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잘 되기 바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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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잘 되기 바란다면
  • 2019.11.06 15:15
자녀가 자신의 끼를 맘껏 펼치며 살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그러나 무조건 공부 잘 하기를 바라는 부모는 자녀의 꿈을 틔우기에 좋은 토양이 아닐 수도 있다.

얘, 공부해야지!

모 대학 연구소는 작년에 자살한 중고생 118명 가운데 89명을 조사하였다. 이들 가운데 자살 당시 겪었던 고민을 대략 파악할 수 있는 학생 수는 75명이었는데, 분석 결과 가장 많았던 고민은 성적문제였다. 대구만 하더라도 2012년과 2014년에 여고생이 성적을 비관해 자살한 사건이 있었고 2014년 말에는 여고생이 수능성적을 비관해 자살하려고 선로에 누웠다가 극적으로 구조된 사건이 있었다.

어린 헨델이 혼자 피아노를 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부모가 놀라워하는 있다. 영국 화가 마가렛 딕시의 작품이다. Margaret Dicksee (1858~1903), 'The Child Handel', 1893, oil on canvas,  91.5 *  122 cm, Brighton Museum & Art Gallery, UK.
어린 헨델이 혼자 피아노를 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부모가 놀라워하는 있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가정 풍경을 주로 그렸던 마가렛 딕시의 작품이다. Margaret Dicksee(1858~1903), 'The Child Handel', 1893, oil on canvas, 91.5 * 122 cm, Brighton Museum & Art Gallery, UK.

10대 사망 원인 가운데 1위가 자살이라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자살 원인 중에는 학업 스트레스도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학업 스트레스가 학생들을 벼랑으로 몰고 가는데도 부모들은 자녀에게 공부를 강요하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필자는 우리 문화 특성에서 그 이유를 찾고자 한다.

이유를 설명하기 전에 한국, 중국, 일본, 그리고 베트남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자. 무엇이 떠오르는가?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첫째, 유교 영향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고, 둘째 교육열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들 국가가 교육열이 강한 것은 아마도 과거시험과 같이 인재등용 수단이 실력을 위주로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과거시험이 신분상승을 위한 기회가 되었듯이 좋은 대학을 나오는 것이 신분상승의 기회라고 보는 것 같다.

교육열이 가족주의를 만나면

여기에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특성이 덧붙여지는데 이것이 바로 가족주의이다. 중국이나 일본도 가족주의 경향이 강하고 중동이나 남미도 가족주의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독특한 특성이 있는데, 가족에게 적용되는 규칙이 사회로 확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 예가 식당에서 종업원을 부르는 호칭을 생각해 보라. 우리나라는 가족주의 경향이 매우 강한 문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때문에 부정적인 측면이 드러나기도 한다. 한말에 의병들이 전국에서 일어나 항거하던 시절, 한 의병장이 서울로 진격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불효는 불충이라고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단재 신채호 선생도 가족주의가 문제라고 지적하였다고 하는데 가족주의가 부정적으로 흐르게 되면 내 가족만 생각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런 경향으로 남은 어찌되건 오로지 내 자식만 잘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해진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한 가정을 들여다보면 아이들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데 부모는 여전히 조선시대를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아이들은 다방면으로 뻗어 나가려고 하지만 부모는 여전히 장원급제만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잘못된 것은 없다. 오히려 바람직하다.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부모의 바람이 꽃을 피우려면 21세기에 맞게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대중매체에서 늘 강조하듯이 21세기는 창의성을 요구하는 시대라고 한다. 창의성 있는 인재가 21세기를 이끌어간다고 강조한다. 창의성 있는 인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창의성을 발휘하려면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자기’를 마음껏 드러낼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아이는 자기 길을 알아서 잘 간다. 비록 부모의 바람과 달라서 부모가 힘들 수는 있겠지만.

우리 아이가 잘 하는 것 찾아주기

21세기에 자녀들이 잘 되기를 바란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아이를 관찰하는 것이다. 자녀가 관심 두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자녀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잘 하는 것이 무엇인가? 상담할 때 부모에게 이렇게 말하면 늘 듣는 소리가 ‘우리 아이는 잘 하는 게 없어요’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우리 아이는 내가 잘 하기를 바라는 것을 잘 하지 못해요’다. 부모가 기대하는 것을 자녀가 못 하는 것이지 자녀가 잘 하는 게 없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관찰해서 자녀가 잘 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주면 아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아이가 잘 하는 게 아니라 부모가 원하는 것을 아이가 잘 하기를 바라면 부모는 늘 ‘우리 아이는 하고 싶어 하는 게 없어요.’라는 답밖에 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조언을 하면 또 하나 걱정이 생긴다. 아이가 엇나가면 어떻게 하나? 그래서 사회에서 낙오가 되면 어떻게 하나? 이는 마치 자녀를 염려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자녀가 아니라 부모 자신을 못 믿는 것이다. 부모가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있으면 자녀도 믿을 수 있고 자녀가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믿음도 줄 수 있다. 하지만 부모가 자기를 못 믿으면 자녀도 또한 못 믿게 된다. 부모가 건강하면 자녀가 엇나가는 일은 없다. 자녀가 엇나갈까봐 걱정한다면 시선을 자녀가 아닌 부모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나는 나를 믿고 있는가?

한 조사에 따르면 아이들이 부모에게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사랑해’였는데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공부해’였다. 부모가 자녀를 건강하게 사랑하면 아이들은 스스로 알아서 잘 한다. mind

허재홍 경북대 심리학과 교수 상담심리 Ph.D.
사회불안의 치료에서 수용의 역할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하고 현재 경북대 심리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상담과정에서 정서 역할, 핵심감정을 기반으로 한 정신역동상담, 한국문화에서 정신건강 등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와 상담을 하고 있으며 단기 정신역동상담 모형개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역서로는 「초보자를 위한 정신역동상담」(2014), 「정서조절을 이용한 아동청소년상담」(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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