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석진은 정말 둔한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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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진은 정말 둔한 사람일까?
  • 2020.01.04 18:00
우리의 시각 기억은 생각보다 정확하지 않다. 일상적으로 우리는 생존에 매우 중요한 시각적 변화를 탐지하는 데 실패하기도 한다. 이런 일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사건 1. 20191214, 토요일. 방송국 JTBC. 프로그램명 아는 형님

왕코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개그맨 지석진이 아는 형님의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중간에 휴식 시간을 가진 이후에 아는 형님의 다른 출연자들이 휴식 시간 이전과는 조금은 다르게 옷을 고쳐 입고 나왔다. 그리고는 뒤늦게 입장한 지석진에게 묻는다. “우리 뭐가 달라졌을까요?” 지석진은 당황한 듯 열심히 찾아본다. 몇 가지 차이점은 발견했지만, 대부분의 차이점을 알아내지 못했다. 심지어 이수근이 가발을 쓰고 나온 사실까지도 알아채지 못했다. 출연자들은 재미있어하며 깔깔 웃는다. 슈퍼주니어의 멤버인 김희철이 지석진에게 어떻게 그 차이를 모르냐며 너스레를 떤다. 지석진도 스스로 나 이런 거 잘 몰라라며 매우 둔한 사람임을 인정한다.

사건 2. 201627, 일요일. 방송국 SBS, 프로그램명 런닝맨

지석진은 둔한 것으로 유명한 개그맨이다. 이런 그의 성향이 대중에게 확실하게 알려진 사건은 런닝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실시한 주의집중력 테스트였다. 지석진에게 진료실에서 의사와 면담을 하도록 한다. 그리고 문진표를 작성하면서, 런닝맨의 다른 출연진들이 지석진의 주의를 끄는 행위를 한다. 그 와중에 면담을 하던 의사가 다른 의사로 바뀐다. 흥미롭게도 지석진은 자신과 면담하던 의사가 바뀐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를 바라보던 다른 출연자들은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어?’라며 신기해한다.

'런닝맨'에서 지석진은 자신이 상담하고 있던 의사가 바뀌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런닝맨'에서 지석진은 자신이 상담하고 있던 의사가 바뀌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매우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 이 방송을 통해 지석진은 둔한 사람인 것으로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아는 형님은 이 상황과 유사한 상황을 만들고 지석진이 얼마나 둔한 사람인지를 다시 한 번 보여주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는 형님에서 지석진을 보고 함께 웃었던 김희철은 기억할까? 자신도 (정확하게는 자신이 속했던 그룹인 슈퍼주니어도) 지석진과 똑같은 상황을 겪었다는 것을?

사건 3. 20071111, 일요일. 방송국 SBS, 프로그램명 일요일이 좋다 중 슈퍼주니어 인체탐험대

오래 전에 방영되어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2005년에 데뷔하여 왕성하게 활동하던 슈퍼주니어는 SBS의 일요일 프라임 시간대의 예능 프로그램인 일요일이 좋다에서 슈퍼주니어 인체탐험대라는 코너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인체의 신비한 능력들을 스스로 체험하여 보여주는 코너였는데, 이때 시각 인지 능력 테스트를 시행한 적이 있었다. 이 때 사용했던 과제가 바로 진료 중인 의사가 바뀐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였다. 슈퍼주니어의 멤버들은 문진표를 작성하면서 의사와 면담을 하고, 면담 도중에 의사가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 이와 동일한 과제를 10년 가까이 흘러, 바로 앞서 이야기했던 런닝맨에서 지석진이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슈퍼 주니어의 멤버들은 지석진과 다르게 의사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눈치 챘을까? 이때 슈퍼주니어 멤버 대다수도 의사가 바뀐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심지어 (지금은 탈퇴한) 중국인 멤버인 한경의 경우, 의사가 네 번 바뀌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믿지 못하겠다면 너튜브에서 확인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uf4bB22JdgM&list=PL2jqz8Smk11sAoEn6ec4q8P-5SLUru8I_&index=3, 0:40부터 보면 된다.)

사건 4. 1997. 미국의 코넬 대학교 캠퍼스

미국의 코넬 대학교에서 실험 심리학으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던 (그 유명한 책인 보이지 않는 고릴라의 저자인) 대니얼 사이먼스Daniel J. Simons는 흥미로운 실험을 수행한다. 실험 보조자 A는 캠퍼스를 걷고 있는 사람(행인 B라고 하자)에게 다가가 길을 물어본다. 행인 B가 실험 보조자 A에게 길을 알려주고 있는데, 갑자기 커다란 문을 들고 이동하는 사람들이 행인 B와 실험 보조자 A 사이를 가로질러 지나간다. 그 순간, 실험 보조자 A와 또 다른 실험 보조자 C를 바꿔치기 한다. 흥미롭게도 행인 B는 자신이 이야기하고 있던 사람이 A에서 C로 바뀌었는데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자세한 실험은 너튜브를 참고하자 https://www.youtube.com/watch?v=FWSxSQsspiQ) 정확하게는 약 50%의 사람들이 이런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다Simons & Levin, 1998.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사실 이런 현상은 그렇게 특이하고 놀라운 사실은 아니다. 여러분들도 일상적으로 많이 경험하고 있지만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일명 옥의 티를 찾아라라고 알려진 현상들, 즉 동일한 장면에서 주인공의 옷이 바뀌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현상도 이와 동일한 현상이다. 믿지 못하겠다면, 아래의 짤을 보자. 거의 유사한 두 장의 사진이 번쩍이면서 반복되는 영상이다. 여기서 한 부분이 달라진다. 한 번 찾아보겠는가?

두 장의 사진이 번갈아 제시되고 있다. 한 부분이 다르다. 찾을 수 있는가?
두 장의 사진이 번갈아 제시되고 있다. 한 부분이 다르다. 찾을 수 있는가?

변화 맹시,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현상

찾는데 성공했을까? 왼 쪽 중간 부분에 있는 TV장의 색상이 조금은 달라지고 있다. (작은 변화로 보일 수도 있지만 막상 알고 나서 보면 알아차리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이 쪽에 주의를 준 상태에서 보지 않았다면, 한 번에 찾아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각 장면에서 발생하는 변화를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런 현상을 변화 맹시change blindness라고 한다. 변화 맹시는 얼핏 보면 사이먼스가 수행한 또 다른 유명한 연구인 보이지 않는 고릴라’, 즉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와 유사해 보이지만, 동일한 현상이 아니다. 무주의 맹시가 존재하고 있는 어떤 대상에 적절한 주의가 기울여지지 않으면 대상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설명된다면, 변화 맹시는 이미 존재함을 인식하고 있는 어떤 대상(혹은 장면의 일부분)에서 발생하는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설명된다. 따라서, 변화 맹시는 시각 기억이라는 요소와 관련이 깊다.

사실 변화 맹시는 시지각 연구자의 관점에서 보면, 인정하기 싫은 현상이기도 하다. 이는 시지각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두 가지 요소인 시각 기억변화에 대한 기존의 믿음을 저버리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시각 기억을, 특히 사진이나 사람 얼굴에 대해서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한 연구에서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612장의 그림을 한 번씩 보여 준 다음 2시간 후에 그림 재인 검사를 했는데 거의 완벽하게 기억 해낼 수 있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Shepard, 1967. 이처럼 정확한 시각 기억 능력을 통해, 그림 및 사진에 대한 기억이 정말 말 그대로 사진처럼 생생하게 저장되어 있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의 시각 기억이 생생한데, 어떻게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변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을까?

생각보다 허술한 우리의 시각 기억

사실 우리의 시각 기억이 그렇게 생생한 형태로 저장되지는 않는다. 매우 많은 수의 자극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시각 장면을 사진처럼 생생하게 담기에는 우리 시각 시스템의 용량은 부족하다. 그래서 시각 장면의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기억하지는 않는다. 쉽게 말하면 대충 흐릿한 형태로 저장한다. 그 대신, 변화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탐지한다. 이것은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변화를 탐지하는 것이 우리의 생존에 매우 필수적인 정보이기 때문이다. 나의 생존에 위협을 주는 존재가 나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서는 나에게 다가와야 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우리의 시각 장면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변화를 야기하게 된다. 따라서 변화를 잘 탐지해야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변화가 발생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 것 같은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런데 변화 맹시란 우리의 시각 기억이 생각보다 생생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며, 우리의 생존에 매우 중요한 변화를 탐지하는 데 실패하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도대체 변화 맹시란 왜 발생하는 것일까?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이유

변화 맹시가 발생하는 상황을 잘 보면, 변화가 일어나는 그 순간을 철저하게 감춘다. 실험실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변화 맹시 데모에서 변화하는 순간은 화면이 깜박이거나, 변화하는 부분을 가린다. 혹은 다른 쪽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여 변화하는 순간을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지석진의 앞에 있는 의사는 책상 아래에서 펜을 줍는 척하며 다른 의사로 바뀐다. 의사가 바뀌는 현장은 지석진의 눈앞이 아닌 보이지 않는 책상 아래이다. 특히, 같이 출연하는 유재석은 지석진이 의사가 바뀌는 모습을 못 보게 하기 위해서 계속 지석진의 주의를 흩뜨리게 한다.

변화 맹시는 우리 시각 시스템의 허를 찌르는 현상이다. 변화가 중요해서 언제 변화가 발생하는지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시각 시스템에게 변화의 순간을 감춤으로서 변화가 발생했다는 것을 숨기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시각 시스템은 시각 장면의 모든 부분에서 아무런 변화가 발생하지 않고, 이 전과 동일할 것이라는 가정으로 모든 것이 그대로 있을 것이라 믿는다. 기억 자체가 생생하지 않기 때문에 내 앞에 있는 의사의 얼굴이 바뀌어도 알아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실수투성이인 우리의 눈을 믿어야 할까? 너무 걱정은 하지 말자. 우리는 우리의 눈을 가지고도 오랜 진화의 역사 속에서도 훌륭히 살아남았고, 변화 맹시가 일어나는 현상은 어떻게 보면 작위적으로 일어나는 예외적인 상황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 하나만은 기억하자. 내가 보는 것이 항상 정확하지는 않을 수 있으니, 확신하지는 말자mind

<참고문헌>

  • Shepard, R. N. (1967). Recognition memory for words, sentences, and pictures. Journal of Verbal Learning and Verbal Behavior, 6(1), 156-163.
  • Simons, D. J., & Levin, D. T. (1998). Failure to detect changes to people during a real-world interaction. Psychonomic Bulletin & Review, 5(4), 644-649.
최훈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 인지심리 Ph.D.
연세대 심리학과에서 학, 석사를 마치고, Yale University에서 심리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이후 Boston University와 Brown University에서 박사 후 연구원 과정을 거쳐 현재 한림대 심리학과에 교수로 재직 중 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하던 만화, 아이돌, 스포츠를 지각 심리학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 평생 덕질을 하듯 연구하며 사는 것을 소망하는 심리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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