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그램 실험과 조작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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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그램 실험과 조작된 연구
밀그램의 복종 실험은 역사상 매우 유명한 연구로 손꼽히고 있다. 하지만 연구절차가 의도된 결과를 유도하도록 연출되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권위에 복종하는 인간

밀그램의 복종 실험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심리학 연구이다. 1961년 이뤄진 실험으로,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기억과 학습에 관한 연구처럼 포장하고 지원자를 모집했다. 하지만 이 실험의 진짜 목적은 권위에 복종하는 인간의 모습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밀그램은 참가자 중 무려 65%가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에게 전압을 올려가며 거듭 전기충격을 가했다고 보고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밀그램의 실험결과는 평범한 사람이 권위에 복종하기위해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처럼 여겨진다. 당시 이 복종 실험은 홀로코스트와 독일 나치정권과 깊이 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사실, 밀그램은 그런 밀접한 연관성에 이끌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연구결과들을 크게 왜곡하여 전달한 것인지도 모른다.

밀그램(맨오른쪽)과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 예일대
밀그램(맨오른쪽)과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 ⓒ예일대

악의 평범성

스탠리 밀그램은 애초부터 나치학살에 착상을 얻어 연구를 고안했고 나치의 잔인한 행동을 설명하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었다. 그는 1963년 출간한 첫 논문의 서두에서 가스실을 언급했다. 밀그램은 12년 후 저서 『권위에의 복종』에서 복종실험과 나치학살과의 연계성을 심화하고 좀 더 명확하게 설명했다.

밀그램이 이 연구를 처음 출간한 당시는 악명 높은 나치 아돌프 아이히만이 재판받는 모습이 대중의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있을 때였다. 아이히만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체포돼 밀출국한 후 이스라엘 법정에 섰다. 당시 재판은 전례 없이 텔레비전으로 중계됐다. 홀로코스트가 별안간 미국인들의 거실에서 TV로 중계된 것이다. 살아있는 목격자들의 증언이 줄줄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아이히만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무표정하게 방탄유리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재판을 취재한 미국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 Arendt는 무섭도록 평범한 아이히만의 표정을 곱씹으며 ‘'악의 평범성'이라는 그 유명한 구절을 만들어냈다.

노예적 복종의 심리

밀그램은 아이히만 같은 나치관료와 복종 실험 참가자의 관련성을 강조했다. 밀그램의 실험결과는 평범한 사람도 권위자나 권력자가 명령하면 타인에게 고통을 가할 것이라는 가설을 입증하는 듯했다. 밀그램은 1974년 출간된 <권위에의 복종>에서 인간이 권위자의 의지에 복종해 자기 의지를 포기하고 대리인의 입장이 되는 메커니즘을 설명했다. 독일의 히틀러와 러시아의 스탈린을 따르던 부하들을 ‘'깊은 숙면상태에 비유한다면, 복종 실험 참가자는 ‘'가벼운 졸음상태에 불과하지만 둘의 메커니즘만큼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명령을 내리는 권위자에 동화되면서 대리인 상태인 중간지대로 들어가고, ‘자신의 본성에 반하는비인간적인 행위를 하면서도 사실상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밀그램이 묘사한 이런 좀비 같은 노예적 복종이 실제 그가 관찰한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복종실험의 통계적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지가 않다. 실험자의 명령에 복종해 전기충격기를 최대 전압까지 올린 피험자가 65%라는 표제만 보면, 밀그램의 연구가 한 가지 실험만으로 구성된 것처럼 오해하기 쉽다. 사실, 밀그램의 복종 실험은 미니 드라마 형식으로 총 24가지로 진행되었고 각각 다른 각본과 배우들로 각기 다른 실험환경에서 이뤄졌다.

밀그램의 24가지 다른 실험을 65%라는 한 가지 수치로 잘못 인용한 사례는 놀라울 정도로 많다. 65%라는 결과가 유명해진 것은 밀그램이 저널에 투고한 논문의 맨 처음에 인용된 실험이었기 때문인데, 이 실험에 참가한 피험자가 단 40명이라는 사실을 언급한 경우는 거의 없다. 예일대에서 진행된 이 실험의 원본기록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나는 총 24가지 실험 중 절반 이상에서 참가자의 60%가 권위자의 지시에 불복종하며 실험 진행을 거부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게다가 이 실험은 방법론적으로 문제가 있다. 밀그램이 엄격히 통제된 실험이라고 주장하는 이 연구는 실험조건에 변화가 생기거나 피실험자에 따라 즉석에서 각본이 바뀌는 등 변수가 많았다. 연구초안을 수정하는 시험단계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 있지만, 일단 연구가 시작된 이후에는 변수를 허용해서 안 된다. 각본과 달라도 너무 달라 복종실험의 원본녹음을 들어보니, 밀그램 연구의 실험자 존 윌리엄스가 피험자와 교류하는 과정에서 각본에서 크게 벗어나 실험을 진행한 것이 명백했다. 윌리엄스는 밀그램의 승인 하에서 갖가지 형태로 각본을 수정해 교사 역을 맡은 피험자들이 계속해서 전기충격을 가하도록 압박했다. 윌리엄스는 학생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처럼 실험실을 나갔다 들어온 후 학생이 무사하다며 교사를 안심시켰다.

, 실험방법에 기술된 표준 구두명령 4가지를 준수하지 않은 것은 물론 각본을 아예 포기한 경우도 많았으며 일부 교사에게는 전기충격을 지속하라는 명령을 25차례 이상 내렸다. 교사들은 학생과 역할을 바꾸겠다고 하거나 직접 학생의 상태를 확인하려고 했지만 모두 저지당했다. 이처럼 녹음원본을 들어보면, 우리가 밀그램 실험하면 떠올리는 권위에 대한 노예적 복종은 집단 괴롭힘이나 강압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를 유도하기 위한 무리한 연출

밀그램은 실험을 연출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데다 속임수를 알아차렸다는 피험자들의 주장마저 무시했다. 하지만 출간되지 않은 예일대 논문들에 따르면 밀그램 실험 참가자의 상당수가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미국에서는 캔디드 카메라라는 몰래카메라 TV 프로그램이 한창 인기를 끌고 있었다. 실험 이후에는 밀그램에게 편지를 쓰거나 전화를 걸어 의혹을 해명해달라는 피험자들도 나왔다. 일부는 학생들의 비명소리가 마치 녹음된 것처럼 실험실 구석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고 주장했다. , 학생들이 받은 수표가 구겨지고 헤진 것을 보고는 이미 여러 번 사용된 것이라며 의혹을 제기하는 피험자도 있었다.

실험자 윌리엄스는 학생 역을 맡은 배우들을 세심하게 배려하지 못했고 심지어 불만을 제기하는 배우들에게는 걱정할 필요 없다는 식의 안이한 태도로 응대했다. 일부 피험자는 실험자 모르게 낮은 전압의 스위치를 눌렀는데도 학생의 비명소리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연구의 유효성 입증에만 초점을 맞춘 채 실험환경을 조성했다는 이 같은 의혹은 밀그램의 실험결과가 함축하는 의미와 시사성의 논의에 가려져 번번이 무시됐다.

밀그램도 인정한 문제

밀그램이 저널에 투고한 첫 논문에 수록된 복종 실험은 출간 이래 50여 년 동안,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명령을 기다리는 나치강제수용소의 경비대가 있다."바뀌지 않는 심리학적 진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로서 끊임없이 인용돼왔다. 하지만 여러 심리학자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밀그램 실험의 녹음기록과 원본자료들은 연출된 혐의가 짙다. 

밀그램도 개인적으로는 복종 연구의 방법론적 취약성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실험의 유효성과 실험실 밖으로의 일반화가능성에 관한 문제들로 고심했다. , 사적으로는 자신의 연구가 과학보다는 예술에 가깝다고 반추하며 스스로 장래가 기대되는 시인이라 칭했다. 시인이든 과학자든, 밀그램은 시대의 당면 과제 해석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앞세워 연구효과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내용을 기획하고 구성하고 편집했다. 밀그램이 실험실에서 측정한 것이 권위에 대한 복종이 아니었을 수는 있을지언정 그의 연구결과는 우리에게 강한 교훈을 시사한다. 과학의 권위에 의문을 던지고 익히 아는 이야기일지라도 비판적 태도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mind

허성호 한국산업기술대 전임연구원 사회및문화심리 Ph.D.
중앙대 사회문화심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사회문제, 자원봉사, 정보문화, 성인교육, 빅데이터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최근 고령사회와 디지털 정보문화 연구에 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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