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짓 바르도와 명예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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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짓 바르도와 명예살인
  • 2019.11.11 08:00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요즘 서로의 문화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지만, 명예살인과 같은 일도 인정해야 할까? 문화심리학자의 입장을 들어보자.

브리짓 바르도 vs. 손석희

몇 세대 전에는 전설의 여배우였던 브리짓 바르도는 수십 년 간 사람들의 관심에서 잊혀졌지만 한국 덕에 새롭게 태어났다. 바로 서울 올림픽을 보이콧하자는 운동을 진두에 지휘한 여자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개고기를 먹는다는 이유로. 배우로서 한물간 이후로 대중의 관심에 목이 말랐으나 사람에 대한 사랑과 애정은 전혀 없고 오로지 동물의 권익에만 올인한 바르도에게 개고기를 '상용' 혹은 '상식'하는 한국인들이 올림픽을 개최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며 동시에 자신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 절대절명의 기회였다.

그런 브리짓 바르도를 지금 JTBC 사장인 손석희 앵커가 국제전화로 인터뷰에 끌어낸다. 손석희 앵커(그 당시)'프랑스인들도 다른 문화권에서는 혐오하는 음식, 예를 들어 달팽이를 먹지 않느냐'라고 지적했을 때 논리가 부족한 바르도는 헛소리를 되풀이하다가 지 성질을 못 이겨 '하여간 한국인은 야만인'이라고 대갈을 하고 전화를 끊어 버린 에피소드는 매우 유명하다. 88년 얘기다.

문화의 다양성은 인정해야지!

그렇다. 브리짓 바르도는 틀렸다. 무슨 음식을 먹건 안 먹건 그건 나름대로의 생태적 조건과 거기서 발생된 문화적 현상이다. 그래서 우린 다른 문화를 존중하며 그들이 먹는 것, 입는 것, 생각하는 방식을 존중해야 한다여기까지만 하면 우린 다문화를 인정하는 멋진 세계인이다.

명예살인도 인정해야하나?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단순한가? 이번에 '명예살인'의 경우를 보자. 인도를 포함한 생각보다 많은 문화에서는 연애를 통한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가문과 가문의 통혼을 통해 경제적 규모를 확대하고 그 결과 정치적 세력도 확장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먼저 그 확장을 방해하는 근친상간을 금기시하고, 두 번째로 연애결혼을 금기시하고 부모 간에 합의를 통해서 남녀를 맺어주는 제도가 결혼이다. 따라서 연애는 용납하기 어려운 이탈행위이며 때로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가 가족 몰래 사랑의 도피를 하다 잡혀오면, 가족의 일원(대개 오빠 혹은 남동생)이 누나 혹은 여동생을 죽이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이것을 그 동네에서는 가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용납할 수 있는 살인, 즉 명예살인이라고 한다. 제 피붙이에 대한 살인이지만 가족의 명예를 위한 것이므로 살인한 오빠나 남동생은 법적인 처분을 받지 않거나 받더라도 형식적으로만 받고 풀려난다.

문화의 상대성과 도덕의 보편성

브리짓 바르도의 경우를 보면서 자못 흥분하고 열받았던 우리는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문화상대적 태도에 잠시 행복했으나 명예살인의 경우를 보면서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럼 어디까지 다문화와 상대 문화에 대한 이해이고 어디서부터 보편적인 인간의 도덕과 윤리인가?

그래서 슈웨더R. Shweder라는 시카고 대학의 급진적인 문화심리학자가 평소와는 달리 급진적이지 않고 차분하게 제기하는 주장이 문화는 지식이 아니라 태도라는 것이다. '획일성'이 아닌 '보편성'을 추구하는 것이 문화심리학, 좀 더 광범위하게 문화학이다.

차이 인정이 낳은 비극

그렇다면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아름다운가?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은 집단 간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수용하는 결정이다. 다름을 과학적으로 합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때 다음 단계에서 생기는 위험한 사고가 '다르니까 다르게 대우해도 된다'이다. 히틀러의 사회진화론이 대표적이다. 인류학이든, 심리학이든, 우생학이든 총동원해 보니 게르만과 다른 민족은 다르다. 그런데 게르만은 잘 살고 문명이 높고 다른 민족이나 집단(유대인, 아프리카인, 아시아인, 집시, 장애인 등)들은 사는 게 그저 그렇다. 그건 열등하다는 증거이며 열등한 집단은 없어져야 인류의 이득이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요약하면 사실 다문화, 비교문화 이런 식의 관점을 섣부르게 이해하면 사회진화론을 합리화하기 위해 집단 학살을 저질렀던 히틀러 꼴이 날 수도 있다.

유대인을 박해한 것은 히틀러만의 일이 아니었다. 로마시대부터 이어져온 오랜 전통이었다. 그림은 1182년 프랑스에서 유대인을 추방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유대인을 박해한 것은 히틀러만의 일이 아니었다. 로마시대부터 이어져온 오랜 전통이었다. 그림은 1182년 프랑스에서 유대인을 추방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A miniature from Grandes Chroniques de France in 1182. the Diaspora Museum, Tel Aviv. 

그러므로 보편적 지식은 바로 우리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보편적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추구하지만, 획일적이지 않는 태도를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 슈웨더의 주장이다. 또한 문화를 바라보고 접근하는 것은 지식이나 학문의 한 갈래가 아니라 태도라는 것이 내 주장이다.

문화심리학의 본질 

나는 사실 문화심리학을 전공했다. 경영학과의 교수로 조직행동과 조직문화를 강의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내 정체를 모르지만 나는 사실 문화심리학자이다. 그런데 요새 문화를 팔아먹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 불안하다. 문화를 태도가 아닌 지식으로 오해하고 팔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상대성을 그냥 순진하게 존중하게 되면 극우 나치와 같은 집단들도 인정해야 된다. 내 생각엔 획일적이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보편성을 추구해야 하는 문화적 노력의 핵심은 역사에 대한 이해이다. 한국의 현대사, 세계의 문명사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민주주의라는 제도 속에서 산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다양성의 이름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하는 것이 문화심리학적 관점에서 획일적이지 않지만 보편적인 태도이다. 문화심리학의 본질은, 그리고 아마 모든 심리학의 본질은 최신의 통계 프로그램을 통해서 설문조사 자료를 처리하여 문화집단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따지는 학문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보편성을 획일적이지 않는 태도로 뜨겁게 연구하는 학문이다. mind

김정식 광운대 경영학과 교수 사회심리 Ph.D.
사회 및 문화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하고 성시대(홍콩)와 웨스턴 워싱턴대(미국)를 거쳐 현재 광운대 경영학과에서 재직 중이다. 문화심리학의 다양한 주제, 조직문화, 대안적 리더십, 및 실존적 행위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저서로는 조직의 직무동기(2014) 및 조직행동(201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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