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완벽하게 이루어지게 될 수밖에 없어(feat. 양준일) - 긍정을 넘어서 만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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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완벽하게 이루어지게 될 수밖에 없어(feat. 양준일) - 긍정을 넘어서 만족으로
  • 2020.01.06 14:38
긍정심리학은 행복은 스스로의 의지로 얻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제시한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행복을 위한 어떤 노력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럽거나 지쳐 있다. 어떻게 해도 어쩔 수 없을 때조차도 과연 긍정심리학의 안내에 따라 애써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일까?

한 번은 들어봤을 '긍정심리학'

긍정심리학이라는 심리학 연구 분야가 있다. 심리학이 오랫동안 불안, 우울, 정신질환 등 인간 삶의 부정적인 면에 집중해왔다는 지적하며, 이제는 삶의 긍정적인 가치, 행복의 요인 같은 것들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1990년대 후반부터 나오기 시작했고, 이것은 학문적 동향 이상의 사회적 무브먼트가 되어 긍정심리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긍정심리학은 다른 심리학 연구 분야와는 달리 행복한 삶에 대한 통찰을 통해 긍정적인 메시지를 제시하면서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하여 심리학 연구 주류의 흐름을 주도했다. 행복은 스스로 발견하고 창조하는 것이며 자신의 의지로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동기를 부여했고, 즐거움 찾기, 몰입, 의미 발견, 자신의 강점 찾기, 소통하기, 사회에 헌신하기 등의 노력이 실제로 행복으로 연결되는 효과가 있는 것이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

긍정심리학의 창시자, 마틴 셀리그만

긍정심리학 연구의 흐름을 주도한 심리학자는 훌륭한 행동주의 실험 연구자였던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이다. 동물에게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줌으로써 무기력을 학습하게 하여 우울증에 이르게 하는 실험 연구로 모든 심리학개론 교과서에 이름을 올린 마틴 셀리그만이 30년 후 긍정심리학의 창시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심리학의 역사상 하나의 스토리를 넘어서 치밀하게 형성된 플롯과 같이 드라마틱하다.

마틴 셀리그만이 개를 대상으로 한 실험 연구는 파블로프의 고전적 조건형성 실험 이후 개를 사용한 가장 유명한 실험이다. 실험용 박스에 개를 넣고 고통스러운 전기 충격을 주는 실험인데, 어떤 개는 스스로 전기 충격을 멈출 수 있도록 한 반면, 어떤 개는 어떻게 해도 전기 충격을 피할 수 없게 했다. 일정 시간 동안의 전기 충격 실험 후, 셀리그만은 이번엔 개들이 실험용 박스의 건너편으로 뛰어 넘어가 전기 충격을 피할 수 있도록 했고, 그 결과는 좀 충격적이었다. 전 실험에서 전기 충격을 스스로 멈출 수 있었던 개는 전기 충격을 받았을 때 박스 건너편으로 뛰어 넘어가 충격을 피했지만, 어떻게 해도 전기 충격을 피할 수 없었던 개는 피할 수 있는 환경에 처했을 때에도 충격을 피하지 않고 고스란히 고통을 겪었다.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무기력을 학습한다는 것. 그것이 학계를 놀라게 한 셀리그만의 실험 연구 결과였고, 이는 우울증의 발병 과정을 설명하는 유명한 동물 모델로 자리매김하였다.

행복을 스스로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을 발견한 마틴 셀리그만. 그는 삼십 년 후 인간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삶의 의미를 찾을 때 개인의 행복뿐 아니라 사회적 성공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연구를 통해 입증하면서 매년 수십억의 연구비를 운용하는 거대한 연구팀의 수장이 되었고, 명실공히 21세기에 가장 성공한 심리학자 중 한 사람으로서 전 세계에 초청되어 희망을 전파하고 있다. 마틴 셀리그만을 2017년 말, 미국 에너하임에서 열린 심리치료 학회, Evolution of Psychotherapy에서 만났다. 그는 역시 대단한 스토리텔러였고, 그의 희망의 메시지에 심리치료 전문가 그룹 역시 열광했다. 강연이 끝나자 모두 기립하여 박수를 쳤는데, 그 뜨거운 열기가 아직 생생하다. 인간이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 찾을 수 있고 주변과 연대하여 긍정적인 에너지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정말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다.

언제나 애써 행복할 수 있나

그런데 한편, 행복하기 위해서 언제나 모든 경험에서 의미를 찾고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좋은 일에 몰입하라는 것은 어쩐지 힘겹게 느껴진다. 우리는 때로 그럴 힘을 내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럽거나 지쳐 있느라, 힘내라는 말에서조차 상처를 받는다. 발이 묶여 도망갈 수도 없이 고스란히 고통을 견뎌야 했던, 아니 견딘다기 보다 그저 고통스러워해야 했던 셀리그만의 그 실험실 개는 과연 당시에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있었을까? 고통의 의미를 찾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낙관적인 미래를 꿈꿀 수 있었을까? 혹여 그럴 수 있었다면 그럼으로써 무기력을 학습하지 않고 지나갔을까? 어떻게 해도 어쩔 수 없을 때조차도 과연 긍정심리학의 안내에 따라 애써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인지 정말 잘 모르겠다.

양준일, 그의 이야기

그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양준일. 어느 날 늦은 저녁을 먹고 별 생각 없이 TV 앞에 앉았다가 믿을 수 없는 장면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삼십 년 만에 양준일이 어느 프로그램에 나와 앉아 있었다. 한때 인기 있었으나 자취를 감춘 뮤지션을 찾아서 그의 노래와 지난 이야기를 전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양준일은 1991년 리베카라는 노래로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한 남성 솔로 가수였다. 만화책을 찢고 나온 듯한 팔등신 가느다란 몸매에 연예인 사이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패션 감각, 어떤 형식도 없이 화려한 무대 매너로 노래 세 곡을 선보이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당시 사춘기를 통과하며 학교에선 잠만 자고 집에선 라디오만 듣던 나는 벅찬 팬심과 상실감에 남몰래 괴로워해야 했다. 남몰래 그랬던 이유는 당시 모든 친구들이 양준일을 좋아하는 나를 별난 아이로 여겨 놀렸기 때문인데, 나 역시 친구들이 공일오비를 좋아하는 것에 공감하지 못했지만 그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나타난 양준일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이유와 이후의 삶에 대해 담담히 전했다. 당시에 그는 튀는 스타일의 재미 교포라는 이유로 심한 차별과 혐오를 겪다가 쫓겨나듯 미국으로 돌아가 험한 일을 하며 지냈다고 한다. 그는 글쎄 그런 존재였다. 머리를 길러서 웨이브를 만들어 뒤로 묶고, 폭넓은 헤어밴드를 하고, 펄럭이는 흰 블라우스를 입고, 가끔은 무릎까지 내려오는 통 넓은 반바지에 니삭스를 신고 나왔다. 쌍꺼풀 없는 눈매에, 걸리는 데 없이 흐르는 턱 선, 고운 이마까지 갖춘 얼굴이 동양 미인에 가까우면서도 이국적이었는데, 형식도 없이 움직이며 팔만 올려도 춤이 되었고, 가창력이랄 것도 없이 노래를 했다. 한국말보다 영어를 더 잘했는데 딱히 엘리트 의식은 보이지 않는 정체 불명의 아티스트. 많은 사람들이 그를 싫어했고 불편해했다.

지금은 식당에서 서빙을 한다는 그는 고생 끝에 득도를 한 것인지, 아니면 한국말이 서툴러서 그런 건지, 입을 열었다 하면 선문답 같은 중의적인 말들이 뚝뚝 떨어졌다. 그중 20대의 양준일에게 영상편지를 찍자 했을 때 한 말은 특히 뭐라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기했는데, 이렇게 시작되었다. “네 뜻대로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알아.” 그 다음엔 ‘그래도 괜찮아’ 식의 정신 승리 혹은 자기 위로의 말이 나올 차례였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걱정하지마. 모든 것은 완벽하게 이루어지게 될 수밖에 없어.” 아, 이게 뭐지…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뭔가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는데, 그게 둔기나 흉기는 아니었다. 후에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네가 인생에서 원하는 그것을 내려 놓으면 마무리가 된다’는 뜻이었다. 원하는 게 K팝스타라면 그걸 내려놓으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고 마무리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원하지 않음으로써 맺는 완벽한 마무리

내려놓으라는 말은 언제부터인가 어디서건 들을 수 있는 흔한 메시지가 되었지만, 원하지 않으면 마무리가 된다는 말은 아직 아무 데서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렇다! 스스로 내려놓아서 이제 더 이상 원하지 않는 상태, 그것은 무기력을 학습한 상태와는 상당히 다른, 만족의 상태가 아닌가! 원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인데, 원하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는 굳이 애써 뭘 하지 않아도 되고 보상도 필요없다. 그것이 완벽한 마무리에 가깝다는 생각. 그는 대체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해 가슴앓이 하던 20대와 30대, 인생이 맘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을 고스란히 겪은 40대를 어떤 마음으로 살았던 것일까. 그는 이어서 현실에 무릎 꿇는 것이 좋다고 했다. 애써 뭘 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승복하고 받아들이는 것, 지금 있는 그대로를 고스란히 느끼며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그는 서빙을 했다더니 실은 티벳 같은 곳에서 승려로 수행을 하다 온 것은 아닐까.

긍정도 부정도 품는 만족의 상태

어느 날의 상담 공부 중 스승님께서 오유지족吾唯知足이라는 말이 있지 않냐고 운을 떼셨다. 오며 가며 들었던 풍월로 아는 체를 했다. “오직 만족을 알 뿐이라는 것이니, 긍정심리학 같은 거지요?” 그것과는 좀 다르다고 하신다. 긍정도 부정도 다 품고 비로소 만족하는 것. 그것이 오유지족이 아니겠냐는 말씀이었다. 심리학이 부정적인 것만 문제 삼다가 긍정심리학이 나왔는데, 그전에 인간중심 심리치료 이론이 너무 빨리 나왔던 게 아닌가 싶다고 하시며, “힘든 게 없으면 좋은 것도 없지. 이런 저런 고생을 했기 때문에 지금의 자네가 있는 것이고.” 이렇게 마무리하셨다. 인간중심 치료는 1940년대에 칼 로저스라는 심리학자가 발전시킨 심리치료 이론이자 기법이다. 인간에 대한 신뢰를 기본으로 인간 스스로의 잠재력 실현을 돕는 것에 치료자 역할의 중요성을 둔다. 인간중심 심리치료자가 갖추어야 할 핵심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긍정적 존중과 수용이다. 내담자의 생각, 감정, 행동에 대한 어떤 평가나 판단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 우리는 스스로의 생각, 감정, 행동에 대한 평가 없이 어떤 상황에 처한 자기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나. 고통, 좌절과 같은 어려움 속에서 애써 의미를 찾고 긍정적이고자 노력하기 전에, 그 어려움을 그대로 느끼고 그 파도에 몸을 맡겨 마음이 어디로 흘러 가는지 집중하는 것 말이다.

이제 정해진 대로 한 해를 갈무리하고 새해를 맞았는데, 흐르는 물처럼 끊김 없는 마음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구분 지어서 과거로 흘려 보내고 새것으로 맞이해야 할지 알기가 어렵다. 그저 오롯이 겪으면서 현실에 무릎을 꿇는 것, 그것이 어떤 것일까 깊이 생각하며 새해를 맞기로 한다. mind

박혜연 분당서울대병원 공공의료사업단 임상심리 Ph.D.
대학병원 공공의료사업단에서 공직자 및 일반 직장인들의 스트레스 관리와 정신건강 문제 예방 및 치료를 위해 일하고 있는 임상심리전문가이다. 경기도 소방심리지원단 부단장, 보건복지부 전문 카운셀러를 역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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