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맞지 않는 관계에 계속 빠져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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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맞지 않는 관계에 계속 빠져드는가?
  • 2020.01.27 10:00
자신의 지난 연애 패턴을 돌아보자. 어떤 공통점이 보이는가? 혹시 매번 비슷한 관계 문제를 반복하고 있었다면 공통점은 거기에 변하지 않는 내가 있다는 것이다. '그놈이 그놈'인 게 아니라, 계속 '같은 놈'을 만나는 '내'가 있다.

 ♪Again and again and again and gain. 이렇게 왜 내가 또 너의 집 앞에 또 서 있는 건지. 대체 난 바본지. 정말 속고 또 속고 또 당하고 또 당해도 또 다시 이 자리에 와있는지.♬ (2PM의 'Again & Again' 가사 중)

왜 우리는 고통인 줄 알면서도 같은 일을 반복하는걸까?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 비교적 일관된 모습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특히, 애정 관계나 갈등 관계에서 더욱 그러하다. 사랑에 빠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정작 헤어지는 이유는 한 가지인 경우가 많다. 이처럼 문제가 되는 것을 알면서도 파괴적인 관계 패턴을 되풀이하는 모습을 두고 프로이트Freud는 '반복 강박repetition compuls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결국 자신에게 고통이 될, 해결되지 않은 유아기적 갈등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재연하고 만다. 이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도대체 나의 '어떤' 측면이 이렇게 소득 없는 관계를 되풀이하게 만드는지 들여다보는 것이다. '바보같이 내가 내 발등을 또 찍었네' 싶은 관계가 떠오른다면, 그건 자신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데 좋은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

부적응적인 심리도식

상대방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그래서 그에게 어떻게 반응할지를 결정하는 기본적인 관계 양식은 주로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 그중에서도 강렬한 정서를 동반한 기억은 마치 버튼이 눌린, 고장 난 노래 테이프처럼 이후의 삶에서 자동적으로 반복 재생되는 경향이 있다. 영Young은 아동기 시절에 충족되지 못한 정서적 욕구로 인해 부적응적인 심리도식Maladaptive Schema이 형성된다고 가정하였다. 어른이 되어 이러한 도식을 활성화시키는 사건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마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것처럼 강렬한 정서적 반응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Young, Klosko, & Weishaar, 2005.

예를 들어, 냉담한 부모 아래서 성장하여 타인은 불안정하고 신뢰할 수 없다고 믿게 된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렇게 아동기에 유기/불안정 도식이 형성된 사람은 성인이 된 후 새로운 관계에서도 마치 냉담한 부모를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상대방을 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소한 실수를 한 후 연인의 화난 표정을 마주했을 때, 자신의 잘못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 상대가 자신을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강한 두려움에 압도될 수 있다. 그 결과, 진짜 상대방의 의도(화난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언제나 그러했듯이 자신을 버리게 될(적어도 그렇게 믿게 되는) 매정한 대상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자신만 남는 것이다.

Magritte의 Lovers. 여기 베일을 쓰고 있는 두 사람이 키스를 하고 있다. 일견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매우 몰두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얼굴을 뒤덮은 베일은 서로의 진정한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고 소통이나 접촉을 방해하여 이들을 영원히 만나지 못하게 한다. 지금 우리는 누구와 관계를 맺고 있는가? 진짜 그 사람인가, 혹은 내 마음 속에 담겨져 있는 다른 누군가의 모습인가?
여기 베일을 쓰고 있는 두 사람이 키스를 하고 있다. 일견 두 사람은 서로에게 몰두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얼굴을 뒤덮은 베일은 서로의 진정한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고 소통이나 접촉을 방해하여 이들을 영원히 만나지 못하게 한다. 지금 우리는 누구와 관계를 맺고 있는가? 진짜 그 사람인가, 혹은 내 마음 속에 담겨져 있는 다른 누군가의 모습인가? René Magritte, 'The Lovers(Les Amants)', 1928, 54 x 73.4 cm, Oil on Canvas,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어떻게 고장 난 노래테이프를 끌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얼굴에 드리워진 베일을 벗어 던지고 마음속 대상이 아닌 진짜 상대방과 관계할 수 있을까? '내가 좀 더 잘했다면 사랑받을 수 있었을지도 몰라' 싶었던 과거에 대한 후회와 원망, '이 사람도 또다시 배신하면 어떡하지' 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등에서 눈길을 거두고, 지금 여기 존재하는 바로 그 사람의 행동과 의도를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 자신의 마음 안에 무엇이 흐르고 있는지 알아채고, 혹시 과거와 미래에 갇혀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점검하는 과정이 요구된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마음 상태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능력을 포나기Fonagy는 정신화Mentalizing라고 명명하였다. 정신화란 '자신과 타인의 행동 기저에 있는 바람, 욕구, 느낌, 신념, 추론을 의미 있게 해석하는 정신 활동'을 지칭한다Bateman & Fonagy, 2004.

정신화를 통한 새로운 조망 시도

이러한 성찰 능력은 고장 난 노래 테이프를 통해 자동적인 반응 레퍼토리가 튀어나오기 이전에 잠시 숨을 고르고, 진짜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바라볼 수 있도록 정신적인 여유 공간을 갖게 한다. '또다시 버림받고 말 거야'하는 두려움의 목소리가 튀어나올 때, '잠깐, 지금 저 사람의 행동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는 없을까?'하는 새로운 조망을 시도해보는 것이다. 눈앞에 놓인 상황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취해봄으로써 과거에 형성했던 믿음이 변화된 현재에 기반하여 갱신될 수 있게 하고, 습관화된 반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줄 수 있다.

고장 난 노래 테이프를 끄기 위해 다음과 같은 메세지를 스스로에게 되뇌어보자: 상대방과 마주하고 있는 현재에 집중해보라. 나의 마음속에 무엇이 떠오르는가? 그것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인가 혹은 과거 다른 관계에서 벌어졌던 일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상대의 행동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그 이유 말고 혹시 설명할 수 있는 다른 해석 방법이 존재하지는 않을까? 이러한 끊임없는 성찰의 노력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반복되는 관계 패턴으로부터 벗어나 베일 너머의 진짜 상대방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mind

    <참고 문헌>

  • Bateman, A. W., & Fonagy, P. (2004). Psychotherapy for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Mentalization-based Treatment. UK: Oxford University Press.
  • Young, J. E., Klosko, J. S., & Weishaar, M. E. (2005). SCHEMA THERAPY: A Practitioner's Guide. New York: Guilford Press.
김은석 대구대 심리학과 교수 상담심리학 Ph.D
좋은 관계맺음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상담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다양한 기관에서 내담자들을 만나다가(기업 상담, 법원 처분 청소년 상담, 범죄 피해자 트라우마 상담) 현재는 대구대학교 심리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과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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