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글에서도 티가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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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글에서도 티가 날까?
  • 2019.11.25 11:00
얼굴도 모르고,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이 쓴 글만 보고도 그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지 파악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단서’들을 가지고 글쓴이의 행복을 짐작하는 것일까?

글은 마음의 거울이 될 수 있을까?

현대인들은 가히 글의 홍수 속에 산다고 할만하다. 책이나 뉴스 기사부터 인터넷에 떠도는 모르는 이의 사연까지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많은 글들을 마주한다. 이런 글들에는 글을 쓴 사람의 성격, 가치관 등이 알게 모르게 배어 나오게 된다. 글쓴이가 얼마나 행복한 지도 그가 쓴 글에서 티가 날까?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이 모르는 사람이 쓴 글만 보고도 글쓴이가 얼마나 행복한지 알 수 있을까?

최근 Motivation and Emotion 저널에 실린 한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낯선 사람이 쓴 글만 가지고 사람들이 그 사람의 행복을 얼마나 정확하게 판단하며, 구체적으로 어떤 단서들을 사용하는지 알아보았다.

독자는 글쓴이의 마음을 알아차린다.

먼저 연구자들은 197명의 참가자에게 최근에 다녀온 여행에 대해 간략하게 적어달라고 부탁하였고, 그들이 자신의 삶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평가하도록 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참가자들을 '글쓴이'로 칭하겠다. 글쓴이들이 쓴 여행기의 평균 단어 수는 72개였다.

또 다른 200명의 참가자들은 각기 다른 글쓴이 5명의 글을 읽은 후 각 글쓴이가 삶에 얼마나 만족할 것 같은지 글쓴이가 사용했던 척도를 써서 평가하였다. 역시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참가자들은 '독자'로 부르겠다.

독자들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쓴 짧은 여행기만을 가지고 그 사람의 행복을 정확하게 짐작할 수 있었을까? 놀랍게도 그랬다. 글쓴이가 평가한 자신의 삶의 만족도와 독자가 평가한 글쓴이의 삶의 만족도가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인 것이다.

글을 읽고 글쓴이의 행복감을 평가할 수 있다면 그림도 마찬가지아닐까.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르느와르의 작품이다. 왼쪽에 작은 개를 보듬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인이 얼마 뒤 그의 부인이 된 알린 사리고Aline Charigot다. Pierre-Auguste Renoir (1841~1919), 'Luncheon of the Boating Party', 1881, Oil on canvas, 129.9 × 172.7 cm, The Phillips Collection, Washington, DC
글을 읽고 글쓴이의 행복감을 가늠할 수 있다면 그림도 마찬가지아닐까.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르느와르의 작품이다. 왼쪽에 작은 개를 보듬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인이 얼마 뒤 그의 부인이 된 알린 사리고Aline Charigot다. Pierre-Auguste Renoir (1841~1919), 'Luncheon of the Boating Party', 1881, Oil on canvas, 129.9 × 172.7 cm, The Phillips Collection, Washington, DC

글에 담긴 단서들

그렇다면 독자는 무슨 수로 ‘생판 남’인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지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연구자들은 언어 분석 프로그램Linguistic Inquiry and Word Count) 사용하여 글쓴이가 여행기를 어떤 내용과 형식으로 작성했는지 분석하였다. 연구자들은 여러 형식적, 심리적 단서들 중에서도 글쓴이가 긍정적 정서와 부정적 정서를 표현하는 단어들(예: happy, afraid, sad)과 부정어(예: no, not, never)를 여행기에 얼마나 빈번하게 사용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그 결과 행복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부정어와 분노/불안과 같은 부정 정서 단어들을 여행기에 적게 작성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독자들은 이를 단서로 삼아 글쓴이의 행복 수준을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연구자들이 이후 두 가지 연구를 더 수행하였는데, 독자들이 가장 일관적으로 사용하며 글쓴이의 행복을 정확하게 예측한 유일한 단서는 정서 단어가 아닌 부정어의 사용 빈도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행복한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들에 비해 실제로 글을 쓸 때 부정어를 덜 썼고(“음식은 나쁘지 않았다” 보다 “음식이 괜찮았다”라고 쓰는 것이다), 이를 독자들이 잘 포착하여 글쓴이의 행복을 정확하게 평가한 것이다.

어떤 단어로 당신의 글을 채울 것인가?

이 연구를 실생활에 활용하자면, 글로만 접해서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의 행복을 비교적 정확하게 지레짐작하고 싶을 때는 그 사람이 자신의 글에 얼마나 많은 문장을 부정어로 채우고 있는지 살펴보면 되지 않을까? 역으로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행복한 사람으로 비치고 싶다면, 글을 쓸 때 가급적 부정어 문장은 피하는 게 좋을 것이다. 필자는 이 글에 부정어가 들어간 문장을 하나만 사용하였다. mind

    <참고 문헌>

  • Stavrova, O., & Haarmann, L. (2019). How to tell a happy person: Accuracy of subjective well-being perception from texts. Motivation and Emotion. https://doi.org/10.1007/s11031-019-09815-4
최혜원 University of Virginia 사회심리학 Ph.D.
연세대 심리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 버지니아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화 및 사회생태학적 변인과 행복의 관계, 대인 판단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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