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에서 배우기 어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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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에서 배우기 어려운 이유
  • 2019.12.24 16:00
사람들은 실패한 경험보다 성공한 경험에서 더 잘 배운다고 한다. 하지만 실패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것은 실패 중의 가장 뼈아픈 실패가 될 것이다.

인간이라면 살아가면서 누구나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한다. 원하는 직장에 취업을 실패하기도 하고, 약속한 마감 기한을 지나 기고를 하는 실패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마 어느 누구도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일에 실패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실패의 뒷맛은 쓰디쓰니 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들은 실패가 어느 정도는 필요악이며 심지어 실패를 해봐야 더욱 성숙해지고 많이 배울 수 있다고들 한다. 실제로 사람들은 실패에서 배우고 있는가?

실패에서 배우지 않는 사람들

시카고 대학의 연구자들은 이 질문을 정교하게 검증하기 위해 새로운 실험 패러다임을 개발하여 여러 번의 실험 연구를 진행하였다. 실험 패러다임은 학습 단계와 평가 단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학습 단계에서 참가자들은 양자택일 문제를 풀고 그 다음 장에서 방금 푼 문제들에 대한 성공(“정답!”) 혹은 실패(“오답!”) 피드백을 받았다. 평가 단계에서는 참가자들이 성공 혹은 실패 피드백을 통해 학습을 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참가자들에게 학습 단계에서 푼 문제들을 (문제만 부정문으로 바꾸어) 다시 한 번 풀게 하였다. 연구자들은 참가자들의 동기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참가자들이 평가 단계에서 정답을 맞힐 때마다 참가비를 더 지급하였다. 이 실험 패러다임에서 ‘배움’은 참가자들이 평가 단계에서 정답을 맞힌 문제의 비율로 정의되었다. 사람들이 실패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는 사회적 통념과 다르게, 실패 피드백을 받은 사람들은 성공 피드백을 받은 사람들에 비해서 평가 단계에서 정답을 덜 맞혔다. 더 나아가 성공 피드백을 받은 참가자들은 우연 수준(3문제 중 1.5문제)보다 더 많은 문제를 맞혔지만, 실패 피드백을 받은 참가자들은 우연 수준보다도 적은 문제를 맞혔다.

더 많은 보상이 주어진다면?

만약 정답을 맞힐 때마다 더 많은 보상을 주면 달라질까? 2번째 실험에서는 0.1 달러씩 보상을 준 이전 실험과는 달리, 정답을 맞힐 때마다 1.5 달러씩 보상을 주었다. 그 결과 실패 조건의 참가자들은 성공 조건의 참가자들에 비해 여전히 덜 배우는 경향이 있었지만, 두 조건의 참가자들 모두가 우연 수준보다는 더 많은 문제를 맞혔다. 따라서 큰 보상이 따를 때에는 참가자들은 실패에서도 조금은 교훈을 얻는 것으로 보인다.

인지적 부담을 줄여준다면?

만약 실패 조건 참가자들의 인지적 부담을 줄여주면 달라질까? 1, 2 번째 실험에서 성공 피드백을 받은 참가자들은 자신이 학습 단계에서 맞힌 정답들을 기억해서 그대로 평가 단계에서 선택하면 됐다. 하지만 실패 피드백을 받은 참가자들은 자신이 학습 단계에서 선택한 오답에서 정답을 역으로 추론하여 평가 단계에서 답을 맞혀야 했기 때문에 인지적 자원이 더 소모되었을 수 있다. 따라서 3번째 실험에서는 실패 피드백 조건의 참가자들의 인지적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정답’이 아닌 ‘오답’을 고르도록 하였다. 이처럼 실패 조건의 참가자들은 과제가 상대적으로 쉬워졌지만 여전히 성공 조건에 속한 참가자들보다 덜 배웠으며, 우연 수준보다도 정답을 덜 맞혔다.

피드백 없는 조건과 비교한다면?

만약 실패 피드백을 받는 조건과 아예 피드백이 없는 조건을 비교한다면 달라질까? 대체로 사람들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면 그 경험에 흥미를 갖게 되는 반면에, 부정적인 평가를 받으면 흥미를 잃기 때문에 제대로 된 비교가 안될 수 있다. 연구자들은 다음 실험에서 자연스럽게 관심이 사그라드는 피드백이 없는 조건과 실패 피드백을 비교하였다. 그러나 실패 피드백을 받은 사람들은 피드백을 전혀 받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서 문제를 덜 맞혔으며, 우연 수준보다도 덜 맞히는 경향을 보였다. 따라서 사람들은 실패했다는 평가를 들으면 그 문제에 대해 관심을 차단해 버리는 것으로 보인다.

실패로부터 배우기 어려운 이유

왜 사람들은 실패한 경험으로부터 배워서 더 나아지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연구자들은 실패가 자아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 경험을 더 이상 떠올리고 싶어하지 않고 자연스레 그 경험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기도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이어지는 실험에서 실패 피드백을 받은 조건의 참가자들은 성공 피드백들 받은 조건의 참가자들에 비해 학습 단계에서 받은 평가로 인해 자아존중감이 하락했으며(자아에 대한 위협을 받은 상태), 이렇게 하락한 자아존중감이 학습을 방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타산지석은 가능할까?

만약 자신의 실패를 마주하는 것이 위협이 되어서 실패로부터 배우지 못한다면, 타인이 경험하는 실패에서는 배울 수 있을까? 마지막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학습 단계에서 다른 사람이 문제를 푸는 것을 지켜보고 각 문제에 대한 성공 혹은 실패 피드백을 받아본 후에, 평가 단계에서 참가자 본인이 직접 그 문제를 풀어보았다. 그 결과 참가자들은 다른 사람이 성공 피드백을 받는 조건에서 만큼이나 다른 사람이 실패 피드백을 받는 조건에서도 많은 문제를 맞혔다. 즉, 다른 사람이 실패하는 상황은 자신에게 그다지 큰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실패로부터 교훈을 삼아 더 많이 배우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여러 방면으로 가설을 검증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에도 물론 한계는 있다. 먼저 이렇게 실패에서 배우지 않으려는 경향은 실패의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패러다임에서 사람들이 경험하는 실패는 상대적으로 미미한 수준이기 때문에 무시할 수 있었지만, 개인에게 닥친 아주 큰 실패에서는 사람들이 배우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을 수 있다. 또한 이 연구는 서양 문화권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태도가 확연하게 다른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럼에도 필자가 이 연구를 소개하는 이유는 우리가 성공과 실패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이 연구의 결론을 정리하자면, 직관에는 반하지만 사람들은 실패한 경험보다는 성공한 경험에서 더 잘 배울 수 있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의 실패보다는 타인의 실패에서 더 잘 배우는 경향이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점은 실패를 피할 수 없다면 자기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방식으로 그 실패를 받아들이는 것이 실패에서 조금이나마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이다. 실패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것은 이 논문의 제목처럼 실패 중의 가장 뼈아픈 실패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mind

<참고문헌>

  • Eskreis-Winkler, L., & Fishbach, A. (2019). Not learning from failure—the greatest failure of all. Psychological Science, 30, 1733-1744.
최혜원 University of Virginia 사회심리학 Ph.D.
연세대 심리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 버지니아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화 및 사회생태학적 변인과 행복의 관계, 대인 판단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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