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처마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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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처마의 비밀
  • 2019.09.19 14:23
부석사 무량수전은 배흘림 기둥만큼이나 날렵한 처마로 유명하다.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은 "춤추는 듯한 처마"로 표현했다. 왜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지상현 교수가 그 비밀을 알려준다.

곡선과 관계의존적 성향

우리 옛 건축 추녀선의 곡률을 측정하려던 처음 목적은 인롱 장Yinlong Zhang이라는 중국계 미국심리학자의 주장대로 미술의 곡선성이 관계의존적dependent self-construal 성향과 정말 관련이 있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인롱장은 액자와 기업의 심볼마크를 곡선적인 것과 직선적인 것으로 구분한 후 각 그룹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와 관계의존성을 분석했다. 결과는 곡선적인 형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동양인이었고 관계의존성이 높았단다.

한중일을 비교해보면 중국 미술에서는 곡선적인 양식이 넘쳐난다. 한국도 완만한 곡선이 많은 편이다. 반면 일본은 직선적이다. 인롱장의 예측이 맞는지 관계의존성의 측대로 삼을만한 홉스테드의 집단주의지표를 보면 중국의 집단주의는 극단적으로 높고 그 뒤를 바짝 우리가 따른다. 일본은 100여 조사대상국 가운데 중간인 50위정도 된다. 삼국 간의 집단주의 순위는 납득이 가지만 조사대상국 전체 순위를 보면 우리미술의 곡선성이 중국의 바로 뒤를 이을 정도로 강하지는 않다는 점이 의문이다.

문묘대성전

중국 건축의 추녀 

곡선성의 차이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미술분야는 삼국의 건축, 그 가운데에서도 추녀다. 한중일 삼국 추녀선의 곡선성은 따로 측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그림은 강소에 있는 문묘대성전文廟大成殿은 문묘(공자를 모시는 집)내에 있는 중심건물이다. 이 정도 추녀 곡선은 중국 건물에서는 완만한 편에 속한다. 사천성, 상해 같은 곳은 이 보다 더 극단적으로 휘어 올라간다.

자공서진회관무성궁대문

오른쪽에 있는 것이 사천성에 있는 자공서진회관무성궁대문自貢西秦會館武聖宮大門의 추녀는 극단적으로 휘어 올라간 사례다. 물론 북경의 자금성과 같이 춥고 건조한 북서부나 북동부 지역의 추녀는 직선적이지만 중국에는 남루북릉南樓北陵이라 하여 남쪽의 누각이 자신들의 대표양식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크게 보면 기후가 온화하고 수량이 풍부한 남쪽의 화하華夏문화권은 건물은 추녀 뿐만 아니라 건물 곳곳에 곡선성을 더해 놓았다. 예컨대 상해 예원豫園에 있는 천운용장天雲龍墻은 구름을 타고 날아가는 용의 구불구불한 모습을 살린 담장이다.

상해 예원의 천운용장

이렇게 한 눈에 한중일 추녀선의 곡률 차이를 알 수 있지만 또 다른 차이가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추녀선의 곡선을 CAD에서 미분했다. 중국의 추녀는 건물마다 워낙 차이가 크지만 직관적으로 알 수 있듯이 전반적으로 전체 처마길이가 100이라 할 때 R=50 미만인 경우가 허다하다. 처마 전체길이의 절반도 않되는 직경의 원을 그리며 올라가는 정도다.

한국 건축의 처마 곡률

창경궁 명정전 처마 곡률

우리는 이에 비해 상당히 완만하다. 창경궁 명정전과 부석사 무량수전을 분석했는데 명정전의 처마 곡률은 건물의 정면부분에서는 R=900.45이고 중간 부분은 R=848.48로 큰 변화가 없다. 이 정도 오차는 시공 오차거나 세월에 따른 자연 변화분에 속한다. 말단 부분에서는 R=607.68로 곡률의 변화가 조금 커진다. 이는 우리 건축 추녀선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인데 추녀 끝으로 가며 날렵한 느낌을 주기 위해 조금 더 곡률을 가파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를 그림으로 비유한 것이 아래다.

창경국 명전전 (국보 제266호)
창경국 명전전 (국보 제266호)

명정전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한성의 5대 궁궐이 모두 불에 탄 후 광해군 때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른다. 궁궐의 정전으로는 작은 편이고 단층이지만 지붕 밑 공포 구조에 짜임새가 있고 단정한 느낌을 준다. 아마도 추녀선의 곡률변화가 작은 것이 이런 느낌에 한 몫을 했을 것이다.

배흘림 기둥과 춤추는 처마

부석사 무량수전 처마 곡률

무량수전은 두 가지로 유명하다. 하나는 배흘림기둥이다. 배흘림이라는 말은 문학도였던 최순우 선생의 책 제목으로도 유명한데 기둥 중간이 조금 불룩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기둥을 말한다. 다른 하나는 “춤추는 듯한 처마”다. 날렵하게 하늘로 치고 올라가는 추녀의 경쾌함을 상찬한 표현이다. 이 경쾌함의 비밀이 곡률분석을 통해 드러난 것 같다. 무량수전의 곡률은 R=1200 정도에서 시작하지만 추녀 끝부분에 이르면 R=99 정도로 급격하게 휘어 올라간다. 명정전과는 매우 다르다.

부석사 무량수전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제18호)

쉽게 말해 완만하게 흐르다가 홈 플레이트 부근에서 급격하게 휘는 변화구 투수의 공을 닮았다. 그러니 그 휘임이 이전의 완만함과 대비를 이루어 강조되어 보이는 것이다. 춤추는 처마라는 평가가 ‘묻지마 식’ 상찬이 아니라 그럴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우리 건축을 전반적으로 보면 무량수전 정도는 아니지만 명정전 보다는 곡률의 변화가 좀 더 크다. 그래서 날렵한 인상을 주는 건축이 많다.

한국 처마가 역동적인 이유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한중일 추녀 곡률의 차이를 측정해서 얻은 소득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 추녀들에는 서로 다른 2개 이상의 곡률이 의도적으로 사용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명정전은 이 점이 분명하지 않지만 용도가 대비전大妃殿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곡률의 변화를 적게 해 정숙하고 진중한 느낌을 의도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직 명정전과 무량수전의 곡률만 측정한 상태라 섣부른 예단일 수 없지만 중국보다 매우 완만한 추녀선을 사용한 대신 추녀 끝에서 가파른 곡률을 사용해 역동성을 살렸던 것 같다. 물론 중국의 추녀선에서도 여러 개의 곡률이 측정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우연수 준으로 보이고 워낙 가파르게 올라가는 추녀라 다른 곡률을 함께 사용한다는 것이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많은 조선시대 건축의 추녀들이 조지훈이 노래한 날렵한 외씨버선의 곡선을 닮았나 보다. mind

 

지상현 한성대 융복합디자인학부 교수 지각심리 Ph.D.
홍익대 미술대학과 연세대 대학원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회화양식style이 결정하는 감성적 효과에 관한 주제로 학위 논문을 썼다. 현재는 한중일의 문화를 교차비교하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삼국 미술양식의 차이를 규명하고 이 차이를 결정하는 감성적 기질의 차이를 추정하는 일이다. 관련 저서로는 <한국인의 마음>(사회평론)과 <한중일의 미의식>(아트북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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