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배고프지 않아도 먹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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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배고프지 않아도 먹게 되는 것일까
  • 2019.07.12 07:55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추동에 의한 배고픔뿐 아니라 쾌락적 추동에 의한 식욕까지를 아우를 때, 섭식 행동의 중독 배경을 확인할 수 있다. 쾌락적 섭식 중독 경험은 개인의 체중 조절점을 이동시킬 정도로 강력하기에, 더욱 명확하고 촘촘한 평가가 요구된다.

There is no sincerer love than the love of food. -  George Bernard Shaw

우리는 왜 무엇을 하고 싶어할까?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는 본능은 왜 존재할까? 우리가 무엇을 하고 싶은 의지와 동기가 있다면, 그것은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음식에 대한 사랑과 쾌락은 얼마나 근본적인 것일까? 우리는 왜 먹고 싶은가? 여기에는 두 가지 다른 이유가 있다.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추동에 의한 배고픔Hunger, Homeostatic Drive to Eat.

 모든 생명체는 변화하는 외부환경 속에서도 내부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런 내부환경의 불변성 혹은 계속적인 유지를 위한 적극적인 조절을 항상성homeostasis이라고 한다. 이런 항상성 조절 기능을 통해 우리 몸은 체중, 체온, 혈압, 혈당, 전해질, 체액 양 등의 수준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특히 특정 체중 조절점body weight set point으로 체중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기능은 비만을 유발하는 기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 비만의 치료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요요현상에 있어서도 중요한 요인으로 확인된다.  언제나 지켜져야 하는 체중의 범위가 개인에게 주어져 있기에, 배고픔과 포만감은 교묘하게 우리의 체중 범위를 조성하는 역할을 한다.

쾌락적 추동에 의한 식욕Appetite, Hedonic Drive to Eat

항상성 조절 기전과는 다소 다른 기전의 동기drive, motivation로써, 동물이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는 특성이 식욕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에 대한 방대한 연구 또한 존재한다. 원초적 수준의 쾌락과 고통이라는 기전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오래전부터 생존과 번식을 추구하는 경향성이 높은 동물만이 후손을 남길 수 있었고, 불친절한 환경의 압력 아래서도 그 종은 선택받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섭식 경험 혹은 성적 경험에 대한 쾌락을 추구하고 이를 느끼거나, 혹은 해로운 경험에 대해 고통을 느끼고 이를 능동적으로 회피하는 신경회로를 가지는 돌연변이 유전형을 보유한 동물들만이 살아 남았다. 이 중 음식을 섭취하는 것과 관련한 쾌락에 논의를 집중시켜보면, 모든 동물은 충분한 에너지가 생존과 번식에 필수이기에, (설탕이나 지방과 같은) 고농도 에너지 음식에 강한 보상reward과 쾌락pleasure을 느끼는 돌연변이 동물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것은 짐작 가능하다.

쾌락 추구와 위험 회피에 능숙한 특성들은 단순히 종의 후대에게 유사한 수준으로 대물림되는데 그치지 않는다. 이러한 쾌락적 경향성이 높은 동물들끼리 모여 번식을 하게 되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오랜시간에 걸쳐 이 본능이 점차 더 강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쾌락에 대한 갈망craving과 동기부여motivation가 약한 유전형을 가진 개체는 번식하지 못하고 음성선택negative selection되고, 동기부여가 강한 유전형의 개체들끼리 모여 점점 더 에너지 갈망과 동기부여 기전이 강해졌을 것이다. 원시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우리의 쾌락 추구 본능과 고통 회피 본능은, 오히려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달된 특성이다. 이러한 본능은 개체가 쾌락을 추구하기 위한 에너지를 확보하고, 더욱 세밀하고 다양한 감정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우리의 의사결정과 행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배고프지 않아도 쾌락을 위해

다만 개인이 음식을 섭취하도록 유인하기 위한 도구였던 ‘고농도에너지 음식에 대한 쾌락과 갈망 기전’이 현대사회에 있어서는 배고프지 않아도 (심지어는 허기를 실제로 느끼는 수준보다 더 많이) 쾌락을 위해 먹게 만드는 작용을 한다. 맛에 대한 기억과 , 감정, 스트레스 등은 비항상성적으로 작용하지만  이후 항상성 조절 요소와 통합되어 최종적으로 섭식, 배부름, 장운동, 혈당조절 등이 조절된다. 실제로 배고픔과 식욕은 함께 느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때로는 서로 독립적으로 작동하면서 개인의 섭식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식사를 충분히 한 이후에 자극적이며 맛있어 보이는 디저트를 보게 되면, 배가 고프지도 않으면서도 식욕이 느껴지는 것이다.

Georg Flegel (Olmütz 1566-1638 Frankfurt am Main) and Workshop of Lucas van Valckenborch I (Leuven 1535/45-1597 Frankfurt am Main)“A market stand selling pears, cherries, peas, leeks and lettuce, with two elegantly-dressed children, a view of a Frankfurt beyond”oil on canvas 82.2 x 119.4 cm.
게오르그 플레겔Georg Flegel, 1566~1638. '과일과 야채를 파는 상점과 두 아이', 캔버스 유화, 82.2 x 119.4 cm, 개인 소장. 

더욱이 현대 사회는 과거에 비해 사회경제적인 환경에 따른 심리적 스트레스가 증가되었다. 이를테면 스트레스로 유발된 과식이나 건강에는 나빠도 맛에서 오는 쾌락이 높은 음식을 섭취하게 되는 현상도 뇌의 쾌락기전에 의한 것이다. 기분을 상승시키기 위해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만성적인 심리적 스트레스와 관련된 부정적 정서와 우울한 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보상적 책략 혹은 자가 투약의 일종이다. 이 때문에 다양한 방법을 통해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은 비만 관리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쾌락적 자기섭식 중독성향

문제는 쾌락이 순수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에 있다. 마약, 알콜, 도박과 같이 다른 쾌락적인 경험들과 마찬가지로, 쾌락적 음식에 노출되면 노출될수록 개인의 반응은 점점 무디어진다. 즉 즐기는 정도liking는 감소하고, 갈망하는 정도wanting, craving는 증가하는 양상이 관찰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쾌락적으로 폭식한 후 식욕을 억압하다가, 다시 갈망하고 일상의 스트레스로 인해 강박적으로 과식하거나 폭식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 적절한 치료적 개입이 없다면, 개인은 점점 더 심각한 강박적이고 중독적 성향을 보이게 된다.

이런 쾌락적인 섭식 중독 성향에 한번 발동이 걸리기 시작하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던 체중 항상성 조절점은 살이 찌는 방향으로 그 무게중심이 옮겨진다. 따라서 적절 체중으로 균형을 이루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지나치게 맛있고 중독적인 음식들을 가까운 거리에서 간편하게 지속적으로 제공한다면, 쾌락적인 섭식 중독 성향이 강력하게 형성될 것이다. 그러면 항상성 균형이 무너지면서 더 높은 체중 조절점에서 새로운 항상성 균형을 형성하는 안정적 비만상태로 들어선다.

문제가 복잡해지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약물 및 알콜 중독과 다소 다르게 음식에 대한 중독이 물질 그 자체 뿐 아니라 행동의 병리적 의존성에도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간의 연구에 따르면 음식을 먹을 때의 종합적인 경험이나 과거 기억과의 연결이 섭식 중독 경향성에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다보니 쾌락적 음식에 중독된 개인이, 이후 여러 사회적 혹은 감정적 요인으로 병리적 양태를 끊어내는 일은 매우 어렵게 된다.

결국 현대 사회에 비만의 유병률이 높아지게 된 주된 요인 중 하나인 사회 환경적인 문제를 잘 고려한다면 체중 조절점을 다시 정상 체중 범위로 이동시키는 방식의 비만 예방/치료 방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 연구실이 해야할 일이기도 하고. mind

최형진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분자유전체의학 Ph.D.
서울대 의과대학, 서울대병원 내과 전공의를 거쳐 현재는 서울대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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