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제법 괜찮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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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 제법 괜찮은 존재
  • 2020.01.16 10:00
나와 타인은 다른 존재다. 타인은 으레 차갑고 메마르게 묘사되며 사람들은 그들의 부정적 시선과 평가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이는 상당 부분 우리의 오해에서 비롯된다. 사실 타인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관대하고 호의적인, 제법 괜찮은 존재일 수 있다.

타인은 지옥인가?

우리는 많은 타인을 마주하며 살아간다. 당신은 ‘타인’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현대 사회에서 타인, 그리고 타인의 시선은 다소 차갑고 평가적으로 묘사되기 일쑤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웹툰 <타인은 지옥이다> 역시 낯선 사람과의 관계가 주는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잘 표현한 바 있다. 실제로 사람들은 짧은 자기소개나 대화에서부터 발표나 연주에 이르기까지 일상 속 타인과의 만남에서 긴장과 불안을 경험한다. 타인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비추어지는지, 혹시 부정적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는 것이다.

김원. ‘good life’, 2018. 한지에 먹과 채색, 200 x 366 cm. ©김원.
젊은 동양화가 김원이 그린 사회성 짙은 풍속화다.  먹의 선묘, 필치, 표현, 포치, 색상 대비 등 여러 면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원. ‘good life’, 2018. 한지에 먹과 채색, 200 x 366 cm. ©김원.

인정욕구의 그림자

이러한 걱정은 근본적으로 타인으로부터의 인정, 그리고 이를 통한 유대와 지위가 생존에 중요한 데서 비롯된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타인에 대한 왜곡된 시각 또한 자리할 수 있다. 타인이 나의 실수나 결점을 알아차리면 나를 무시하거나 형편없다고 판단하는 존재라고 믿는다면 타인과의 교류나 상호작용은 두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타인은 우리의 허물을 지적하며 비난할 준비가 된 매정한 존재들인가? 과연 타인의 평가에 대한 우리의 지각은 정확한가? 연구 결과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타인이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는 정도는 물론, 이러한 실수가 미치는 부정적 영향력을 실제보다 과대 추정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Savitsky et al., 2001.

일례로, Savitsky와 동료들(2001)의 연구 속 참가자는 타인(관찰자) 앞에서 지능과 관련된, 대부분이 곧잘 푼다고 안내받은 과제를 수행하였다. 하지만 실제 과제의 난이도는 높은 편이었으므로 참가자의 수행은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 관찰자는 과제를 수행하는 상대가 얼마나 유능하고 지적으로 보이는지 과제 수행 전과 후 두 번에 걸쳐 평가하였으며, 과제 수행자 또한 관찰자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지를 두 번에 걸쳐 보고하였다. 연구자들의 관심은 관찰자의 평가가 과제 수행 전과 후에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리고 과제 수행자들이 이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연구 결과, 흥미롭게도 과제 수행자는 자신에 대한 평가가 수행 전후로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응답하였다. 실수(저조한 수행)로 인해 타인이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관찰자의 평가는 수행자의 실수를 접하기 전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타인의 평가는 특정 요소 하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를 예측하는 사람은 자신의 실수에만 과도하게 초점을 맞춘 나머지 그 영향력을 과대 추정한 것이다.

생각보다 관대한 타인

이상의 결과는 타인이 생각보다 나의 실수나 결점에 관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최근 연구에 의하면 타인은 내 생각보다 나를 더 좋아할 가능성이 높다Boothby et al., 2018. 연구자들은 처음 보는 참가자들로 하여금 실제 대화를 나누도록 하고 상대에 대한 호감과 상호작용의 즐거움을 보고하도록 했다. 앞서 연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참가자들은 상대에 대한 평가뿐 아니라 나에 대한 상대의 평가도 함께 예측하였다. 이번에도 사람들은 타인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지 못했다. 참가자들은 자신에 대한 상대의 호감과 즐거움을 실제보다 과소 추정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이는 심지어 몇 달간 지속되기도 하였다. 상대방의 마음을 보수적으로 가늠하는 것은 사회적 거절을 방지하는 등 효과적인 관계 형성과 유지를 도울 수 있지만, 이와 동시에 스스로를 더 외롭게 만들기도 한다. 타인에 대한 냉소적 시각은 타인을 부정적으로 대하도록 이끌고, 이는 실제로 타인의 호의를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가장 혹독한 비판자

그렇다면 나에 대한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정확하게 파악할수록 관계에 이로울까? Carlson에 의하면, 타인의 마음을 정확히 읽는 것은 다양한 방식(예, 부정적인 행동 교정)으로 관계를 촉진할 수 있지만 관계의 질을 보장하지는 않는다Carlson, 2016. 정확한 메타인지는 나와 상호작용하는 타인에게는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 나 자신에게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은 상호작용하는 상대가 그/그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부정이든 긍정이든) 정확히 알고 있다고 여길수록 상호작용을 즐기지만, 정작 자신은 상대가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고 여길수록 그/그녀와의 상호작용을 즐긴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타인이 실제로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아는 것 못지않게 관계에 중요한 것은 이에 대한 나의 믿음이라고 볼 수 있다. 소개한 연구들은 어쩌면 타인은 내 생각보다 호의적이고 관대한, 제법 괜찮은 존재이며 나에 대한 가장 혹독한 비판자는 바로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말해준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의 온도가 그리 차갑지 않다는 믿음만으로도 세상은 조금 덜 외로운 곳이 될 수 있지 않을까. mind

   <참고문헌>

  • Boothby, E. J., Cooney, G., Sandstrom, G. M., & Clark, M. S. (2018). The liking gap in conversations: Do people like us more than we think? Psychological Science, 29, 1742-1756.
  • Carlson, E. N. (2016). Meta-accuracy and relationship quality: Weighing the costs and benefits of knowing what people really think about you.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11, 250-264.
  • Savitsky, K., Epley, N., & Gilovich, T. (2001). Do others judge us as harshly as we think? Overestimating the impact of our failures, shortcomings, and mishap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1, 44-56.
신지은 전남대 심리학과 교수 사회심리학 Ph.D.
연세대에서 사회심리학을 전공하였으며, 행복에 대한 메타인지와 기능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9년 한국심리학회에서 수여하는 김재일 소장학자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전남대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인간의 사회적 사고와 행동을 진화심리학, 생태학적 관점에서 조망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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