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냐? 나는 안 아프다: 지도학생은 아픈데 지도교수는 안 아픈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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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냐? 나는 안 아프다: 지도학생은 아픈데 지도교수는 안 아픈 이유
  • 2019.10.10 12:53
공감 부족이 아니다. 갑질은 더욱 아니다. 이것은 건강에 관한 이야기이다. 엄밀히 말해 몸과 마음의 이야기다. 왜 몸이 아픈지, 누구는 아픈데 왜 누구는 안 아픈지.. 힘들다고 바쁘다고 다 아픈가? 아니다. 힘들고 바쁜 건 디폴트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나쁠 때 우리 몸은 아프다. 그리고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때 우리의 몸은 또 아프다. 심지어 그렇게 생각만 해도 말이다.

대학원 연구미팅 전날이다. 미팅에 참석하는 사람은 지도교수와 지도학생이다. 지도교수인 나는 미팅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몇몇 학생들의 연락을 받는다. 순서가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학생들은 돌아가며 사정이 있다. 그 중 많은 이유가 몸이 아프다는 것이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쉬라고 한다. 몸 아픈 것에 어디 예고가 있는가. 그런데 가만히 보면 나는 몸이 아파서 대학원생들과의 미팅 약속을 바꾸었던 경우가 거의 없다. 왜 그런 것일까?

대학원생의 비애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들은 청구논문이 통과되기 전까지 끊임 없이 자잘하게 몸이 아프다. 의자에 오래 앉아 있다 보니 근골격계 질환(모든 사무직들의 비애)은 만성적으로 겪을 수 있다지만 위염이나 장염 등등 다양한 증상들을 자주 보이고 병원에 들락거린다. 건강염려증은 아닌데... 그리고 감기에 자주 걸린다. 입학할 때의 발랄함은 어느 새 사라지고 학생들은 점점 진중해진다. 그러다 졸업을 한 뒤, 학생들을 어쩌다 만나면 몰라볼 정도로 이뻐져 있고 건강해져 있다. 내가 너무 괴롭혔나?

예전에 이런 말이 떠돌았다. 박사학위를 받는 사람은 둘 중 하나를 잃는다고. 눈을 잃거나 머리카락을 잃거나. 무시무시한 말이다. 즉 시력이 급격히 떨어지거나 탈모 또는 새치가 생긴다는 것이다. 나는 새치가 생긴 쪽이다. 요즘 대학생들 표현으로 '공강보다 소중한 모발에 팀플보다 무섭다는 탈모'가 온다는 것 얼마나 끔찍한 것인가? 내가 아는 박사님들 중에는 원형탈모, 대상포진 등을 앓았다는 분들, 최종심사 후에야 자궁에 혹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는 분도 있다. 박사학위가 뭐길래?

통제권, 그것이 누구에게 있나

위 사례는 모두 대학원에서 관찰된 것이지만 이것은 내가 속해 있는 곳이 대학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 뿐 어느 조직에서든 비슷하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즉 직원은 아픈데 사장님은 안 아프다 등으로 응용이 가능하다. 이와 같은 사례들에서 실마리가 되는 것은 바로 '통제권이 있느냐, 누구에게 통제권이 있느냐'는 것이다.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소위 힘을 가졌다는것이다. 자신에 대한 통제권(또는 통제력)이 아닌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대방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것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지도학생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크다. 갑질을 한다는 것이 아니다. 지도교수인 나는 연구미팅에서 평가대상이 아니다. 발표를 하고 평가를 받고 그 과정에서 피드백이라는 이름으로 지적을 당하는 사람은 지도학생들이다. 게다가 나는 바쁜 일이 생기면 연구미팅을 미룰 수도 있다. 심지어 아프면 취소할 수도 있다. 그래서 연구미팅때 내가 아팠던 기억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다. 무언가에 적당한 통제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은 우리를 기운나게 한다. 무언가에 어떠한 통제력도 끼칠 수 없다는 것은 우리의 기운을 떨어트린다. 즉 통제권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스트레스가 되어 그 유명한 '스트레스 매커니즘'1을 통해 몸을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리학 연구에서도 자신과 환경에 대해 통제감sense of mastery/perceived control이 낮은 사람일수록 심리적 고통이 높고Dalgard et al., 2007 대사증후군의 위험이 높아지며Paquet et al., 2010 자신의 전반적인 건강이 나쁘다고 보고하였다는 점으로 볼 때Gillebaart & De Ridder, 2019, 통제감/통제권 없음이 우리의 정신은 물론 육체의 고통/병과 관련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적으로 통제권을 가지거나 가지지 못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떤 일에서, 어떤 관계에서 또 인생의 특정 기간 동안 우리는 통제권이 적은 때를 맞이한다. 간혹 실제로는 통제 가능한 것이었는데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런데 통제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그 생각만으로도 기운이 빠지고 몸이 아프다.

갑질을 하지 않아도 갑은 갑이기에

최근 갑질에 관한 법(정확한 명칭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되었다. 갑질교수라는 말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나는 갑질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나는 지도학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갑의 위치에 있다. 그래서 갑질을 하지 않아도 갑이다. 그래서 갑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고 그에 대해 통제권이 없다고 느끼는 지도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자주 더 몸이 아플 수 있다. 내가 갑질 하지 않아도 갑이라는 것을 1년에 몇 번씩 확인한다. 바로 대학원생들의 청구학위논문에 최종 사인을 할 때이다. 그 사인을 받을 때까지, 받기 위해서 그들은 얼마나 몸과 마음의 아픔을 견뎌 왔던 것일까?

귀스타브 카유보트 Gustave Caillebotte 1848–1894.’The Nap’, 1877, 종이위에 파스텔. 36 ×53 cm. Wadsworth Atheneum Museum of Art 소장.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 상태는 이런 것이 아닐까? 프랑스 초기 인상주의 화가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작품 '낮잠'이다. Gustave Caillebotte (1848~1894), ’The Nap’, 1877, Pastel on Paper, 36 ×53 cm. Wadsworth Atheneum Museum of Art, USA. 

갑질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가 갑이 되며 한시적이기는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는 지도교수 즉, 이른바 윗사람의 자리에 있는 나로서는 자칫 갑질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통제권을 너무 남용하여 지도학생을 자주 몸아프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가끔씩은 생각해 볼 일이다. 끝으로 나의 많은 지도학생들을 아프게 만든 것에 대해 굳이 변명을 하자면, ' 나는 갑질하지 않습니다. 다만 갑의 위치에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항상 경계하겠습니다. 그리고 나도 아픕니다. 마음은' mind

1 '스트레스 매커니즘'은 HPA축을 따라 작동된다. 스트레스 사건의 발생을 뇌의 시상하부Hypothalamus가 감지하면 시상하부와 딱 달라붙어 있는 뇌하수체Pituatary에 신호가 전달되어 최종적으로 부신Adrenal 피질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이라고 알려진 코티졸이 분비된다. 코티졸은 우리 몸의 다양한 기관들을 일하게 만들어 재빨리 이 위기사항 즉, 스트레스 상황에 대처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 고리가 자주 반복적으로 작동되면 우리 몸에 무리가 와서 급기야 몸이 병들게 된다.

   <참고문헌>

  • Dalgard, O. S., Mykletun, A., Rognerud, M., Johansen, R., & Zahl, P. H. (2007). Education, sense of mastery and mental health: Results from a nation wide health monitoring study in Norway. BMC Psychiatry, 7, 20.
  • Paquet, C., Dubet, L., Gauvin, L., Kesterns, Y., & Danial, M. (2010). Sense of mastery and metabolic risk: Moderating role of the local fast-food environment. Psychosomatic Medicine, 72, 324-331.
  • Gillebaart, M. & De Ridder, D. T. D. (2019). Distinguishing between self-control and perceived control over the environment to understand distinguished neighbourhood health and lifestyle outcomes. Psychology & Health, DOI: 10.1080/08870446.2019.1591409.
김근향 대구대 심리학과 교수 임상심리 Ph.D.
너무 어린 나이에 멋모르고 꿈을 심리학자로 정해버려 별다른 의심 없이 그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 그 여정에서 다시 태어나면 꼭 눈에 보이는 일을 해 봐야지 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의 심리학 대세론에 선견지명이 있었다며 스스로 뿌듯해 하며 또다시 새로운 꿈을 꾸어 본다. 마음 통하는 사람들과 생생한 삶 속에서 심리학의 즐거움과 재미를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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