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생각보다 괜찮은 곳: 분실지갑 회수율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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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생각보다 괜찮은 곳: 분실지갑 회수율 실험
  • 2019.12.13 10:00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대할수 있는 정직함은 어느 정도일까
"Archangel Michael fights Archangel Lucifer", by Lorenzo Lotto
양심의 싸움에서 천사가 승리해야 정직함은 나타나는 것일까요?

많은 고전적 이론들에서 사람들의 정직함은 항상 자기이득Self-interest과의 경쟁에서 산출되는 결과물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정직함과 경쟁하는 자기이득의 크기가 커질 수록 정직함은 행동으로 나타나기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 예상은 실제로 내 주변에 일어날 수 있을법한 상황을 상상해봐도 쉽게 납득이 간다. 우연히 길에서 습득한 지갑에 현금이 들어있을 때, 우리는 양심의 싸움을 해야만 하며 그 현금의 액수가 클수록 그 싸움을 힘들어 질 것이다.

그러나 정말 실제로 그럴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실험을 한 심리학자들이 있다. Cohn, Marechal, Tannenbaum 그리고 Zund(2019)는 40개 나라 355개 도시에서 1만7천개의 분실 지갑을 가지고 필드실험을 진행하였다. 일반적인 공공장소인 은행, 박물관, 영화관, 우체국, 호텔, 경찰서 같은 관공서 등에서 실험자는 습득한 분실 지갑을 각 장소의 관리실이나 카운터에 맡기고서는 급한 일이 있다고 사라졌다. 실험에 사용된 지갑은 투명한 재질의 비즈니즈 카드지갑으로 지갑을 열지 않아도 안에 들은 현금과 지갑소유주의 것으로 추정되는 명함이 보인다. 이 실험을 통해 현금이 아예 들어있지 않은 지갑과 현금이 들어있는 지갑(USD 13.45, 한화 만오천원 상당) 중 어느 것이 더 주인에게 많이 돌아오는지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명함에 적힌 이메일로 100일내에 연락이 오는지를 종속 측정치로 사용하였다. 

결과는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돈이 없을 때보다 '돈이 들어있는' 지갑일 때 주인에게 찾아주려한 시도 횟수가 월등히 많았다(평균적으로 돈이 없는 지갑 40% vs. 돈이 있는 지갑 51%,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했다. < .0001). 

이 결과를 보고 혹자는 습득자가 힘든 양심의 싸움을 벌이기에 지갑 속 현금의 액수가 충분히 크지 않았기 때문 아니냐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큰 돈이 있는 지갑(USD 94.15, 한화 11만2천원 상당) 조건을 추가하여 3개 나라(미국, 영국, 폴란드)에서 다시 실험을 진행하였다. 결과는 마찬가지로 놀랍게도 지갑 속 현금의 액수가 커짐에 따라 더 열심히 지갑 주인을 찾아주려 하였다 (돈이 없는 지갑 46% vs. 돈이 있는 지갑 61% vs. 큰 돈이 있는 지갑 72%, 모든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했다. < .0001).

그렇다면 자기이득적 상황을 이겨내고 나타나는 정직함은 어떤 심리를 근거로 한 것일까? 지갑을 습득했을 당시 주위에 몇 명의 사람이 있었는지, 건물 안 CCTV 존재 여부, 해당 자치구에 적용되는 분실물 습득에 관련된 처벌의 강도는 어느 수준인지를 모두 통계적으로 고려해도 정직함의 결과는 여전했다.

추가로 실시한 실험과 설문을 통해 연구자들은 지갑을 돌려주려 한 노력에는 지갑 주인에게 소중한 것을 돌려주고자 하는 따듯한 마음과 큰 돈이 든 분실지갑을 돌려주지 않았을 때 느끼는 죄책감 두 가지가 작용한 것을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연구자들은 분실지갑에 돈이 없을때, 돈이 있을 때를 상상해서 얼마나 주인에게 돌아올 것 같은지를 예상해보라고 일반인과 경제전문가들에게 질문하였다. 일반인과 경제전문가들은 기존의 이론들에서 예상하는 것처럼 지갑 속 현금이 늘어날수록 분실지갑이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답하였다(실제 회수율과 예상에서의 차이는 일반인들의 응답보다 경제전문가들의 응답에서 더 작았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사람들의, 일반적 예상보다 실제로 기대할 수 있는 시민들의 정직성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박애주의적인 따듯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에 자연스레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놀랍게도 우리 예상보다 더 많다. 우리는, 생각보다 괜찮은 세상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mind

<참고 문헌>

Cohn, Marechal, Tannenbaum & Zund (2019). Civic honesty around the globe. Science.

정재욱 서강대 심리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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