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나 vs. 결정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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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나 vs. 결정하는 나
  • 2019.12.16 12:00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두 입장. 나에 대한 모든 것은 이미 다 정해져 있다는 의견과 모든 것은 다 나의 결정에 따라 정해진다는 의견 중 당신은 어느 쪽을 지지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인간 자의식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지만, 오늘 밤 술자리에서 누군가 얘기를 꺼낼 수도 있을 만큼 흔한 질문이기도 하다. 질문하는 자는 많지만 답을 찾은 자는 많지 않은 질문.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정말로 있는 것일까? 사람들 속 어딘가에 진정한 자기 자신이 확고한 형태로 이미 존재하지만 단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진정한 자기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어쩌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앞서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내가 누구인지가 이미 정해져 있는가?’라는 질문일 것이다.

나는 이미 정해져 있다.

이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입장이 있다. 먼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는 입장이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되는 순간 사람의 육체를 구성하는 유전적 특징들이 정해진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의미 있게 던지기 시작하는 청소년기에 접어들기 전에 사람들은 부모, 친구, 환경 등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된다. 그래서 청소년이 될 즈음에는 유전과 환경, 자연과 양육의 두 요소에 의해 이미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상당 부분 결정이 될 수 있다.

이 입장을 대표하는 학자로는 자기실현이라는 개념으로 유명한 아브라함 매슬로우Abraham H. Maslow를 들 수 있다. 자기실현이라는 말을 잘 생각해 보면, 이미 자기는 정해져 있으니 그 자기가 어떤 모습인지 찾아내어 실현하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 굳이 학자의 견해가 아니라 일상적인 삶 속에서도 이런 입장을 지지하는 상황은 흔하게 경험된다. 때때로 사람들은 정말이지 이 일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라거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내가 아니다.’라는 말을 한다. 아무리 노력하고 다방면으로 생각해 봐도 진정한 자기와 어긋난다는 것이다. 나는 교수가 천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심리학, 철학, 사회학 교수는 진정한 나와 아주 잘 어울린다. 하지만, 호시탐탐 대학원 진학을 꿈꾸며 직장 생활을 할 때조차 회계학 교수는 거저 시켜준다고 해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지금 이 순간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동의가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청소년기부터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 실체로서의 진정한 자기가 있다는 것까지 믿기는 힘들다. 그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해도, 그 어떤 큰 상처가 있어도, 그 누구를 만나도 전혀 변하지 않는 자기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나는 나의 결정에 따라 정해진다.

사르트르Jean Paul Sartre를 위시한 실존주의자들이 두 번째 입장을 대변한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 자신이 이미 존재한다(실존)고 해서 자신이 누구인지(본질)가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BbirthDdeath 사이의 Cchoice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오늘 저녁으로 무얼 먹을지, 누구와 먹을지 등의 사소한 결정에서부터 어떤 전공을 공부할지, 어떤 직업을 추구할지, 누구와 사귀고 결혼할지 등 중대한 결정까지 삶의 상당 부분이 자신이 내리는 결정에 의해 좌우된다. 그래서 지금의 자신이 누구인지는 자신이 지금껏 내려왔던 수많은 결정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아 왔다고 보는 것 또한 당연하다. 심지어 'You are what you eat.'이라는 주장도 있지 않은가?

Sketch of Sartre for the New York Times by Reginald Gray, 1965.
Sketch of Sartre for the New York Times by Reginald Gray, 1965.

학부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의학전문대학원에 다니는 학생 두 명을 생각해 보자. 두 명 모두 심리학을 좋아해 심리학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부모님의 권유를 따라 의사가 되기로 결정했다. 그중 한 명은 막상 의학 공부를 해보니 나름 적성에 잘 맞았고 의학을 통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의사로서의 삶이 의미 있는 삶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경우 의사로서의 자신에 대한 정당화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다른 한 명은 의사로서 생명을 구하는 것의 의미도, 경제적인 안정성도 다 이해할 수는 있으나 그 길이 자신의 길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끝내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아무리 머리로 정당화를 하려고 노력해도 실패하는 것이다.

나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지점

나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판단이 일어나는 지점이 바로 여기라고 생각한다. 절대로 변하지 않는 실체로서의 자신이 있다는 주장은 과격하다. 모든 것이 다 자신의 결정일 뿐이라는 주장 역시 과격하다. 결국 균형점은 두 입장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을 것인데, 그 지점이 바로 성공적인 정당화가 가능한, 즉 자신의 현재 모습이 내면화internalization되는 지점이다. 그리고 그 지점이 정체성이 형성되는 지점이다.

내가 보기에 많은 사람들이 나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무게감을 느끼는 것 같다. 미스테리로 존재하는 자신의 숨겨진 본질도, 백지장에서부터 시작하는 끝없는 선택도 아니라 지금 자신의 자리에서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이 바로 이다. 자신이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과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오는 제약 사이에서 합리적으로 협상해서 성공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어떤 길이 자신의 길인 것이다. 그러한 삶이 완벽한 삶은 아닐지라도 충분히 아름다운 자신의 삶이 될 것이다. mind

박선웅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성격및사회심리 Ph.D.
박선웅 교수는 사회 및 성격심리학을 전공하면서 나르시시즘 연구로 노스이스턴대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고려대에서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근에는 한국사회에 만연한 물질주의와 한국인들에게 부족해 보이는 개인적 정체성, 그리고 이 둘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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