향을 준다고 하죠.

이처럼 불평등이 심화한 사회에서 정당성 지각 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정당성 지각 정도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의 경제적 불평등이 부당하다고 여기는 사람일수록 불평등 해소를 위한 세금 정책 등에 찬성할 확률이 높겠죠. 이뿐만 아니라 정당성 지각 관련 연구를 통해, 상황의 어떠한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가에 따라 불평등에 대한 정당성 평가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음을 인식하는 것 그 자체가 사회 갈등을 줄이고 갈등 당사자들 간 대화의 물꼬를 트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mind

    <참고문헌>

  • Bruckmuller, S., Reese, G., & Martiny, S. E. (2017). Is higher inequality less legitimate? Depends on how you frame it! British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56(4), 766-781.
  • Hardoon, D. (2017). An economy for the 99%. It’s time to build a human economy that benefits everyone, not just the privileged few. Oxfam Briefing Paper, January 2017. Retrieved from https:// www.oxfam.org/sites/www.oxfam.org/files/file_attachements/bp-economy-for-99-percent-180117-en.pdf
안정민 중앙대 심리학과 사회및문화심리 박사 수료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한국 사회를 꿈꾸며, 사회변화를 위한 개인의 태도 및 인식 변화와 실천에 관심이 있다. 중앙대학교에서 사회 및 문화심리학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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