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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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비밀
  • 2019.07.10 09:00
당신은 지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지식과 어떻게 다른가? 오랫동안 지혜를 연구해온 김경일 교수가 지혜의 본질을 밝혀준다.

인간은 지혜智慧; wisdom를 원한다. 지혜의 사전적 정의는 ‘사물의 이치나 상황을 제대로 깨닫고 그것에 현명하게 대처할 방도를 생각해 내는 정신의 능력’이다. 그런데 지혜의 앞 글자인 지에서 알 '지' 자 밑에 무언가 한 글자가 더 놓여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날 일, 즉 태양 형상의 글자다. 지혜라는 한자어를 처음 만들어 낼 때 무엇인가를 환하고 명쾌하게 풀어나가는 정신의 과정을 구분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아테네 여신Athena 도시국가 아테네의 수호신이지만 '지혜의 여신'이기도 하다. 아테네인들은 파르테논Parthenon 신전을 건립하여 그녀를 숭배했다. 사진은 그리스 시대의 청동조각을 복제한 로마 시대 대리석 조각이다. 높이 2.3m로 루브르박물관 소장. 

자, 그렇다면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과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 사이에는 무엇인가 다른 점이 있지 않겠는가. 많이 안다고 해서 반드시 문제를 지혜롭게 풀어나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사고과정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자세히 인과관계에 입각해서 전후의 연결고리들을 알고리즘처럼 풀어내는 것은 인지 심리학자들의 중요한 관심사였다.

그 출발점을 제공해 준 사람은 칼 던커Karl Duncker라는 심리학자이다. 그가 만들어 낸 다양한 문제들은 세계 초일류 기업인 구글Google의 입사 시험 문제에도 종종 출제된다. 그의 문제를 살펴보기 전에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두 종류의 문제들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이른바 ‘3751 더하기 6359’와 같은 문제이다. 이런 문제들은 시간과 노력을 더하게 되면 ‘단계적’으로 풀리는 문제다. 일의 자리를 더하고 난 뒤 십의 자리를 더하면 된다. 그럼 이제 백의 자리와 천 자리가 남게 된다. 그러니 내가 얼마만큼 와 있는가도 명확히 보인다. 얼마만큼을 더해야 최종적으로 답에 도달하게 되는가도 분명히 파악된다. 이런 문제들은 노력에 의해서 해결되는 문제다.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세상의 문제들이 모두 이런 형태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스마트폰 앱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스마트 폰 앱을 설치하고 열심히 공부를 했더니 그날 밤 그 앱에서 ‘A학점까지 37% 접근’이라고 알려준다. 그 다음날에도 공부를 열심히 했더니 이제 그 수치가 53%로 올라간다. 이러면 공부를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성공, 연애, 취업 등 모든 것들은 왜 어려운가. 아무리 노력하고 시간을 쏟아 부어도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알 방법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얼마나 더 해야 하는가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두 번째 형태의 문제가 바로 이런 것들이다. 어디쯤 왔는지 얼마만큼 더 가야하는가를 알 수가 없고 최종적인 해결책에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지 못한다. 초등학교만 졸업해도 우리가 만나는 문제는 이런 것들이 대부분이다. 칼 던커는 이런 문제에 새롭게 접근한 심리학자이다.

1903년에 태어나 1940년에 사망한 칼 던커는 불과 37년간의 짧은 생을 사는 동안 모든 심리학 개론서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형태주의(Gestalt)에 속하는 심리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인간이 어떻게 통찰을 만들어 내는가에 늘 관심을 기울였다. 그가 만들어낸 양초 문제, 레이저 문제 등은 지금까지도 인간의 창조적 지혜를 살펴보는 무수히 많은 실험 연구에서 사용되고 있다. 아쉽게도 그는 우울증으로 심한 고통을 겪다가 1940년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1903년에 태어나 1940년에 사망한 칼 던커는 불과 37년간의 짧은 생을 사는 동안 모든 심리학 개론서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형태주의(Gestalt)에 속하는 심리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인간이 어떻게 통찰을 만들어 내는가에 늘 관심을 기울였다. 그가 만들어낸 양초 문제, 레이저 문제 등은 지금까지도 인간의 창조적 지혜를 살펴보는 무수히 많은 실험 연구에서 사용되고 있다. 아쉽게도 그는 우울증으로 심한 고통을 겪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레이저로 종양을 제거하라!’

아래는 칼 던커가 던진 질문들 중 하나다. 필자도 이 질문을 수많은 강연과 연구에서 활용해 왔다. 필자는 강연 중 이런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지곤 한다.

“당신은 의사다. 당신 앞에는 위에 악성 종양이 있는 환자가 있다. 이 환자를 수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종양이 제거되지 않으면 이 환자는 사망하게 된다. 그런데 이 종양을 파괴할 수 있는 레이저가 최근 개발됐다. 만일 레이저가 충분한 강도로 한 번에 종양에 도달하게 되면 그 종양은 제거된다. 하지만 강한 레이저가 종양에 도달하게 되면 거기에 도달하기 전까지 통과하는 다른 신체 부위도 마찬가지로 파괴된다. 반면 낮은 강도로 종양에 도달하면 다른 신체 조직은 피해를 보지 않지만, 종양도 제거되지 않는다. 건강한 다른 신체 조직을 파괴하지 않고 종양을 제거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겠는가?”

이 문제를 주어진 30분 혹은 1시간 이내에 해결하는 학생들이 거의 없다. 재미있는 것은 거의 모든 대학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학생들의 비율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단 10%. 나머지 90%는 문제를 손도 못 대고 시간을 모두 흘려보낸다. 솔직히 말하자면 약간의 고소함도 느낄 때도 있다. 자신들이 세계 최고의 명문대 학생들이라는 자부심을 넘어 거만한 자세로 동양인인 필자의 어눌한 영어로 하는 강연을 약간은 깔보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할 때면 말이다. 아무튼 이 문제는 참으로 어렵다.

그런데 어떤 강연에서는 아래와 같은 에피소드를 학생들에게 먼저 들려준다. 기억력 검사를 위한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말이다. 그럼 학생들은 최대한 주의 깊게 들으면서 외우려고 한다.

독재자의 요새

“옛날 어느 나라에 독재자가 있었다. 그는 나라 가운데 위치한 튼튼한 요새에 살고 있었다. 요새 주변에는 농장이나 계곡 등이 있으며, 요새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어느 장군이 독재자를 제거하려는 마음을 먹었다. 자신의 모든 병력을 투입하면 요새를 함락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독재자가 여러 갈래 길에 지뢰를 설치 놓았다. 이 지뢰는 적은 수의 사람들은 안전하게 피해 갈 수 있지만 많은 병력이 지나가게 되면 폭파된다. 지뢰는 길과 주변 마을까지 파괴할 정도로 강한 것이다. 적은 병력으로는 지뢰는 피할 수 있으나 요새를 함락시킬 수 없고, 많은 병력은 지뢰 때문에 손실이 클 것이다. 고민하던 장군은 단순한 작전을 세웠다. 우선 자신의 모든 병력을 적은 수의 부대로 나눈 후 각 부대를 여러 갈래 길에 각각 배치하였다. 그리고 각 부대가 동시에 요새로 출발하여, 모든 병력이 정해진 시간에 집합하도록 했다. 결국, 많은 병력으로 요새를 함락하고 독재자를 처단하였다.”

장군의 요새 공격 이야기와 레이저-종양 제거 이야기 사이에서 어떤 관련성을 발견한 독자라면 눈치가 대단한 분이다. 왜냐하면 종양 제거 문제의 해결책은 ‘레이저의 강도를 분산시켜 여러 방향에서 종양을 향해 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방법을 통해 중간에 있는 신체 장기는 손상하지 않고, 최종적으로 종양에 도달하는 레이저는 합쳐져 암세포를 죽일 정도의 강도를 지니게 된다.

결국 지혜는 '연결하는 능력'이다 

필자가 요새 공격 이야기를 들려준 뒤 강의를 시작한다. 그리고 강연 시작한지 약 10분 정도 지났을 때 갑자기 아까 앞서 언급한 ‘레이저로 종양을 제거하기 문제’를 학생들에게 준다. 이러면 약 30%의 학생들이 문제를 해결한다. 3배나 증가했지만, 여전히 70%의 학생들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그런데 나머지 70%의 학생들에게 ‘요새 공격 이야기가 종양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힌트다.’라고 한마디만 더 해주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문제를 해결한다.

지식과 지혜가 무엇이 다른가를 분명히 보여주는 장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 대부분은 해결방안이 존재하지 않아서 지혜로운 해결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관련 없어 보이지만 결정적 단서가 이미 내 안에 있는데도 그걸 꺼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지혜란, ‘연결하는 능력’이다. 내 머릿속에 있는 수많은 다양한 영역 속에 있는 단서들 중 하나를 현재의 문제 해결에 연결시키는 시도를 의미한다.

이제 남는 것은 명확하다.

그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을 연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은 공부로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준비상태가 잘 되어 있어야 한다. 평상시 기초체력이 튼튼한 사람이 필요한 상황에서 잘 달리고 잘 올라가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문제의 해결이 막힐 때는 잠시 떨어져 다른 경험을 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지금 책상 앞에서 생각이 막힌 분들은 주저하지 말고 공간을 이동해 새로운 경험을 잠시라도 해 보기 바란다. 새로운 연결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새로운 경험으로 뇌를 자극하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단순한 계산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mind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인지심리 Ph.D.
고려대학교 심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교 University of Texas–Austin 심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지심리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아트 마크먼 Art Markman 교수의 지도하에 인간의 판단, 의사결정, 문제해결 그리고 창의성에 관해 연구했다. 현재는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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