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경(孝經)은 조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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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경(孝經)은 조작되었다
  • 2019.11.27 14:40
부모를 공경하는 효 사상은 우리 민족에게 내재된 것일까? 효심은 타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의심이 제기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 문제적 책, '효경'이 있다.

한국인의 혈관 속에는 효경 흐르고 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효경 소기한 가치가 적혈구에 배어 흐르고 있다- 도올, 김용옥 -

효경이 조작되었다니 이게 무슨 음모론인가 싶겠지만 모종의 목적을 갖고 만들어진 위작이라는 의심이 관련학계에 제기된 것은 꽤 이전 일이다. 내가 이런 사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프로이드의 발달단계와 융의 집단 무의식, 대상관계에 대해서는 열심히 공부했지만 한국인 정서의 팔할을 차지한다는 효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내가 효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3년 전 갑자기 등장한 태블릿 PC 한 대가 온 나라를 흔들기 시작한 무렵부터였다.

대체 그놈의 '효'가 뭐길래

나는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칠판 위에 붙은 박정희의 사진을 가족사진처럼 보고 자랐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대통령 딸이 다녔던 학교’라고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있어 자랑스러웠고, 그녀가 다시 등장했을 때 잘나가는 큰 집 사촌언니를 만난 것 같이 반가웠다.

조선은 성리학적 이념에 입각하여 백성들의 교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전시기에 걸쳐 《삼강행실도》가 매우 여러 차례 간행이 되었다. 그 중 하나가 1617년 이성(李惺) 등이 편찬한 효자도인 ‘동국삼강행실도(東國三綱行實圖)’이다. 여기에 향덕(向德)에 대한 소개가 실려있다. 향덕은 기근이 들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병든 어머니를 봉양했다고 한다.
조선은 성리학적 이념에 입각하여 백성들의 교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전시기에 걸쳐 《삼강행실도》가 매우 여러 차례 간행이 되었다. 그 중 하나가 1617년 이성李惺 등이 편찬한 효자도인 ‘동국삼강행실도東國三綱行實圖’이다. 여기에 향덕向德에 대한 소개가 실려있다. 향덕은 기근이 들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병든 어머니를 봉양했다고 전해진다. 

태블릿 PC가 등장하면서 온갖 음험하고 기괴한 이야기들이 떠돌았다. 가장 괴이한 것은 세월호가 빠져 삼백 명 사람들이 죽어가던 시간에 독재자의 딸이 아버지를 기리는 굿을 했다는 소문이었다. 이 뉴스의 배경화면은 연미복을 입은 독재자와 흰색 한복을 입은 그 아내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골든 타임에 그녀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명확한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하필 부모를 기리는 의식을 행했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평생의 숙제, 부모자녀관계

당시 나는 팟캐스트에서 ‘조선미의 우리 가족 심리상담소’라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다. 가족에 대한 사연을 받아서 내용을 추려서 방송으로 답해주는 식으로 진행했는데, 육아 관련 내용이 가장 많았지만 부부나 부모와의 관계에서 겪는 갈등도 적지 않았다. 육아를 하면서 겪는 문제는 99% 응답이 가능했다. 부부문제는 60% 정도 답이 보였다. 가장 어려운 것은 부모와의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어렸을 때 집을 나갔다가 병들고 돈 떨어지니 돌아와 돈을 요구하는 아버지와 하소연하면서도 그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엄마, 부모 등골을 빼먹는 철없는 남동생 뒷바라지를 딸에게 넘기는 엄마, 자신이 빌린 돈 때문에 자식이 신용불량자가 될 지경인데 미안해하지 않는 부모. 부모가 아프면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이고, 아들을 끓는 물에 던져 부모의 목숨을 구하려 했다는 민담 속 정서에 사는 사람들은 많았다. 이런 부모 때문에 자식들은 괴로워하면서 화를 냈고, 화를 내고 나면 죄책감을 느꼈다. 이들은 부모가 바뀌어 문제가 사라지거나 자기 마음이 바뀌어 애증의 감정이 거룩한 효심으로 달라지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이들이 원하는 것은 환부를 도려내지 않은 채 어 항생제만으로 유지하다 결국은 곪아 터질 수밖에 상처이며, 부모가 죽은 후에도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감정의 짐이다. 부모는 늘 헌신적이고 희생적인가? 부모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게 효인가? 부모의 간절한 바람은 정말 자식을 위한 것일까?

부모를 객관화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며, 감정적으로 불편한 일이다. 갈등을 겪고 있는 경우라면 더욱 껄끄럽다. 그렇지만 삶 전반에 부모의 그림자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방식이 이미 정해져 있어 누군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모자녀 관계를 직시하려면

효와 관련된 이슈를 다루지 못하면 한국에서 심리치료를 하기는 어렵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무기력한 청년, 시댁 일이라면 무조건 달려가는 남편 때문에 힘든 아내, 손자를 응석받이로만 키우는 조부모 때문에 양육이 힘든 부모가 겪는 어려움 등의 문제는, 단지 심리적 지지를 받고 자신을 탐색한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갈등을 촉발하는 상황과 내담자가 부모에게 느끼는 감정, 원부모의 사고방식과 성격까지 파악하는 탐색의 과정부터 쉽지 않다.

이리저리 얽힌 인연의 매듭이 지금의 갈등을 가져왔다는 통찰이 생겼다고 해서 해결이 수월해지지도 않는다. 내 부모가 하는 행동은 옳지 않고, 이제는 경계를 그어야 한다고 결심할 때 내담자는 자신이 패륜의 길로 가는 게 아닐까 괴로워한다. 내담자를 지지해야 하는 치료자 역시 사탄의 역할을 떠안은 것 같은 불편감을 견뎌내야만 이 여정은 흘러간다. 누구의 마음도 다치게 하고 싶은 않은 내담자는 상담을 중단하기도 한다.

효 사상과 효경

부모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부모를 절대 무결점의 존재로 상정하는 효 사상이다. 부모는 옳고 그름을 평가할 수 없는 대상이고, 부모의 뜻을 거슬리는 것 자체가 불효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도덕원리와 효 사이에 간극이 생겼을 때 주관적 신념과 주체성을 내세운다는 것은 전체주의 사회에서 무정부주의자가 되겠다고 선포하는 것과 같은 두려움을 무릅써야 한다. 이 논리에 묶여 있는 한 우리는 부모를 대상으로 볼 수 없고, 그 관계에서 만들어진 내적 작동모델을 탐색할 수 없다. 한국인들이 부모와의 관계를 어떻게 상정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접근법의 차이를 넘어서는 중요한 논제이다.

도올이 한국인의 핏속에 효경이 소기한 가치가 흐른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런데 효경의 조작설을 제기한 이 또한 도올이다. 우리가 흔히 효경이라고 부르는 경전의 이름은 본래 효경이 아니다. 원나라 때 동정이라는 사람이 쓴 효경대의孝經大義를 주자가 재구성해서 효경간오孝經刊誤라는 책으로 정리하였다. 효경이 주자의 이념이라고 한다면 효경대의가 아닌 효경간오가 효경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작 효경이라고 부르는 것은 주자의 책이 아닌 동정이 저술한 효경대의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효경'의 정치사회적 맥락

모든 책은 그 책이 쓰인 시대를 반영한다. 효경대의孝經大義가 발간된 시기는 중국이 군주중심의 일원적인 집권체계를 구축하던 때였다. 불안정했던 체제를 정비하면서 사회의 질서를 세우고 사람들을 교화해야 할 필요가 생겼고, 군주의 힘을 강화시키고 백성을 순응하게 하는 목적에 따라 쓰여진 것이 효경대의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효경은 인륜을 논한 유교사상이 아니라 집권세력에게 이념을 제공하는 정치적 전략서라고 할 수 있다.

심리학자 입장에서 주자가 효경을 직접 저술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고, 따라야 한다고 믿는 사상이 보편적 선의 가치와 부합하는지 확인해보는 게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효경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사학자의 정리가 도움이 될 것이다정호훈, 2002.

효는 군주 덕으로서 나라를 다스린다는 덕치론(德治論) 근거로 군주를 정점으로 하는 사회질서를 구축하는데 효과적인 이념이며, 효치론(孝治論)은 천하, 국가를 하나의 家로서 파악하고 그 정치적 수장인 군주를 가부장적인 존재로서 파악하는 충심忠孝의 미분화, 혼용을 내세운 이론이다. 그렇지만 주자는 효경간오를 통해 효치론을 부정하였고, 忠은 忠으로서, 孝는 孝로서 실행영역이 명백히 분리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중국이라는 나라의 넓이를 생각해보면 군주가 있다 해도 구석구석 그 힘이 미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백성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는 이념이 필요했다. 군주는 네 주변에서 너를 지켜보고, 잘하면 칭찬하지만 잘못하면 벌을 줄 수도 있는 존재라는 믿음을 주는 것만큼 사람들을 통제하는 데 효과적인 기술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효치론을 정리한 효경대의를 통해 군주가 받기를 원하는 충성과 복종을 효라는 옷으로 포장해 교육시킨 것이고, 이처럼 고루하고 전근대적인 이념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온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절대적이고 무조건적 존재라는 믿음은 통치자들이 심어주고자 하는 이념일 뿐이지 부모 자식관계에 내재된 속성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효 이념의 유통기한

효경의 가치가 한국문화에 뿌리를 내린 것은 조선왕조 시기이다. 17세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국토가 황폐해지자 흩어진 민심에 충심을 고무시키기 위한 새로운 이념이 필요했으며, 무조건적 순응을 고취시키기 위해 효를 철저하게 충으로 세뇌시키는 기류가 이어졌다. 충은 인간 사이의 친밀감이나 신뢰, 진정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상하관계에 있어서의 무조건적 충성을 의미한다. 이렇게 왜곡된 효가 가부정적 문화 속에 스며들면서 부모와 자식간 간극을 벌리고, 관계에서 발생한 문제를 무조건 약자의 탓으로 돌리는 불합리하고, 비인권적인 문화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생각도 그에 맞춰 달라지고 있다. 그런데 유독 부모와 자식간의 이념과 행동강령은 자녀 관계에 대한 기준은 조선시대를 넘어 고대 중국의 경전에 근거를 두고 있다. 부모자식이라는 관계가 하늘이 내렸기 때문일까, 이념을 정치에 악용하려는 권력집단의 편리함 때문일까. 전자라면 우리는 천륜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을 지닌 존재이며, 후자라면 오랜 역사 속에서 권력에게 기만 당한 우민에 불과할 것이다. 효의 이념과 문화가 가족을 결속시키고, 유지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시기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적절하지 않은 문화가 강력하게 사람들을 지배할 때 개인의 고통과 집단의 일탈이라는 병리가 발생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mind

   <참고문헌>

  • 김용옥(2018). 효경한글역주. 통나무
  • 박희원(2014). 켄 윌버의 통합이론에 의한 효경. 효학연구. 10권 79-105. 한국효학회.
  • 이경자(2009). 한대 효경 보급의 교육적 의미. 교육문제연구 35(95-115. 고려대학교 교육문제연구소
  • 이성규(2009). 한대 효경의 보급과 그 이념. 한국사상사학 10권 183-221. 국학연구원
  • 정호훈(2002). 주자 효경간오와 그 성격. 동방학지 116(71-106).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조선미 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임상심리 Ph.D.
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아주대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임상심리전문가로, 심리평가 업무와 다양한 치료프로그램의 운영 및 개발에 힘쓰고 있으며, 특히 아동치료프로그램의 다양화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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