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에 사로잡힌 주체, '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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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에 사로잡힌 주체, '조커'
  • 2019.11.18 15:00
'너는 누구냐?' 우리는 답변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할 때, 우리의 주체가 어떻게 붕괴되는지를 영화 '조커'에서 너무나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팀 버튼의 배트맨 vs.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팀 버튼Tim Burton 감독의 「배트맨」1989은 독일 표현주의 특유의 미장센을 통한 영화 전반의 톤과 캐릭터 심리묘사를 시도했으나 캐릭터 형성character building에는 실패하고 만다. 영화는 브루스 웨인이 누구이고 조커는 누구인지, 브루스 웨인의 부모가 그의 삶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중요하게 다루지 않으며, 만화에서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고든 경감조차도 영화에서는 그저 흔해빠진 경찰로 묘사된다.

팀 버튼이 캐릭터에 대한 이해 및 캐릭터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인데, 그렇기 때문에 배트맨이라는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도 단순한 권선징악의 구도를 넘어서지 못하게 되었다. 밑도 끝도 없이 난 배트맨이야. 난 조커를 잡을 텐데 앞으로 두 시간 동안 내가 하는 것을 잘 봐. 알았지?” 같은 느낌으로 내용을 채워 나간다. 배트맨 프랜차이즈의 감독은 3편부터 바뀌지만 급기야 시리즈 4편에서는 배트맨과 로빈에게 유륜이 그려진 배트 수트를 입히면서 프랜차이즈가 폭망하기 시작한다. (여기에는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액션영화를 만들라는 워너 브라더스의 압력도 한몫 했다고 한다.)

조커는 DC 코믹스가 1940년에 발표한 베트맨에서 악당역을 맡으면서 우리 곁에 다가왔다. 그는 이제 독자적인 존재감을 갖는 인물로 거듭나고 있다. 2008년 '다크나이트'과 최근 개봉한 '조커'에서 그를 통해 악당의 심리학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2005년부터 시작된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감독의  '배트맨 3부작'은 사실주의적 연출방법을 통해 시리즈 내내 '너는 누구냐'라는 화두를 던진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그의 영화들에서 기억과 시간을 사용하여 주제의식을 더욱 드러나게 하는데 능한 감독이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어린 브루스 웨인은 우물에 빠져 박쥐떼를 만나면서 경험하게 된 공포감으로 인해 부모님과 함께 간 공연 도중에 플래시백을 경험한다. 부르스는 부모님과 공연장을 빠져나오면서 만난 도둑에 의해 결국 부모님을 잃게 되고, 부모님의 죽음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며 죄책감을 지닌 채 살게 된다. 7년의 떠돌이 생활을 하며 고담시로 돌아온 브루스 웨인은 악당들로부터 고담 시를 구하기 위해 본인에게 공포의 상징이었던 박쥐 가면을 뒤집어 쓴 배트맨이 된다.

재미있는 것은 보통 사회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우리가 페르조나를 발달시킨다면, 영화에서는 브루스 웨인이 자신이 만들어낸 배트맨과 동일시되어 있다는 것이며, 오히려 브루스 웨인이 페르조나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임상에서는 자아 동조적ego-syntonic인 상태라고 한다. 이렇게 분열된 자아상을 가지고 있는 배트맨이 한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자신이 온전한 브루스 웨인이 되는 방법을 계속해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담시에 일어나는 범죄를 하비 덴트라는 정의로운 검사에게 맡기고 자신은 이제 배트 수트를 벗고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한 레이첼과 함께 하는 삶이다. 그러나 자신 안에서 찾아야 할 온전함을 레이첼에게 투사하는 브루스 웨인의 모습이 펼쳐지면서 2편에서는 조커가 등장하고 브루스 웨인이 잠시 꿈꿨던 삶은 조커로 인해 박살나게 된다.

'너는 누구냐?'에서 시작된 주체의 붕괴

서론이 길었던 까닭은 지금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를 위해 변죽을 울린 것과 다름없다. 최근 개방한 토드 필립스Todd Phillips감독의 영화 「조커」는 크리스토퍼 놀란이 던진 화두 너는 누구냐'라는 문제를 가지고 만약 '네가 누구냐'라는 질문에 실패했을 때 주체의 붕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그려낸다.

조커인 아서 플렉은 우울하다. 그는 정신병원에서의 퇴원 후 일곱 가지 정신과적 약물을 복용중이고, 그는 그가 실제 느끼는 것과 상관없이 불수의적으로 웃음이 터진다. (그러나 면밀히 살펴보면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보지 못하거나 자신을 판단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자의로 웃음을 멈출 수 있으며, 그의 웃음은 대개 자신이 곤란해지거나, 불편해지는 상황에서 터진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부적응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표현하고 또 자신을 방어하지만 이러한 접근이 오히려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고 결국 자신에게 다시 화를 가져오는지 아서 플렉은 알지 못한다. 이것을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 라고 한다.)

영화 중반부에서는 그가 이렇게 된 배경으로 자신을 키운 어머니 페기 플렉이 사실은 망상(자신이 브루스 웨인의 아버지 토마스 웨인의 옛 애인이며, 그와의 관계에서 아서 플렉을 낳았다는 것)을 가진 환자라는 것과 그녀가 사실은 자신을 입양하였으며, 그의 발작성 웃음은 양어머니인 페기 플렉의 육체적인 학대로 인한 뇌손상 때문이라는 것을 설명하면서 아서 플렉의 정신이 철저하게 붕괴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한국에서도 8, 90년대에는 폐쇄병동에 입원한 여성 정신분열증 환자들 중에서 내가 박정희의 와이프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찾을 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내가 이재용의 와이프다라고 주장하는 조현병 환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세대가 바뀌면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하고, 명예보다는 부로 권력이 이동되었기 때문에, 혹은 이들 안에 있던 권력 콤플렉스가 현실 검증력을 상실하면서 고스란히 의식을 잠식하게 된 것으로도 볼 수 있겠다. 이러한 망상을 갖고 있는 환자가 아이를 학대하여 키우게 되면 아이는 어떤 모습으로 자라게 될까? 아서 플렉은 이렇게 대답한다. ”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느껴본 적이 없어.“

그림자로 투사되는 내 안의 어둠

칼 융Carl Jung은 왠지 이유 없이 싫고 안 보고 싶고 상대를 배격하는 우리의 모습들에 대해 우리 안에 있지만 결국은 통합시켜야 하는 어떤 것이 있음을 이야기하면서 '그림자' 개념을 통해 설명하였다. 내 안의 어둠을 보지 못하면 그 어둠은 투사되어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된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 바로 조커가 어머니를 잠자리에 눕힌 후 혼잣말을 하며 춤을 추는 장면이다.

어이, 이름이 뭐야?”

아서

어이, 아서, 넌 정말 멋진 댄서 같아.”

알고 있어.”

누가 멋진 댄서가 아니게? 바로 저 사람이야.”(조커가 옆에 있는 사람을 쏘는 것처럼 벽에 총구를 향한 후 방아쇠를 당긴다)

사실에 눈을 감고 쏟아내는 광기

아서 플렉은 자신이 얼떨결에 죽인 사람들, 직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월스트리트의 금융인 세 명을 죽임으로 인해 벌어진 시위에 대해서 왜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아서 플렉은 오히려 사람들이 광대 마스크를 쓰고 집회를 벌이는 것에 대해 자신이 영웅이라도 된 것처럼 고무된다. 마찬가지로 집단 또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 채 자신들의 분노를 권력층에 쏟아낸다. 현실에서 만나는 아서 플렉은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지만, TV에서만 아서 플렉을 본 사람들은 그를 영웅시하고 그에 대해 열광한다. 영화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말로 알려고 하지 않았을 때 집단적 광기가 낳은 비극을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상을 통해 조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조커」는 풍자 영화이다. 아서 플렉은 영화관에 들어갔다가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보지만 본인은 그것이 풍자 영화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서 플렉은 자신의 삶이 코미디(희극)라고 거듭 이야기하지만 그가 갈수록 드러내는 풍자와 해학은 전혀 유머스럽지 않고 채플린의 그것과는 오히려 대척지점에 있다.

조커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법을 무너뜨리는 자, 사회가 만들어놓은 규칙을 뒤집어버리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이자 무정부주의자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병원을 폭발시키고, 은행을 털고 돈을 태워버리고, 경찰과 판사를 죽이고, 병원에서 만난 국가의 녹을 먹는 심리치료사를 아무렇지 않게 죽인다. 그는 사람들이 분노에 찼을 때 마음속으로나 생각할 법한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한 치의 고민도 없이 행동으로 옮기는 무법자다.

이런 조커의 출현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없으나 무의식의 강력한 힘에 의해 자아의식이 흔들리고 기존의 질서와는 다른 낯선 것이 의식의 일부를 잠식해버리는 일종의 의식의 해리Dissociation 현상이다. 코믹스에서는 이런 조커의 심리를 단순한 영어 표현으로 “It only takes one bad day.”라 했지만,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는 “All it takes is a little push” 라는 조커의 대사로 함축시켜 버린다.

그림자에 사로잡힌 주체

자아의식이 집단적 무의식의 영향을 받고 또 이와 동일시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조커는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고담 시의 백기사 하비 덴트를 타락시켜 '투 페이스'Two Face라는 범죄자로 만든다. 조커로 대변되는 집단적 무의식의 트릭스터 원형Trickster archetype의 영향을 받으면서 이와 동일시 된 하비 덴트의 자아의식은 자율성을 잃고 팽창하면서 광기에 사로잡히게 된다. 조커는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살고 뒷면이 나오면 죽는 이분법과 실무율all-or-none law이라는 감옥에 하비 덴트를 영원히 가둬버린 것이다.

아서 플렉이 사는 주관적 세계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공손하고 예의바르고 품위를 지키는 것이 당연한 세계다. 그게 아니라는 사실에 부딪힐 때마다 그는 무너진다. 하비 덴트의 경우 그의 주관적 세계는 영웅으로 죽거나, 오래 살아서 악당이 된 자신을 보거나”  하는 세계다. 검사로서 관료제에 기대어 어떻게든 정의를 실천하고 싶었던 하비 덴트는 관료제에 대한 신뢰를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을 때 악당이 된다. 경도된 의식의 일방성으로 인해 정신의 균형이 틀어지면서 아서 플렉과 하비 덴트는 그림자에 사로잡히고 마는 것이다.

사람들이 광대 마스크를 쓰고 시위를 하는 영화의 장면에서 문득 헬조선을 외치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은 왜일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나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 충분히 숙고하지 않은 채 비난만 늘어놓는다면 희망은 더 요원한 것이 될지도 모른다. 먼저 내 안의 광대 같은 변덕스러움, 내 안의 심술부터 들여다 볼 일이다. mind

이상 말하기듣기 심리상담센터 한양대 교육학과 박사수료
한양대학교 교육학과 상담심리전공 박사 수료. 한국심리학회 산하 한국상담심리학회 상담심리사(No. 2062). 융학파 정신분석 수련 중에 있으며, 현재 말하기듣기 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신화나 민담, 영화와 사진, 미술 등을 통해 현대인의 마음과 한국 사회의 각 분야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읽어내는데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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