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과 시각적 풍요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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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과 시각적 풍요로움
  • 2019.07.17 12:00
왜 나라마다 다른 미학적 특징을 갖는 것일까? 오랫동안 한중일 세 나라의 예술세계를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비교분석하고 지상현 교수가 미술에 숨겨진 원리를 설명해준다.

그림, 능동적인 해석과정

그림을 그리는 일은 눈에 보이는 데로 대상의 윤곽을 따라 그리는 수동적인 과정이 아니다. 카메라가 아닌 이상 변화무쌍한 윤곽을 수동적으로 따라 하면 국소적으로는 그럴싸해도 전체적 형태가 산으로 갈지 모른다. 화가들은 큰 골격을 놓치지 않기 위해 윤곽을 가급적 단순화하고 형태를 구성하는 큰 틀을 파악해 그리려 한다. 이 과정은 능동적인 형태 해석과정이라 부를 수 있다.

예컨대 보통 원과 같은 ‘기본형form primitive’을 이용해 나름의 방식으로 윤곽을 분해해 가며 큰 틀을 파악한다. [그림 1]은 이런 과정의 실제 사례인데 원을 이용해 말과 사람의 얼굴을 분해하고 역으로 구성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 원의 종류를 많이 동원할수록 형태는 더 정교해지지만 그렇게 하는 미술가는 많지 않다. 특히 경험 많은 미술가일수록 적은 수의 원을 사용해 대상을 그럴 듯하게 재현하는 반전의 맛을 살린다.

   [그림1] 말과 사람 얼굴의 윤곽선을 둥근 원을 이용해 찾는 과정이 밑그림에 남아있다. 

원의 종류와 수가 많은 그림은 윤곽의 세세한 변화를 잘 살릴 수 있어 시각적으로 풍요로운 느낌을 준다. 그러나 자칫하면 혼잡스러운 그림이 되기도 쉽다. 반대로 원의 종류와 수가 적어 간결하면 감상자는 능숙함까지 맛 볼 수 있지만 시각적 풍요로움은 줄어든다. 서툴 경우에는 허전하고 싱거운 그림이 되기도 한다.

질박한 아름다움의 비밀

만약 질박한 혹은 원시적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면 좀 골치 아프다. 시각적으로 풍요로우면 정교하거나 사실적인 그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질박한 느낌에는 좋지 않다. 질박한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능숙한 솜씨 자랑도 피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면 허전하고 싱거운 그림이 되기 쉽다. 해답은 박수근의 그림에 있다. 그는 그림의 표면에 작은 요철로 질감을 더해 시각적 풍요로움을 높였다. 그는 매우 질박하고 간결한 형상의 그림을 그리지만 단조롭거나 허전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표면결이 만들어낸 수많은 작은 음영의 변화가 간결한 형상에 풍요로움을 더하기 때문이다.

박수근朴壽根, 1914~1965. '나무와 두 여인'. 1964. 하드보드에 오일. 27 X 19.5cm. 갤러리 현대 소장.

시각적 풍요로움은 작가, 시대, 문화권에 따라 일정한 수준에서 유지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를 잘 분석하면 작가 개인이나 한 문화권이 추구하는 미학, 더 나아가 문화전반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한국과 중국 미술의 특징을 파악하기 위해 석불의 시각적 풍요로움을 비교해 보았다.

미술에 숨겨진 문화적 차이

미술사가들은 중국의 미술은 우리 보다 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는 대상의 시각적 특징을 풍부하게 담으려 하고 더불어 풍요로움도 높다는 말이다. 반면 우리는 가급적 간결하게, 다시 말해 시각정보를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산수화 등 문인화를 보면 그렇다. 이런 차이가 미술 전반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왜 석불을 선택했고 중국과 한국만 비교하는지 잠시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우선 일본은 석불이 거의 없고 청동불, 목불, 건칠불이 대부분이다. 반면 우리는 석불이 많다. 금동불은 삼국 모두 적지 않지만 크기가 작고 다루기도 쉽고 모본에 충실해서 국가 간 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목불의 경우에는 중국은 조각이 사실적이고 색채도 풍부하다. 우리는 색채가 풍부한 대신 조각이 간결하다. 일본은 사실적이지만 색채는 거의 없다. 기본 양식에서 차이가 크기 때문에 수평적 비교가 어렵다. 이런 이유로 색채가 없고 국가 간 특징이 잘 드러나는 석불을 선택했고 일본은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입체적인 석불의 시각적 풍요로움을 ‘기본형’을 이용해 측정하자면 석불 표면의 중요 지점에서 360도 방향의 곡률을 계산하고 그것에 맞는 크기의 구를 찾는 방식이어야 한다. 대규모 연구가 필요해 당장은 어려운 일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특정 각도에서 본 석불의 이미지로 대상을 단순화 한 후 그 석불의 이미지를 화가들이 하듯이 직관에 의존해 원으로 분해해 보는 것이다. 측정이라기보다 단순 추정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다.

경주 남산에 있는 약사여래 등 대표적인 석불 7개와 중국의 석불의 얼굴을 비교한 결과 중국의 불상은 대개 10~14개 정도의 원을 사용했고 우리는 6~10개 정도였다. 회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에 비해 우리의 석불의 시각적 풍요로움이 낮은 편이었다.

물론 우리는 단단한 화강암을 깍아 만들고 중국은 비교적 다듬기 쉬운 석회암으로 불상을 만든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차이를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관골을 중심으로 이마로 올라가는 선과 뺨으로 내려가는 선의 처리다. [그림 2]의 우측 중국 북주시대의 석불에서 보듯 중국은 두 개의 원을 사용해 이마와 뺨의 윤곽을 표현하고 우리는 대부분 하나의 원으로 처리했다. 그래서 중국은 좌우 합해 2개 정도 더 많았다.

 [그림2] 석굴암 본존불과 중국 북주시대 석불 두상의 관골 부위 윤곽선에 사용된 원의 개수. 

석굴암 본존불의 자연스러움

석굴암의 본존불은 우리 불상 가운데 자연스러운 인체의 표현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사용된 원의 수가 많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추정해 보니 우리 불상의 평균치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예상이 빗나간 원인은 관골을 중심으로 이마쪽의 선과 볼선에 서로 다른 두 개의 원을 사용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실상은 이마의 선은 불상의 머리, 그러니까 나발의 안쪽으로 휘어들어가 있는데 나발 때문에 밖으로 휜 것처럼 보인 것뿐이다. 실제는 볼선과 같은 원을 사용했다.

석굴암 본존불 석가여래좌상釋迦如來坐像, 화강석 불상, 높이 약 3.4m, 통일신라시대, 국보 제24호 (1962년 12월 20일 지정). 수법이 정교하며 장중웅려한 기상이 넘치는 매우 보기 드문 걸작이다.
석굴암 본존불 석가여래좌상釋迦如來坐像. 화강석 불상. 높이 약 3.4m. 통일신라시대. 국보 제24호. 

요약하면 산수화나 조각에서 보는 한국과 중국의 시각적 풍요로움의 차이가 석불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이런 차이는 앞서도 이야기 했듯이 미술양식의 차이를 만든 양국의 감성적 기질의 차이를 알려준다. 여기서 잠깐 시각적 풍요로움이 어떻게 감상자의 감성적 기질, 기본 소양, 사회-문화적 환경 등과 연결되는지 간단히 살펴보자.

사회심리적 요인과 시각적 풍요로움

인공지능 연구자인 슈미드 후버Jürgen Schumidhuber는 원과 같은 기본형태의 반복을 통해 어떤 형상이건 그려낼 수 있다는 점을 실재로 보여준 적이 있다. 먼저 이 기본 형태의 전개규정을 6개 정도 정한다. 예컨대 규정 1은 “정원正圓은 같은 크기의 외접 원을 만나면 그 접점에 반지름을 지름으로 하는 내접원을 그린다”와 같은 식이다. 이런 6개의 규정을 의도에 따라 순서를 바꿔가며 규정의 열을 만들 수 있다. 알고리듬화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알고리듬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원하는 형태를 기본형으로 분해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하여간 이 때 알고리듬의 길이는 시각적 풍요로움의 잣대가 된다.

한국과 중국의 석불로 치면 중국은 더 많은 원을 사용하였으니 알고리듬의 길이가 길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시각적으로 더 풍요롭다. 그런데 시각적 풍요로움은 감상자의 지식, 숙련도, 감성적 기질 등에 따라 달라진다. 내 눈에는 복잡한 컴퓨터 내부가 전문가들에게는 단순해 보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술전문가들은 복잡한 작품을 좋아한다. 그래야 그들이 흥미를 느낄만한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타고나기를 난해한 추상화나 복선이 많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살아온 문화적 환경이나 사회구조의 복잡함도 시각적 풍요로움에 대한 민감도에 영향을 줄 것이다.

이렇게 감상자의 사회-심리적 요인들이 시각적 풍요로움의 민감도에 영향을 준다. 반대로 한국과 중국이 선호하는 미술양식의 시각적 풍요로움의 차이는 그들의 사회-심리적 특성에 관해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다. 석불의 시각적 풍요로움을 비교한 이유의 하나가 이것이다. mind 

지상현 한성대 융복합디자인학부 교수 지각심리 Ph.D.
홍익대 미술대학과 연세대 대학원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회화양식style이 결정하는 감성적 효과에 관한 주제로 학위 논문을 썼다. 현재는 한중일의 문화를 교차비교하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삼국 미술양식의 차이를 규명하고 이 차이를 결정하는 감성적 기질의 차이를 추정하는 일이다. 관련 저서로는 <한국인의 마음>(사회평론)과 <한중일의 미의식>(아트북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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