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 좋은 친구의 필기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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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점 좋은 친구의 필기노트
  • 2019.11.02 11:05
시험을 잘 보는 학생들의 노트를 보면 색색깔의 현란한 펜으로 그린 다이어그램들이 가득하다. 성적과 노트필기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학창 시절 시험공부를 할 때 다들 한 가지씩 유용하게 사용했던 기억술이 있었을 것이다. 기억술은 기억하고 싶은 대상을 잊지 않기 위해 사용하는 책략들이다. 내 경우는 교과서나 노트의 내용을 박스 다이어그램 형태로 그려 요약하고 이를 구성적으로 배치하는 시각화 방법을 선호했는데 의미적으로 직접 관련이 있거나 혹은 관련이 별로 없는 낙서 그림들을 구석구석에 그려넣어 시험공부의 지루함을 달래기도 함과 동시에 학습한 내용의 회상을 돕는 단서로 활용했던 경험이 있다. 물론 이런 시도는 시험 준비를 미리 부지런히 해왔을 때의 이야기이고, 벼락치기가 불가피할 때는 그나마도 생략하고 우격다짐으로 읽어보고 ‘대충 기억하겠지...’하고 얼버무렸던 경우도 다반사이다. 당연히 시험 결과는 그림을 그려가며 꾸준하고 세심하게 시험 준비를 했을 때 훨씬 나았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이런 과거의 내 경험을 일부 지지하는 실험 결과가 최근 미국과 캐나다의 심리학자들의 공동 연구에 의해 발표되었다. 미국의 Yale과 UCDavis 그리고 캐나다의 Waterloo 대학 심리학들은 기억이 요구되는 단어들과 관련된 그림을 ‘능동적’으로 손수 그려보는 것이 단순히 해당 단어들을 글자로 써보거나 아니면 눈으로 보기만 하는 경우 및 심지어 해당 단어에 상응하는 그림의 윤곽을 따라 수동적으로 그려보는 경우에 비해 기억 수행을 향상시키는 것을 관찰했다.

그들의 실험 가설은 기억 대상 정보에 대한 능동적인 기억부호화에 있어서 다양한 감각 체계와 의미적 수준의 능동적 정보처리가 해당 정보에 대한 회상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고전적 기억이론의 주장에 근거한다.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그들은 기억부호화 과정에 사용되는 정보의 유형을 정교화(elaborative), 운동(motoric) 및 시감각(pictorial) 관여 정도의 세 가지 요인들로 구분했다. 더 나아가 해당 요인들을 단순히 양적으로 가감하는 것이 기억 수행에 미치는 영향 및 해당 요인 들 중 상대적으로 어느 요인이 더 중요할 수 있는 지를 살펴보았다.

그들의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사전에 선정된 80 단어에 대한 장기 기억 과제를 수행했다. 구체적으로 매 학습(learning) 시행에서 해당 단어들 중 하나가 제시되었으며 잠시 후 그 단어에 해당되는 스케치 형태의 그림이 제시되었다. 뒤이어 참가자는 그 스케치에 상응하는 그림을 1) 손수 직접 그려보거나, 2) 스케치 흔적을 따라 윤곽을 그려보거나, 3) 단순히 해당 스케치를 연상(imagine)하거나, 혹은 4) 해당 스케치를 다시 한 번 보기만 하는 추가 과제를 수행했다. 이틀 뒤 학습한 단어들을 기억하고 있는지 여부를 검사하기 위해 단어 재인과제를 실시한 결과 1) > 2) > 3) > 4) 순서로 정확한 것이 드러났다.

이 실험의 가장 중요한 발견은 해당 단어에 결부된 스케치를 보고 참가자 스스로 그것을 능동적으로 그려본 경우에 기억 수행이 가장 좋았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것은 뒤이은 실험에서 1)번에 해당하는 손수 그리기 조건에서 시야를 가려 참가자 스스로 자신이 그리고 있는 그림을 보지 못하도록 한 경우에도 2), 3)의 경우보다 기억이 더 정확했으며 해당 단어를 단순히 써보도록 한 경우에는 4)의 경우보다도 기억이 부정확한 것이 관찰되었다.

해당 연구진은 이 결과가 정교화 암송(elaborative rehearsal) 및 이중 부호화(dual coding) 처리 등이 여러 감각체계(multi-modality)의 사용 가능성을 증가시켜 기억부호화를 촉진해 궁극적으로 기억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고전적 기억 이론의 주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더 나아가 스케치를 손수 직접 그려보는 경우 및 심지어 자기가 그리는 그림을 참가자 스스로 보지 못한 경우에도 기억 수행이 눈에 띄게 향상된 것을 근거로, 여러 감각체계의 사용에 있어서 다른 감각들에 비해 능동적인 운동의 관여가 기억 향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함을 강조했다.

이 연구는 개인의 학습 과정에서 기억 향상을 위해 사용되는 기억 단서들의 종류가 다양할수록 기억 수행이 향상된다는 고전적 기억 이론의 주장을 지지함과 동시에 그 중에서도 가급적이면 운동 단서 활용을 추가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추가적인 시사점을 제공한다.

특히 이러한 시사점들은 시험공부 중 학습한 내용을 정리해 박스 다이어그램 형태로 요약 및 정리하고 곳곳에 회상을 돕기 위한 그림들을 그려넣어 학습에 도움을 받았던 필자의 과거 경험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설명해 준다.

다빈치 노트 ©flickr_Todd Dailey(cc by4.0)
다빈치의 노트 ©flickr_Todd Dailey(cc by4.0)

다만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림을 손수 그려가며 기억할 정보에 대한 다양한 단서들을 활용하려는 노력은 그와 같은 책략이 효과적일 수 있을 때 가능한 시도이다. 만약 피치 못하게 벼락치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시험 하루 전날 밤 이런저런 그림을 여기저기 그려가며 정교화 처리 책략을 사용하고 있다면 목표한 학습량을 채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경우를 피하기 위해서는 벼락치기가 아니라 시간을 쪼개 규칙적으로 시험을 준비하는 분산학습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학습할 내용에 대한 ‘암기’ 수준의 정확성을 위해서는 가급적이면 본인이 기존에 익숙한 기억책략에 시각화와 그리기, 암송하기 등과 같이 다양한 단서를 활용하는 책략을 추가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다. mind

 

<참고문헌>

Wammes, J. D., Jonker, T. R., & Frenandes, M. A. (in press). Drawing improves memory: The importance of multimodal encoding context. Cognition, 191.

현주석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인지심리 Ph.D.
인지심리학의 주제 중 시각작업기억과 주의에 관한 주제로 박사 학위를 하고, 현재 중앙대 심리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인지심리학에 대한 공부를 기초로 인간의 장, 단기 기억과 사고 및 선택적 주의 현상 연구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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