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진실: 철학에서 과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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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진실: 철학에서 과학으로
  • 2019.07.08 10:00
당신은 행복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인류는 오랫동안 행복을 철학적 관점에서 얘기해 왔다. 그러나 서은국 교수는 행복 역시 과학적으로 설명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All happy families resemble one another; each unhappy family is unhappy in its own way.”

- 톨스토이Tolstoy의 '안나 카레니나'Anna Karenina

 

화가 이중섭(1916~1956)은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통해 일관되게 행복한 삶을 표현한 보기 드문 작가다. 한국전쟁으로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하자 일본인 아내와 아이들은 일본에 돌아갈수밖에 없었다. 가족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에 힘들어했지만 그의 그림은 늘 행복한 정서로 가득차 있다. '봄의 아동'(32*49cm. 1952~53년)이란 제목의 이 그림은 발거벗은 아이들이 자연과 함께 뒹굴며 놀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개인소장. 

우리는 모두 행복을 원한다. 하지만 행복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소확행’이나 ‘YOLO’와 같은 용어들이 우리의 일상 대화의 주제로 떠오르고 있지만, 행복 자체에 대한 인류의 관심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왔다.

그 출발점에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 BC가 서있다. 이탈리아의 바티칸박물관에 가면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라파엘로Raffaello가 남긴 ‘아테네학당’이라는 프레스코 벽화를 볼 수 있다. 고대 여러 사상가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은 이 작품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장면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담소를 나누며 내려오는 모습이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왼손에 두꺼운 책을 쥐고 있는데,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다. 서양 철학 전공자들의 필독서로 꼽히는 이 책은 현대인의 행복관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행복의 본질에 대한 체계적 논의를 담고 있는 첫 번째 철학책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

행복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행복은 최고의 선summum bonum이라는 주장이다. 그가 판단하기에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들은 인간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없다. 가령 시장을 본다든가, 회사에서 일하고 자녀를 돌보는 일과 같은 행위는 다만 행복(최고의 선)이라는 최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적 행위일 뿐이다. 다른 하나는, 행복은 남들에게 칭송받을 만한 고결하고 가치 있는 삶eudemonia을 구현하는 데 있다는 것이라 보았다. 일반인들이 느낄 수 있는 사사로운 일상의 즐거움이 아니라는 얘기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살던 당시 이러한 삶은 아주 소수에게나 실현 가능성이 있었다. 노예나 여성에게는 행복 추구의 기회조차 없다고 보았다. 귀족 출신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관은 상당히 엘리트주의였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관은 서양 문명과 함께 우리에게까지 전해졌다. 여기서 행복은 지금­ 여기에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칭송받는 가치 있는 인생을 만들어가는 장기적인 라이프 프로젝트가 된다. 이러한 생각에는 인간 중심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의 서양 철학자들은 인간을 다른 생명체와 질적으로 구분되는 특별한 존재로 여겨왔다. 낙타나 선인장은 행복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지 않지만, 오직 인간만이 정신적ㆍ추상적 목표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다. 당연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과연 다른 생명체와 질적으로 다른 특별한 존재일까.

최근 인간 중심적 사고에 의구심을 품은 심리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모든 생명체의 신체적ㆍ정신적 특성들의 기능은 결국 생존과 유전자 재생산에 맞추어져 있다는 진화심리학의 관점에 점점 더 많은 연구자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행복은 생명체에게 주어진 생존과 재생산 과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뇌의 ‘소프트웨어’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철학자들은 행복에 대하여 심오한 논리를 펼쳐 나갔지만, 따지고 보면 개인적인 견해opinions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정작 갈증을 느끼는 것은 행복에 관한 사실fact일 것이다. 가령 어떤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며, 또 행복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어떠한 것인지 하는 것들이다. 과학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같은 갈증을 해소하는데 필요한 적절한 방법을 과학은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일리노이 대학의 에드 디너Ed Diener 교수는 행복에 관한 과학적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심리학자이다. 그가 1984년 발표한 논문 “Subjective Well-Being주관적 안녕”은 행복에 관한 과학적 연구의 시발점이었다. 이후 3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과학적 연구를 통하여 행복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2천 년간 축적된 철학 담론의 성과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이중섭이 생각했던 행복한 세상은 이런 곳이 아니었을까. 자연과 인간이 스스럼없이 함께 살아가는 곳. 그 어떤 근심 걱정도 없이 어린이처럼 순수하고 소박한 삶이 가능한 곳. 화가는 가족과 함께 서귀포에 피난 와서 얼마간 살았다. 아마도 그 시간이 그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서귀포의 환상'(56 * 92㎝. 1951년)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화가가 그 당시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용인 호암미술관 소장. 

누가 행복한가?

행복에 대한 통상적인 생각들이 있다. 예컨대 사람들에게 행복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건강과 돈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과학적 연구를 통하여 드러난 사실은 이와는 상당히 다르다. 수많은 연구 결과를 보면, 돈ㆍ건강은 극심한 결핍이나 커다란 변화가 생기는 경우 이외에는 행복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오늘 아침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잘 일어났을 것이다. 또한 호흡, 소화, 혈액순환에 심각한 문제를 느끼지 않고 있을 것이다. 비교적 건강하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이 고마운 사실을 종일 생각하며 감격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병으로 고생하는 것보다는 건강한 것이 좋고, 가난한 것보다는 부유한 것이 낫다. 그런데도 왜 이와 같은 당연한 조건들이 행복감과 직결되지 않는 것일까? 명예, 지위, 출중한 외모와 같은 인생의 다양하고 좋은 자원들 또한 개인이 느끼는 장기적인 행복감과 큰 관련이 없다는 것이 연구결과다. 왜 그럴까? 이는 초기의 행복 연구자들도 가졌던 물음이고, 여기에 대한 설명이 몇 가지 제출되었다.

그 가운데 한 가지는 모든 사람에게는 적응adaptation이라는 막강한 심리기제가 작동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적응이란 어떤 자극에 대한 초기 반응이 시간이 흐르면서 급격히 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예컨대 당신은 지금 이 순간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는가? 오늘 아침 샤워를 하고 바지를 입을 때 피부에 천이 닿는 느낌이 분명히 있었겠지만, 이러한 촉감이 의식에서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 전이다. 옷에 대한 완벽한 적응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일단 옷을 입으면 피부에 닿은 천의 느낌은 중요한 정보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뇌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이러한 적응은 승진이나 결혼, 수술, 복권 당첨 등 인생의 크고 작은 일을 경험할 때도 일어난다. 수 년 준비해서 얻은 승진의 기쁨도, 억척스럽게 돈을 모아 실현한 새 집 장만의 뿌듯함도 며칠이면 사라지고 만다. 적응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인간이 어려운 순간들을 시간 속에서 치유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적응 덕분이다. 어떤 연구에 의하면, 일상에서 벌어진 좋거나 나쁜 사건이 개인의 행복감에 주는 직접적인 영향력은 대략 3개월 동안만 지속된다. 연초에 발생한 사건이 행복에 영향을 끼치는 유효기간은 3월 말까지라는 얘기다. 그래서 프랑스의 사상가 라 로시푸코La Rochefoucauld, 1613~1680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인생의 그 어떤 사건도 상상하는 만큼의 행복을 주지 못하고, 걱정하는 만큼의 불행을 가져오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라 로시푸코만큼의 통찰력을 가지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미래의 성공/실패가 가져올 행복/불행에 대해 과장된 생각을 하고, 이로 인해 현재의 즐거움이나 재미를 뒷전으로 미루게 된다. 적응의 위력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에 현재를 충분히 만끽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행복에 관한 중요한 팁 하나가 성립한다. 기쁨의 강도보다는 빈도에 초점을 맞춰라. 어차피 모든 즐거움은 적응으로 인해 소멸된다면, 한 번의 강렬한 체험보다는 여러 번으로 쪼개어 그 경험을 음미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이다.

인생의 여러 조건이 행복에 직결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개인차individual difference 때문이다. 흔히 결혼은 행복, 이혼은 불행과 동일시되지만, 이러한 생각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부풀려진 편견이다. 독일인 2만여 명의 행복 변화를 수년 간 추적한 연구 자료에 의하면, 결혼이나 이혼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사람마다 상당한 차이를 나타냈다. 물론 결혼하고 나서 행복감이 조금 상승한 사람도 있었지만, 결혼 후 행복감이 지속적으로 내려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놀라운 점은 이러한 결혼의 역효과가 무려 3분의 1의 독일인에게서 확인된다는 사실이다. 또 배우자와 사별한 뒤 많은 사람들은 불행해졌다고 느꼈지만, 오히려 행복감이 상승했다는 응답한 이들도 3분의 1이나 되었다. 승진하면 행복하고 임용고시에 탈락하거나 이혼하면 불행해진다는 생각은 너무 단순화된 행복 도식인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감이 높은지 낮은지를 가르는 요인은 무엇일까? 연구논문 수 백 편의 결론에 따르면, 신경증neurosis과 외향성extroversion이라는 두 가지 성격 요인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신경증이 약하고 외향성이 강한 사람이 더 큰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신경증이 높은 사람은 감정 변화가 심하다. 슬픔과 같은 부정적인 정서를 자주 경험하고 걱정도 많이 한다. 외향성이 높은 사람은 자극을 찾아 능동적으로 활동하고, 주장을 강하게 펼치며, 매우 사회적이다. 신경증이 심할 경우 행복해지기 어렵다는 것은 직관으로도 쉽게 이해된다.

외향성과 행복의 관계는 조금 복잡하다. 가령 외향성이 높은 사람은 보상에 대한 민감성이 높다는 연구도 있다. 길에서 만원을 줍는 행운을 경험할 때 외향성이 높을수록 더 큰 기쁨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같은 크기의 긍정적 자극에서 누리는 즐거움의 크기가 더 크다는 뜻이다. 이러한 기질이 행복 향상에 기여하리라는 사실은 쉽게 추론할 수 있다.

이중섭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었다. 그가 너무나 사랑했던 아내 이남덕(일본이름 야마모토 마사코)와 두 아들이야말로 무엇보다도 소중한 존재였다. 거의 벌거벗은 가족의 모습에서 그 어떤 물질적 풍요도 발견할 수 없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과 행복감이 넘쳐나는 작품이다. 작품제목 '가족'(41.6 x 28.9 cm). 이중섭미술관 소장. 

이보다 더욱 주목해야 할 외향성의 특성은 활발한 사회성이다. 외향성이 높은 사람일수록 하루 중 다른 사람과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고, 만나는 사람은 다양하며, 그 평균 숫자 또한 많다. 즉 외향성이 높다는 것은 늘 다른 사람들과 가깝게 교류하며 살아간다는 의미인 것이다. 사회적 경험의 중요성은 심지어 내향적인(외향성이 낮은) 사람들의 행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내향적인 사람은 '혼자 있기 좋아한다'는 것이 사회적 통념이다. 하지만 이는 오해에 불과하다. 내향적인 사람도 혼자 있을 때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 행복 수치가 높다. 내향적인 사람일수록 낯선 사람들에 대한 긴장감이 큰 것이지 사람 자체를 덜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왜 행복감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물론 홀로 있는 시간 속에서도 행복한 순간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확률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가령 A(양치질)와 B(충치 발생)라는 현상이 관련 있다는 것은, A가 높으면(자주 양치질을 하면) B의 확률이 떨어진다는 의미이지, B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행복의 경우를 적용하자면, 사회적 경험이 풍부한 사람일수록 행복을 느낄 확률이 보다 높다는 말이다.

결국 외향적이든 내향적이든 성향을 막론하고 누구나 혼자일 때보다는 좋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더  즐겁다. 이러한 사회적 경험은 행복을 좌우하는 무수한 요인들 가운데 그저 그런 한 가지 요인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가장 독보적인 요인이다. 이러한 성격적 기질은 어느 정도 유전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어느 순간 마음먹는다고 하루 아침에 바꿀 수는 없다. 그렇지만 외향적 성향과 행복의 견고한 관련성을 감안한다면, 외향적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결정적인 특성을 모방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수 있다. 즉 사람을 가까이 두고 자극을 주고받는 일상 습관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행복은 어떤 사회적 환경에서 만들어지나?

한 사람의 최종 행복 값은 그의 개인적인 특성과 더불어 그가 살고 있는 사회, 문화적 특성에 의해 좌우된다. 행복의 개인차와 문화차를 가르는 특성은 다르다. 예컨대 성격적 특질은 같은 한국인인 경우 누가 더 행복한가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이지만, 미국인이 왜 일본인보다 더 행복한가를 살펴보는 변인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행복감이 높은 사회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 캐나다 캘거리 대학의 연구팀은 2017년 “The happy culture”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들은 행복감이 높은 문화의 주요 특성을 호프스테드Hofstede가 제시한 4개의 문화영역에 따라 분석했는데, 흥미로운 결과를 도출했다.

행복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개인주의와 여성성이 높은 반면, 권력 거리감과 모호함에 대한 거부가 낮다는 것이다. 쉽게 풀어 말하자면, 권력 분배가 수평적이고, 경쟁보다 상호 이익ㆍ화목을 중시하고, 규율과 규제가 비교적 적으며, 개인의 가치와 의사가 집단에 의해 희생되는 경우가 적은 사회일수록 행복감이 높다는 뜻이다. 이러한 특성들은 각 사회의 정치 및 경제적 요인들을 고려하더라도 여전히 행복과 관련을 맺게 된다.

현재 한국 사회는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안타깝게도 위의 모든 영역에서 행복과 반대되는 방향에 서 있다.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권력 구조가 견고하고, 타인과의 상호 공존보다는 경쟁하는 구도가 확연하며, 이익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타인을 취급하는 경우가 만연한 실정이다. 위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주위에 있느냐는 질문에 “있다”고 답변한 비율이 OECD국가들 중 한국이 가장 낮다. 규범이라든가 일상의 사사로운 규칙들이 지나치게 많다. 작은 규칙을 벗어난 행동에 대한 비난이 과한 반면, 탈세ㆍ표절ㆍ비리ㆍ사기와 같은 중범죄에 대한 처벌은 약한 편이다. 사회적 투명성은 행복의 중요한 조건이지만, 한국은 이 부분에서도 개선해야 할 여지가 많다.

한국 사회에서 행복을 저해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물질주의적 가치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다. 현대인에게 돈은 중요한 삶의 수단이지만, GNP가 1만 달러를 넘는 국가에서는 행복과 경제적 부가 같이 가는 것은 아니다. 유럽의 부유한 국가에서 행복도가 높은 이유는 경제적인 요인보다도 높은 수준의 자유, 낮은 부패율, 확실한 인권보장과 같은 비물질적인 요인에 있다. 최근 연구들은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는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돈에 가치를 부여할 경우 오히려 행복감이 감소한다고 지적한다. 돈은 타인과의 교류 없이 저 홀로 잘 살 수 있다는 자기 충만감self-sufficiency을 양산하는데, 이와 같은 태도는 행복의 원천인 사회적 경험의 가치를 과소평가하도록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1952년 아내와 아이들은 일본으로 떠났지만 이중섭은 늘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을 꿈꾸었다.  언제가는 족과 재회할 것이라는 희망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가 지탱할 수 있었던 힘이었다. '길 떠나는 가족'( 64.5 * 29.5㎝)이라는 제목의 이  작은그림은 1954년의 작품으로 우마차에 가족을 태우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담고 있다. 가족이 생이별한 상황에서 이토록 경쾌하고 즐거운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회적 경험이 중요한 이유

오래 전부터 철학자들은 삶의 궁극적 이유 혹은 목적이라는 관점에서 행복을 설명해 왔다. 하지만 과학적 시각에서 냉철하게 해석한다면, 행복감과 같은 긍정적 정서가 인간의 뇌에서 분출되는 것은 생존에 필요한 자원(음식이나 사회적 관계)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성취하도록 이끄는 일종의 유인책으로 볼 수 있다. 행복감을 유발하는 요인은 무수히 많지만, 한 번 획득하면 큰 변화가 없는 조건들(좋은 집, 건강)은 행복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적응이라는 심리 기제가 발동하기 때문이다. 반면 사람을 지속적으로 접하도록 만드는 외향성과 같은 성격 특성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은 행복을 유발토록 하는 자극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상호 신뢰가 높고 다양한 개인의 가치를 수용하는 열린사회에서 행복이 배양될 가능성은 더 높다.

행복은 인생에서 무엇을 얼마나 가졌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잡으려고 매달릴수록 오히려 더 부여잡기가 힘들어진다. 행복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양질의 사회적 경험이다. 사람들과 의미 있는 교류를 하며 각자가 설정한 목적지로 향해 가는 여정에서 맞게 되는 시원한 바람 같은 것이 어쩌면 행복일지 모른다.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사회 및 성격심리 Ph.D.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인용되는 행복심리학자 중 한 명이다. 발표한 논문들은 OECD 행복측정 보고서에 참고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미국 일리노이대(어버너 섐페인)에서 박사를 했으며,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부교수로 지냈다. 저서로 『행복의 기원 』(201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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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은 2019-10-11 09:49:48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