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창곡, 알고보니 비합리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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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창곡, 알고보니 비합리SONG?
  • 2019.11.05 11:00
가사가 좋아서 자주 흥얼거리거나 듣게 되는 노래가 있다. 그 애창곡이 알고보면 나의 비합리SONG일 수도 있다. 좋아하는 노래 가사에 나도 모르는 나의 비합리적 사고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웃으면서 달려보자. 푸른 들을, 푸른 하늘 바라보며 노래하자

내 이름은 내 이름은 내 이름은 캔디

나 혼자 있으면 어쩐지 쓸쓸해지지만, 그럴땐 얘기를 기나누자. 거울 속의 나하고 

웃어라 웃어라 웃어라 캔디야. 울면 바보야. 캔디 캔디야.

추억의 만화 <들장미 소녀, 캔디>의 주제가이다. 사실 나에겐 여주인 캔디보다는 테리우스나 안소니 같은 현실에 없는 남성 캐릭터에 대한 설렘으로 기억되는 만화책이며 TV에서도 방영되었던 오래 된 애니메이션이다. 지금의 애니메이션과는 비교도 안 되게 촌스럽지만 어쩌다 정말 어쩌다 주제가의 한 소절이라도 듣게 되면 얼마나 반갑던지... 그런데 나도 몰래 가사를 흥얼거리다 문득 의문이 생겼다. 왜 캔디는 울면 안 되지? 울면 바보라니. 그리고 게다가 웃으라고 강요하기까지. 주제가의 첫 소절을 보니 캔디는 처음부터 외로워도 슬퍼도 참고 참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이건 뭐 완전 정신병리 증상(우울, 억압, 부인, 조증)의 종합세트이다. 그리고 울면 바보니까 울면 안 된다는 것은 바로 일종의 '비합리적인 신념'이다. 가사의 내용에 비추어 볼때 캔디는 자기 이름이 캔디인 것은 알고 있으니 그나마 정체감은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하지만 거울 속의 자신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대목에서는 얼마나 힘들면 self-talking까지 하게 되었을까 하고 안쓰러움까지 느끼게 된다. 이런 건강하지 못한 가사인 줄을 몰랐다. 그 동안 어쩌다 듣게 되는 캔디의 주제가를 그저 반가운 추억의 만화를 떠올리는 스위치로만 여겼고 '울면 안 된다'는 그 말이 힘든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 아니 세뇌되어 있었던 것이다. 비단 나만 그런 것이 아니리라.

'들장미 소녀 캔디'는 일본에서 제작된 순정만화 애니메이션으로 우리나라에서는 1977년과 1983년 각기 흑백과 칼라로 MBC에서 방송되었다.
'들장미 소녀 캔디'는 일본에서 제작된 순정만화 애니메이션으로 우리나라에서는 1977년과 1983년 각기 흑백과 칼라로 MBC에서 방송되었다.

이러한 신선한 깨달음이 있은 후 나는 노랫말을 유심히 듣는다. 요즘 어린 친구들이 좋아하는 노래들에는 가사를 알아듣기 조차 어려운 노래도 있다. 하지만 그 친구들 또한 가사가 마음에 와닿는 노래들을 좋아하는 것은 기성시대와 비슷한 것 같다. 그 가사를 통해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으며  때로 추억에 젖기도 하고. 그런데 막상 가사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거기에는 말도 안 되는 내용, 다시 말해 '비합리적인 사고'들이 많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에서 본 캔디의 주제가 처럼. 나는 이 점에 착안해서 인지치료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나만의 비합리SONG 찾기' 라는 이름의 소위 듣보잡 과제를 내주기 시작했다.

나만의 비합리SONG

'나만의 비합리SONG'을 찾고 분석하는 첫 단계는 곡 선택이다. 가사가 내 마음에 와 닿아서 좋아하는 노래를 한 곡을 선택한다. 이때 유의할 것은 꼭 자신의 마음에 와 닿는 노래, 적어도 한 소절이라도 가사가 마음에 들어서 좋아하는 노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분석에 앞서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고 한 번 써 본다. 꼭 써 보아야 한다. 분석 후에 갑자기 그 노래가 싫어진다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지만 원래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증거로 남겨서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신만의 '비합리SONG' 찾기를 어려워하는 학생들을 위해 나는 위에 제시한 캔디 주제가를 예시로 설명하곤 한다. 그러면 마음에 와닿지는 않지만 쉽게 접할 수 있는 동요나 다른 만화 주제가를 그냥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 과정에서 발견한 것은 의외로 동요나 만화 주제가의 가사에는 비합리적인 사고를 강요하는 내용이 많다는 것이다. 좀 오래된 동요나 만화 주제가일수록 더하다. 지금의 어린 학생들에게는 생소하겠지만 <달려라 하니> 같은 만화 주제가 또는 대표적인 크리스마스 캐럴송 <울면 안돼>가 바로 그것이다.  그나마 정신적으로 건강한 노래가 <빨강머리 앤>이다. '주근깨에 빼빼 마른 앤이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럽다'는 그 말이 앤에게는 얼마나 힘이 되었을까.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마라는 것보다는 훨씬 건강하지 않은가.

애창곡에 숨어있는 인지적 오류

대개 선택하는 곡은 애창곡이다. 혹시 노래 중에서 찾지 못한다면 좋아하는 시를 골라도 무방하다. 좋아하는 시 찾아오기를 과제로 활용한 적도 있는데 시는 문자로 표현되니 훨씬 시각성이 있어서 분석하기에 좋다. 노래가사를 막상 글로 써서 읽어보면 어색한 느낌이 들기도 하니까. 부르면서 한 번 노래가사를 주욱 써본다. 컨닝을 해도 좋다. 들을 때는 몰랐거나 심지어 잘못 알고 있었던 가사도 있다. 써 보는 것만으로도 자각되는 바가 있다. 하지만 본론은 지금부터다. 이제부터는 일단 의심을 하고 질문을 해야 한다. 반박을 하면 더 좋다. 그냥 물흐르듯이 술술 이해되고 수용되는 것은 그냥 지나가면 된다. 그런데 뭔가 불편하고 찜찜한 느낌이 드는 부분에서는 반문해 보아야 한다.  아니면 대놓고 안티가 되어 보아도 좋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학생들이 자주 찾아오는 노래 한 가지를 소개한다. 다음은 강산에의 <넌 할 수 있어>의 일부분이다. 이 노래는 제목에서부터 완벽주의라는 핵심 신념의 냄새를 확 풍긴다.

후회하고 있다면 깨끗하게 잊어버려. 가위로 오려낸 것처럼 다 지난 일이야

후회하면 왜 꼭 잊어버려야 하지? 지우개로 지우는 정도로는 안 되나? 왜 꼭 가위로 삭둑 오려내야 하는거지? 지나간 일들은 왜 꼭 가위로 오려내듯이 잊어버려야 하지? 

 후회하지 않는다면 소중하게 간직해. 언젠가 웃으며 말할 수 있을 때까지 

후회해도 소중하게 간직하면 안되나? 꼭  웃으면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간직해야 하나? 언젠가 꼭 웃으면서 말할 수 있어야 하나? 웃을 수 없어도 말할 수 있잖아(흑백논리, 절대적 사고, 조건적이고 당위적인 사고, 부인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할 수가 있어. 그게 바로 너야

못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할 수 없으면 내가 아닌 건가? 나는 왜 꼭 할 수 있어야 하지? 

 굴하지 않는 보석같은 마음 있으니 

굴하지 않는 보석 같은 마음이 없으면 어쩌지? 마음이 굴하지 않는 보석이 아닐 수도 있잖아(나는 굴복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꼭 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음도 굳세어야 한다

인지치료의 한 방법

그리고 (  )에 쓴 것처럼 어떤 인지적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어떤 내용의 비합리적 사고를 하고 있는지, 어떤 방어기제가 표현된 것인지 등등을 써 본다. 이를 토대로 자신의 비합리적 사고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 노래를 듣거나 불러보며 느낌이 어떠한지 살펴본다. 과제 보고서에서는 일련의 과정을 서술하고 마지막으로 소감을 씀으로써 메타인지metacognition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뭐 이런 식이다. 사실 형식은 없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지치료의 부수적인 실습이다. 인지치료나 인지행동치료 수업에서 아론 벡Aron T. Beck이 강조하는 자동적 사고, 인지적 오류, 핵심 신념 찾기를 어려워하는 학생들에게 일상에서 그것을 찾아보고 또 심리학적 지식을 응용해 보는 재미있는 작업을 해 보자는 취지이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자동적 사고를 찾고 인지적 오류를 깨달으며 자신을 괴롭혔던 원인으로 작용하던 핵심 신념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그 노래를 좋아한 이유

이렇게 분석을 하다보면 자신의 애창곡이 너덜너덜해져 마음이 편치 않거나 그 노래가 싫어질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여전히 그 노래는 자신에게 위로가 되고 용기를 주며 희망을 품게 해 준다. 그토록 찾아 내어 바꾸고 싶었던 비합리적인 사고를 애창곡에서 찾아냈다는 것은 적어도 그 가사를 쓴 작사가 만큼은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이며 그 곡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곡이라면 그 만큼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하게 느낀다는 점에서 안도가 되고 힘이 된다. 비합리적이고 부담스러운 그 생각이 지금의 나(썩 마음에는 안 들지 몰라도)를 만든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힘든 점이 있다면 이제는 한 번 바꿔 보자. 이런 생각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완전 성공인데... 인지치료를 배우면서 자신의 비합리적 신념 찾기가 어렵다면 '나만의 비합리SONG' 찾기를 한 번 시도해 보기 바란다. 참고로 학생들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대중가요는 <나는 문제 없어>, <혼자가 아닌 나>, <걱정하지 말아요> 등이다mind

김근향 대구대 심리학과 교수 임상심리 Ph.D.
너무 어린 나이에 멋모르고 꿈을 심리학자로 정해버려 별다른 의심 없이 그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 그 여정에서 다시 태어나면 꼭 눈에 보이는 일을 해 봐야지 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의 심리학 대세론에 선견지명이 있었다며 스스로 뿌듯해 하며 또다시 새로운 꿈을 꾸어 본다. 마음 통하는 사람들과 생생한 삶 속에서 심리학의 즐거움과 재미를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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