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나 어리고 얌전한 내 딸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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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나 어리고 얌전한 내 딸이기를
  • 2019.12.26 10:32
부모에게 사랑받기 싫어하는 아이는 없다. 언제까지나 어리고 얌전할 줄로만 알았던 딸이 어느날 분노의 화신이 되어 있다면, 부모자녀관계가 어디서부터 꼬이지는 않았는지 한 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빠의 사랑, 혹은 공포

사춘기 소녀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슈퍼우먼이 되고 싶은 꿈을 꾸어 본 적이 있을 것 같다. 예쁘고 날씬하고 힘도 세고 똑똑해서 누구에게도 지지 않지만 성격도 좋은 완벽한 여자가 되는 것 말이다. 그리고 언제나 나를 사랑해주시는 아빠와 남자친구, 나를 잘 이해해주는 엄마와 사이좋은 친구들이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특히 아동기의 여자아이들에게는 아빠에게 사랑받는 딸이 되는 것이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완벽하지 않을뿐더러 어려서부터 세상은 무섭고 답답하고 언제 성격이 바뀔지 모를 두 얼굴의 아버지가 있다면 아마도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참고 견디어야 하는 끔찍한 세월에 복수를 하고 싶을 것이다. 어리고 여린 얌전한 딸로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주길 바라는 부모 밑에서 성장하며 엄마도 모르게 이따금씩 아빠의 폭력에 당해본 경험이 있는 여자아이라면, 언젠가는 어디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 같은 분노를 키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분노의 폭주는 남자아이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갑자기 난폭해진 아이

몇 년 전 무더운 여름날, 어떤 어머니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둘째 아이가 중학교 때 우울증을 겪어서 잠시 상담을 받으러 온 적이 있는데 그때 이후로 아이가 많이 좋아져서 나를 기억한다고 하시며 찾아오시겠다고 하셨다.

그 어머니의 이야기로는 지금까지 멀쩡하게 잘 있던 큰아이가 갑자기 난폭해지더니 분노조절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는 것이다. 예쁘고 공부 잘하고 똑똑하던 내 딸에게 이런 일이 생기다니 믿을 수 없다며 어머님의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큰아이의 상담을 의뢰하러 오셨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가족 상담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아버지의 신경질적인 성격에 어머니도 많이 지쳐 있는 상태였다. 당장 급한 것은 큰아이를 그대로 두었다가는 장래를 망칠지도 모른다며 걱정하셨다.

지금까지 외부에 알려진 아이의 모습은 얌전하며 공부 잘하고 부모 말에 순종하는 모범생이어서 학교나 교회에서 두루두루 인정을 받아 졸업과 동시에 외국으로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가기로 예정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몇 달 동안 지하철, 버스 안, 길거리 등에서 남자들과 시비가 붙어 싸움을 하고 얼마 전에는 연세가 높으신 남자노인께 욕을 하며 싸움을 하여 지팡이로 얻어맞고 경찰에 신고를 해서 어머니가 사죄를 하고 집에 데리고 오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큰아이가 어리고 얌전한 내 딸로 돌아가 주길 간절히 소망하신다면서 상담을 의뢰하셨다.

아버지 문제가 아닐까...

어머니와의 면담을 통해 큰아이의 분노조절 장애가 시급한 문제로 여겨졌다. 그렇지만 상담자가 관찰한 바로는 가족들이 모두 아버지와의 관계가 원만해 보이지 않았으며 아버지의 급한 성격과 신경질로 인해 아이들이 아동기 때 상처를 입었을 것 같아 물어 보았다. 어머니는 잘 모르겠다고 하셨고, 아이들이 아빠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가정폭력은 없었다고 한다. 어머니도 모르는 아이들의 상처는 큰아이를 만나고서야 밝혀지게 되었다. 아이의 상처가 외부로 알려지게 되자 아버지도 어머니 손에 이끌리어 상담을 받으러 오셨다.

나를 집어던진 아빠

어머니가 상담을 의뢰하고 가신 뒤에 큰아이를 만났는데 어디로 보나 가냘프고 약해보였다. 길거리에서 남자들과 시비가 붙어 싸울 것 같은 기세는 보이지 않았고 분노조절 장애라는 진단이 어울리지 않았다.

“원래 남자들을 좋아하지 않나요?”

“아니요. 남자친구도 사귀었는데 몇 달 전에 싸우고 나서 남친이 바람피우는 것 같아 헤어졌어요.” "

"그일이 있고 나서부터 갑자기 가슴이 터질 것 같이 답답하고 길에서 누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겠어요."  

"집에 있으면 더 답답하고 그래서 밖에 나오면 이상한 인간들이 너무 많고 다 죽이고 싶어요."

"너무 화가 나요. 나는 왜 이따위로 살아야 하는지..."

한참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더니 어릴 때 아빠에게 맞은 기억이 있는데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아빠가 엄마에게 말하면 더 혼내준다고 했기 때문에 엄마에게 말을 할 수 없었다고 하며 6살 때 기억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빈집에서 술에 취해 화가 난 아빠에게 따귀를 맞아 울자 아빠가 식탁 아래로 집어던졌다고 하며 구석으로 몰아넣고는 엄마에게 말하면 가만 안 둔다고 했었다고 한다.

두세 번 더 그런 일이 반복되자 엄마에게 말을 했더니 아빠는 내가 말을 안 들어서 혼내준 거라며 안 때리겠다고 했고, 그 뒤로는 때리지는 않았지만 무지막지한 잔소리를 들으며 성장했다고 한다. 자라면서 겪은 아빠의 모든 행동은 큰아이가 이성을 만날 때 남자를 점검하는 기준이 되었으며 사춘기 이후로 더 이상 아빠를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아빠를 무시하고 식탁에 같이 앉아 밥 먹는 것조차 싫어서 아빠가 식탁에 있을 때는 밥을 먹지 않는다고 하였다.

실패한 인생의 트로피 노릇

큰아이는 아빠에게 잔소릴 안 들으려고 기를 쓰며 공부했고 어딜 가나 칭찬을 들어 아빠가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자기를 자랑한다고 했다. 어머니 말로는 큰아이가 6살 될 무렵부터 아빠가 직장에서 사표를 내고 나와 버려서 실직 상태였다고 한다. 성격이 너무 까칠해서 어딜 가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해 오랫동안 일을 하지 못하자 결국 엄마가 직장에 나가시면서 아빠는 집안일을 하게 되어 더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큰아이는 초등학교 때 아빠가 집에 있는 것이 싫어서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오지 않았고 중학교 때는 아무도 모르게 나쁜 친구들과 어울렸지만 성적이 좋으니 그냥 넘어갔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중적인 생활을 계속해왔고 더 이상은 아빠의 트로피 노릇을 하기 싫은데 성공은 하고 싶고 주변사람들의 칭찬과 기대에 부응해야 하니 너무 힘겹고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아빠를 생각하면 어떨 때는 불쌍하고 안쓰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화가 치밀어 집에서 나와 길거리를 쏘다니다가 술을 마시고 길에서 남자들과 시비가 생기게 되는데, 대부분 남자들의 힐끔거림이나 성희롱 같은 말들 때문에 싸우게 된다며 남자들의 막말에 정말 질린다고 하였다. 아빠로 인한 상처는 청소년기 성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쳐서 자신도 모르게 여자인 자기 자신을 싫어하게 되었고 남자들에게 기죽지 않으려고 더 완벽한 여자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몇 번의 상담을 통해 아빠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게 되었으며 아빠가 잘못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면 마음이 좀 풀릴 것 같다고 해서 가족들이 모두 상담을 받으러 오게 되었다.

어느새 어른인 아이들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큰아이의 상담내용을 간략하게 들려주었다. 아빠는 약간 충격을 받으신 듯 얼굴이 붉어지셨으나 지나간 일들이고 술이 취한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라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빠가 잘못했다고 사과하셨다. 하지만 엄마는 자신도 모르게 어린 딸에게 남편을 돌보게 만들었고 늘 딸에게 아빠를 부탁하고 나갔던 것을 기억하시고는 몹시 오랫동안 우셨다. 언제까지나 어리고 얌전한 아이로만 있어주길 기대했던 자신이 너무 어리석었다며 딸에게 미안해 하셨다. 둘째인 아들도 아빠의 눈치를 보는 게 힘들었고 오랫동안 우울증을 겪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부모에게 기대하지 않는다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분가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빠와 엄마가 모두 마음깊이 자녀들에게 사과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심리학의 아버지를 불리는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손자 루시언 프로이드의 작품이다. Lucian Freud (1922~2011), 'Father and Daughter', 1949, 45.7 x 91.5 cm, Private Collection.
심리학의 아버지를 불리는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손자 루시언 프로이드의 작품이다. Lucian Freud (1922~2011), 'Father and Daughter', 1949, 45.7 x 91.5 cm, Private Collection.

비교적 짧은 회기 동안 가족문제가 해결되어 다행이었지만 큰아이의 분노조절 문제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어서 그 후로 3개월 동안 병원의 처방약과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하였다. 상담을 통해 눈에 띄게 달라진 큰아이의 태도는 아빠에게 존댓말을 하고 남자들에게 열등감을 갖지 않으며 사소한 시비거리를 먼저 만들지 않고 피해간다고 했다. 지금은 어느 나라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한 번은 외국에서 자신의 길을 온전히 갈 수 있도록 도와준 은혜에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는 문자가 온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성장기에 겪은 상처로 인해 피도 나고 흉터도 생기지만 그것이 모두 다 나쁜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절한 시기에 온가족이 힘을 모으고 때가 되었을 때 함께 상처를 극복하는 노력만 한다면 더 좋은 결과도 있는 것이다. mind

진혜전 다온심리상담센터와 대구드라마치료연구소 대표 상담심리 전공
1990년 3월 부터 26년간 대구광역시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청소년상담을 하였고 2017년부터는 대구에서 다온심리상담센터와 대구드라마치료연구소를 운영한다. 계명대 교육대학원에서 상담심리를 전공하였으며, 대구가톨릭대에서 사회복지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사이코드라마소시오드라마학회 수련감독전문가로 청소년상담, 부모교육, 인간관계 갈등해결과 정신장애 재활을 위해 사이코드라마와 소시오드라마, 통합예술치료 적용을 위해 관심을 갖고 노력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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