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한 사람은 좋은 배우자가 될 수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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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한 사람은 좋은 배우자가 될 수 없나
  • 2019.10.28 11:00
배우자로 선택하는 조건으로 화목한 가정을 꼽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정말 화목한 가정 환경은 좋은 배우자감의 주요 조건으로 합당한가?

얼마 전 SNS에서 치열한 자기고백과 공방전이 벌어졌다. 주제는 ‘화목한 가정’ 또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배우자’ 였다. 누군가가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해야 한다는 글을 쓴 탓이었다. 화목한 가정이란 무엇일까 따져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으나 폭력적이었던 사람을 만났던 경험의 고백, 특정 조건으로 사람을 고르라는 것에 대한 비판,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한 사람들의 자기 이야기, 어린 시절의 가정환경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에 대한 반감 등이 이틀 간 이어졌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은 화목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배우자로 선택하면 안 된다는 주장 같이 보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감정 동요로 연결되는) 버튼이 눌렸던 것이다.

베르셀로나 시절 돈이 궁했던 20대 젊은 피카소 그린 솔레르 가족의 초상화다. 청색시대의 작품답게 푸른 색 바탕에서 각기 독특한 분위기의 가족 구성원들의 모습을 담았다.  Pablo Picsaso, 'Soler Family', 1903, Oil on canvas, 150×203 cm, The Museum of modern art, Liege, Belgium.
베르셀로나 시절 돈이 궁했던 20대 젊은 피카소 그린 솔레르 가족의 초상화다. 청색시대의 작품답게 푸른 색 바탕에서 각기 독특한 분위기의 가족 구성원들의 모습을 담았다. Pablo Picsaso, 'Soler Family', 1903, Oil on canvas, 150×203 cm, The Museum of modern art, Liege, Belgium.

화목한 가정이라는 신기루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은 합당한 주장일까? 그런데 이 주장엔 일단 ‘화목한 가정’을 정의하기가 참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이 ‘화목한 가정’이라는 유명무실한 신기루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멍을 만들어 왔다. 아이들이 엊저녁 부모의 다툼이나 폭력을 목격한 다음 날, 화목한 가정에서 나온 듯한 친구들의 일상의 단면을 보고 가슴 속에 어둠을 키워간다. 맞고 자란 아이는 때리는 어른이 된다는 폭언을 들으며, 때리는 어른이 될까봐 아니면 맞는 어른이 될까봐 고개를 들지 못하고 다닌다. 폭언과 폭행이 오가거나 의사소통 없이 냉랭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일상적으로 두려움에 떨면서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해 서러울 뿐 아니라, 좋은 어른이 되지 못할까 두렵고, 좋은 사람을 만나 화목한 가정을 꾸리지 못할까 불안하다.

가족의 화목한 의사소통

어린 시절 가족 내의 화목한 의사소통이 성인이 된 후 결혼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다. 텍사스 대학에 교수로 재직 중인 심리학자 로버트 애크먼은 1989-1991년에 288명의 어린 청소년들(평균 나이 12.6세)을 모집하여 가족 관계를 관찰하였고, 20년이 지난 후 성인이 되어 가정을 꾸린 그 아이들을 다시 만났다Ackerman et al, 2013. 아이들의 가족을 관찰한 방법은, 그 아이와 다른 가족 구성원 3명, 총 4명을 한 자리에 모아 어떤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한 것이다. 가족 구성원 4 명이 이야기를 나누다 자연스레 마찰이 생기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15분 간 녹화했고, 가족 구성원들 간의 상호작용에서 나타나는 긍정적인 개입positive engagement의 정도를 평가했다. 주로 상대방이 얘기할 때 잘 반응하는지, 자기 주장이 강한지, 대화 중 친사회적인 행동을 하는지, 효과적으로 소통하는지, 상대방을 따뜻하게 지지하는지 등이 주요 평가 항목이었고, 아빠-엄마, 아빠-자녀, 엄마-아빠 등 각각의 일대일 관계에서의 평가가 이루어졌다.

20년 후

30대 초반의 성인이 된 그 아이들을 다시 만난 애크먼은 이번엔 그 아이들과 배우자를 만나 둘 간의 애정 관계, 관계 내의 문제, 미래 계획 등을 이야기 하게 하며 25분 간 녹화를 했고, 그 성인이 된 아이가 배우자에게 보이는 긍정적인 대화 태도, 배우자가 상대방에게 보이는 긍정적인 대화 태도를 각각 평가했다.

결과는 예상한 대로였다. 어린 시절 가족 대화에서 측정된 긍정적 개입 정도의 가족 평균 값은, 이후 그 가족의 자녀가 커서 자신의 배우자에게 보이는 긍정적 대화 태도와 상관이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자녀의 배우자가 보이는 긍정적인 대화 태도와도 상관 있었다. 즉, 내가 어릴 적에 우리 가족이 서로 긍정적인 태도로 의사소통하고 지냈으면, 나중에 나는 내 배우자에게 긍정적인 태도로 대할 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 나의 배우자도 긍정적인 태도로 나를 대해 줄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다.

고작 8 퍼센트

그러나 사실 8%에 불과했다. 로버트 애크먼의 장기 종단 연구에서, 어린 시절 가족 내의 화목한 의사소통이 20년 후 배우자와 나누는 화목한 의사소통을 예측하는 총 분량 말이다. 다른 많은 변수들이 있을 것이 분명한데, 해당 연구에서는 그 많은 다른 변수들을 모두 다루지는 않았다. 일단 그럴 수가 없다. 배우자 간 화목한 의사소통의 정도를 예측하는 변수들을 다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언제나 이론적 가설에 기반해서 측정할 수 있는 변수들만 분석할 수 있고, 그 분석 결과를 토대로 할 수 있는 이야기만 할 수 있다 (그 이상을 얘기하는 것은 과학적이라 할 수 없다). 

애크먼 연구팀이 20년 종단 연구라는 큰 공을 들인 결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어린 시절의 가족 내 긍정적인 의사소통은 20년 후 배우자와의 긍정적인 의사소통에서 8%의 지분을 갖고 있다는 것뿐이다. 논의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것이 중요한가 아닌가에 초점이 맞춰질 일이 아니다. 과연 사람을 그런 식으로 대상화해도 되는가에 맞춰져야 한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굉장히 평면적이고 단순한 것은 둘째치고, 폭력적이다. 왜냐하면 선택할 수 없는 환경적인 요인들로 사람을 대상화objectification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많은 환경 요인들 중에 가장 말하기 쉬운 것을 골라 근거 없이 비약하고 있기 때문에 과학적이지 않다.

사람을 대상화한다는 것

몇 년 전 동창들이 은사님을 모시고 식사를 하는 한 모임에 나갔다가 남자 동창을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상당히 훌륭한 면모가 많아서, 평소 참 좋아하는 친구이다. 오랜만에 은사님을 모시고 만난 자리가 그렇듯 담소가 오가는 가운데 그 친구가 화제의 중심이 된 지점에서, 내가 “00가 이렇게 좋은 남편감인 걸 왜 학교 다닐 때는 몰랐지. 너무 안타깝다. 그 때 알았어야 했는데 말이야.” 하고 말했다. 모두 맞장구를 치며 웃었고, 그 친구도 같이 하하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고맙다 야. 그런데 칭찬을 받은 것 같은데 왜 이상하게 기분이 좋지만 않지?”

농담이 농담으로 이어졌을 뿐이고 모두 웃고 말았는데,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집에 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깨달았다. 내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 친구를 대상화했다는 것을. 사람을 대상화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간적인 면모나 개성을 모두 무시하고 상품이나 물건처럼 취급한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당시 식사 모임에서 유일한 남자였고, 그 자리에서 나에게 ‘신랑감’으로 대상화되었고, 모두 웃음으로써 거기에 동조한 셈이었다. 사실 여성이라면 누구나 어릴 때부터 늘 경험하는 일이다. ‘좋은 신부감’이라는 대상화.

다른 환경 요인들

이쯤에서 행복한 삶과 회복탄력성의 요인을 탐색한 한 종단 연구의 결과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하와이의 한 섬인 카우아이 섬에서 1955년에 태어난 아기들을 중년이 될 때까지 추적한 장기 종단 연구이다. 당시 태어난 698명의 아기들 중 30%가 가난하거나, 가족 중 중병 환자가 있거나, 부모가 이혼했거나, 정신병 가족력이 있거나, 부모가 교육을 받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연구자들은 이 아이들 중 어려운 가정 환경을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면서 남들 보살필 수 있는 좋은 어른으로 자란 경우에 주목했다. 이들을 탐색한 결과, 이 아이들의 문제 없는 삶, 회복탄력성, 스트레스에 대한 성공적인 극복과 적응의 요인 세 가지를 찾아 낼 수 있었다. 첫 번 째는 개인의 성격 특성이었고, 두 번 째는 조부모, 이모, 삼촌 등으로부터의 보살핌과 지지였고, 세 번 째는 마을 커뮤니티 내에서의 선생님, 이웃, 친구들의 정서적 지지 및 보살핌이었다Werner & Smith, 1992, 2001.

인생은 고통의 바다라 하지만

사람의 삶은 단순하지가 않다. 타고난 유전적 기질이 있고, 그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이 있다. 유전과 환경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우리가 살면서 언제 어떤 환경적 변수를 만날지는 예측 불가능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현재의 상태를 살피고 그 원인을 찾아보는 것뿐, 미래의 결과를 예측하지는 못한다. 이를테면 아내와 의사소통이 어려운 남자를 보면서 그 남자가 어린 시절에 가정에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나 추측해볼 수는 있다. 하지만, 화목하지 않는 가정의 아이를 보면서 이 아이가 나중에 화목한 가정을 꾸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누군가가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했던 혹은 지금도 겪고 있는 가정 환경이나 인종, 경제적 수준, 건강 문제 등으로 그를 규정짓고 대상화하는 것은 결국 특정 대상에 대한 사회적 혐오나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 인생은 고통의 바다라고 하지만,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 서로 아름다운 면을 봐주고 아름다울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통의 바다일지라도 그 바다에 해가 뜰 때는 얼마나 눈이 부시고 석양이 내려 앉을 때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빛이 일렁이는 잔 물결을 보고 있으면 얼마나 가슴 설레는지 같이 보고 느끼면서. mind

<참고문헌>

  • Ackerman, R. A., Kashy, D. A., Donnellan, M. B., Neppl, T., Lorenz, F. O., & Conger, R. D. (2013). The interpersonal legacy of a positive family climate in adolescence. Psychological science, 24(3), 243-250.
  • Werner, E. E., & Smith, R.S. (1992). Overcoming the odds: High-risk children from birth to adulthood. Ithaca, NY: Cornell University Press.
  • Werner, E. E., & Smith, R.S. (2001). Journeys from childhood to midlife: Risk, resilience and recovery. Ithaca, NY: Cornell University Press.
박혜연 분당서울대병원 공공의료사업단 임상심리 Ph.D.
대학병원 공공의료사업단에서 공직자 및 일반 직장인들의 스트레스 관리와 정신건강 문제 예방 및 치료를 위해 일하고 있는 임상심리전문가이다. 경기도 소방심리지원단 부단장, 보건복지부 전문 카운셀러를 역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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