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를 위한 기도' - 전환치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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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를 위한 기도' - 전환치료 이야기
  • 2019.11.09 09:00
동성애자이면서도 사회적 시선이 두려워 이성애자로 전환치료를 받고자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 진짜 치료를 받아야 할 대상은 누구일까요?

이성애자가 되고 싶어요

벌써 7년 정도 지난 일입니다. 당시 학생상담센터에서 접수면접을 담당하고 있던 저는, 저를 굉장히 고민하게 만들었던 어떤 내담자를 만났습니다. 모자를 푹 눌러쓴 채 행여 누가 볼세라 종종걸음으로 상담센터에 들어온 그는, 자신이 평생 동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껴 왔으며, 더 이상 그러한 유혹에 시달리기 싫어 자신의 성적 지향성Sexual orientation을 바꾸고 싶다고 밝혀 왔습니다. 이제 대학도 왔으니 이성에게, 그러니까 여성에게 호감을 느끼고 싶으며, ‘정상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었지요.

이 글을 읽으시는 모니터 너머의 독자님, 풋내기 상담자로서 그 분을 처음 만났을 때의 제 심정을 한 번쯤 공감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만약 당신이 상담자로서, 동성애자로서의 삶이 너무나 힘드니, 성적 지향성 바꾸는 것을 도와달라고 찾아온다면, 당신은 어떤 결정을 내리고 싶은지요

이 주제가 생소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십중팔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을지 고민하기 시작할 겁니다. 성적 지향성을 바꾸고 싶다니, 그렇게 해도 되는 걸까? 그게 가능하기는 할까? 한다면 어떻게 하는 걸까? 그런데 내담자 본인이 동성애자로서 살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지 않나? 이 사회에서 동성애자로서 살아가는 게 힘든 것은 사실인데, 상담자란 무릇 내담자의 원활한 사회적응을 도와야 하는 사람이 아닌가? 아직 성 정체성이 확고하지 않은 청소년이라면,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는이성애자가 되도록 도와주면 좋지 않을까?

사실, 이런 말은 저의 동료 상담자와 친구들로부터도 여러 번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정체성을 바꾸고 싶다고 의뢰해 오는 내담자들이 정말이지 적지 않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런 고민에 그 내담자를 위하는 마음이 아예 없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사람들,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가 세상의 섭리라든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노리는 것은 바로 이런 사람들의 선의입니다

선의의 옷을 입은 혐오

지난 201910월 열렸던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는 성소수자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이 열렸습니다. 정신과의사들이 모여 성소수자의 정신건강을 논하는 의미 있는 자리였습니다만, 유명 정신의학 교과서를 집필하기도 한 원로 교수가 전환치료를 옹호하는 발표를 한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이랬습니다. “여러 의학적 근거를 토대로 볼 때, 동성애는 개인이 원하면 의지로 통제할 수 있다. 의사는 치료를 원하는 개인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며, 원한다면 성적 지향을 바꾸는 치료를 할 수 있다.” 

정신장애의 바이블이라고 불리는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DSM에서 동성애가 제외된 지도 어언 30년이 흘렀으니, 성소수자를 내심 혐오하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이제 학회나 정책 회의 같은 점잖은자리에서는 성소수자가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죄악이라고 악을 쓰지는 않습니다. 그 대신 그들은 성적 지향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고, 특히 종교적 치료를 통해서 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말하지요

사실 이러한 주장이 얼핏 일리 있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말마따나 개인의 선택은 존중 받아야 하는 것이며, 환자 혹은 내담자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게다가 성소수자로서 살아가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여전히 성소수자들은 많은 차별과 배척을 경험하며, *시스젠더-이성애자에 비해 우울과 불안을 비롯한 심리적 증상을 경험할 위험이 높고, 자살 위험도 높습니다. 그러니 도의적인 측면에서 그런 힘든 삶을 살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그런 주장이 설득력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어도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것만은 한번쯤 생각해주기를 바랍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더 이상 성소수자이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이 그 말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사람이 힘들다고 느끼는 것은 특정 성별을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일까요, 아니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는 사회일까요

성소수자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전환 치료를 원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 그 사람이 이 사회의 이방인이나 부외자가 아니라 자연스러운일원이 되고 싶다는 욕구의 표현에 가까울 겁니다. ‘자연스럽지 않다, ‘존재해서는 안 된다, ‘부도덕하다고 규정되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이제는 그 정체성을 가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면, 정말로 치료해야 될 대상은 그 정체성이 아닐 겁니다. 그리고 그 정체성 자체가 치료 대상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내담자를 괴롭게 하는 바로 그 사회에 공모해 버리게 됩니다

전환치료효과는 있는가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한 분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드리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합니다. 전환치료에 대한 연구들은, 전환치료가 효과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우울과 불안, 자살사고의 위험을 더욱 높일 수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특히 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에 있는 청소년의 경우 이러한 위험이 더욱 높습니다.

미국 정신의학회와 심리학회에서는 전환치료는 비윤리적이라는 공식입장을 내놓은 바 있으며, 미국 일부 주에서는 전환치료가 불법으로 규정되었고, 독일 보건부에서는 올해 만 18세 미만 청소년에게 전환치료 시행을 금지하는 법안의 초안을 마련하기도 하였지요

바비를 위한 기도

영화 '바비를 위한 기도' 중
영화 '바비를 위한 기도' 중

이제는 인용할 일이 없기를 기원하는 영화 중에 <바비를 위한 기도>가 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한 주인공 바비는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깨닫게 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부모는 그에게 수치심을 주고, 전환치료에 데려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바비는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데, 그가 죽은 후에야 아들을 이해할 수 있었던 어머니는 울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알았어요, 하나님이 왜 바비를 치료하지 않으셨는지. 바비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었어요.”

개봉한 지 10년 이상 지난 영화입니다만, 바뀌어야 할 쪽이 누구였는지에 대해 여전히 깊은 울림을 주는 대사입니다.

그리고 굳이 이렇게 슬픈 영화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모습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할 때의 슬픔은 우리 모두 알고 있을 거라고 짐작해 봅니다. mind

시스젠더Cisgender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지정성별'과 본인이 정체화하고 있는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이 일치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생각하는 사람.

임민경 범죄피해 트라우마 통합지원기관 임상심리전문가
독문학과 심리학을 전공하였고, 현재는 임상심리전문가로서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언제나 누군가의 애독자이자 무언가의 애호가이며, 트위터 그만두어야 한다고 매일 말하지만 그만두지 못하는 트위터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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