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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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 2019.11.13 15:00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다. 당장 내가 먹고 살만 해야 남 챙길 여력이 생긴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곳간에서 행복도 나올까? 곳간이 크고 풍요로울수록 우리는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언젠가 서장훈씨와 이상민씨가 출연하는 방송을 본 적 있다. 그 때 게스트로 나왔던 한 연예인이 서장훈씨에게 건물이 있으면 어떤 기분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너무 행복할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서장훈씨는 고민 없이 "행복이 결코 돈과 비례하지는 않더라"고 답했다. 부유하다고 소문난 연예인이 하는 말이니 믿을 만한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이 때 가만히 듣고 있던 이상민씨가 일어나 말했다. 돈이 계속 많았던 사람에게서는 돈과 행복의 관계에 대해 정확한 답을 받을 수 없다고 말이다. 그는 큰 돈을 벌었다 한 순간 빚더미에 앉게 되었던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그래도 돈이 있는 것이 행복에 꼭 필요하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당장 무엇이 있으면, 혹은 어떤 일이 생기면 행복할 것 같냐는 질문에 '로또'에 당첨되는 것을 말한다. 일하지 않아도 풍요롭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돈으로는 분명 행복을 살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누군가가 말한다. 돈과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반대되는 두 이야기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고는 한다. 돈과 행복의 진짜 관계는 무엇일까? 

낡은 구두에도 행복이 깃들 수 있을까.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이 작품을 두고 "이 신발의 어두운 틈에서는 농부의 고달픈 발걸음이 새겨져 있다'고 했다. Vincent van Gogh (1853 - 1890), 'Old Shoes', 1886, oil on canvas, 38.1 x 45.3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낡은 구두에도 행복이 깃들 수 있을까.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이 작품을 두고 "이 신발의 어두운 틈에서는 농부의 고달픈 발걸음이 새겨져 있다'고 했다. Vincent van Gogh (1853 - 1890), 'Old Shoes', 1886, oil on canvas, 38.1 x 45.3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이스터린(Easterlin)의 역설

돈과 행복 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미국의 경제학자 이스터린Easterlin이다. 그는 돈과 행복의 관계에 처음으로 관심 가졌던 사람인 동시에, 이 분야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이론의 주인공이다. ‘이스터린의 역설’로 유명해진 1974년 논문에서 그는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스터린은 경제성장이 곧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쳤다Easterlin, 1974. 19개국을 대상으로 했던 그의 연구에서 그는 국가 내에서는 경제력에 따라 행복수준이 달라지지만, 19개국을 비교해보면 나라의 경제력에 따라 국민들이 더 행복하거나 불행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1946년에서 70년까지의 미국이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워진 것에 비해 사람들은 더 행복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후 다른 국가에서도 볼 수 있었다.

1957년-2002년 미국의 소득과 행복수준. 출처: The World Watch Institute. Brian Halweil and Lisa Mastny (project directors), State of the World 2004: A Worldwatch Institute Report on Progress Toward a Sustainable Society, Linda Starke, Editor (N.Y., W.W. Norton & Company, Inc., 2004), http://ec-web.elthamcollege.vic.edu.au/snrlibrary/resources/subjects/geography/world_watch_institute/pdf/ESW040.pdf, Figure 8-1, p 166
1957년-2002년 미국의 소득과 행복수준. 출처: The World Watch Institute. Brian Halweil and Lisa Mastny (project directors), State of the World 2004: A Worldwatch Institute Report on Progress Toward a Sustainable Society, Linda Starke, Editor (N.Y., W.W. Norton & Company, Inc., 2004), http://ec-web.elthamcollege.vic.edu.au/snrlibrary/resources/subjects/geography/world_watch_institute/pdf/ESW040.pdf, Figure 8-1, p 166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국가 내에서는 사람들의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행복하다.
  2. 하지만 국가 간 비교에서는 경제력에 따라 행복수준이 달라지지 않았다. 
  3. 나라의 경제발전이 국민들의 행복을 증진시키지 못했다.

소득은 상대적이다

일관된 결론을 내리기에는 다소 혼란을 주는 발견이었지만, 이스터린은 이를 훌륭하게 설명해 냈다. 바로 상대적 소득 개념을 통해서이다. 소득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되는 상대적인 면이 행복에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위의 결과들이 나왔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월급 300만 원을 받는다면 나의 소득은 많은 것일까 적은 것일까? 월급이 100만 원인 친구를 볼 때에는 많고 500만 원인 또 다른 친구보다는 적다. 자신이 속한 사회 내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위치를 비교해 가며 상대적인 위치를 파악한 후 그만큼의 행복을 자신의 수입으로부터 누린다. 반면 국가 간의 차이는 개인에게 피부로 와 닿기 어렵고(인터넷이 보급되기 이전에는 더욱 그랬다), 따라서 국가의 경제력이 사람들의 행복수준에는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논리는 미국 경제가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지 않았다는 면까지도 완벽하게 설명해낸다. 나의 절대적인 수입이 몇 년 간 늘었어도 100만 원 벌던 내 친구와 500만 원 벌던 다른 친구의 수입도 함께 늘면서 어쨌든 나의 상대적인 위치는 몇 년 전과 비슷한 수준에서 머물러 있을 테니 말이다.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부유해지는 것 자체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대다수에게는 다소 위안이 되기도 한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나의 상태에 만족할 줄 안다면, 우리는 어떠한 경제적 조건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며 인정받았던 이스터린의 이론은 그러나 아쉽게도 많은 연구에 의해 반증되었다.

이스터린, 자네가 틀렸네

이스터린을 가장 끈질기게 반박하고 나선 사람은 빈호벤Veenhoven이라는 네덜란드의 사회학자였다. 그는 약 25년 세월 동안 5편이 넘는 논문을 통해 이스터린을 반박해 왔는데, 그 논문 중에는 제목이 ‘이스터린의 착각'인 것도 있을 정도이다. 

빈호벤은 많은 자료를 통해 ‘소득이 많아지더라도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이스터린의 주장을 지속적으로 반박하였다Veenhoven, 1991. 특히, ‘상대적 수입’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빈호벤은 행복이 어떻게 상대적이기만 할 수 있겠냐는 주장을 펼쳤다. 우리는 물론 다른 이들과의 비교에서 행복과 불행을 느끼기도 하지만, 행복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밥’이다. 모든 사람들은 삼시 세 끼를 통해 필요한 양의 음식을 반드시 섭취해야 한다. 이 때, 돈이 없어 하루에 밥을 두 끼밖에 못 먹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옆 사람과 비교해 봤을 때 적게 먹어 억울해서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필요한 양이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불행을 느낄 것이다. 남과 비교해 보지 않아도 배고픔은 행복을 갉아먹는다. 같은 맥락에서 하루 다섯 끼를 먹으며 하루 세 끼 먹는 사람보다 많이 먹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이스터린의 역설은 다른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도 반증되었다. 예를 들어, 잉글하트Inglehart의 연구팀은 각 국가의 1인당 GDP와 행복수준을 보았는데, 밑의 그림을 보면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Inglehart et al., 2008. 빈곤국에서는 GDP가 높아질수록 국민들이 행복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끼밖에 못 먹다 세 끼를 먹을 수 있게 되니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들의 평균치를 나타내는 곡선의 변곡점을 기준으로 GDP가 높은 국가에서는 이 둘 사이 관계가 약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밥을 다섯 끼 먹는다고 세 끼 먹는 사람보다 확연히 더 행복한 것은 아니라고 이해할 수 있다.

Inglehart와 동료들, 2008에서 발췌. 한국은 연구가 진행되던 당시 1인당 GDP의 증가가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감소되기 시작하는 구간에 있었다.
Inglehart와 동료들, 2008에서 발췌. 한국은 연구가 진행되던 당시 1인당 GDP의 증가가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감소되기 시작하는 구간에 있었다.

연구팀은 결국, 먹고 살기 힘들 때에는 수입이 늘면 그만큼 더 행복해지지만, 어느 정도의 욕구가 충족된 이후에는 다른 것들이 중요해진다고 말한다. 전에는 ‘사느냐 죽느냐’가 중요했지만, 여유로워지면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해진다는 것. 이때 ‘어떻게’를 좌우하는 것에는 그 사회가 얼마나 자유로운지, 민주적인지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 신뢰하고 유대감을 느끼는지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현상은 개인 간에도 발견된 바 있다.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누군가에게만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단순히 돈의 액수를 보기보다 ‘돈이 늘어나는 비율’과 행복의 관계를 보면 어떨까? 200만 원 벌던 사람의 수입이 400만 원이 되면 생활수준도 두 배로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2000만 원 벌던 사람의 수입은 200만 원 늘어나는 것으로는 티가 안 난다. 2000만 원에서는 4000만 원 정도로는 올라야 생활수준이 두 배가 되는 느낌이 들 것이다. 돈의 액수 자체를 보기보다 ‘돈이 늘어나는 비율’을 보자는 것은 이 점을 고려하자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돈과 행복의 관계를 보면 어떨까?

아래 그래프에서 그 답을 볼 수 있다. 그림과 같이 ‘소득이 늘어나는 비율’과 행복의 관계는 돈이 얼마나 많든 적든지 간에 함께 증가한다(Diener et al., 2010). 이것이 심리학에서 돈과 행복의 관계에 대해 내려진 가장 최근의 결론/발견이 되겠다.

Diener, Ng, Harter와 Arora, 2010에서 발췌.
Diener와 동료들, 2010에서 발췌. 실선은 삶의 만족도와 소득의 관계를, 동그라미로 표기된 점선은 부정적인 정서를 적게 느끼는 것과 소득의 관계를, 그리고 세모로 표기된 작은 점선은 긍정적인 정서를 많이 느끼는 것과 소득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어느 연구 분야에서건 상식을 뒤집는 예상 밖의 결과가 주목받는다. ‘경제성장은 국민의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이스터린의 역설은 의외의 결과로 각광받았지만, 40년이 지난 지금은 다른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정말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 그렇기도 하고 동시에 아니기도 하다. 이상민씨의 말대로 돈이 너무 없을 때에는 돈이 행복을 살 수 있겠지만, 서장훈씨의 말대로 어느 정도의 욕구가 충족된 이후에는 돈의 역할이 줄어든다. 하지만 경제력이 향상되는 비율까지 따져본다면 결국, 돈은 행복에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라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것은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개인의 수입이 배로 증가하면 그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은 돈은 전부가 아니며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말하기 쉽다. 물질주의적 성향(돈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 성향)이 행복을 갉아먹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돈을 쫓는 마음을 경계해야 함은 맞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밝혀진 결과를 보면, 행복은 마음의 문제라고만 여기는 태도 또한 경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에게는 돈이 다가 아니라는 공허한 위로보다는 그 상황을 변화시킬 무엇인가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사회적으로는 인간적 삶을 보장하는 안전망과 노력이나 재능에 대한 기회가, 개인적으로는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와 실천력 같은 것들 말이다. mind

   <참고문헌>

  • Diener, E., Ng, W., Harter, J., & Arora, R. (2010). Wealth and happiness across the world: Material prosperity prdicts life evaluation, whereas psychological prosperity predicts positive feeling.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9(1), 52-61.
  • Easterlin, R. (1974). Does economic growth improve the human lot? Some impirical evidence. In: Paul A David and Melvin W. Reder (Eds) 'nations households and economic growth: essays in honor of Mozes Abramowitz, New York, Academic press.
  • Inglehart, R., Foa, A., Peterson, C., & Welzel, C. (2008). Development, freedom and rising happiness: A global perspective (1981-2007). Perspectives on Psychological Science, 3(4), 264-285.
  • Veenhoven, R. (1991). Is happiness relative? Social Indicators Research, 24, 1-34.
김여람 ‘민사고 행복 수업’ 저자 사회 및 성격심리학 MA
민족사관고등학교에서 4년간 심리학 교사로 재직하였다. 행복을 주제로 하는 긍정심리학을 중심으로, AP심리학(심리학개론), 선택교과심리학, 사회심리세미나, 심리학논문작성 등 다양한 수업을 진행하였으며 진학상담부의 상담교사로서 아이들과 많은 고민을 나눴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민사고 행복 수업'이라는 책을 출간하였고, 현재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심리학 교과서를 집필 중이다. 재미있고 유익한 심리학 연구들을 보다 많은 이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계속하고자 한다. 연세대에서 경영학과 심리학을 이중전공하였으며 동 대학원에서 사회 및 성격심리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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