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유발한 신체적 고통과 정서 조절
꽤 오래 전이지만, 반듯한 이미지로 사랑받는 배우 차인표 씨가 한 드라마에서 선보였던 일명 '분노의 양치질'이 많은 사람을 웃게 했던 적이 있다. 이 양치질 장면을 보고 있으면 내 잇몸도 시큰거리는 것만 같은 고통이 느껴지지만, 그렇게라도 감정을 다스리고 싶은 심경이 충분히 이해되기도 한다. 꼭 양치질이 아니더라도, 실수가 후회될 때 스스로 머리를 가볍게 때린다거나, 화가 날 때 주먹이 아프도록 샌드백을 때리거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격한 운동을 하는 식으로 마음을 다스리려고 했던 적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최근 Emotion에 발표된 연구Doukas et al., 2019에서는 스스로 유발한 신체적 고통self-inflicted pain이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일명 ‘정서 조절emotion regulation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정서 조절에 대한 심리학 연구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지만, 대부분은 긍정적인 측면으로 관심을 돌리거나 부정적 감정을 재해석하는 인지적 조절 방법에 초점을 둔다. 신체적 고통을 이용한 정서 조절은 자해나 경계선 성격장애와 같은 정신 건강 문제와 관련되어 부정적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Doukas 등의 연구에 따르면,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도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신체적 고통을 이용한 정서 조절 전략을 드물지 않게 사용하며, 실제로 이런 방법이 인지적 정서 조절만큼 효과적일 수 있다.
연구자들은 60명의 연구참가자들에게 부정적 감정을 유발하는 사진들을 보여준 뒤 다음 네 가지 정서 조절 전략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 회피 (사진과 관련 없는 다른 생각하기)
- 재해석 (부정적 감정을 덜 느끼는 방향으로 사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기)
- 통증 유발 (통증을 유발하는 강한 전기 자극을 받으면서 그 감각에 집중하기)
- 감각 유발 (통증을 유발하지 않는 수준의 약한 전기 자극 받으면서 그 감각에 집중하기)
'분노의 양치질'이 주는 위로
놀랍게도 참가자들의 67.5%가 총 16번의 시행 중 적어도 한 번(평균 2.25회)은 통증 유발 전략을 선택했다. 정서 조절 이후 부정적 감정의 정도를 비교했을 때, 통증 유발은 감각 유발이나 회피와 비슷한 정도로 정서 조절 효과가 있었고, 재해석보다 더 효과적이었다. 정서 조절 전략을 참가자들이 직접 선택하지 않고 컴퓨터가 무작위로 정해주도록 한 조건에서도 통증 유발이 재해석보다 더 효과적이었고, 나머지 두 전략과 비슷한 효과를 나타냈다.
연구자들은 종교적 고행이나 동양 의학의 예를 들어, 실제로 통증이 신체 감각으로 주의를 돌려서 부정 정서 경험을 방해하거나 내인성 오피오이드endogenous opioids를 생성하여 부정 정서를 감소시킬 수 것이라고 제안한다. 건강한 수준에서 사용된다면 스스로 고통을 유발하는 정서 조절 전략을 꼭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그 효용성을 앞으로 더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분노의 양치질’이 잇몸 건강에는 좋지 않을 수 있겠지만, 정신 건강에는 약간의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mind
<참고문헌>
- Doukas, A. M., D'Andrea, W. M., Gregory, W. E., Joachim, B., Lee, K. A., Robinson, G., ... & Siegle, G. J. (2019). Hurts so good: Pain as an emotion regulation strategy. Emo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