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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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내가 나의 손목을 칼로 긋는다. 생각만해도 끔찍한 일이지만, 자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왜 스스로에게 고통을 줄까?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임상심리학자가 말해주는 자해 행위에 대해 알아보자.

신체를 통한 행동화

자해나 자살만큼 행동화acting out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형태도 없다. 이 행동화가 타인을 향한 것이 아닌 자신의 신체를 향한 것이라 참 애절하고 고통스럽다. 지난 10년간 OECD 국가들 중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세계 1,2위를 다툰다는 기사가 끊임없이 쏟아져 왔고, SNS를 중심으로 청소년들의 자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소식도 최근 꽤 자주 듣는 편이다. 그리고 잠시 생각해본다. 심리학자로서 나는 이들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자살과 자해를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뭐라고 이야기할지? 마침 Relating to Self-harm and Suicide 라는 최근에 읽은 책 일부의 내용에 기반하여 나는 이렇게 답하려고 한다Briggs et al., 2009. '고통스러운 내면을 자신의 신체로 행동화하는 사람들.' 이 문장에 포함된 단어들을 중심으로 자살과 자해를 이해해보려고 한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는 자해한 모습을 남긴 유일한 화가다. 그는 자신의 귀를 자른 지 한달만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을 남겼다. 1889년 1월의 일이다. 캔버스 유화, 60.5× 50 cm, 1889, 영국 코토울드미술관 소장. 

자살과 자해

최근 비자살적 자해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많은 자료들에서는 비자살적 자해를 자살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의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쉽게 말하면 죽을 의도가 있었냐 없었냐가 중요한 기준이다. 비자살적 자해에 대해 널리 인용되는 정의는 '죽고자 하는 의도없이 직접적이고 고의적으로 신체에 해를 가하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연구나 평가를 한다면 이 둘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유형이 어떻게 다른지에 집중하겠지만, 자살이든 비자살적 자해이든 이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입장에서는 이들을 구분하는 것이 그리 중요한가 싶다.

그렇다면 이들이 공유하는 유사점은 무엇일까? '자신의 신체를 통해 뭔가를 행동화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두가지가 궁금하다. 첫째, 그 뭔가가 무엇인지 하는 점이다. 둘째, 왜 자신의 신체를 통해서만 그 뭔가를 해결하는지가 의아했다. 신체를 통해 행동화를 하는 것은 다른 장애와 구분되는 특징일 것이다. 그 뭔가를 찾기 위해 여러 문헌들과 자해를 하는 청소년들이 블로그에 남긴 대화들을 하나씩 읽어본다. 지금까지 파악한 그 뭔가에 해당하는 핵심내용은 단연코 '고통스러움'이었다. 그것은 과거와 (또는 최근과) 연관된 부정적 기억, 감정 또는 그와 연관된 생각들이었다. 또는 주변의 환경을 탓하는 내용도 섞여 있었다. 이들이 표현하고 행동화하려는 건 어쨌든 고통스러운 무언가라는거다. 그리고 그 고통스러운 정도가 통제하고 조절할 수 없는 시점에서 자살이든 자해가 일어난다는 거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

자해하고 자살시도 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목표는 자해나 자살시도 행동이 아닌 그들의 마음속에 이글거리는, 더 이상 한 몸 안에서 공존하기 힘든 고통스러운 무언가에 대한 처벌이다. 고통스러운 무언가를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기를, 물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남긴 블로그 내용을 보면 대체로 자신의 행동을 눈에 띄지 않게 숨기려고 한다. 왜 숨기려고 하는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블로그로 숨어버린 이들이 남긴 글들을 정리해보면 이랬다. 고통스러운 무언가가 내 안에 있고, 누군가가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첫째, 이야기를 했을 때 고통스러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행동에 대한 비난으로 끝나기 때문에. 두번째, 고통스러움에 대한 이해도 실질적인 도움도 아닌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해없이 무조건 하지말라고만 이야기하기 때문에. 셋째, 상대(주로 가족)가 스스로 처한 상황에 너무 힘들어하여 내가 이야기하면 상대가 더 고통스러워하며 무너질까 걱정되어 내 얘기는 할 수 조차 없기 때문에.

자해하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진심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는 그런 의도나 행동을 표현했을 때 그리고 그것이 드러 났을때 문제가 있는 것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일단 문제라고 생각하기 전에 최소한 위 세가지를 기억하고 꾸욱 참았다가 물어보자. “네 마음속에 뭔가가 참 궁금하다”고. 

나와 또 다른 나: 정신과 신체의 대치

이들은 왜 자신의 신체에 해가 되는 일을 할까? 블로그에서 이런 비슷한 글들이 자주 눈에 뛴다. 영어로 표현하는 것이 좀 더 잘 전달될 거 같아 영어로 남기는 것에 양해를 구한다.

I am already such a disappointment as a child.

Existence is pain. I hate myself.

I punish myself.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과 혐오감이 결국 자기 처벌로 이어지고, 자기 처벌의 대상은 바로 자기 신체라고 해석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신체에 남겨진 상처들은 바로 못나고 처벌받아 마땅한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해와 자살이 약간 다른 기제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앞에서 자살과 자해를 구분하는 정의 중 하나가 죽으려는 의도가 있느냐 없느냐라고 언급했다. 자해를 하는 사람들은 자해 블로그에서도 관찰할 수 있듯이, 살고자 하는 소망이 강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타인에게 또는 자신에게 전달되는 스스로의 모습이 너무 못나고 실망스럽고 혐오스러워 또다른 나로 표현되는 나의 신체 일부에 해를 가하게 되고, 그런 행동을 보며 일시적으로 나의 정신세계는 살아 남았다는 것에 순간 안도감을 느낀다. 그렇다면 자살자는 정신과 신체를 모두 포기하는 형태로 표현될 것이다.

그 처절한 마음을 안아주자

자해와 자살시도를 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걱정을 불러일으키고, 본인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비춰질 것이다. 만약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까지 찍히면서까지 부모님 그리고 주변의 관심과 바꾸는 아이나 청소년이 있다면 그 심정도 참 처절할 것이라고 이해하고 그들을 따뜻하게 안아 주어야 한다. mind

    <참고문헌>

  • Briggs, S., Lemma, A., & Crouch, W. (Eds.). (2009). Relating to self-harm and suicide: Psychoanalytic perspectives on practice, theory and prevention. Routledge.
이종선 강원대 심리학과 교수 임상심리 Ph.D.
임상심리학자로 강원대 심리학과에 재직중이다. 영국 King’s College London, Institute of Psychiatry, Psychology & Neuroscience에서 컴퓨터 기반 인지편향수정 프로그램 효과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우울, 불안 및 외상 관련 실험 기반 심리치료 프로그램의 효과 검증 연구를 진행중이다. 한국임상심리학회 편집이사,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총무이사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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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2019-10-10 05:07:12
술술 읽히고 이해가 잘됐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