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가 실력은 아닐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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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가 실력은 아닐 거예요..
  • 2019.12.07 16:56

커피숍의 소음이 최적의 집중력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들이 속속들이 발표되기 이전부터 커피숍의 공간이 주는 묘한 긴장감과 활력을 즐기는 편이었습니다. 웅성거리는 소음이나 은근한 분주함이 꽤나 자극이 되니까요. 다만 테이블 간격이 너무 좁은 경우 바로 곁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감정을 쿡쿡 찌르는 경우라면 마음은 쉽게 혼돈의 카오스로. 

'실수도 실력이야'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이는 만 4,5세 즈음 되는 나이였고 보호자는 아이에게 문제풀이 학습지를 주고는 몇 장을 과제로 내 준 모양이었습니다. 나이에 비해 다소 어려워 보이는 문제들이었는데 그 중 하나를 틀린 아이에게 굳이 '왜 그랬어? 실수했어?' 하더니 '실수도 실력이야' 라고 연달아 이야기를 하는 보호자.

왜 그랬어? 라는 질문은 아이가 변명하는 습관을 갖게 합니다. 그러게요.. 왜 그랬을까요.. 그냥 그렇게 된 거죠... 이 답정너 스러운 질문으로 보호자는 아이들을 자꾸 시험에 들게 합니다. 왜? 왜그랬어? 말 좀 해봐? (물론 아이들이 보호자를 시험에 들게 하는 경우도 많지만 좀처럼 이 질문의 악독함을 넘어서는 시험을 아이들이 고안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특히 행동의 원인과 결과를 연결짓는 것이 어려운 연령의 아이들은 보호자의 '왜 그랬어?'가 무슨 뜻을 내포하는지 모릅니다. 그 미묘한 부정적 뉘앙스에 아이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변명이나 거짓말을 허겁지겁 찾기 시작하고요.

아이가 실수를 했을 때에는 '이 물컵이 네게 안 보이는 곳에 있어 네가 물을 팔꿈치로 쳤구나' 혹은 '네가 여러 문제를 잘 풀다가 이 문제는 잘못 풀었구나'처럼 보호자가 파악한 그대로 기술하고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에게 일부러 변명의 탈출구를 슬쩍 보여주고 변명을 유도하지 마세요. 있는 그대로 상황을 담백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익힐 기회를 빼앗지 마세요.

무엇보다 실수도 실력이라는 이야기는 더 괴로웠는데, 사실 어릴 때부터 실수가 도대체 왜 실력인지 저도 계속해서 궁금했습니다.. (부주의하여 시험 문제 마지막 몇 개를 안 풀기도 했던 사람은.. 나..)

실수만큼 자의적으로 해석되는 단어가 또 있을까요? 부주의하여 잘못함,이라는 뜻의 실수는 어느 순간 나의 수준이 되고 능력이 되고 나의 실패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실수'라는 단어가 사람이었다면 그 억울감이 상당했을 것 같습니다. '나는 그냥 실수야! 실수라고!'

만 4,5세 때부터 듣는 메시지가 '실수하면 안된다' 혹은 '실수도 실력이야'였던 친구와 '실수를 했군. 그럴 수도 있지. 실수는 너의 실패는 아니야'를 반복적으로 들은 친구의 회복탄력성은 십수년 후에 어떻게 달라질까요?

아주 짧은 시간동안 아이에게 연달아 주어진 미묘한 메시지들에 아이는 아무 말도 않고 멋쩍게 웃기만 했습니다. 보호자는 마지막으로 '이건 너한테 너무 쉬웠다, 그치?'를 남기고 자리를 떴습니다.

왠지 곁에서 함께 야단맞은 제 멘탈도 잠시 함께 출입문을 빠져나갔다 찬 바람에 다시 쏙 들어와 다시 앉아있습니다. mind

※ 추신: 처음으로 말해보지만, 실수가 실력은 아닐.. 아닐 거예요..  과거의 나와 같았던 아이의 뒷모습에 조용히 말한 이 단어들이 아이의 점퍼 뒷편 어딘가에 실수인 듯 어설프게라도 들러붙어 있기를 빌며.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임상심리 Ph.D.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이자 임상심리전문가. 한국임상심리학회 특임이사,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홍보이사, 대한뇌기능매핑학회 대의원 및 학술위원, 한국인지과학회 총무이사. 정신병리 및 심리치료의 효과를 임상과학 및 뇌신경학적 수준에서 규명하고자 연구를 지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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