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양은 한정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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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양은 한정되어 있을까?
  • 2019.10.17 08:59
평가방식에 따라 주관적 행복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절대평가와 상대평가 가운데 어떤 방식에서 사람들은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행복의 양을 한정지어 생각한다면 또 어떻게 달라질까?

민족사관고등학교 심리학 수업

민족사관고등학교에는 학년이나 목표로 하는 대학, 전공과 관계 없이 학생들이 함께 들을 수 있는 수업이 있다. 주로 선택과목들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심리학도 그 중 하나였다. 이렇게 다양한 학생들이 함께 듣는 수업에서는 특히 국내 대학을 목표 하는 '국내반' 학생들과 해외 대학을 목표로 하는 '국제반' 학생들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선진국의 교육'을 떠올릴 때 일방적인 내용전달이 아닌 토론식 수업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국내 대학을 목표로 하는 아이들과 해외 대학을 목표로 하는 아이들을 같이 지켜보았을 때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성적을 매기는 방식으로 인한 것이었다. 같은 수업을 들으며 같은 내용을 공부하고 같은 시험을 보았을지라도 '국제반'의 아이들의 성적은 절대평가 방식으로 주어지는 반면, 국내 대학을 희망하는 아이들에게 성적은 등급이 주어지는 상대평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평가방식의 차이

대학에 가려면 희망하는 곳의 교육제도와 평가방식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사실 상대평가의 문제가 거론되는 것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상대평가라는 제도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이보다는 입시제도와 관련된 문제들(가령 학생부종합전형은 폐지되어야 하는가)이나 과도한 사교육이 오랜 기간 교육과 관련된 뜨거운 감자였다. 

하지만 아이들이 성적에 반응하는 서로 다른 모습을 보다 생생하게 지켜보니 평가제도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음을 느꼈다. 한 예로, 긍정심리학 수업에서 학생 한 명이 했던 농담이 떠오른다. 수업에서는 상대방의 좋은 소식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행복 수준이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학생들에게 예를 들어 '나 수학 퀴즈에서 만점 받았어!' 혹은 '나 좋아하던 친구에게서 고백 받았어!'와 같은 룸메이트의 좋은 소식에 자신은 어떻게 반응할 것 같은지, 내 주변 사람들은 주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물어보던 참이었다.

이 때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말했다. "제가 국제반과 국내반으로 나눠서 사람들의 반응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국제반의 경우, "오 그래? 참 잘됐다! 어떻게 고백받았어?"와 같은 반응이 예상되고요, 국내반의 경우에는 "조용히 좀 해 줄래? 내일 퀴즈 있거든?"과 같은 반응이 예상되는 바입니다." 학생의 냉소적이면서도 허를 찌르는 듯한 답변에 국내반 아이들이 다수였던 당시 수업의 분위기가 한순간 서늘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국내반 아이들의 이런 모습을 과연 학생들의 부족함이라 볼 수 있을까? 아니면 학교의 잘못이었을까? 제 아무리 선의의 경쟁을 하고 결과보다는 과정을 즐기는 것을 격려하는 학교일지라도 0.5점 차이로 등급이 갈리고 진학할 수 있는 대학이 달라지는 상황에서, 날 선 경쟁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픈 이유

그래서일까, 국내반 학생들에게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누군가는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을 해야 하는 아이들에게서는 하위권으로 밀려나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나 눈치싸움 같은 것들이 느껴졌다. 반면 국제반 아이들에게는 생기가 있었다. 학업으로 힘들어하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다른 누군가를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이었다. 친구가 힘들어할 때에는 진심으로 위로하고, 친구에게 좋은 소식이 있을 때에는 진심으로 함께 기뻐했다. 

우리나라에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오랜 속담이 있다. 친구의 좋은 소식이 나의 나쁜 소식이 될 때, 친구의 행복은 나의 불행이 되고 나의 행복은 곧 친구의 불행이 된다. 우리는 성적평가 하나로 아이들에게 너무 손쉽게 '세상은 뺏고 빼앗기는 곳'이라는 믿음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얼핏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어떤 믿음을 갖는가의 문제는 우리의 정서와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행복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행복의 양이 한정되어 있다면

연세대학교 구자영·서은국 교수의 연구팀은 2007년, 이러한 상대평가식 성적평가와도 관련되어 있는 믿음 하나를 살펴 보았다. 바로 ‘행복의 양이 한정되어 있다는 믿음Belief in Fixed Amount of Happiness; BIFAH’이다구자영 & 서은국, 2007. 친구의 행복이 나의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행복의 양이 한정되어 있고, 세상은 뺏고 빼앗기는 곳이라는 믿음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연구팀은 BIFAH에 대한 검사를 개발하고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하였는데, 세상에 존재하는 행복의 양에 대해 나 스스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다면 아래 제시된 문항에 나는 얼마나 동의하는 지 살펴보자.

  • “이 세상에는 마치 자원(예; 석유)와 같이 한정된 양의 행복이 있다.
  • 내가 지금 행복하다면 이 세상 어딘가에 그로 인해 불행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 내가 행복하면 남들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은 내 몫만큼 감소할 것이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행복의 양이 한정되어 있다고 믿는 이들은 더욱 경쟁적이고 더 많이 비교했으며, 다른 사람들로부터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평을 더 자주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모든 조건들이 같다면) 더 불행했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우리는 타인과 경쟁하고 비교하는 것이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점을 이미 잘 알고 있다. 단 한 번도 남과 나를 비교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정도의 차이는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느 쪽인지, 다음의 시나리오를 상상해 보자:

‘당신은 어제 회사, 혹은 학교에서 칭찬을 들었다. 주어진 주제에 대한 발표를 참 잘 했다는 칭찬이었다. 그런데 우리 상사/선생님이 한 마디 덧붙인다. 동료/친구인 A 보다는 조금 아쉬웠다는 이야기이다. 한 주가 지났다. 새로운 주제에 대한 발표를 마친 가운데 상사/선생님으로부터 이번에는 좀 아쉽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또 한 마디를 덧붙인다. 이번에는 A보다는 잘 했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어떤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더 좋을까?’

상대적 기준 vs. 절대적 기준

비교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잘 보여준 이 연구에서 류버머스키와 동료들은 참가자들로 하여금 어떤 과제를 수행하게 한 후 두 가지의 피드백을 준다. 누군가와 비교했을 때에는 상대적으로 부족했지만 절대적인 기준에서는 잘 한 경우와, 상대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잘 했지만 절대적인 기준에는 못 미쳤다는 두 가지 피드백이다Lyubomirsky et al, 1997. 참가자들을 행복한 사람들과 상대적으로 불행한 사람들로 나누어 여기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보았다. 

흥미롭게도 행복한 사람들은 상대적 평가보다는 절대적 평가에 반응하는 반면,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적 평가보다는 상대적 평가에 더 민감하다는 점이 확연히 드러났다. 혹시 나는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며 다들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며 사는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나. 심리학의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실제로 자신이 우위에 있는지의 여부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행복은 어디서 결정되는가

우리는 보통 '행복'은 개인의 어떠함으로부터(돈이나 인기가 많거나 외모나 능력이 출중하다거나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등등) 온다고 믿는다. 분명 행복수준은 개인의 특성에 따라 달라지지만, 동시에 생각보다 큰 부분이 개인이 속한 사회로 인해 결정된다. 사회의 문화나 구조, 그리고 자원 등은 사회에 속한 개인의 행복에 중요하다. 사람들을 평가하고 보상하는 방식 또한 그러하다. 민사고라는 같은 학교에서도 국내반과 국제반 아이들이 다른 삶을 살고, 다른 기억을 안고 가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아이들을 보다 행복한 사람으로 성장시키려면 평가방식에 대한 보다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며칠전 미국의 한 사업가가 모교에 1억달러를 장학금으로, 부모가 대학을 나오지 못한 저학력 계층 가정 학생에게 전액을 사용해 달라고 했다. (니콜라이 보그다노프 벨스키도 사생아로 태어나 가정 환경이 어려웠는데 후원자의 도움으로 교육의 기회가 주어졌다.) Nikolay Bogdanov-Belsky 1868–1945. ‘At the School Door’, 1897,  oil on canvas, 127.5 cm X 72 cm, Russian Museum.
가난한 아이가 교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다. 그에게 세상의 행복은 무엇일까? 러시아 화가 벨스키의 작품이다. 그는 사생아로 태어나 가정 환경이 어려웠는데 후원자의 도움으로 교육의 기회를 누렸다. Nikolay Bogdanov-Belsky (1868~1945). ‘At the School Door’, 1897, Oil on Canvas, 127.5 X 72 cm, Russian Museum.

우리는 아이들에게 세상이 어떤 곳이라 말하고 있는가? 세상에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자원은, 그리고 행복은 실제로 한정되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른인 우리는 무엇을 고민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더 많은 자원을 가져올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동시에 어떻게 하면 우리가 나눌 파이의 크기를 키워나갈 것인지 고민하는 어른들이 우리 사회에 보다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당장의 삶을 보았을 때 우리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고 있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인류의 역사를 보면, 사람들은 고민과 발전을 통해 파이의 크기를 키워 왔다. 이렇게 따지면 세상은, 그리고 행복은 실제로도 윈윈이라는 게임의 법칙을 따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본다. mind

    <참고문헌>

  • 구자영, 서은국 (2007). 행복의 양이 한정되어 있다는 믿음과 주관적 안녕감. 한국심리학회지: 사회 및 성격, 21(4), 1-19
  • Lyubomirsky, S., & Ross, L. (1997). Hedonic consequences of social comparison: A contrast of happy and unhappy peopl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3, 1141-1157.
김여람 ‘민사고 행복 수업’ 저자 사회 및 성격심리학 MA
민족사관고등학교에서 지난 4년간 심리학 교사로 재직하였다. 행복을 주제로 하는 긍정심리학, AP심리학(심리학개론), 선택교과심리학, 사회심리세미나, 심리학논문작성 등의 수업을 진행하였으며 진학상담부 상담교사로서 아이들과 많은 고민을 나눴다. 저서로는 '민사고 행복 수업(2019)', '2015년 개정 교육과정 심리학 교과서(2020)' 등이 있다. 연세대학교에서 경영학과 심리학을 이중전공한 후 동 대학원에서 사회 및 성격심리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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