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적 기억 회상과 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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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적 기억 회상과 우울증
  • 2019.10.17 09:07
우울증 환자들이 자서전적 기억의 인출에서 문제를 보인다는 보고들이 지속되고 있다. 저자들은 이에 더 나아가 회상의 일관성이라는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우울증과의 관련성을 탐구하였다.

병을 일으키는 이유

인간의 심리적 문제는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누군가는 유전에서 그 답을 찾고, 누군가는 부모와의 초기 경험에서 그것을 찾으려 노력한다. 임상심리학의 가장 중요한 연구주제 중 하나인 병인론etiology은 무엇보다도 시원한 결론을 얻기 어려운 분야이다. 그 무엇이 병을 일으키는 진짜 원인인지를 알기는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런 단일한 원인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미국 화가 마크 로스크Mark Rothko, 1903~1970는 자신의 명성이 높아가는 것 만큼 심한 우울증에 시달려다. 말기 작품이 다소 어두운 느낌을 주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그림은 러시아 화가 올레시아 데비소바가 자신의 작품에 앞에 있는 로스코를 그렸다. ⓒDenisova Olesya Alexandrovna(1980~), 'Mark Rothko', 2017.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유전의 문제이던 양육의 문제이던 지금 환자의 문제를 유발시키는 것은 환자의 뇌 속에 들어있는 정보들과 그 정보들이 처리되고 있는 방식일 것이다. 지금까지 심리학자들은 정보들이 처리되는 방식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그 노력들이 오늘날 인지행동치료의 형태로 발전되어 환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 기울여져 왔던 저장된 ‘정보’, 그 중에서도 한 개인의 고유한 정보가 저장된 자서전적 기억에 대한 연구들이 한참 진행중이다. 

생생하지만 뒤죽박죽인 기억

지금까지 연구들은 우울증 환자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환자들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할 때 정상인에 비해 구체성이 부족하다고 보고해 왔다. 과거의 기억을 보고하지만 특정 시간이나 장소에서 벌어진 에피소드들을 회상하지 못하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어서 이들의 자서전적 기억은 부정적이지만 추상적인 사건들의 집합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구체성에서 더 나아가 회상의 이야기 구조에 맥락과 주제가 체계적으로 제시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회상의 ‘일관성'coherence 역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 환자들의 침투적 기억의 경우 매우 생생한 속성을 가지지만 맥락과 순서가 지극히 비조직화된 방식으로 경험된다는 점에서 일관성은 구체성과는 구분되는 비정상적 자서전적 기억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무려 6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벨기에의 최고 명문대학 뤼벤가톨릭대학KU Leuven 심리학과 연구팀은 Behavior Research and Therapy 2019년 116호에 자서전적 기억의 일관성과 이상심리와의 관계를 연구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들은 심리학과 1학년 학생 229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이미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자서전적 기억의 구체성은 18개의 정서단어에 따라 인출한 기억들을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통해 평정했으며, 기억의 일관성은 피험자들이 보고한 가장 긍정적인 사건과 가장 부정적인 사건에 대해 평정자들이 시간, 맥락, 주제라는 세가지 차원의 점수를 부여하였다. 이들 변인과의 관계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내현화 증상Internalizing symptoms인 우울, 불안이 자기보고식 척도를 통해 측정되었다.

우울한 기억, 일관성 없는 기억

이들이 얻어낸 결과는 기존 연구들의 입장과는 조금 달라 보인다. 기존 연구들에서 나타나던 기억 구체성과 우울증상의 관련성이 나타나지 않은 반면에 우울한 기억에 대한 회상의 일관성 부족은 높은 우울증상을 예측한 것이다. 물론 기억 구체성 점수가 떨어지는 소위 우울증의 ‘일반화된 기억’ 효과는 임상적 진단이 가능한 수준의 우울증 환자들에게서 흔히 보고되던 현상이고 정상인의 우울증상을 측정하는 연구에서는 그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은 경우들이 있기에 그리 놀라운 발견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건강한 집단에서 조차 회상의 일관성은 우울증상의 차이를 설명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아직은 그저 가능성일 뿐이지만 회상의 비일관성이 보다 미세한 우울증상도 조기에 예측할 수 있는 민감한 지표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비일관성이 불안증상과는 관련성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도 흥미있는 부분이다. 우울장애와 불안장애의 인지심리학적 수준의 차이를 연구하거나 두 장애의 감별진단 도구를 개발하는데에도 활용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연구는 임상집단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기에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기억구체성을 측정하는데 사용된 머신러닝 기법도 물론 어느정도의 신뢰성 검증은 마친 도구이지만 아직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의심이 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기억의 구체성을 부정적 기억뿐 아니라 긍정적 성격의 기억까지 모두 총점을 낸 것도 분명 한계라 볼 수 있다. 부정적 기억만을 대상으로 분석했다면 일관성과 비슷한 예측력이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기보고식 설문지에 의존한 우울증상의 측정도 분명 한계라 할 수 있다. 물론 대학교 1학년에게 더 나은 측정방법이 쉽게 떠오르지는 않지만 말이다.

꼭 임상집단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몇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논문을 우리나라에서 임상심리학을 하는 많은 학생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이유가 있다. 내가 만난 너무 많은 학생들과 소장학자들은 연구대상으로 임상집단을 모집할 수 없다는 점을 너무나 과도한 장애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동원 가능한(?) 심리학과 학부생의 도움으로도 이렇게 중요한 학술적 업적이 충분히 발표될 수 있다는 점을 꼭 주변에 알리고 싶다. 임상표본의 연구는 병원에서 근무하는 임상심리학자들의 몫이면 충분하다.

대학에 속한 심리학자들은 보다 아날로그적인 성격의 연구설계를 통해 보다 개념검증적 연구들을 진행하고 여기서 얻어진 통찰들을 임상현장에 제공하면 되는 것이다. 단지 환자를 만나지 못한다는 이유로 정신병리 연구의 책무를 등한시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사실 환자를 대상으로 할 수 있는 통제된 연구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에 이러한 연구들은 너무도 소중하다.

미지의 세계에 가깝던 우울증의 비밀이 인지심리학적 방법론의 적극적 활용을 통해 그 정체를 드러내고 있다. 어느날인가 우울증이 인류가 정복한 질병의 목록에 꼽히는 날을 보고 싶다. 너무나 좋아하던 f(x)의 전멤버 최진리(설리)양의 자살소식을 전해들은 이 시점에 그런 마음은 더욱 간절하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mind

최승원 덕성여대 심리학과 교수 임상심리 Ph.D.
덕성여대 심리학과 부교수이자 임상심리전문가. 임상심리학은 반드시 생물-심리-사회적 접근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믿기에 언젠가는 심리학이란 이름보다 더 발전적인 개명이 필요하다고 믿는 심리학자. 상담센터와 정신과병원을 거쳐 대학에 와있는 이분야 진로탐험의 교과서적인 인물이나 진로상담보다는 괴팍한 연구자로 기억되기를 간절히 바람. 기분장애와 B군 성격장애가 주요연구관심분야이지만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어떤 곳에서든 최선을 다할 멀티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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