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아플 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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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아플 땐...
  • 2019.11.26 11:00
무심코 레고 블럭을 밟았을 때 느끼는 통증과, 애인에게 배신당해 홀로 남겨진 마음의 상처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최신 연구는 이 두 가지 통증이 같은 신경도로를 공유해 흐른다고 설명한다.

당신이 아픔을 '느끼게' 되기까지

하루는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오른쪽 뒷발을 절룩거리기에 수의사에게 데려갔더니 십자인대 파열이라 한다. 추측건대 만 10세의 노령에 비만이 원인일 것이다. 일단 수술날짜를 정한 뒤 집으로 오려는데 수의사가 강아지가 무척 아팠을 것이라며 진통제를 준다. 그 소리를 들으니 나 또한 가슴이 아파온다. 갑자기 이런 가슴의 통증도 진통제를 먹으면 사라질까 궁금해졌다. 당연히 아픈 가슴을 진통제로 완화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신체에 생긴 상처로 인한 통증과 사랑하는 사람(이 경우에는 애완견)이 겪는 고통을 보고 느끼는 상태를 아프다라는 동일한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후자는 실제 아프기보다는 심리상태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통증을 느끼는지를 잠깐 살펴보자. 통증이란 불에 데거나, 칼에 베거나 침에 찔리는 것과 같이 신체 조직을 해칠 정도의 강력한 자극으로 유발된 심리 상태를 말한다. 이런 자극은 신체의 피부를 비롯하여 근육, 관절 뿐 아니라 내장을 포함한 다양한 조직들에 분포되어 있는 통각 수용기들에 의해 탐지된다. 통각 수용기들은 축색에 따라 Aδdelta 섬유와 C 섬유 두 종류로 분류된다. Aδ 섬유는 수초화되어 정보처리가 빠른 반면, C 섬유는 수초화되지 않아서 정보처리가 늦다.

두 수용기에서 감지된 통증 감각은 척수의 후각dorsal horn을 거쳐 대뇌 중심부에 위치하는 시상thalamus이라는 구조로 전달된다. 그 이후 이 두 정보는 각각 분리되어, Aδ 섬유가 탐지한 정보는 두정엽의 체감각피질somatosensory cortex, C 섬유가 탐지한 정보는 뇌의 안쪽 깊이 위치하는 배측 전측 대상피질dorsal anterior cingulate cortex과 전측 섬엽anterior insula으로 전달된다. 이렇게 통증은 두 개의 경로를 통해 뇌로 보내지지만, 각 경로의 시발점인 두 통각 수용기의 구조적인 차이로 인해 지각되는 느낌은 동일하지 않다.

우리 모두 못과 같은 뾰족한 물체에 한 번쯤 찔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순간을 회상해 보면 우선 찔리는 순간 날카롭고 찌르는 것 같이 강렬한 자극을 상처 부위에서 느끼게 된다. 그런 느낌은 잠시 후 욱신거리고 쑤시는 불쾌한 느낌으로 바뀐다. 처음 느끼는 강렬한 자극은 Aδ 섬유를 통해 전달된 빠른 통증fast pain으로 상처에 대한 정보, 즉 상처 부위의 위치, 자극의 강도, 자극의 유형(상처가 칼이 찔려 생겼는지, 불에 덴 것인지, 뾰족한 물체에 찔려 생겼는지)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잠시 후 엄습하는 쑤시는 것 같은 불쾌한 느낌은 C 섬유로부터 전달된 느린 통증slow pain으로, 상처가 야기하는 감성적인 면을 나타낸다. 이런 통증의 감성적인 양상이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을 통증으로부터 보호하게끔 동기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통증 수용기 A-delta 섬유와 C 섬유와 척수의 후각 간의 경로.
통증 수용기 A-delta 섬유와 C 섬유와 척수의 후각 간의 경로.

감각으로서 통증과 감성으로서 통증

통증은 이렇게 두 가지 양상으로 지각된다. Aδ 섬유에서 시작하여 체감각피질로 연결되는 경로는 감각적인 차원sensory dimension에서의 통증, 즉 유해한 자극의 강도, 위치, 속성과 같은 정보를 처리하는 반면, C 섬유에서 시작하여 대상피질과 섬엽 쪽으로 연결되는 경로는 감성적인 차원affective dimension에서의 통증, 즉 조직의 손상으로 유발된 불쾌감의 정도를 조절하고 있다Talbot et al., 2019.

이와 같이 물리적 통증은 여러 뇌 영역으로 연결된 신경회로가 관여하여 나타나는 하나의 생리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물리적 통증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애완견의 고통을 보고 본 저자가 느낀 통증, 즉 마음에 생긴 상처로 인한 통증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가족과 사별하거나, 연인과 헤어지거나,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하였을 경우 극심한 (심리적) 고통을 받게 된다. 사실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받는 고통은 물리적 상처로 인한 아픔 못지않게 심하다. 이런 사실을 반영하듯이 국제통증학회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Pain는 통증을 실제 조직 손상, 잠재적인 조직 손상과 관련되거나, 아니면 그런 손상으로 기술될 수 있는 불쾌한 감각과 정서적인 경험으로 정의한다IASP, 1994.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런 손상으로 기술될 수 있는이란 표현이다. 즉 심리적인 사건이더라도 물리적인 손상에 비등하는 손상이 발생할 경우, 그런 손상이 야기하는 불쾌감, 즉 아픔을 통증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이 정의에 대한 부연 설명에서 통증의 심리적인 측면을 보다 명확히 한다.

신체의 말초부위에서 탐지된 통증 정보가 척수와 시상을 거쳐 일부는 체감각피질(SI, SIIR)로 일부는 대상피질(ACC)과 섬엽(insula)으로 전달된다.
신체의 말초부위에서 탐지된 통증 정보가 척수와 시상을 거쳐 일부는 체감각피질(SI, SIIR)로 일부는 대상피질(ACC)과 섬엽(insula)으로 전달된다.

심신의 통증은 하나의 길로 통한다

흥미롭게도 최근 연구는 심리적 통증도 물리적 통증이 처리되는 양상과 비슷하게 뇌에서 처리된다고 보고한다Kross et al., 2011.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연구자들은 지난 6개월 안에 연인과 원치 않는 이별을 경험하면서 크게 상처 받은 사람들을 모은 뒤, 이 사람들을 대상으로 두 과제를 수행하게 하였다. 한 조건에서는 자신과 헤어진 연인의 사진을 보았으며, 다른 조건에서는 델 정도의 뜨거운 물체로 팔을 자극받았다. 이 두 조건을 실시할 때 MRI로 뇌 영상을 찍었으며, 그 영상을 비교한 결과 두 상황 모두에서 통증의 감성적인 면을 조절하는 대상피질과 섬엽이 활성화되는 것을 발견하였다. 보다 놀라운 사실은 통증의 감각적인 면을 담당하는 체감각피질도 함께 활성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타이레놀과 같은 아세트아미노펜이 주성분인 진통제가 직장이나 친구로부터 소외되거나 따돌림을 당하여 심리적 고통을 받은 사람들의 통증을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DeWall et al., 2010는 흥미를 배가시킨다. 이 연구자들은 참가자들을 두 집단으로 나눈 뒤 한 집단에게는 진통제를, 다른 집단에게는 위약을 복용시켰다. 그러고 나서 각 참가자들에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컴퓨터 게임을 하게 하였는데 이때 참가자 자신도 모르게 집단으로부터 소외되도록 조작하여 참가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집단으로부터 거부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하였다. 이런 상황을 시현시킨 뒤 연구자들은 참가자들의 뇌 영상을 찍었으며, 그 영상들을 분석한 결과, 진통제를 복용한 집단의 대상피질과 섬엽(통증의 감성적인 면을 통제하는 영역들)의 활성화 정도가 위약집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것, 즉 통증을 적게 받았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리적 통증이 물리적 통증을 처리하는 신경회로를 공유한다는 연구 결과가 사실일 경우, 물리적 통증 완화에 사용되는 진통제가 심리적 통증 완화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아직 통증을 정확히 모른다

사실 통증이란 복합적인 심리현상이다. 날씨, 성격, 성별, 나이에도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심지어 상처 부위와 통증 부위가 일치하지 않을 때도 빈번하다. 특히 피부 깊은 곳이나 내장의 통증이 상처 부위로부터 떨어진 곳에서 느껴지기도 한다. 좋은 예로 심장마비 환자들 중 전조 증상으로 통증을 가슴이 아니라 팔이나 어깨, 손 등과 같이 신체의 다른 부위에서 느꼈다고 보고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절단한 사지에서 통증을 느끼는 환상지 증상 또한 통증의 이해를 어렵게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동일한 자극에 상처를 받더라도 사람에 따라 느끼는 통증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가장 잘 알려진 예로 2차 세계대전 중 군의관으로 복무한 Beecher에 따르면 전투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은 군인들의 75% 정도가 통증을 표시하지 않았으며 진통제도 복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Ossipov et al., 2010). 이런 예는 통증이 단순히 외부 자극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상위 인지 및 정서적인 요소의 영향도 받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통증은 유해한 자극을 탐지하고 경고하여 우리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중요한 방어체계의 일환이다. 우리가 상처를 입었을 때 그 위치를 즉각적으로 파악하여 적절하게 대처하는 것이 우리 자신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심리적 통증 또한 그 통증의 정확한 위치를 알 경우 보다 적절한 대응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최근 뇌 영상 연구가 용이해지면서 통증을 포함한 고차원 인지과정에 대한 이해가 확대되는 중이다. 하지만 통증은 여전히 그 복잡성으로 인하여 우리가 이해를 충분하지 못한 현상 중 하나다. 심지어 통증이 주관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객관적인 현상인지조차 학자들 간에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Dekkers, 2017. 위에서 인용한 국제통증학회의 통증에 대한 정의는 이런 점을 잘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통증이 물리적인 자극에 의해 발생했던지 아니면 심리적인 사건으로 발생했던지 뇌의 정보처리의 부산물이며 따라서 뇌의 신경회로에 의해서 구현되는 것만은 확실하다. 조만간 심리적인 통증의 위치도 알 날이 올 것으로 기대한다. 그때까지 가슴이 아프면 진통제나 한 알 먹어야겠다. mind

   <참고문헌>

  • Dekkers W. (2017). Pain as a subjective and objective phenomenon. In T. Schramme, & S. Edwards (Eds.), Handbook of the Philosophy of Medicine (pp. 169-187). Dordrecht: Springer.
  • DeWall, C.N. et al. (2010). Acetaminophen reduces social pain: Behavioral and neural evidence. Psychological Science, 21, 931-937.
  • Kross, E.K. et al. (2011). Social rejection shares somatosensory representations with physical pain.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08, 6270-6275.
  • Ossipov, M.H., et al. (2010). Central modulation of pain. Journal of Clinical Investigation, 120, 3779-3787.

 

 

 

김남균 계명대 심리학과 교수 지각심리 Ph.D.
University of Connecticut에서 실험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수여받았으며, 그 뒤, William Paterson University (NJ 주립대학)과 영국 University of Leicester 심리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계명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각에 근거한 운동 통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최근에는 퇴행성 뇌질환 환자, 특히 알츠하이머형 치매 및 파킨슨병 환자들의 시각 및 운동 장애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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