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컬레이터 왜 한 줄로 타세요?
상태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에스컬레이터 왜 한 줄로 타세요?
규범에는 강제적 규범과 기술적 규범이 있다. 이 둘이 충돌한다면 어떤 규범이 이길까? 에스컬레이터 '한 줄 서기'와 '두 줄 서기'의 충돌도 이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 한 줄 서기와 두 줄 서기

"잠시만요, 지나갈게요." 다급한 목소리에 에스컬레이터 왼 편에 서 있던 승객이 얼른 오른쪽으로 비켜선다. 본인은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민망한 상황이 된 것이 생각해보니 자못 못마땅하다. 때로는 에스컬레이터의 왼편에 서 있는 승객과 걸어 올라가려는 승객 간에 사소한 갈등이 벌어지기도 한다. 보통 걸어서 이동하려는 승객이 두 줄 서기를 하고 있는 승객에게 왜 길을 막냐며 탓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큰 소리와 삿대질이 동반되기도 하고, 어깨를 밀치고 가는 행동이 긴장감과 불쾌감을 고조시키기도 한다.

두 줄 서기와 한 줄 서기 간의 갈등은 각각의 입장을 지지하고 따르는 사람들 간의 대립으로서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다. 흥미롭게도, 에스컬레이터에서 한 줄로 서 있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두 줄 서기 규칙에 대해 알고 있지만 그에 따르지 않는(것으로 보인)다. 즉, 개개인의 마음 속에서도 '두 줄 서기를 해야 한다'는 규칙에 대한 인식과 '그래도 한 줄 서기를 해야 한다'는 또 다른 압력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이 현상은 '규범 간 갈등' 또는 '규범 간 충돌'로 이해할 수 있다.

규범을 정의하는 방식

규범을 정의하는 방식은 연구자마다 다양하다. 규범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행동 또는 하도록 허가된 행동’Cialdini et al., 1991으로 규정되기도, ‘(지키지 않을 경우에 받을) 처벌의 두려움이나 (지킬 경우에 받을) 보상의 가능성에 의해 강화되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행동에 대한 기대’Kerr et al., 1997로 정의되기도 하며, ‘어떤 사회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태도와 행동을 규제함으로써 이 집단을 다른 집단들로부터 구분하는 규칙들’Hogg & Reid, 2006로 정의되기도 한다. 구체적인 정의는 다르지만,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다. 먼저, 사회적 규범, 또는 집단 규범이란 그 사회 또는 집단에 속한 구성원들 간에 공유된 기대를 반영한다. 또한, 규범은 해당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행동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 마지막으로, 규범을 따르거나 따르지 않았을 때 기대되는 결과가 존재한다.

물론, 모든 규범이 법처럼 강력한 힘과 처벌 가능성을 동반하는 것이 아니기에, 규범을 어겼다고 해서 법을 어겼을 때처럼 항상 법적·제도적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규범을 어기는 행동은 그 규범을 지지하는 사람들로부터의 부정적인 반응이나 공격적 반응 등을 유발한다. 예를 들어, 화장실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 새치기를 한다면, 이 사람은 법에 의해 처벌 받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것이다. 영화관에서 영화 상영 중에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사람을 쫒아낼만한 법적 규제는 없으나, 적어도 그 사람을 향해 눈을 흘기거나, 헛기침을 하거나, 통화를 그만하라는 주의를 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기 시작한 것은 1890년대지만 지하철의 확산과 함께 일반화되었다. 영국 화가 허버트는 에스켈레이터의 풍경을 그린 더문 화가다. 허버트 아서 피니 Hubert Arthur Finney,  1905~1991. 에스컬레이터를 ):Underground commuters on an escalator, circa 1930Framed (ref: 6591)Gouache on paper.18.5 x 13.8 in. (47 x 35 cm)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기 시작한 것은 1890년대지만 지하철의 확산과 함께 일반화되었다. 영국 화가 허버트는 에스켈레이터의 풍경을 그린 더문 화가다. 허버트 아서 피니 Hubert Arthur Finney, 1905~1991. '에스컬레이터 위의 지하철 통근자들', 1930년경, 종이에 구아슈, 47 x 35 cm.

규범을 어기는 사람에게 가해지는 압력

실제로 규범이 존재하는 한 규범을 따르는 행동은 '옳은 행동', 규범을 어기는 행동은 '잘못된 행동'으로 인식되기 쉽다. 어떤 행동들은 특정 상황에서 집단 또는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공익을 지키는 기능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구성원들로 하여금 규범으로 규정되고 그에 따르도록 동의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규범을 어긴다면, 즉 새치기를 한다거나 다른 사람을 방해하는 행동을 한다면, 질서는 깨지게 되며 결과적으로 다수가 손해를 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규범을 어기는 이들에게 부정적인 반응을 하고 처벌함으로써 규범을 유지하려고 한다. 마찬가지로 다른 모든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의 오른편에 서 있는데 한 사람만 왼편에 서 있다면 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정적인 반응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다른 행동들에 비해 '에스컬레이터에서 줄 서기'에 대한 규범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한 줄 서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두 줄 서기'가 옳다고 믿는다. 이러한 모호함은 한 줄 서기 및 두 줄 서기 운동의 역사를 거쳐 형성되고 유지되어 왔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1990년 후반 한 시민단체의 주도로 대대적인 '에스컬레이터 한 줄 서기' 운동이 진행되었다. 당시에는 선진국으로 간주되는 많은 나라에서 이미 한 줄 서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인의 시민 의식을 보여주자'는 국가 수준의 몰입과 동기에 의해 사람들은 빠르고도 강하게 이 규범에 동조하였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도 이 과정에 기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서울메트로 등 지하철 운영기관들이 한 줄 서기 행동이 에스컬레이터의 한 쪽에만 무게를 집중시키기 때문에 잦은 고장의 원인이 된다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2007년 정부에 의해 '두 줄 서기'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영국의 한 연구에서는 '한 줄 서기를 하면 빠른 이동이 가능하다'는 사람들의 인식을 깨는 결과가 나타나기도 했고, 에스컬레이터에서 걷거나 뛰는 행동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라는 근거도 뒤따랐다. 그러나 한 줄 서기 규범에 빠르게 동조했던 것과 달리, 사람들은 두 줄 서기 규범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동에서의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에서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 사고를 분석한 결과 한 줄 서기가 원인이 된 경우는 정부의 주장과는 다르게 많지 않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두 줄 서기’ 캠페인의 실효성에 대한 논쟁에 불이 붙었다. 결국 2015년 9월, 정부는 공식적으로 ‘두 줄 서기’ 캠페인을 중단하고, 대신 에스컬레이터에서 걷거나 뛰지 말라는 안전 수칙만 강조하기로 방향을 수정하였다. 하지만 이 안전 수칙에 따르자면 한 줄 서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여전히 무엇이 옳은 행동인가에 대한 합의가 일어나기 어려운 상태이다.

‘한 줄 서기’와 ‘두 줄 서기’에 대한 흥미로운 여론 조사 결과가 있다. 2015년 6월에 여론조사 전문기관(리얼미터)에 의해 실시된 이 조사에 따르면, 500명의 참가자 중 한 줄 서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57.7%, 두 줄 서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42.3%였다. 그러나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물어보았을 때, 두 줄 서기를 하고 있다고 답변한 사람들은 34.5%로, 두 줄 서기를 선호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실제로는 한 줄 서기를 따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줄 서기를 하는 응답자들이 두 줄 서기 캠페인에 동참하지 않는 이유로는 1위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 것 같아서(69.2%), 2위 이동 시간 단축을 위해(14.4%), 3위 대부분 한 줄 서기를 해서(8.3%)였다. 즉, 실제로 본인에게 이득이 된다고 생각해서 한 줄 서기를 하는 사람들은 15% 정도에 불과했으며, 80%에 가까운 응답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서 행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제적 규범과 기술적 규범

‘두 줄로 서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줄로 서는 행동을 하기' 때문에 대다수 사람들의 행동에 따라야 한다는 압력을 느끼는 이 현상은 앞서 거론한 ‘규범 간 갈등’ 또는 ‘규범 간 충돌’의 예시로 볼 수 있다. 규범을 연구한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시알디니Robert Cialdini는 규범을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먼저 강제적 규범Injunctive norm은 이러이러한 행동을 해야 한다, 또는 이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와 같이 바람직하거나 그렇지 않은 행동을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규범이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에서는 '자신보다 손윗사람에게 존댓말을 해야 한다'는 강제적 규범이나,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할 만한 이야기는 그것이 도움이 되는 것이라도 직설적으로 이야기해서는 안된다'는 강제적 규범이 있다.

또 다른 유형은 기술적 규범Descriptive norm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는 전형적인 행동을 규정하는 규범이다. 이 때의 '대다수의 사람들'이란 전 인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 사회, 집단, 사회적 상황 등 다양한 사회적 맥락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에서는 대부분의 사원들이 캐주얼한 옷을 입는다면 '출근 시 캐주얼한 옷을 입는' 행동은 이 회사의 기술적 규범으로 볼 수 있다.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다른 사람들이 모두 오른쪽을 향해 서있다면, 적어도 이 순간 이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앞이 아닌 ‘옆을 보고 서는 행동’이 기술적 규범으로 인식될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의 예시로 다시 돌아가자면, ‘두 줄 서기’는 강제적 규범이지만, ‘한 줄 서기’는 기술적 규범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같은 행동에 대한 강제적 규범과 기술적 규범이 서로 충돌할 때, 사람들은 어떤 규범을 따르게 될까? 이와 같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 시알디니 박사는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여러 편의 연구를 진행했다Cialdini, Reno, Kallgren, 1990. 그 중 하나의 연구를 간단히 소개해 보겠다. 연구의 참가자가 될 대상을 결정한 후, 연구를 돕기로 한 연구 협조자가 참가자의 앞을 지나가며 한 조건에서는 들고 있던 종이를 길에 버렸고, 다른 조건에서는 종이를 버리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 또 다른 한 가지 조작으로, 어떤 조건에서는 연구 참가자가 지나갈 길 주변을 깨끗하게 치워 두었고, 다른 조건에서는 길가에 쓰레기를 잔뜩 쌓아 두었다. 이후 참가자가 길에 쓰레기를 무단 투기 하는지 관찰한 결과, 주변이 깨끗한 조건에서보다 쓰레기가 많은 조건에서 더 많은 참가자들이 무단 투기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러한 행동의 차이는 연구 협조자가 그냥 지나친 조건보다 앞에서 쓰레기를 무단 투기한 조건에서 더 크게 나타났다 (아래 그래프 참고).

이 장면에서의 강제적 규범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면 안된다’이다. 동시에, 주변이 깨끗하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단 투기를 하지 않는다’는 기술적 규범을 반영하는 반면, 주변에 버려진 쓰레기가 많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단 투기를 한다’는 기술적 규범을 나타낸다. 결국, 모든 조건에서 강제적 규범은 동일하지만, 쓰레기가 버려진 환경에서는 강제적 규범과 충돌하는 기술적 규범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즉, 무단 투기를 하면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무단 투기를 한다), 기술적 규범을 따라 쓰레기를 더 쉽게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연구 협조자가 앞에서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고 지나가는 경우에 비해 길에 쓰레기를 버리는 경우, 참가자는 협조자의 행동, 나아가서는 협조자가 쓰레기를 버리고 있는 주변 환경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며, 주변에 존재하는 기술적 규범을 더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더 강하게 영향을 받는다. 여러 편의 연구들을 통해, 시알디니 박사는 사람들이 어떤 규범을 따라 행동하는가는 그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떤 규범에 더 초점을 맞추는지에 달려있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초점을 맞춘 상황으로부터 파악한 기술적 규범을 따르게 되기 마련이고, 반대로 강제적 규범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그 순간에는 강제적 규범을 따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에스컬레이터, 왜 한 줄로 서고 계세요?

에스컬레이터 장면으로 다시 돌아와서, 사람들은 ‘두 줄 서기’의 강제적 규범에 대해 알고 있는 경우에도 ‘한 줄 서기’의 기술적 규범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시알디니 박사의 주장이 맞다면, 적어도 이 장면에서는 강제적 규범보다 기술적 규범이 더 사람들의 주의를 쉽게 끌기 때문일 것이다. 안전 문제나 캠페인 같은 추상적이고 멀게 느껴지는 메시지보다는 당장 내 눈 앞에 한 줄로 서 있는 사람들이 우리의 주의를 이끌기 쉬우며, 두 줄 서기 규범을 어겼을 경우의 문제보다 한 줄 서기 규범을 어겼을 경우의 문제(예를 들면,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인 반응)가 더 즉각적이고 강렬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다면 두 줄 서기 규범은 영원히 한 줄 서기 규범을 이기지 못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한 단서는 강제적 규범이 아닌 기술적 규범으로부터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시알디니 박사의 연구에서 나타났듯이 상황에 따라 사람들이 인식하는 기술적 규범은 달라질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한 줄 서기를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한두 명이 아닌 여러 사람이 두 줄 서기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도 있다 (백화점 에스컬레이터의 경우 더 자주 발견된다). 후자의 상황에서는 두 줄 서기가 기술적 규범으로 지각될 수 있으며, 용무가 아주 바쁜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두 줄로 서 있는 사람들을 헤치고 걸어 올라갈 필요성이나 압력을 덜 느끼게 되어 두 줄 서기 규범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 있다. ‘한 줄 서기’와 ‘두 줄 서기’ 간의 갈등과 혼란은 쉽게 종식될 것 같지 않지만, 적어도 사회적 규범이 줄 서기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한다면 더 효과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의 행동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mind

권영미 성균관대 심리학과 초빙교수 사회심리 Ph.D
따뜻한 시각과 냉철한 사고를 갖춘 심리학자로 살아가기 위해 고심 중이다. 성균관대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후 미국 Washington State University에서 사회심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성균관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